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금) 전도서 1:12-18 찬송 338장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개역 개정)
- 한계를 갖는 인간 지혜의 헛됨 -
전도서 본론 부분인 1:12-12:7을 구성하고 있는 4개의 강화 중
제 1 강화에 해당하는 1:12-3:15는 해 아래 인생의 허무함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증명한 후(1:12-2:23)
그러한 인생 허무가 오직 해 아래 인생과 대조되는
해 위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음을 주장하여(2:24-3:15)
인간 최대의 문제인 해 아래 인생 허무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제 1 강화의 첫부분으로서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영위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던 지혜와 지식조차
인생의 근본적인 허무를 극복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해 아래 인생의 허무함을 증명한다.
즉 전도자는 먼저 뛰어난 지혜자인 자신이 심도있게 연구한 결과
해 아래 인생의 허무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정한 사실임을 발견하였음을 밝힌다.(12-15절)
그는 또한 자신의 지혜로움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졌던 지난날을 잠시 회상한 후(16절)
인간의 지혜가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설명함으로써(17,18절)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함으로써 빚어진
인생의 본질적인 허무를 극복하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우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전도자가 인간의 허무를 극복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지혜가
단지 인간의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진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지혜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본문은 인본주의적 지혜가 어떠한 효용성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배제한 인간적인 지혜만으로는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인간 지혜의 한계에 대한 지적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신앙하고
그의 섭리에 대하여 완전히 승복하는 삶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지혜와 지식도
해 아래 인생 가운데 나타나는 모순과 이로 인한 절대 허무의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잠1:7)
16절)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적 지혜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오늘 말씀에서는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본 결과
큰 지혜를 많이 얻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동시대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대 현자들의 글 등을 통해
지혜롭고 지식 있는 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가 현존하는 모든 지혜에 대해 다 섭렵(涉獵)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가 동시대 인물들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대에 나라를 다스렸던 왕이나 현자들보다도 뛰어났음을 말한다.
솔로몬이 자신을 이처럼 뛰어난 지혜와 지식의 소유자로 자처하고 있는 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지혜의 한계와 그것이 지닌 허무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솔로몬은 실제로 누구보다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가 되었지만
그러한 지혜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솔로몬의 이러한 고백은
우리 인간이 지닌 명백한 한계와 무능력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즉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솔로몬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어리석은 존재요, 허무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솔로몬의 지혜가 그러한데 평범한 지식,
그저 그만그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지혜는 어떠하겠는가?
단지 지혜만 그러한가?
그것은 부나 명예, 권력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특별한 것, 아무리 많은 것,
아무리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무엇을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지극히 보잘것없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랑하며,
그것으로 인해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일례로 인간의 수명을 보면,
어떤 사람은 10년이나 20년 혹은 30-40년 정도 살다가 죽게 된다.
그러면 가족들은 매우 슬퍼하며 한창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애도한다.
반면 100년을 살다 간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럴 경우 사람들은 장수하였다고 말하며 그가 죽을 때 호상(好喪)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 앞에서 10년을 살았든 100년을 살았든
모두가 짧은 인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짧은 인생 안에서 짧다 길다, 힘이 세다 약하다,
건강하다 병들었다, 지혜롭다 미련하다, 부하다 가난하다와 같은
상대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가지고 우월함과 열등함을 나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남보다 조금 낫고 조금 많고 조금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해지기 일쑤이다.
물론 이러한 것이 얼마간 만족과 기쁨을 줄 수는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자랑은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나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오늘 세상에서 견줄 자 없는 뛰어난 지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자 할 때
자신은 한없이 무능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 특별한 것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것은 결국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아무것도 내놓을 수도,
내세울 수도 없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지혜롭다고, 힘이 있다고, 많이 가졌다고,
오래 살았다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교만해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도토리 키 재기’와 같이 어리석고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취할 자세는
겸손이요, 감사요, 절대적인 의지와 신앙뿐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없다 해도 비굴하지 않고, 있다 해도 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진실하게,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후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