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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Christophe Nolan
아마 지금 90년생들하고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릴때라 이 세사람의
인기를 실감못할거라 생각됩니다.
그때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생이니...
여기 나오는 세사람이 대단한건 단순히 인기가 많은 이유때문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인맥이라던가 PD들이나 감독들하고 로비잘하고, 힘좋은 소속사 하나 얻어서 계속 언플하고
작품 몇개로 떠서
신비주의 모드하면서 쉽게 톱스타가 되는 그런게 아닌
90년대 통틀어
대중들에게서 정말 범국민적 인기를 자랑했던
객관적인 연예인 3명입니다..
Entertainer
김국진
1965년 2월 6일생
데뷔 : 1991년 제 1회 KBS 대학 개그제
사실상 자타공인 최고의 예능인이라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유일한 예능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짜 전국민적 인기에 김국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떠돌정도였고..
90년대에 이분의 인기는 진짜 나는 새도 떨어뜨릴정도였죠.
김국진의 당시 인기는 지금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유재석,강호동 두사람 합친 인기보다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000년대 초반은 거의 MBC에선 예능 간판으로써 거의 MBC예능을 먹여살릴정도였죠..
전국적으로 연령대를 초월하여, 그 시대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라는 키워드의 이상형을 만들어냅니다.ㄷㄷ
대한민국 예능사에 도미네이트한 1인 천하의 시대를 열었던 사람이 3명있습니다.(전체 통틀어서)
그 사람이 시대순으로 이경규.김국진.신동엽인데요.
그 중에서도 단연 탑은 김국진이었죠.
우스갯 소리로 김국진 섭외할려구 pd들이 김국진 집앞에서 일주일동안 밤새가면서 기다릴 정도였다고합니다.
김국진 전성기때 연예인의 이름을 내건 식품이 딱 2개 있었습니다.
HOT랑 김국진씨 였는데 당시 가요계의 독보적 1인자는 HOT, 방송계의 독보적 1인자는 김국진씨 였었습니다.
국진이빵 잘나갈때 하루 70만개 팔렸었는데 말 다한 거죠.
전성기때 스케줄이 1월 1일 ~ 12월 31일까지 다 차있었을 정도였다죠.
잘나갈 당시 찍은 CF만 100편이상이 넘으며 하루에 스케줄이 넘처나다못해 CF촬영이 6시간이상이 넘어가면
CF촬영을 중단할정도였습니다. CF의 한편의 힘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스타들도
CF한편 못찍어서 안달이죠..
요즘 방송인들 유행어 만들려고 기를 쓰죠.
김국진씨 전성기때 그냥 던진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습니다.
쉽게 말해 1회 방송분에 유행어가 수십개씩 나왔죠.
당시의 인기도 인기지만 안티팬도 없었죠.
1. 정부수립 1948년이후 50년동안 (100년은 아니구요..광복이전은 연예계라는게 의미가 없으니..)
가장 사랑받은 연예인 1위였구요..2,3,4위가 최불암,최진실,조용필로 기억됩니다..말 그대로 전국민적인
초특급 스타였습니다.
2. 또한 MBC에서 조사한 20세기를 빛낸 코미디언 1위로 선정.
3.당시 모든 설문조사에서 1위였습니다..연예인뿐만 아니라 스포츠스타,유명인사 합한 설문조사에서도
1위를 독차지...
4. 이러한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구매력을 발생시키는 cf스타로도 활약했구요..
그유명한 국진이빵등을 비롯한 100여편의 cf및 이로인한 유행어들 (밤새지마란 말이야 - 컴퓨터,
나 소화 다 됬어요 - 소화제, 짜장면 시키신분..- 이동통신 cf 등등)
5. 라이벌이 없는 독보적인 1인천하시대 - 그 당시 다른 개그맨은 솔직히 명함도 못내밀었다고 보시면..
그 인기의 제일 1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테마게임입니다. 다양한 캐릭터와 어려운시절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준 테마게임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예능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그 당시 드라마와 코메디를 합했다고
해서 드라메디라고 불리기도 했구요.(그밖에 당시 21세기위원회,칭찬합시다.일밤등 여러 프로가 다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흥국 (모 신문사 개인 인터뷰중 개인적으로 후배 김국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 " 내가 연예계 생활 30년차가 다되가지만 김국진처럼 인기있는 개그맨은 본적이 없다. 물론 선배님들을 제외하고...(웃음)
아끼는 후배이이기도하지만 앞으로 그 정도로 인기를 누릴수 있는 개그맨이 나올수 있을까..? 아니 반정도는 따라올지몰라도 앞으로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앞으로 김국진 같은 사람은 나올 수가 없다고 장담한다."
유오성 (영화 반가운 살인자 인터뷰도중 라디오스타 녹화는 어땠느냐는 질문에..)
- " 라디오스타 MC분들 모두 다 잘 대해주셨지만 김국진 선배님이 특히 기억에 많이남았어요. 10여년전 테마게임이 한창 인기를 끌 당시 김국진 선배님을 한번 뵌적이 있는데 정말 인격적으로 순수한 분이셨어요..그땐 전 갓 데뷔한 신인이었고 뭔가 뭐랄까.. 당시로썬 스타셨고 조금 시건방지다라는 이미지가 있을줄 알았는데 신인인 실제로 뵙고나니 굉장히 유쾌하시고 순수하신 분이셨죠."
Actress
故 최진실
1968년 12월 24일생
데뷔 :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
자신의 이름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낸 최초의 연예인.
자타공인 한 시대를 풍미한 연예인 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최진실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하지요..
90년대 인기가 절정을 달리던 시절 남녀노소 상관없이 다 최진실을 좋아했고,
개런티나 CF출연비용도 여자스타중에 A+급이었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출연시키려고 난리도 아니었죠,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연예인이었습니다. (방송 3사를 휩쓸고다녔죠..)
"대스타" "국민배우"의 수식어를 달고다녔으며 한때 일화로는 지방에 있는 최진실의 남성팬들은 최진실의 얼굴 한번 볼려고
서울에 올라와서 텐트치고 기다렸다는 말도있고.. 골수 남성팬이라던가 엄청난 매니아층 팬을 보유했었습니다.
80년대 90년대를 통틀어 연기자로써는 그렇게 오래 인기를 누리고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톱스타로 살아온 연예인은
최진실밖에 없었다고 보면됩니다.
cf, 영화, 드라마 전부 섭렵했었죠..
당시엔 상당히 신선하고 귀여운 마스크였고,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호감형의 외모를 지녔다는 평도 받았죠..
진짜 초창기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라는 소리를 들었을정도였고 오랜세월 탑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무리 톱스타라도 10년이상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기힘듭니다.
평론가들은 최진실을 가리켜 앞으로 대한민국 연예계에 나오기 힘든 인물이라고했죠..
당시 잘나간다는 여배우들 김혜수,심은하,김희선,고현정,고소영등등 있었지만 최진실의 인기는 못따라갔습니다.
특히 97년도 별은 내가슴에 할때 인기층이 중고등학교 학생부터 40대 50대 심지어 60대 노인분들도 최진실씨를 좋아할정도였죠...
90년대를 느낄수 있었던 세대는 최진실 싫어하는 사람없을 정도죠, 그만큼 이미지, 인지도, 히트작, 대중성 무엇에도 떨어지는 것 없었던 탑이였죠.
2000년도 결혼할 당시만해도 최고의 톱스타 결혼식으로써 전 언론과 전국민의 관심을 받았죠.
최진실=신세대의 상징, 인기의 상징
90년대 한때 모방송에서 실시했던 국민인기투표에서
1위가 최진실 2위가 서태지와 아이들 3위가 김영삼 대통령을 차지했었다고 할정도였죠.
Singer
서태지
1972년 2월 21일생
데뷔 :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난 알아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가수이며,
대한민국 가요계의 한획을 그은가수.
서태지의 등장으로 이전에도 없었던 가요계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판도를 봐꾼 가수가 바로 서태지입니다.
90년대 데뷔할 당시 서태지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르며
데뷔곡 "난 알아요" 가요차트 17주 1위 (현 대한민국 가요차트 기록중 공식 1위기록)을 달성하며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의 14주 1위를 깨며 그 누구도 넘을수없는 벽을 만들어냅니다.
서태지가 앨범을 내는 모두 신세대들의 정신과 의상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레전드이자 대부로 불리는 조용필이 자기 입으로 인정한 신승훈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몇안되는 뮤지션입니다.
현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10대나 20대들 대부분이 서태지의 영향을 받아 서태지같은 연예인이 되고자하는게 꿈이라고 말하고
가수의꿈을 키우는 청소년들 대부분이 롤모델로 꼽는게 서태지라고 하네요.
90년도 당시 대한민국 가요계가 미국에 비해 10년이나 뒤쳐져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했고,
"서태지 한사람에게 대한민국 가요계가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라는 말까지 있을정도로
당시 서태지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가요계에서의 위치는 가히 신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있지만 매니아 팬층이라던가 팬덤은 대한민국 가요계 단연 1위로 꼽고싶은 가수가 서태지입니다.
서태지의 가요계 등장 이후 연예기획사들의 아이돌 프로모션에 있어 중요한 모델이 됩니다.
90년대 후반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다양한 아이돌들의 형태는
서태지와 아이들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즉 다수의 그룹, 랩댄스 장르, 사회비판적 메세지, 자극적인 패션과 프로모션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광복 50주년 대한민국을 바꾼 저명인사 50명에 서태지가 최연소로 뽑혔구요.
(가수로서 유일했죠.. 정치인들 경제인들 무리에서 ㅋㅋ)
또 광복이후 최대 히트상품이 서태지와아이들 앨범이라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했구요 (새우깡 쵸코파이 바카스 다 제치고~)
또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은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음반판매량도 기록이 많은데요.
데뷔앨범 최다 판매량 기록 170만장 기록입니다.
1집이 이렇게 많이 팔린 가수는 아직도 없죠.
국내최초 더블 밀리언 셀러요 하여가가 한국앨범으로 최초 200만장 팔렸죠.
4집이 한나절만에 40만장인가 다팔려서 뉴스에 나왔고.
그리고 한국근현대사 배우시면 년표를 보다보면..
1996년 1월31일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가 근현대사 년표에 나옵니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엄청났었습니다... 한국이 온통 보름 내내 공항상태였죠.
첫댓글 아 국진멜론빵인가 기억나네
부왘...
임창정이 왜없어요?
각 부문별로 한명씩 뽑았으니까요 ㅇ_ㅇ
ㅠ
故안재환씨가 죽고 故최진실씨가 돌아가셨을 때 정선희씨가 실신하는 장면을 보고 가슴아파 울고 최진영씨가 울분을 토하는 모습에서 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아쉬운 별이 지셨습니다.
서태지 형님이야 뭐 예전부터 너무 좋아했던 뮤지션이니 따로 할말도 없지만 양현석,서태지,이주노 3명이 한꺼번에 찍힌 사진은 오랜만에 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