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며, 지혜롭다는 자들보다도
철부지들에게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고 하신다.
지혜롭다는 자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지혜의 틀에 갇혀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음을
그분의 기도에서 알 수 있다(마태 11,25-27).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부지들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철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철부지이십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철없게도 거부하셨고,
오히려 ‘내가 곧 살아 있는 빵이다. 나를 먹어라.’ 하는
이상한 말씀으로 그 많은 사람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으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 얼마나 바보 같고 철없는 행동입니까?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업 수단인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한평생 거지처럼 살았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도 외국어와 서양 학문의 출중한 지식으로
출세하는 대신 젊은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젊은이가 가정을 뒤로한 채
수도원으로, 신학교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참으로 철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철없는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철없는 행동의 기준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신비를 알게 하는 열쇠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철부지의 철은 원래 계절의 변화를 가르치는 말이랍니다.
계절과 절기, 그 철을 모르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바다의 고기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 계절, 즉 지혜를 모르니
철부지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지혜롭다는 사람이 아닌,
굶어죽지 않는 어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아닌
바로 그런 철부지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답니다.
가끔씩 철부지로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거의 다 철이 없지요.
천방지축이고 사고도 잘 칩니다. 철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 나이 때 그런 모습은 당연하기에 그 모습 자체로 예쁩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라도 철부지가 아닌 아이들이 있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소년소녀 가장쯤 될까요.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또래에 비해서 엄청 어른스럽습니다.
본인도 더 어른스러워 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어른스러움을 보면 왠지 안쓰럽습니다.
맘이 아파집니다.
그 아이들에게 든든한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 아이도 철이 없었을 겁니다.
의지할 수 없고, 버팀목이 없음은
아이까지도 철들게 하는 게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런 철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든든한 아버지가 버티고 계시니까요.
우리는 주님을 알고 주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명백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는 불안하지 않고
철없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에 매이지 않고 그저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뛰어놀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도 날 보호해 주시는 아빠 하느님 품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철부지 신앙으로
하루를 잘 보냈으면 합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11,25)
주님께서 선택하시는
철부지들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진정,
지혜롭고 슬기로운 이들이라네.
아버지의 선한 뜻을
순하게 따르며
겸손하게 사는 이들이라네.
그들은 단순하여
이것저것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셈하는 법이 없기에
때로는
철부지 어린이들처럼 보인다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