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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22. 큐티
창세기 40:1 ~ 23
깊은 다루심을 경험하는 요셉 (2) - 잊혀짐
관찰 :
1) 요셉이 정치범 수용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 1절.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 바로의 정치범 수용 감옥에서 요셉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곳은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하루 빨리 그곳에서 나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의 최측근이자 애굽의 최고위층 두 명의 인사가 정치범 수용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은 바로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자들이기에 바로가 가장 신뢰하는 이들에 해당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신분은 지금으로 하면 비서실장 정도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위대장 보디발 보다 더 높은 직책의 신분이었기에 이들이 사면되면, 그들의 권세로 요셉도 풀려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 2절.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 바로가 두 관원장에게 노하게 된 원인은 기록이 없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범죄했고, 그로 인해서 두 사람이 모두 감옥에 갇히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정황을 볼 때 떡 맡은 관원장이 범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 3절.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갇히게 된 곳이 하필 요셉이 갇힌 곳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 4절.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 감옥에서 요셉이 그 두 사람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신분이 높아서 일반 죄수 취급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이 이들을 수종들게 되었습니다.
2) 꿈을 꾼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
- 5절.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 두 관원장이 같은 날 동시에 각기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6절.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 요셉이 두 관원장을 수종들기 위해서 아침에 들어갔을 때, 두 관원장들은 각자의 꿈으로 인해서 뒤숭숭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꿈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 7절.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 요셉은 두 명의 관원장들에게 근심의 이유를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 8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 두 관원장들은 자신들이 꿈을 꾸었지만 해석할 자가 없어서 고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은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신교의 애굽에서 요셉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관원장들의 꿈의 내용이 무엇일지라도 그 꿈을 해몽할 수 있다고 요셉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총명이 스스로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 대한 해석
-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 술 맡은 관원장이 먼저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꾼 꿈이 좋은 의미일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 10절.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 술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은 다분히 상징성이 많았습니다. 세 개의 가지, 싹, 꽃, 포도송이 등은 술 맡은 관원장이기에 연관되는 내용이었습니다.
- 11절.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 바로의 잔, 포도주, 바로의 손에 드려지는 잔. 이것은 향후에 하나님이 이 술맡은 관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힌트를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확신이 없이 두루뭉술하게 해몽이나 예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게 됩니다.
- 12절.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상징성을 꿰뚫어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나이는 어리고, 신분도 술 맡은 관원장이 비교할 수 없이 높았지만, 요셉은 담대하고 분명하게 그 상징성을 설명해 주기 시작합니다.
- 13절.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의 핵심은 그가 복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명을 벗고 다시 비서실장으로 고용된다는 의미입니다. 죽을 위기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다시 살게 될 것을 꿈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 14절.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시위대장 보디발 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을 나가게 되고, 복직이 된다면,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확신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벗어나 늙은 아버지에게 하루라도 빨리 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 15절.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히브리 노예로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술 맡은 관원장에게 알렸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나가게 되면 요셉을 빼내어 주겠다 약속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요청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요셉의 꿈 해몽을 듣고 요셉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간청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지체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5) 떡 맡은 관원장의 꿈에 대한 해석
- 16절.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 떡 굽는 관원장은 자신의 꿈의 내용이 흉하다는 것을 본인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길하게 해몽이 되는 것을 듣고 자신의 꿈 이야기도 요셉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 17절.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 떡 굽는 관원장의 떡을 바로가 먹지 않고 새들이 먹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인도 짐작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떡 굽는 관원장의 죄가 이것과 연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가 먹는 떡을 빼돌렸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 18절.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 요셉은 담담하게 떡 굽는 관원장의 꿈에 대해서도 해몽해 주고 있습니다.
- 19절.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술 잔은 바로가 받아 마시게 된 반면에 떡 굽는 관원장의 떡은 새들이 먹었습니다. 새들이 먹은 것은 단순히 떡만이 아니라 떡 굽는 관원장의 머리도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떡 굽는 관원장의 죄가 드러나고 그가 사형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6) 바로의 생일에 요셉의 해몽대로 되나 요셉을 잊는 술 맡은 관원장
- 20절.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 삼일 뒤에 요셉이 해몽한대로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그의 죄가 드러나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 21절.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누명이 벗겨지고, 다시 바로의 최측근에서 바로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밤 늦게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 존재로 애굽의 대소사와 바로 개인의 사적인 문제를 모두 나누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힘을 써주면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 22절.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 모세는 요셉의 꿈대로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 요셉 개인에게 있어서 이 일은 몹시 실망이 되고, 절망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그 수용소를 관리하는 시위대장의 권세를 넘어서는 존재가 감옥에 다시 들어올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지혜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몽함으로 자신의 능력을 술 맡은 관원장에게 어필하게 되었기에 복직한 술 맡은 관원장으로부터 무엇인가 기별이 올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요셉은 거의 절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요셉이 입학한 고난대학의 마지막 학기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하필 요셉이 있던 감옥에 바로의 최측근 고위층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여하심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떡 굽는 관원장의 죄가 드러나게 하시고, 술 맡은 관원장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하셔서 요셉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동시에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 꿈을 이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어려서 꾼 꿈과도 연결되는 꿈이고, 향후 바로가 꿈을 꾸는 것과도 연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자 우연을 가장한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됩니다.
2) 요셉은 자신이 총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자신이 꿈을 해몽하고, 그렇기에 그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숨겨둔 죄가 그의 꿈과 요셉의 해몽을 통해서 윤곽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요셉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돌려지게 됩니다. 인간이 잘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3)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습니다. 사실 잊을 수 없는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다는 것은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관여하셨기 때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요셉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정리했을 텐데, 그 과정이 구속사적 믿음의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 요셉이 너무 빨리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으면, 요셉은 아마도 아버지 야곱에게로 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과 고대 근동의 수 많은 사람들이 아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도 그러한 기근의 피해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고난을 좀 더 당하게 두심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시게 됩니다.
4)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바로의 정치범 수용 감옥에서 다른 죄수를 수종들던 자가 하루 아침에 애굽 전체의 총리대신이 되는 것이 어떻게 우연히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인 데스티니가 성취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요셉을 잊었지만, 결국 요셉을 바로 앞에 서게 하는 것은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심묘막측할 따름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나브로 이루십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온 감옥에서 그들을 섬기는 요셉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한 꿈을 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하며 복직이 되면 자신을 기억해 줄 것을 간절히 알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음으로 마지막 남은 인간적 기다림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요셉이 구속사적 여정을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은혜로 요셉이 구속사적 믿음을 드러내고, 당당히 믿음의 족장 반열에 서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구속사적으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결코 어떤 상황에 함몰되어 일희일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2) 요셉을 깊이 다루신 하나님은 지금 나도 깊이 다루고 계십니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점은 지나가고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통해서 일하실 그날에 더욱 주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찬양하겠습니다. 그러나 또한 지금도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