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는 산란을 위해서 피가 필요하다.
수컷은 나무진을 먹고 산다니, 문제는 암컷 모기다.
여름이 싫은 이유가 무더위보다 모기라면 지나친가?
2007년 8월 네 번째 수요일, 새벽에 삼복더위를 식히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으나 곧 날이 개어 등산하기엔 안성맞춤인 날씨가 되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 목엔 스카프, 챙이 넓은 캡, 배낭, 등산화에 스틱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백운산은 부드러운 흙으로 된 산길에 경사가 완만하여 우리가 걷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고 산모임 리더가 말했다.
근처에 우아한 분위기에 음식 맛까지 좋은 한정식집이 있어서 이번 달 산모임을 이곳으로 정했단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등산로에 들어서니 "애~앵" 얼굴 주위를 맴돌면서 계속 따라오는 비행 물체가 있었다. 이야기 삼매에 빠져 처음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따끔거리며 가렵기 시작했다.
노출된 얼굴과 팔은 물론 옷으로 가려진 부분까지 여기저기가 동시다발적으로 가려웠다.
눈앞에서 알짱대는 것은 새까만 몸통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지독한 산모기였다.
캡을 벗어 부채질해도 산모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앵앵거리며 쫓아왔다.
고즈넉한 산길에 등산객은 우리 일행 열 명뿐이었다.
우리를 기다리던 불청객 산모기는 잔치라도 벌일 듯 기세등등하게 끈질기게도 쫓아왔다.
앞쪽에서 따라오는 한두 마리뿐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앞서 가는 친구의 등 뒤 쪽에 한 무리의 새까만 모기떼가 몰려 공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안 봐도 비디오로 내 등 뒤에도 꼭 같은 상황일 것이다.
친구들은 그냥 걷기만 하면 되지만, 나는 디카 들고 적당한 피사체를 찾느라 계속 좌우를 두리번거려야 하고, 걸음을 멈추고 초점을 맞춰 셔터를 누르다 보면 일행과 보조를 맞추기가 아려워진다.
비 온 뒤라 화려한 색상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각종 버섯류와 빗방울에 세수하고 나서 더 싱싱하고 예쁜 야생화가 자주자주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럴 때 산모기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세라 무차별 공격을 가해왔다.
목적지의 사분의 삼쯤 되는 지점에서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오기로 했다.
천천히 맘 놓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산모기는 내가 찍은 사진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수십 개의 자취를 내게 남겨놓았다.
집에 와서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빨갛게 부어오르고 가려워서 긁으면 더 부어오르고, 한 번 긁기 시작하면 시원하기는커녕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이다.
자면서 무의식 상태에서도 긁어 아침이면 더 빨갛게 부어올랐다.
바르는 약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약을 덧바르면서 '이걸 약이라고 팔아?' 애꿎은 약사에게 화풀이를 했다.
초고층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고 난 후, 세 번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모기에게 물린 적이 없었기에, 가려움을 더 심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살던 아파트엔 여름엔 물론이고 제법 선선한 이른 봄 늦은 가을까지 모기가 출몰하곤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모기가 한 마리라도 있으면 잠을 못 잤다.
한밤중에도 '모기 출현'을 알리면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라도 모기를 잡고 아이를 안심시켜야 했다.
이미 아이들에게서 배불리 먹은 모기는 몸이 무거워 동작이 둔한 상태가 된다.
벽이나 천정에 붙어 조용히 쉬고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 파리채로 덮치면 백발백중 성공이지만, 후유증이 큼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얀 벽에 빨간 피, 그 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금쪽같은 내 아이에게 못된 짓을 한 모기에게 적개심을 불태우며 모기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모성본능이 기어코 문제 해결책을 내놓고야 말았다.
아주아주 깔끔하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모기가 잔뜩 배불리 먹고 빨갛게 부풀린 몸집으로 벽이나 천정에서 쉬고 있음을 발견하면, 의자를 가져오고 입구가 넓은 병과 뚜껑을 양손에 들고 의자 위에 올라선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예민한 모기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하면서도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의자와 병을 갖고 오면 벌써 생명의 위험을 감지한 모기가 다른 곳으로 숨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모기 수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시간과 수고가 더 든다.
의자 위에 살며시 올라가서 빈병을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모기 위에 덮어씌운다.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모기는 정신없이 병안에서 탈출을 시도하느라 야단법석 난리도 아니다.
모기가 병 아랫부분에 있다 싶을 때, 전광석화보다 더 빠르게 뚜껑을 닫아야 한다.
뚜껑 닫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리게 되면 '어~휴 큰일 날 뻔 했잖아!' 라며 유유히 날아가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다 된 죽에 코 빠뜨리기'다. 병뚜껑을 닫으면 완전히 성공이다.
그다음은 모기가 잠을 자든 난리를 피우든 난동을 부리든 자살을 시도하든 신경 끄면 된다.
독방(?)에 감금된 모기, 지가 어쩌겠어.
배속에 채워놓은 영양분과 병 속의 산소가 소진될 때까지는 버티겠지.
간간이 병안의 모기 상태를 확인하는 즐거움은 보너스다.
우리 아이의 보드라운 살에 침을 꽂고 피를 빤 괘씸한 죄에 마땅한 형벌이라 여기며 분을 삭인다.
아무런 흔적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기 잡이는 한 번 두 번 하는 사이에 노하우가 생겨 성공률은 점점 올라갔다.
백발백중 명사수(?)가 된 나는 아이가 '앗, 모기다, 엄마 모기가 들어왔어요' 하면 게임을 하듯 즐거운 기분을 짜릿하게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 과정을 즐기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모기와의 한판승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면서 여름을 보내는 재미도 꽤 쏠쏠했는데, 이사 오면서 한 가지 재미를 뺏겨버린 셈이다.
그동안 내가 종신형을 선고하고 독방에 감금한 모기의 후손들이 한꺼번에 보복을 하는 것일까?
깔끔하게 모기 잡는 법을 터득한 죄로 지금도 나는 긁어대며 괴로워하고 있다.
2007.8.24
첫댓글 그동안 선배님한테 당한 모기들이 작심한 듯 다모였나봅니다. 산모기 진짜 대책이 안 섭니다.
집모기와는 차원이 다르죠. 긁을수록 점점 더 딱딱해지고 가럽고, 부풀고 저도 넘 싫습니다.
재미나게 모기얘기를 해주셨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대모산 자락에 사는 지금도 산모기는 그악스럽게 쫓아옵니다.
날씨가 좀 더 서늘해지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지만요.
모기는 너무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