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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의 산] 갈기산 (해발 585m·충북 영동군)
영남일보 뉴미디어부 기사 입력일 : 2018-10-05
말갈기능선 타고 지나면 코끝 스치는 가을내음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차갑게 느껴진다. 태풍이 지난 하늘은 높고도 청명하다. 이런 날에는 달력을 쳐다보고 공휴일이 중간쯤에 하나 없나 찾는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지만 산꾼들에게 주어진 이 계절은 공휴일 하나하나, 덤으로 얻은 국경일 하나까지도 쪼개 쪼개 쓴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가 좋을까. 지도를 뒤져보고 검색도 해보고. 마침 적당한 산을 하나 찾으면 누구와 함께 갈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미식가가 맛집을 하나 찾는 것처럼.
이번에 찾은 곳은 충북 영동의 갈기산이다. 보통 종주산행을 많이 하는데 지도를 보다가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가 눈에 보였다.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들고 바로 달려들었다.
들머리 관광농원 입구서 코스 시작
계곡따라 올라가니 박쥐동굴 안내판
전란당시 주민 은신처 사용 천연동굴
4m 천장 수십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캐른릿지서 길 잘못들어 절벽과 마주
길 없는 산중에서 청설모와 눈빛교환
D코스로 오르면 흔들바위 지나 월유봉
절벽위 핀 구절초·층꽃나무 꽃 군락
보통은 소골계곡 입구에서 능선을 따라 갈기산 정상으로 오르지만 이번에는 반대편 내지리 갈기산 관광농원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잡았다. 들머리인 갈기산 관광농원 입구 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갈기교를 건넌다. 정면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들면 되는데 창고 건물이 있어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 관광농원에 문의하니 정면으로 곧장 가라며 안내한다. 창고와 창고 사이에 지붕이 있어 입구가 아닌 것 같지만 바로 통과하면 50m쯤 지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D코스 370m, 박쥐동굴 630m.’ 갈림길이다. 처음 계획은 정면의 D코스라 적힌 능선을 올라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였다. 박쥐동굴 이정표가 있어 호기심이 생기면서 먼저 이곳을 들렀다가 되돌아 나올 생각으로 왼쪽 박쥐동굴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작은 계곡을 한번 건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험구간, 박쥐동굴 480m’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위험구간이라 적힌 곳이 하산하게 될 코스이고, 정면의 박쥐동굴로 향한다.
거미줄과 무성히 자란 풀을 헤치며 나아가자 계곡을 따라 희미한 등산로가 나있다. 15분쯤 오르니 오른쪽에 박쥐동굴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천연동굴로 박쥐가 서식하고 있으며, 6·25전쟁과 같은 전란이 있을 때마다 이웃 주민의 은신처로 사용되었다고 적고 있다. 동굴은 안내도를 바라보는 쪽이 아닌 계곡 건너편 10m쯤 위에 있다. 4m 가까이 되는 높이의 천장에 박쥐 수십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인기척에 놀란 박쥐가 동굴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더니 다시 천장에 매달린다. 동굴 속에서 시원하게 땀을 식히고 되돌아 나오니 ‘캐른릿지 150m’라 적은 나무 푯말이 바닥에 누워있다. 계곡을 따라 희미하게 길도 나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릿지라면 암벽등반 코스인데 분명 우회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D코스 입구까지 되돌아 내려가지 않고 이쯤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 올라가기로 했다. 희미한 길을 더듬어 캐른릿지 등반코스 입구까지 올랐다. 릿지 입구에 A, B등반코스 푯말이 서있고, 계곡 상류로 희미한 등산로가 있어 올라가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끊기고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캐른릿지 입구까지 다시 되돌아 나오니 입구 오른쪽으로 노란 리본이 걸려있다. 리본을 따라 오르니 길이 아닌 절벽 아래로 안내하는 리본이었다. 되돌아 내려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능선으로 올라갈 길 찾기에 진땀을 뺀다.
한참을 오르다 도토리 수확에 열중인 청설모와 눈이 딱 마주쳤다. 길도 없는 산중에 어떻게 올라왔는지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속된 말로 잔머리 굴리려다 여기까지 온 딱한 사정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마주보며 한참동안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우여곡절 끝에 암벽등반으로 릿지 꼭대기에 오르니 소나무 그늘 아래에 장화를 신고 등에는 작은 배낭을 짊어진 어르신 두 분과 만났다. “버섯 좀 따셨시유?” 청설모는 말없이 뒤통수를 때리더니 충청도 어르신은 구수하게 뒤통수를 후려갈기신다.
여기서부터는 D코스에서 오르면 흔들바위를 지나 월유봉으로 오르는 정상적인 등산로다. 월유봉에 오르면 말갈기능선, 갈기산 정상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고, 정상에 올랐다가 여기까지 되돌아 나와야 한다. 정상까지는 200m 거리인데 안부에 잠시 내려섰다가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바위 봉우리가 정상이다. 정상 표석이 놓인 정상은 10여명이 설 수 있는 공간인데 한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지나온 능선과 진행할 말갈기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산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금강줄기와 월유봉, 천태산 등 주변의 산들이 조망된다.
정상에서 내려와 월유봉까지 되돌아 나와 말갈기능선으로 방향을 잡는다. 말갈기는 말의 목덜미에서 등까지 이어지는 긴 털을 뜻하는데 말갈기능선이 좁은 바위능선을 타고 지나야 하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을 지날 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왼쪽 절벽 위에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 할 구절초와 층꽃나무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말갈기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놓인 계단을 올라서면 ‘월유봉 2.7㎞, 위험구간’ 갈림길이다. 위험구간으로 적은 길로 내려가면 아래에서 보았던 박쥐동굴 갈림길 위험구간으로 안내한 갈림길로 내려가게 된다. 몇 곳의 절벽에 밧줄이 매어져있는데 한곳에는 끊어진 밧줄도 있다. 잡아도 괜찮을지 당겨보고 잡고 내려가는 것이 안전하겠다. 40여분 만에 물탱크가 있는 능선 갈림길을 만나고 왼쪽으로 내려서면 박쥐동굴 갈림길이 나온다. 박쥐동굴 이정표 덕에 박쥐구경 실컷 했고, 고생 역시 실컷 한 산행을 마무리하며 뒤돌아본 산 위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최원식 :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산행길잡이
갈기산 관광농원 -(40분)- 흔들바위 -(25분)- 월유봉 -(15분)- 갈기산 정상 -(10분)- 월유봉 -(25분)- 558봉 -(40분)- 물탱크 갈림길 -(10분)- 갈기산 관광농원
갈기산은 소골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가 보편적이며 월영산까지 종주코스를 많이 잡는다. 이번에 소개한 코스는 내지리 갈기산 관광농원에서 출발해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하고 깨끗한 것이 장점이다. 바위구간이 많아 거리는 짧지만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전체 산행거리는 4㎞ 남짓하지만 소요시간은 3시간30분 정도 잡아야 한다.
☞교통
경부고속도로 황간IC에서 내려 황간삼거리에서 좌회전으로 국도 4호선을 따라 영동읍을 지난다. 무주, 장수 방향 19번 국도를 따라 용화, 목정리 이정표에서 내려 학산-영동로를 따른다. 양산면소재지를 지나는 68번 지방도로를 따라 모리삼거리 알뜰주유소에서 좌회전으로 약 800m를 가면 갈기산 관광농원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충북 영동군 학산면 갈기산로 581(갈기산 관광농원)
☞볼거리
노근리 평화공원
6·25전쟁 때인 1950년 7월26~29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철로 일대와 노근리 개근철교(쌍굴)에 피신한 피란민에 대한 미군의 비행기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최소 250명의 피란민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과거 노근리사건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과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고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평화기념관·위령탑·조각공원·평화기원마당·교육관 등의 시설이 있으며, 평화공원 맞은편에는 당시 기관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쌍굴이 있다.
[월영산~갈기산 르포] 달 맞으러 갔는데 견우·직녀가 만나더라
월간산 기사 입력일 : 2018.09.03.
금강 굽어보며 올라 ‘달과 별의 향연’ 즐기며 원점회귀 환종주
월영산月迎山(529m)은 한자 그대로 달을 맞이하는 산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정월 대보름에 월영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며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때 월영산 쪽으로 달이 뜨면 풍년이 들며, 월영산 중턱에 구름이 머무르면 장마가 오래 가고, 성인봉 위로 달이 뜨면 가뭄이 든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금산편 산천조에 ‘금산에서 동쪽으로 20리에 월영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동지지>에는 ‘언령산’이라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달맞이 풍습은 오랫동안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용화마을 주민들은 월영산을 달을 향한다는 뜻으로 ‘월향산月向山’ 또는 ‘월앙산月仰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산자락 서쪽과 북쪽을 휘감고 흐르는 금강에 면하고 있는 월영산자락을 두고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이라며 천하명당이라 했다고도 전해진다.
월영산은 금강으로 가라앉는 백하지맥의 마침표다. 백두대간 삼도봉(1,177m)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민주지산(1,242m), 각호산(1,202m)으로 흘러가는 각호지맥이 천만산(960m)에서 또 둘로 나뉘는데, 이때 서쪽 백하산(633m)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백하지맥이다. 백하지맥은 백하산을 지나 칠봉산(520m)에서 금강에 가로막혀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후, 다시금 금강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짜내 월영산과 갈기산을 빚어냈다. 월영산은 양산면 가선리와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경계를 이루고, 갈기산은 영동군 양산면과 학산면 경계를 이룬다.
백하지맥의 단말마답게 월영산과 갈기산 모두 금강 쪽으로 경사가 매우 급한 암벽이 잘 발달돼 있다. 현지 사투리로는 ‘덜게기’라고 부르며 바위 낭떠러지라는 뜻이다. 특히, 갈기산이 더욱 골산骨山의 풍모가 당당해 가장 험준한 뜸북굴 암봉 일원에는 1997년 청주 케른산악회에서 암벽등반코스 2개(케른 A리지, 케른 B리지)를 개척하기도 했다.
등산 중 굽어보는 금강 조망 탁월해
산행에 나선 지난 8월 17일은 음력 7월 7일, 세시 명절의 하나인 칠석이었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바깥모리마을 등산로(소골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월영산과 갈기산 중 어느 산을 먼저 오를 것인지 정하지 못했다. 지역 전승으로는 월영산이나 성인봉 ‘위’로 떠오른 달의 위치로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하니 갈기산에서 바라보는 것이 맞을 것도 같고, 이름 그대로 달을 맞이하는 산인 월영산에서 보는 것도 맞는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월영산에서 달을 맞는 걸로 정했다. 선조가 ‘월영’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갈기산 방면 등산로로 진입하자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골산답게 길에서 흙을 찾아보기 어렵다.
30분쯤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30분쯤 더 오르면 정자 한 채가 나온다. 등산로 왼편으로 금강 일원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완전한 낭떠러지다. 그래서 이 코스를 ‘양산 덜게기 코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꾸준히 오르면 갈기산 정상(585m)이다.
갈기산 정상은 커다란 바위로, 로프를 잡고 오른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탁월하게 펼쳐져 있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 너머 북쪽으로는 천태산에서 대성산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뻗어 있고, 아스라이 지평선 끝에 충남 최고봉 서대산의 풍채가 엿보인다. 반대로 눈을 돌리면 진행 방향인 능선이 깊게 감춰진 소골을 둘러싸고 있고, 능선 너머로 백하지맥이 선명하며, 멀리는 민주지산부터 백운산, 적상산과 덕유산 일원의 켜켜이 쌓인 산세가 한눈에 파노라마로 들어온다. 시계가 좋은 날에는 암마이산의 독특한 풍모까지 볼 수 있다.
정상을 질러가거나, 정상바위를 우회해 내려서면 모리삼거리나 지내리 갈기산관광농원 방면과 말갈기능선으로 갈라지는 안부 기점이다. 갈기산의 이름이 짐승의 갈기처럼 생겼다고 해 유래된 것을 증명하듯 날카로운 암릉이 굽이치며 확연한 안부를 형성한다. 말갈기능선의 리듬감을 즐기며 진행하다 보면 출렁다리에 이른다. 취재에 동행한 ‘Kor kim’ 김규대 대장은 “10년 전에 왔을 때는 이 다리가 없어 말갈기능선의 스릴감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거친 야생마 같은 말갈기 능선
말갈기능선은 금강을 끼고 걷는다는 점에서 청풍호를 따라 걷는 제비봉과 흡사하다. 다만 제비봉 능선이 부드럽고 한국적인 진경산수화 같다면, 말갈기능선은 거칠고 투박한 고흐의 작풍을 연상케 한다. 길들여진 순한 말이 아니라 야생마의 갈기다. 거리는 짧지만 평지 없이 오르내림이 계속되며 험한 암릉지대가 연속되기 때문이다.
말갈기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558m 봉이 솟아 있으며 여기서 이정표를 따라 차갑고개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등산로는 끊임없이 위아래로 굽이쳐 피로를 더한다. 555m봉에 오른 후 가파르게 내려서면 차갑고개다. 차갑고개는 월영산과 갈기산 사이의 소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연결되는 지점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재필골을 통해 지내저수지로 넘어가게 된다.
차갑고개부터 산세가 조금씩 변화한다. 갈기산이 우직한 골산으로 식생도 소나무가 우세한 반면, 차갑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육산으로 변모하며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가 무리지어 나타난다.
골육상쟁骨陸相爭하는 차갑고개를 지나 푹신한 낙엽을 밟아가며 월영산 방면 이정표를 따른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오르면 정상석이 서 있는 성인봉聖人峰에 닿는다. 하지만 정상석의 표기가 해괴하다. 지형도상 이곳의 고도는 545m인데 반해, 정상석에는 고도가 624m로 기입돼 있다. 실제 GPS상으로도 545m에 가깝게 측정됐다. 또한, 한자로는 峰이라 적혀 있지만, 옆에는 한글로 ‘산’이라고 적혀 있어 혼란스럽다. 게다가 누군가 ‘성인산’ 글자 중 ‘인’자를 파내버려 ‘성O산’ 이라고만 되어 있어 흉물스럽다.
성인봉의 미스터리를 뒤로한 채 능선을 잇는다. 성인봉부터 월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의 도경계다. 20분쯤 도경계를 따라 잠깐 고도를 내렸다 올리면 458m봉에 이른다. 458m봉은 기웃재를 거쳐 성주산(623.9m)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의 기점이기도 하다.
사위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이 느껴져 서둘러 월영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으나 확실한 편이다. 다만 간혹 만나는 바위를 우회하거나 오를 때마다 잠깐씩 길이 헷갈릴 수도 있으나 그럴 때마다 산악회 표지지가 길을 잡아 준다. 안자봉에 가까이 갈수록 길은 희미해지지만 능선을 만났을 때 왼쪽으로 틀면 쉽게 안부로 오를 수 있다.
안자봉(485m)은 월영산의 바로 옆 동쪽에 붙어 있는 봉우리로 상봉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바라본 갈기산의 풍광이 일품이다. 날카로우면서도 수려한 암릉의 자태가 서쪽으로 지는 노을빛을 받아 붉은 적토마의 갈기처럼 타오른다. 갈기산이 양산팔경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십분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다.
옛날 전란이 있을 때마다 산 주변 주민들이 피란처로 이용했던 호랑이굴, 뜸북굴 등 크고 작은 굴이 갈기산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당당한 골산의 자태로 미루어 짐작케 한다.
안자봉에서 안부를 거쳐 오르면 월영산이다. 그러나 월영산에는 삼각점만 있고 정상석이 없다. 삼각점 위에는 누군가 조약돌 하나하나 각기 한글로 ‘월’, ‘영’, ‘봉’ 이라고 새겨 올려둔 것만 있을 뿐이다. 현재 월영산은 호칭 정리가 안 된 상태다. 삼각점이 있는 월영산 정상보다 19.6m가 낮은 서봉에 월영산 정상석이 위치해 있을뿐더러 비석의 한자도 맞이할 영迎이 아닌 그림자 영影으로 잘못 쓰여 있다. ‘월영봉’에서 ‘월영산’에 이르기까지의 능선이 충북과 충남의 도경계를 이루는데다가, 정상석이 있는 서봉의 조망이 더 탁월해 행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기산 동쪽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호랑이굴과 뜸북굴 등의 굴과 암벽등반 루트들이 많이 있다.
월영산 정상에서 맞은 칠석의 달
생각보다 산세가 험해 산행이 더딘 탓에 서봉까지 미처 나아가지 못하고 일몰을 맞았다. 지평선을 붉게 불태우며 태양이 가라앉을수록 머리 위로 칠석의 반달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견우가 직녀를 그리듯 달을 그리며 찾아왔기 때문인지, 반달에 채 미치지 못한 달의 모습이 수고했다고 미소지어 주는 것 같아 푸근하다.
하산은 다시 월영산으로 돌아와 안자봉을 거쳐 북동릉 능선을 따르는 길을 택했다. 원점회귀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서봉을 지나 원골로 하산하는 길이 경사가 급하고, 길옆으로 절벽이 형성된 곳이 많아 야간산행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절벽이 험준한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양산에서 금산으로 진격할 때 월영산의 금강 쪽 절벽을 천혜의 방어요새로 삼아 이 일대에서 공방전을 벌였다는 민담이 전해 내려올 정도다. 이때 중봉 조헌 선생은 이곳 덜게기에서 왜군을 막자는 기허당 영구대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금산벌에서 왜군과 사투를 벌여 700의사 전원이 순국했다. 당시 장렬하게 순국한 장졸들의 무덤이 현재 금상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는 ‘칠백의총’이다.
북동릉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위험도는 없어 무난히 내려갈 수 있다. 샛길 없는 외길인데다 길도 확실해서 야간산행임에도 길 잃을 일이 없다. 꾸준히 내려가다 보면 양봉장이 나오며, 길 끝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양봉장과 민가 두 채를 지나면 도로에 닿으며, 오른편으로 틀면 바로 들머리인 주차장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달과 별의 향연이 짧지만 굵은 산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준다.
충북 영동군 갈기산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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