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지의 정보보다는, 제가 느낀 생각과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룰 것이기에
이걸 여행기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까페에 앉아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보는 마음으로 한번 편하게 써 보려고 합니다.
한국에 가면 여행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 보니 귀차니즘의 압박이 상상을 초월하네요...
-------------------------------------------------------------------------
"하아...제임스..."
독일의 하늘은 우중충했다.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은 더욱.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함부르크 중앙역의 플렛폼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함부르크에 온 것은 순전히 제임스 때문이었다.
전날 밤 암스테르담의 호스텔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제임스는 테이블에 앉아 마리화나를 열심히 말고 있었다.
백인 여자도 함께 앉아있었다.(그녀의 이름은 캘리)
간단한, 그리고 약간의 어색한 인삿말이 방안을 오고갔다.
두 사람은 미국인이었으나, 지금 독일에서 2년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방학이라 잠깐 암스테르담에 왔다고 했으나, 내가 보기엔, 암스테르담이 아닌 마리화나를 위해 온 것이 틀림없다.
"어디로 갈꺼니?"
"내일 아침 독일로 떠날 생각이야"
"독일 어디로?"
"글쎄...아직 정하지는 못했는데..."
일부러 독일 일정은 비워두고 있었다.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는 그리 내키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한국 배낭여행객들이 가는 곳은 어쩐지 가기 싫어지는 묘한 감정이 작용했음을 밝힌다.
"독일은 함부르크와 베를린이 괜찮아. 그쪽으로 가보지 그래?"
"함부르크?"
함부르크는 내 가이드북에는 나와있지 않은 도시였다.
그래.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은 도시를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비틀거리면서 맹목적으로 가보는 것....
"함부르크로 갔다가, 이후에 베를린으로 가면 되겠네. 정말 멋진 곳이야. 2-3시간이면 함부르크에 갈 수 있을걸"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내 첫 독일 여행지는 예정에 없던 함부르크로 결정됐다.
사실 유럽 지도를 한국 책상위에 펼쳐놓은채 그대로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함부르크의 위치도 모르고 있었다.
대충, 암스테르담과 베를린 사이에 있겠지.
심지어 함부르크의 스펠링도 몰랐다. 아마 H로 시작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렇게 됐다. 정보도, 지도도, 가이드북도 없이...
기차 두 번을 갈아타고, 그중 한번은 연착 되고 - 누가 독일 열차는 정확하다 했는가? - 예상시간보다 훨씬 늦게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 기차역...여기가 함부르크구나.
여기서 중요한 실수를 하나 깨달았다. 강조하건데, 함부르크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모든 배낭여행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하는 고민. 즉, "오늘은 어디서 잘까"라는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이다.
잠 잘 곳도 정하지 않은 채로 기차에 올랐으니...
훗.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시크한 아시아 원숭이답게, 일단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다.
가이드북에 써있었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적극 활용하라고.
혹시 근처에 숙소가 있는지 물어봤다. 40대로 보이는 독일 아저씨는 안경너머로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매우 사무적인 독일식 영어로 말했다.
"찾는 곳이 어디지? 호텔? 아니면 호스텔?"
"내 몰골을 보고도 호텔이라는 말이 나오냐!"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매우 정중하면서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호...호스텔..."
"흠...미안. 호텔은 내가 부킹해 줄 수 있는데, 호스텔이라면 니가 알아서 찾아가야돼"
그러면서 함부르크의 지도와, 호스텔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주르륵 나열된 A4용지 한장을 선물로 던져줬다.
내적인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써 온화한(이라고 쓰고 멍청한 이라고 읽는다) 미소를 지어보이며, "당케"라고 말하고 인포메이션 센터를 나왔다.
아마 번호표를 든 여행객 20명이 내 뒤에 줄을 서 있지 않았다면, 몇마디 사정을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난리 났군"
잠깐 이야기 하자면, 이 때만 해도 나는 배낭여행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초짜였음을 고백한다.
유레일 타임 테이블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호스텔월드 검색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플렛폼 앞에서 한국산 디스 담배를 피워댈 뿐이었다. 제발 이 담배 연기에 지나가는 한국 사람이 말을 걸어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함부르크에는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지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길 잃은 원숭이 처음보나?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내 오른쪽에서, 한 여자가 다가왔다. 물론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게 아니라, 난 그냥 멍청하게 서 있었고, 그녀의 가는 길이 나와 겹쳤을 뿐이다.
눈이 마주쳤다. 백인이다. 금발에, 푸른눈. 나보다 좀 작은 키에, 유럽에서 만난 수많은 백인 여행자들이 그렇듯, 나보다도 더 큰 배낭을 짊어진 채였다. 묻고 싶었다. 도대체 뭘 먹으면 그렇게 큰 배낭을 짊어질 수 있는거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인사를 건냈다. 하이.
눈길이 그녀의 손을 향했다. 거기에는 함부르크의 지도와, 오, 내가 그 독일산 안경원숭이에게 받았던 똑같은 A4용지가 들려져 있었다. 아항~ 감 자바쓰!
"너도 호스텔을 찾니?"
"응. 원래 오늘 여기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었는데 일정이 어긋났어. 그 친구는 내일 함부르크로 올거야...그리고 미국식 영어 주저리 주저리..."
응...그러니까 결론은, 너도 오늘 잘 곳이 없다는 말이군...
"내 노트북은 바이러스에 걸렸어. 일단 인터넷 카페를 찾아봐야지"
역 안의 인터넷 카페에 가서 무려 1유로씩을 집어넣고 호스텔을 검색했으나, 함부르크의 호스텔은 몽땅 영업정지를 먹은 모양이다. 호스텔월드닷컴이 배신을 할 줄이야. 젠장.
우리는 깨달았다.
결국 믿을 것이라곤 그 빌어먹을 A4용지와 함부르크 관광지도뿐이라는 것을.
한참을 들여다 보다, 결국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스텔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마냥 역에서 해멜수는 없었으니까.
이렇게 한 동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나란히 함부르크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황을 시작한지 10여분 만에 느꼈다.
"이 여자...길치다..."
한국과는 다른 주소 체계때문에, 외국인은 나보다 길을 잘 찾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나보다 더하다.
몇번의 골목을 돌고, 한 번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여기가 호스텔이 아닌가벼!"라면서 나오기를 반복하다, 우여곡절 끝에 첫번째 호스텔에 도착. 이미 시간은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머리를 빡빡깎은, 키 큰 독일 아저씨가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방이 있는지를 물었고, 빡빡머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백인 여자가 간절한 표정으로 독일인의 자비심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호스텔 주인은 카운터에 앉더니,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른 호스텔에 방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두 백팩커스가 방을 못구해서 그러는데 어쩌구 저쩌구~"
나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지만, 대충 이런 뜻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두 세번 전화를 돌리는 사이, 백인 여자가 배낭에서 초코바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못된 것...혼자 먹다니...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김미 쪼꼬렛' 할수는 없지"(속으로)
갑자기 빡빡머리가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서는 뭔가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며시 미소를 짓더니, 이야기 했다.
"여기는 호텔인데, 트윈룸이 66유로야. 아마 지금 여기보다 싼 잠자리는 구하기 어려울걸"
두당 33유로. 젠장. 잠깐. 트윈룸이라고? 그러니까 같은 방에 침대가 두개 있는 그 방을 말하는 거야? 1시간전에 역에서 만난 백인여자랑 나랑 같이 자야하는거야?
잠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인포메이션에서 받은 A4용지를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부탁해보기로 했다.
물끄러미 종이를 보고있던 빡빡머리가, 뭔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좀 오래된 팬션이 있는데, 거긴 어떨지 모르겠군"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돌렸다.
벌써 빡빡머리는 10통이 넘는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자기 호스텔에 묵을 손님이 아닌데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캐감동. 땡큐 베리 마치.
대머리 원숭이가 말했다.
"괜찮아. 너희들이 이 도시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야, 다음에도 이 함부르크를 찾지 않겠어?"
작전은 성공했다. 팬션에서 OK사인이 떨어졌다. 트윈룸, 45유로.(두당 22.5유로)
잘 곳은 정해졌다. 백인여자와 나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빡빡머리에게 감사인사를 연신 퍼부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당신의 극락왕생을 빌어주겠소!
팬션은 호스텔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가야 했다.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나와 백인여자는 길을 나섰다.
해는 어느덧 다 져서 거리는 어두워졌다. 오후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백인 여자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 너 이름이 뭐니?"
"하....너 참, 빨리도 묻는구나"
백인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혀가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라? 이렇게 보니까 귀여운 구석도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바네사였고, 미국 태생이었다. 다른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방학을 이용해 유럽 각지를 여행중이었다.
배가 고팠다.
그러고보니 함부르크에 와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넌 초코바라도 먹었지. 샹.
가는 도중 발견한 케밥집에 들어갔다. 나는 케밥을, 바네사는 샌드위치 비슷한 것을 시켰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케밥은 먹어본 적이 없다. 처음 먹는다.
점원은 내 눈 앞에 자기 머리통만한 케밥을 내밀었다. 자네, 날 돼지로 아는건가?
아무튼 케밥 음식물 쓰레기를 입안에 털어넣고, 가게를 나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팬션으로 고고. 겨우 도착.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니 인심 좋아보이는 독일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하더니, 테이블 위에 손가락으로 '45'라고 적었다.
아항,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군화~
어쨌든 OK. 우리는 숙박료 45유로를 지불하고, 방을 둘러봤다.
꽤 넓었다. 샤워룸, 부엌(냉장고와 주방기구 완비)도 따로 있었다.
걸을때마다 마루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낡은 집이었지만, 지칠데로 지친 두 백팩커스는 럭키를 외쳤다.
그런데 침대가 좀 달랐다. 침대의 본체는 하나였는데, 작은 메트리스가 두 개 올려져 있었다.
음. 이게 트윈룸이라고? 결국 한 침대잖아. 이거 뭔가...
좀 어둡지만, 이날 함부르크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팬션 내부다. 왼쪽은 바네사가, 오른쪽은 내가 자게 됐다.(맨 왼쪽 흰 침대는 낡아서 쓰지 못한다)
일단, 바네사가 먼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나도 레이디 퍼스트 정도는 알기에...
대충 배낭을 뒤져서 세면도구를 꺼냈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 앉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may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