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다 보고 느낀다! [방재욱]
크림로즈 J. S.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
‘식물인간(植物人間)’이나 ‘식물국회(植物國會)’라는 말에서 ‘식물’은 의식이 전혀 없다는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식물인간은 의학적으로 호흡과 순환은 유지되고 있지만 대뇌의 이상으로 인해 의식이나 운동성이 없는 상태의 사람을 일컬으며, 식물국회는 법안처리율이 낮아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의식 없는 국회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보거나 듣지 못하고 움직이거나 느끼지도 못하는 생물체인 것일까요. 대학 재직 시절 식물 유전 연구에 몰두하며 지낼 때 “식물에게는 감각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식물도 생각을 하며 지내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잠겨보곤 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식물은 사람이나 동물처럼 의식이나 감정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식물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에 대응해 행동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일정 지역에서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이 생존을 위해 주변의 역동적인 환경을 인식하며 지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100세 시대’라는 말이 풍미하고 있지만 식물계에는 천년 넘게 살고 있는 식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 실례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의 나이는 1,1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의 높이는 42m가 넘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약 15.2m에 이르고 있는데,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감각 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천년 넘게 생존하며 생장해올 수 있었을까요.
최근 식물학 연구에서 식물이 환경 정보를 수집해 반응하며 생존한다는 발표도 있지만, 식물은 사람처럼 완전한 의식이나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동적 생존 전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식물의 뿌리는 생존을 위해 물과 양분의 존재를 인식하며 생장 방향을 정해 뻗어나갑니다. 잎은 빛의 강도와 방향을 감지해 유발되는 광합성 작용으로 자신이나 다른 초식동물들에게 필요한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며, 산소를 방출해 동물들이 호흡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어떤 식물은 향기를 뿜어내 벌이나 벌레를 유혹해 꽃가루받이를 하기도 합니다.
유전적 수준에서 식물은 동물보다 더 정교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동하며 지낼 수 있는 동물들은 철새처럼 계절의 변화에 대응해 삶의 터전을 옮겨가며 먹이나 짝을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이런 동물의 행동에 비해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은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며 지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계절 변화에 적응하며 지내야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으로 잠식해 들어오는 다른 식물이나 해충에도 대응하며 지내야 합니다.
식물은 보거나 듣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일까요. 식물은 사람처럼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과 같은 오감으로 인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성장하고 생식하는 생존 전략의 바탕이 되는 유전적 역량으로 감각 기능을 발현하며 살아갑니다.
식물이 자신이 접하는 자극을 다른 자극들과 다르게 인식해 반응하는 감각 기능의 실례로 중력을 인식해 싹은 위로 자라고 뿌리는 아래로 자라도록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나가는 생장 기능을 들 수 있습니다. 식물은 과거에 감염되었던 일이나 경험했던 기후 등에 대한 인식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리 현상을 조절하며 살아나갑니다. 이렇게 주변 환경에 대응하며 지내는 식물의 감각 기능을 빛에 대한 인식과 반응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사람의 시각은 빨강색부터 보라색까지의 가시광선 파장의 빛을 감지하는데 비해 식물은 사람이 눈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빨강색보다 긴 파장 빛인 적외선과 보라색보다 짧은 파장 빛인 자외선도 감지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는 식물에게 빛을 신호로 인식하는 신경체계는 없지만, 빛 신호를 다른 신호로 바꾸어 성장이나 개화에 이용하는 감각 기능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생물이 태양 빛이 내려 비치는 낮이나 빛이 없는 밤의 길이에 따라 대응하는 생리적 반응은 광주기성(光週期性)이라고 하는데, 식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광주기성은 꽃피는 시기인 개화기(開花期)의 결정 요인입니다.
꽃피는 시기에 영향을 미치는 광주기성에 따라 야생식물이나 작물은 ‘단일식물(Short-day plant)’, ‘장일식물(Long-day plant)’, ‘중일식물(Intermediate-day plant)’, 그리고 ‘중성식물(Day-neutral plant)’의 네 그룹으로 구분이 됩니다. 벼, 국화, 코스모스 등과 같은 단일식물은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밤의 길이가 일정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길어져야 꽃을 피우며, 상추, 시금치, 무궁화 등과 같은 장일식물은 밤의 길이가 임계 암기보다 짧아지며 낮이 길어지는 계절에 개화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민들레, 고추, 가지와 같은 중일식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질 때 개화하며, 오이나 토마토와 같은 중성식물은 낮이나 밤의 길이에 따른 계절적인 영향과 상관없이 개화하는 식물입니다.
식물에는 의식이 전혀 없어 보거나 듣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이는 사람의 감각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판단으로 여겨집니다. 식물에게 눈이 없지만 인간이나 동물에게는 광합성을 하는 잎이 없는 것처럼 생명과 감각에 대한 정의(Definition)의 폭을 넓혀 생각해보면 식물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기억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내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에게 다정한 눈길로 다가가 “너 참 예쁘게 자라고 있구나!”라는 말을 건네 보고, 산책을 할 때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며 식물의 감각 기능을 떠올려보세요.
크림로즈 J. S.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
리코더, 오보에, 트럼펫, 바이올린, 현 및 연속체를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