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농단의 시대`입니다. 2017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아픔을 겪었던 우리 국민들은 최근 양승태 전 사법부의 사법농단으로 또다른 국가기관의 부정부패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사법농단`이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직 시절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법행정 비판세력을 탄압하고 부당하게 사찰하였으며, 박근혜 정부가 요구하는 주요 사건들에 대한 재판 결과를 정부의 입맛에 따라서 판결해주었다는 `재판거래` 의혹을 말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국법관회의가 지난달 19일 재판거래 연루 법관을 탄핵하라는 촉구안을 내었습니다. 또한 검찰은 최근 사법농단 연루 혐의로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는데, 이는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한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인신구속 시도였습니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혐의에 대한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검찰의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했지만 뒷맛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헌법 제106조 제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ㆍ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은 법관들의 소신있는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위와 유사한 규정을 헌법에 두고 있습니다. 법관이 헌법에 의하여 자율성과 독립성을 두텁게 보장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행정부나 입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오로지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사건의 본질보다는 법관의 성향을 중요시하는 의뢰인들을 보게 됩니다. A 판사는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이고, B 판사는 이번 재판부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돼 이 사건을 잘 모르며, C 판사는 들어보니까 힘 있는 사람 편을 많이 들기 때문에, 본인은 몹시 `억울`하며 이상한 판사 덕분에 `잘못된 판결`을 받았다고 항변합니다. 재판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물며 이번 사법농단의 재판거래 대상판결로 지목된 `KTX 해고 승무원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긴급조치 불법구금 사건`, `통상임금 사건` 등의 당사자들은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웠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위 사건의 당사자들은 형사소송법 및 민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심절차를 밟을 수 있겠지만, 형사소송법 및 민사소송법은 재심사유를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 그 사건에 관하여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때(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4호)"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재심절차를 통해 기존 판결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까지 불투명합니다. 법원은 국민의 인권보장의 최후보루이며, 정의를 판단하는 권력기관이라는 점에서 재판부에 대한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법부의 가치입니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통하여 국민들의 재판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국력소모나 정치적 논쟁이 발생될 예정입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회는 법관 탄핵을 논의하고, 검찰은 엄정하게 수사하며, 사법부는 자생적인 방안을 내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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