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핑크 넥타이,
핑크 리본……유방암 잡는 ‘찌찌박사’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00호(2019. 11.15)
김성원 대림성모병원 원장
- 서울대병원 유방센터장 출신 명의 -
- 유전성유방암 다룬 소설 펴내 –
“한국의 유방암 빈도는 아직 서양보다 낮아도 증가율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지금은 20명 중 1명 꼴로 걸리지만 8명 중 1명 수준인 서양을 곧 따라갈 거예요. ‘핑크리본 캠페인’처럼 유방암에 대해 알리는 활동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김성원(의학89-95) 대림성모병원 원장은 유독 핑크색 넥타이를 맨 사진이 많다. 핑크는 유방암 예방을 상징하는 색.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유방센터장을 역임한 그는 유방암 분야의 젊은 명의로 꼽힌다. 단지 진료 잘 보고, 수술 잘 해서만은 아니다. ‘핑크리본 캠페인’ 등 유방암 인식 개선 활동을 적극 펼치고, 유방암 환우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에 앞장서 왔다. 그 공로로 올해 초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유방암 예방의 달인 10월을 맞아 그의 핑크색 넥타이는 더욱 바쁘게 휘날렸다. 10월 30일 대림동 대림성모병원에서 만났을 때도 어김없이 분홍 타이에 옷깃엔 분홍 리본을 달고 있었다. “이젠 넥타이 선물도 핑크색만 들어온다”며 웃음짓는 김 동문은 최근 유방암을 주제로 직접 의학 소설까지 썼다. 제목이 ‘시시포스의 후손들’이다.
“의대 전임의 시절 연수를 간 연구소가 우연히도 유전성 유방암을 연구하는 곳이었어요. 평소 유전에 관심이 많아 잘 맞는 분야였고 한국에 와서도 연구를 이어갔죠. 우리나라에도 매년 1,000명 이상 유전적인 원인으로 유방암이 발병하는데 이 분들의 상태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암을 예방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생기더군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유전성 유방암은 유방암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가 후대에 유전되는 암이다. 전체 유방암의 5% 비중이다. 몇 해 전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87%에 달하는 유전성 유방암 발병 확률을 받고 예방적으로 양쪽 유방을 절제하면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들 유방암 환우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접한 김 동문은 한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대를 이어 발병 위험을 안고 사는 유전성 유방암 환우와 가족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대담하게도 의사가 아닌 환자의 시점을 택했다. “워낙 환우 분들과 친했고 그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많이 가져와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는 말에 지난 시간들이 읽힌다.
소설에서 가족 중 유방암 내력이 있는 주인공은 유전 상담을 받게 된다. 유전성 유방암의 진단과 예방에 필요한 유전 상담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김 동문이 앞장섰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30%가 유전상담의 대상이 되니 전체 유방암 환자 2만명 중 6,000명은 검사가 필요합니다. 그 중 70~80%가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는데 아직은 검사의 장벽이 높습니다.” 소설에서도 유전 상담을 받아야 할지, 받고 나서 결과를 가족과 공유해야 할지, 가족들 중 누가 추가로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자세히 다뤘다. 모두 유전 상담 전문가와 세심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비용과 인력 문제로 병원이 제대로 된 상담을 제공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상담사를 고용해 유전상담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설명.
국내에 유전성 유방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로 맘먹은 것은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Korean hereditory breast cancer
study, KOHBRA study)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동문이 총괄책임자를 맡아 각 병원과 기관 소속 연구자 100여 명의 연구자들이 한국인의 유전성 유방암 데이터를 창출하고 연구해 많은 성과를 냈다. “서양 모델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하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어요.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아도 된다고 나오는 거죠.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를 통해 국내 환자에게 맞춘 유방암 돌연변이 유전자 계산기를 개발하고 한국인 환자를 위한 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학술적으로도 6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이 나왔고 세계 최고의 저널에 다수가 수록됐어요.”
김 동문은 부친 김광태 전 국제병원연맹 회장의 뒤를 이어 외과의사의 길을 택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유방암 수술팀을 이끌다 2015년 대림성모병원으로 옮긴 것도 가업을 잇기 위해서였다. 서울대 교수직을 떠나는 아쉬움도 잠시, 중소 지역병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숙제가 눈앞에 던져졌다.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래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충격 속에 “공친 날”이라고 SNS에 적어 올린 날이다.
돌파구는 전공인 유방암에서 찾았다. 유방암 특화 병원으로 방향을 잡고 대학병원 출신 유방외과와 유방영상의학 전문의를 대거 영입했다. 특히 유방 보존과 재건을 담당하는 성형외과와 후유증을 케어 해줄 정신과 협진에 역점을 뒀다. “우울증에 빠지는 유방암 환우가 많아요. 어린아이를 둔 엄마의 경우 심리적인 상실감이 크고, 눈에 보이는 부위여서 절제시 충격도 크죠. 치료 못지 않게 환우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게 중요해요. 수술 전부터 모든 환자의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모든 수술에 성형외과가 참여하는 유일한 병원입니다.”
환우들의 정서를 신경 쓴 부분이 또 있다. 길게는 일주일씩 기다려야 하는 조직검사 결과를 이틀이면 받아보게 한 것.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함으로 대형 병원에선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카톡 상담 창구를 개설해 주말을 가리지 않고 김 동문이 직접 환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다. 대학병원 못지않은 진료와 치료 시스템을 갖춘 데다 ‘서울대에서 유방암 명의가 왔다’는 입소문이 더해 ‘공친 날’도 이젠 웃으며 할 수 있는 얘기가 됐다.
“유방암만큼 환자가 여러 병원을 다니는 질병이 없습니다. ‘닥터 쇼핑’이라고 하죠. 유방암은 절제와 재건 등 환자와 의사가 함께 결정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앞으로도 좋은 변화를 이끌어내 전국에서 찾는 유방암 전문 병원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대학을 벗어나면서 세상을 넓게 보게 됐다”는 김 동문은 최근 병원 단위 환우회를 넘어 전국의 유방암 환우를 아우르는 행사를 기획했다. 수술 상처로 대중목욕탕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환우들을 위해 목욕행사 ‘핑크버블’ 이벤트다. 이번 소설의 수익금도 유전성 유방암 환우를 위해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최근엔 유튜브도 시작했다. 채널명 ‘찌찌박사TV’. 엉뚱한 이름이지만 딸과 아들이 어릴 적 유방 전문의인 아빠를 ‘찌찌박사’라고 부른 데서 따왔다. 환자들에게 언제나 친근한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제가 재학하던 때만 해도 유방만 전공하는 펠로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유방암 환자도 드물었습니다. 서울대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는 환자가 1년에 500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3,000명을 웃돌아요. 서구화된 식습관, 만혼과 비출산이 일반적인 지금 세대가 나이 들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더 높아질 겁니다.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예방과 조기 검진에 많은 신경 써주셨으면 해요.” 박 수 진 기 자
유방암 관련 상담: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대림성모병원 행복한 유방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