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목요일 "한국인의 밥상"에서 복어를 하기로 하였다며
방송하기전 수요일 오전에 KBS 외주 팀이라는데서 연락이 왔다.
복어 중독을 검색해보니 나의 블로그에 쓴 글이 나와서
인터뷰 차 들릴 예정이니 내일 시간이 어떠시냐고.
그러니까 이런 프로로서는 급하게 나를 수배를 한 셈.
목요일 오후 세시경이면 좋다고 하였더니 "내비"를 용산병원으로 놓고 갔다가 허탕을 치고 왔다면서
외래 나의 방으로 세시가 조금 지나 찾아 왔다.
첫날은 나의 연구실에서 촬영을 하였다.
PD가 하라는 대로, 여러 번을 시켜도 짜증내지 않고
촬영에 응했고 컴퓨터 앞, 그리고 나의 환자는 아니나 용산병원에 있을 때부터
매일 회진을 도는 신경외과 어린이의 병실을 얼굴이 작고 예쁜 간호사와 같이 찾는 것으로 끝내었다.
다음날은 나의 단골집 플라자호텔 뒤의 유명한 복요리집 “송원”에서
또 두 시간 넘어 근사한 복요리 정식을 시켜 먹으며
술도 마시며 찍으니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일요일은 김해 백두산 산행 중 받은 전화로 내가 인터뷰 도중 말한 장모님을 넣고 싶다며
사진을 보내어 줄 수 없느냐고 하여 밤늦게 집에 도착하여 서랍을 뒤져 사진을 찾았다.
월요일은 처가 식구들 사진을 나의 블로그에 실어서 이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야기인즉 나레이터 최불암씨가 "대구의 사나이"가 복요리를 좋아하게 된것은
부산의 처가와 장모님 덕이라 말씀하셨기 때문.
"제가 부산 처가에 내려가면 장모님이 새벽 시장을 보아 사위한테 해 준 복어 맑은 국과
서울에 소포로 보내어 준 복어포를 잊지 못한다." 라고 하였다.
부산 좌천동 처가의 뜰에서 장모님이 흐드리게 핀 꽃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이 사진은 결혼 후 삼선교 한옥에서 장모님이 외손자를 안은 모습.
74년 당신의 딸과 딸만큰 사위를 좋아하셨던 나를 찾아 부산에서
무의촌 근무 중이던 궁벽한 전남 광산군 본양면 보건지소까지 오신 처 부모님.
식사 한끼 하시고 떠나시며 보건지소에 딸린 단칸방에서 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 사진들을 보니까 먼저 가신 분들이 정말 그립다.
두분이 계시지 않는 부산은 더 이상 나에게 처가의 의미가 없어졌다.
"송원"에서 복요리를 먹는 사진.
아마 복어회를 집고있고 옆 접시는 겉만 살짝 익한 복어 다다끼.
이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 주겠다며 보낸 시안.
PD의 부탁은 다 들어주었기 때문에 나도 부탁을 하였다.
"정면보다 측면을, 말은 잘 편집을 하여 매끄럽게."
아시다시피 나를 정면으로 찍으면 얼굴이 마치 큰바위 얼굴로 나오니까요.
방송을 하는 동안 문자와 전화로 연락이 온다.
재방송때에도 전화가 오더니 아직도 나를 보았다며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이것이 TV에 출연한 연유입니다.
동영상은 저작권 때문에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첫댓글 kbs에 들어가면 한국인의 밥상 동영상을 볼수 있습니다. 유교수 인터뷰 장면이 중간 1/3쯤에서 나옵니다.
방준재 선배님과는 식사 잘 하셨나요 ?
목요일저녁은 1차로 진주고등 동기들이 내고 , 일요일 저녁은 2차로 박인철이 저녁을 내고 윤덕기가 방선배가 묵는 임피어리얼 팰리스에서 커피를 사고, 나는 맨손체조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계원장이 없어서 섭섭.
방선배님이 4월에 오신다고 작년에 이야기 했었기 때문에 그런줄만 알고 있었는데, 미주홈페이지에서 나중에야 알게 되었네요... 더구나 원주의 나나이모 사장님이 천식이 악화하여 이곳에 내려올수 없게 되신것도 같고요.... 나나이모에 가 보니, 사장님이 말 할 때도 더 헐떡거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담배를 피우신다고 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