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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란 말이 있습니다.
사실 전 현재 우리가 배우는, 책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는 상당 부분의 날조와 왜곡이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 역사라는 것은 한편으론 날조되기 가장 쉬운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때는 광주 사태라고 불렸으나, 요즘 그 이름이 바뀌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정정되었습니다.
과학의 발달 이후 우린 역사를 여러 가지 근거에 비추어 다시 금 그 본래 모습을 찾아낼 수 있게되었지만, 너무 오래된 일은 따지고 보면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추측일 뿐이죠.
글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 잡담을 하겠습니다.
한 가지 제가 예전에 중국에서 유학 중일 때 친구에게 들은 민담이 있습니다. 삼국지의 유비의 이야기였죠. 삼국지를 정말 사랑했던 저로썬 상당히 반가운 이야기였습니다. 삼국지는 나관중의 소설로, 실제 역사와는 다른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나관중의 삼국지에서 미화된 사람이 바로 유비 현덕이란 사람입니다.
실제로 유비는 미부인과 감부인이란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들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두 가지 있습니다. 바로 관우의 천리행과 장판파 전투 입니다. 조조에게 패한 후, 관우는 농성을 하다가 결국 부인들과 함께 조조에게 조건을 내걸고 귀순합니다. 그리고 결국 유비에게 돌아가면서 수많은 관문을 돌파하고 장수들을 베어넘기고 결국 유비에게 가는 일화죠.
두번째는 유선을 낳은 미부인이 장판파 전투에서 떨어져 나와 유비의 장수 조자룡에게 구출을 받지만, 거부하고 우물로 뛰어드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부터 재밌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유비는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관우가 부인들과 함께 자신에게 돌아온 후, 미부인과 감부인은 고생한 관우에게 인사치레로 나마 선물을 대접했습니다. 이걸 본 유비는 천리나 함께 오면서 의제와 부인이 간통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합니다.
유비는 처음으로 감부인을 찾아가 관우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형수님, 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부인은 문을 열지 않고 집안에서 '장군이 여긴 어인 일이오?'라고 답했습니다. 유비는 얼른 몸을 숨겨 이번엔 미부인을 찾아갔습니다. 문 밖에서 유비는 감부인에게 한 것과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자 미부인이 몸소 나와 문을 열어주며 반겨주었습니다. 이에 유비는 화를 내며 간통을 하였노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란에 관우가 뛰쳐나와 유비를 달래어, 그런 일이 없노라고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유비는 그의 말을 듣고 횅하니 돌아갔고, 미부인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죠.
후에 조자룡이 장판파 전투에서 미부인을 구하러 왔을 때, 미부인은 대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룡이 나를 구하러 여기까지 와서 함께 돌아가면, 현덕이가 또 의심을 할게 아닌가?' 미부인은 이 젊은 장수의 앞날을 막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가 가있던지라 결국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습니다. 후에 이 이야기를 듣고 유비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죠.
참 재밌지 않습니까? 삼국지를 읽어본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선의 상징으로 나오는 유비가 이런 짓을 했다곤 생각지 못하셨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듯 역사는 어떠한 영웅을 추앙하고자 하면 그 단점은 충분히 덮어씌워버리고 날조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닌 부분도 아주 많겠지만 말입니다.
아마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쇼타임' 레이커스와 '댄토니' 선즈와 비슷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모습은 단지 믹스나 명경기 정도입니다. 오히려 전자 쪽을 통해서 레이커스의 모습이 더더욱 그 후광을 발하겠지요.
살짝 조던의 이야기로 넘어와봅시다. 가장 예민한 부분입니다만, 사실 조던은 말 그대로 신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요즘 들어 농구를 접하신 분들에겐 사실 신의 영역과도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조던 또한 인간이자, 한 명의 선수였습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조던은 매경기 트리플 더블급 활약에 질식 수비에 실패하지 않는 클러치 슛과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훨씬 달갑겠지만, 조던 또한 어떤 경기는 실수하기도 했고, 클러치 슛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야투율이 좋지 않은 경기도 있었고 지는 경기도 있었죠.
그럼 레이커스 경기로 돌아가서, 쇼타임 레이커스는 기본적으로 매직 존슨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존슨은 마찬가지로 패스와 속공의 신 정도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매직은 플레이오프 최다 턴오버 기록도 가지고 있고 포인트가드 치고 턴오버 수치가 상당히 높습니다. 존슨의 커리어 턴오버는 3.87입니다. 플레이오프 때는 3.66을 기록했으며 최대 턴오버를 기록한 시즌은 83년 시즌으로 4.57을 기록했습니다.
매직 존슨은 또한 그의 거대한 몸으로 인한 미스 매치를 마구 만들어냈지만 반대로 자신도 미스 매치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발이 빠르고 좀 더 작은 가드들에게 존슨은 가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습니다.
수치상으론 이렇지만, 실제로 경기에서도 존슨의 현란한 패스를 받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무조건 꽂히던 패스만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승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들이며 후대 사람들이 충분히 우러러 볼 수 있고, 우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팬이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 마이크 댄토니 감독의 속공 농구를 한번 보겠습니다.
댄토니는 현대 농구에서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생각을 가진 몇 안되는 농구 감독중 한명입니다. 댄토니 농구는 화끈하고 정말 다이나믹하기 짝이 없습니다. 쇼타임 레이커스를 봤던 저였지만, 댄토니 농구도 그에 못지않게 강하고 다이나믹합니다. 정말 보는 사람들이 신나지요.
하지만 실상 댄토니는 현지에서 딱히 인정을 받는 그런 감독은 아닙니다. 아니, 그의 농구 가치관 자체가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지요. 그걸 잘 알려주는 것이, 댄토니식 농구로는 우승할 순 없다란 말일 것입니다. 여러 칼럼리스트들도 썼던 글이지만, 댄토니는 스티브 내쉬와 함께 같이 싸잡혀서 까이기 일 수 입니다.
일단 댄토니 식 농구를 대충 설명하자면, 그의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포인트 가드입니다. 이 포인트 가드는 야전 사령관으로써 모든 공격의 시작을 일임받습니다. 그리고 일단 달려야 합니다. 공을 잡으면 48분 내내 죽어라 달려도 여전히 단전 호흡이라도 하고 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체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포인트가드 말고도 다른 모든 선수들이 달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스몰 라인업이 될 수 밖에 없고, 아마레나 매리언 같이 달리면서 무지막지하게 덩크를 찍어줄 선수들이 필요하고 에이스를 막아줄 라자벨 같은 선수가 필요합니다.
사실상 스티브 내쉬의 전성기였던, 백투백 MVP를 받은 시즌엔 정말 댄토니 농구는 혜성과도 같았습니다. 댄토니야 말로 현 리그에 스몰 라인업의 패션을 몰고온 선두주자였습니다.
존 디펜스가 적용된 이래, 하프코트 오펜스를 즐겨하던 팀들은, 특히 트라이앵글 오펜스나 세트 오펜스를 즐겨 사용하던, 속수무책으로 이 달리는 농구에 당했습니다. 가장 큰 예가 아마도 67승을 이루고 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입성한 댈러스 매버릭스를 무참히 무찔러 버리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선즈는 결국 그렉 포포비치와 팀 던컨이 이끄는 샌 안토니오 스퍼스의 하프코트 오펜스의 벽을 넘지 못했고, 댄토니의 해임으로 그들의 속공농구는 사실상 끝이 났습니다. 사실 샤킬 오닐의 트레이드 때부터 이미 속공농구는 끝난 것과 다름이 없었죠.
이렇게 댄토니의 전성기가 워낙 짧았고, 주축 선수였던 스티브 내쉬가 댄토니 해임 후, 그 힘이 줄어든 것을 근거로 칼럼니스트들은 댄토니 속공농구는 실패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내쉬 이야기를 좀 하자면, 그는 댈러스에 있을 때부터 사실 슛은 이미 굉장히 좋은 선수였습니다. 3점이 4할이 넘었던 수준이 여러 번 있었고, 자유투는 원체 좋았으며, 패싱 감각이나 풋워크 등 기본적으로 꽤 좋았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내쉬는 MVP와는 거리가 먼, 당시 키드와는 비교도 안했던 선수였습니다.
허나, 내쉬가 선즈 이적 후, 그의 어시스트 수치와 득점은 놀랄만큼 뻥튀기 되기 시작됐고 더불어 턴오버 수치와 야투율 까지 함께 올랐습니다. 내쉬는 댈러스에 있을 때, 평균 턴오버 수치가 3개 이상이 넘은 적이 없는 선수였습니다.
MVP를 수상했을 때도, 처음에는 전혀 이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백투백 수상 가능성이 제시되자, 약간은 사람들이 주춤하게 됩니다. 가드가 백투백 MVP를 수상한 적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내쉬에게 걸림돌이 되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르브론이나 크리스 폴이 지금 같지 않았고,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팀 사정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던컨은 잘하곤 있지만 임팩트가 부족했고, 결국 내쉬가 다시 MVP를 타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내쉬의 백투백 MVP 수상을 깎아내릴 순 없지만, 당시 사정은 사실 그랬습니다.
자, 이번엔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댄토닉스의 상황을 볼까요?
새 야전사령관이 된 크리스 듀혼. 시카고에서 트레이드 되어 백업 포인트가드에서 벗어나 출전시간이 16분 가령 증가했고 거기에 어시스트 수치와 득점 수치가 놀랄만큼 올랐습니다. 더불어 턴오버도 2개 가까이 치솟았네요.
재밌는 점은 듀혼의 야투율과 3점 성공까지 올라갔다는 겁니다. 내쉬의 경우와 같죠?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댄토니 농구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프코트 오펜스로 신중하게 댄토니 사단의 페이스를 늦추며 예기를 꺾어버리면 속수무책이라는 점.
빨리 달려야 하는 농구인 댄토니 농구는 사실상 스퍼스에게 풀코트 프레싱이나 빠른 백코트로 차단당해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전술 자체가 배수진과 같이 양날의 검이라는 점이죠.
사실상 선즈에서의 댄토니 농구는 돌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폭풍이 되진 못했습니다. 시즌에선 그런 무차별 폭격이 통했을 지 모르나, 플레이오프에서는 준비된 다른 팀들에게 역습을 당하게 된 셈이었으니 말입니다.
댄토니는 아마도 뉴욕 닉스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한다면 댄토니의 농구는 역사에 혁명으로 기억이 되겠지요. NBA 역사에 큰 한 획을 그은, 그런 감독으로 말입니다.
지금으로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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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퍼스팬인제가 이런말하는게 좀 웃기지만 스퍼스가 정말 털끝하나 차이로 피닉스를 누르고 올라갔던 06-07시즌에 피닉스는 충분히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04-05플옵이나 07-08플옵은 솔직히 스퍼스의 전력이 피닉스보다 반수정도 위의 전력이었다고 보지만 06-07시즌의 피닉스는 우승을 차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전력이었죠. 돌풍과 폭풍이 한끝차이지만 충분히 폭풍에 가까운 위력을 갖춘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스퍼스의 승이었습니다. 분명 피닉스는 강팀이었으나 결국은 시즌 내에 전술이 많이 읽혔습니다. 저도 분명 댄토니 하의 피닉스 농구는 강하나 결국 스퍼스에게 전술을 읽혀 당했다고 적은거 같습니다만.
앞뒤는 상관없이 결과론으로만 글을쓰시고 결론을 내리시려고 하는거같아 많이 아쉽네요. 머 패자는 말이없다지만. 쇼타임님 말씀처럼 당연히 질팀이 아니였습니다.
다른 시즌은 그렇다고 쳐도 특히 06-07시즌에는 그냥 스퍼스의 승이라고 말하기엔.. 실력외의 변수가 워낙 많았죠.. 전술을 읽혀서 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CP3님의 의견이랑 비슷하게 생각하는게 글쓴님은 그냥 남은 결과만을 보고 거기에 대한 글쓴님만의 생각의 결론을 내리신거 같네요.. 이미 결론을 거의 내놓으셨으면서 마지막에는 더 지켜봐야겠다고 쓰시니 머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네요
06-07시즌에서도 뭐 결과적으로 4-2로 끝났죠. 아마레와 디아우가 돌아온6차전에서도 패했고 점수차이는 더 벌어졌습니다. 5차전심리적 여파가 컷다고는 하지만 우승팀들은 저런 상황에서 6,7,차전을 모두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아마레나 디아우가 안 빠졌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선즈가 스퍼스에게 졌을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뭐 최소한 선즈가 스퍼스를 잡을수있었다고 애기할거면 아마레 디아우가 돌아온 6차전에서는 이겨서 7차전까지는 갔어야 하지않을까요
그리고 공격을 빨리하는 팀 선수들의 스탯은 당연히 뻥튀기 될수밖에 없죠. 런&건팀 포인트가드의 스탯뻥튀기와 댄토니 감독의 실패사이의 연관성은 찾아보기 힘든데요? 당연히 공격횟수가 많아지고 빨라지면 턴오버도 많아질수밖에 없는것 아닌가요??
그 두가지가 연관이 있다는게 아닙니다. 댄토니 감독의 공격농구엔 뛰어난 포인트가드가 필요하고, 단지 그 포인트가드들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썼을 뿐이죠.
결과는 패했기 때문에 실패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면서 두고보자는건 앞뒤가 안맞는 것 같은데요. 댄토니가 당장 지금 뉴욕을 파이널까지 이끌어도 파이널에서 진다면 역시나 실패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 이 글은 5년 후 쯤에나 토시하나 틀린거 없이 고대로 올리고 선즈팬들과 버블 파이트를 해야 하는 글 같습니다. 현재로서 이 글에 동조를 받는건 내쉬 안티들 밖에 없을거 같고 본문 내용에 상당 부분은 선즈팬과 NBA팬들에게 사실여부를 확인 하셔야 할 거 같네요.
동조를 받고자 해서 올린 글이 아닙니다. 단지 개인의 생각을 적었을 뿐. 또한 마지막에 아직 댄토니 농구는 닉스를 통해 더 보여질 필요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선즈에서 보여준 모습 역시 대단했습니다만, 결국 서부 파이널을 가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피닉스의 경기를 봤기 때문에 그들이 강한건 알지만 결과는 피닉스가 패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 생긴일도 알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era가 있는데 본인이 결과를 정해놓고(90%던 어쩠든) 결과론 주장을 하다보니 여러가지 왜곡된 사실이 생기게 됩니다.
저도 쇼타임님의 글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새벽에 글 봤다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감정 제어 안되다가 다시 글을 읽었는데 읽을수록 낚시글이 아닌가 할 정도로 언짢네요. 개인적인 생각을 적을 뿐이라면 블러그에 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댄토니 공격 전술에 어울리는 선수들로 이루었기에 스탯 뻥튀기라는 소리를 하고 싶으신가본데요? 내쉬, 듀혼이라는 좋은 포인트가드 롤에 리딩 안되는 슛 우선의 포인트 가드, 슛이 없는 수비 위주의 선수가 그자리를 메웠다면 그런 스탯 향상이 가능할꺼라고 보시는지요?
풀코트 프레싱에 차단 당했다는것도 인정할 수 없네요. 그 당시 경기를 제대로 보셨다면 스코어만 봐도 스퍼스가 선즈의 런 앤 건의 흐름에 맞춘 것이지 그들만의 하프코트 오펜스 리듬으로 이끌지는 못했었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런 식으로 사건을 평가하신다면 존 스탁턴과 칼 말론의 픽앤롤이 공격의 기본이 되던 유타 재즈 역시 평가 절하 하실건가요?
삼국지는 두가지가있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한족(촉나라)위주의 글이죠..유비는 성인군자며 조조는 아주그냥 대악당이죠-_-;; 삼국지정사라고 진수가 쓴 역사서가있는데요.. 역사책인만큼 대부분사실을 서술한책인거죠.. 쉽게생각해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소설책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별로 공감이 가질 않네요. 일단 전제인 피닉스가 전술이 읽혀서 플레이오프에선 통하지 않았다?? 페이스를 늦추면 속수무책?? 최강팀 스퍼스마저도 힘들게 했고 다른팀중엔 피닉스를 막을만한 팀들이 생각나지가 않습니다만... 플레이오프서 매번 피닉스와 경기를가진 레이커스팬분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놀랍네요. 페이스를 늦추면 피닉스가 진다?? 공감이 가질 않네요. 지는경기엔 더러 그런경우가 있었지만 그렇게 쉽게 페이스를 내줬던 피닉스가 아니였습니다. 피닉스를 잡으려고 내쉬에게 보웬을 붙이고 올코트프레싱을 돌려도 내쉬 하나를 못잡고 진경기가 06-07 스퍼스 홈의 4차전이였죠.
댄토니 농구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프코트 오펜스로 신중하게 댄토니 사단의 페이스를 늦추며 예기를 꺾어버리면 속수무책이라는 점.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리그의 90%의 팀들이 하프코트 오펜스를 사용하던 때에 60여승을 거둔 시대를 역행한 런앤건을 너무나 무시하시는군요. 그럼 그 많은 패한 팀들은 신중하게 페이스조절을 못해서 진 것인가요? 신중하게 페이스조절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 강한 런앤건이라는 생각은 안드시는지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건 또 처음 듣는 얘기군요. 인정받지 못한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 나라도 있나요 ㅡ.ㅡ;
댄토니의 농구가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댄토니의 피닉스의 속도를 늦출만한 팀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샌왕이 선스와 치열하거나 앞섰던 이유는 단순히 하프코트 페이스로 끌고가서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오히려 샌왕도 같이 달린 경기도 꽤 많았다고 봅니다 파커와 마누, 그리고 던컨이 있기에 스몰라인업이 가능한 점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 확실히 당시의 선즈 농구는 하프코트 게임을 한다고 늦출수 있는 팀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하프코트 오펜스로 선즈를 막은 팀은 없습니다. 스퍼스가 선즈를 효과적으로 상대한건 던컨을 중심으로 선즈의 약한 골밑을 공략한것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적절한 포포비치의 타임아웃 콜이 컸습니다. 런앤건만 하는팀에선 제2의 존스탁튼&칼말론 픽앤롤 콤비가 나올 수 없죠.
결국 우승을 못했기 때문이죠..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니까..
정말 동의하기 힘드네요. 그 때 선즈 농구를 정말 좋아했던 가넷의 팬(?)으로써 말이죠. 특히 예기를 꺾어버리면 속수무책(?) 예기를 꺾기 위한 시도를 꺾고 거둔 60여승은 뭔가요...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요? 우승이 아니면 실패. 선수들이나 당사자들한테는 그럴지 몰라도 팬들이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16-17 시즌에도 댄토니의 런앤건 과 내쉬의 백투백MVP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내쉬와 듀혼이 똑같이 스탯이 올라갔다고 해서 뻥튀기라는 표현을 하시는데요, 리그의 어떤 가드라도 그 자리에서 같은 효과가 나지는 않겠죠. 내쉬와 듀혼이니까 가능한겁니다. 백투백 시절의 내쉬는 정말 슛이 쏘면 다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턴오버 같은 건 워낙 공격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그 때의 스탯으로 내쉬를 득점-어시-턴오버 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좁은 생각이시네요. 개인 스탯 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공격시도 횟수, 팀득점, 득실마진을 모두 종합해서 평가해야 할 것 같네요.
한가지 더 말씀드리면, 댄토니의 런앤건이 우승하지 못했다고 "실패"인가요? 06-07시즌 우승으로 보면야 하프코트 우승팀은 1/24 (이정도 되나요?) 런앤건 탈락팀은 0/2 정도의 확률이겠군요. 런앤건팀은 우승하지 못했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당시 하프코트 오펜스를 주로 하던 20여개의 팀이 댄토니의 선즈 아래에 있었습니다. . 단순히 우승의 면만 보고 "실패"라고 하기에는 너무 성공적이기도 하군요. 이미 실패라는 결론이 글에 가득한데 지켜봐야한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졌기 때문에 그리 반박은 하고 싶진 않지만.. 실력외의 변수도 많이 존재 했고... 당시 선즈의 농구로 우승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정도로 훌륭했었는데... 승자만 기억되는 현실 어쩔수 없죠//
그동안 쇼타임님 글은 꽤 좋다 싶은 글도 있었는데, 이번 글은 무리수가 심했네요. 06-07 플옵에서 있었던 꽤 파급력이 컸던 변수들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단지 전술 문제때문에 진 것이라고 하고, 별 설득력 없었던 한 칼럼니스트가 썼던 댄토니 체제하의 포인트가드 스탯 뻥튀기 내용도 그대로 가져다 쓰고. 게다가 앞에 삼국지 내용이랑 뒤의 얘기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확실한 설명도 없습니다.
내쉬가 뻥튀기라는 말은 아니죠 ;;?
분명 런앤건의 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06-07시즌의 피닉스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 우승할수 잇는 유일한 팀이었습니다 불미러운 사건으로 스퍼스에게 잡혔지만, 적어도 그 시즌만큼은 런앤건의 팀에 대한 편견을 바꿔준 시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