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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공장신문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김남천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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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바람이 보통벌 넓은 들 무르익은 벼이삭을 건드리며 논과 논 밭과 밭을 스쳐서 구불구불 넘어오다가 들 복판을 줄 긋고 남북으로 달아나는 철도와 부딪치어 언덕 위에 심은 백양목 가지 위에서 흩어졌다. 뒤를 이어 마치 해변의 물결과 같이 곡식 위에서 춤추며 다시금 또 다시금 가을바람은 불리어왔다.
하늘은 파란 물을 지른 듯이 구름 한 점 없고 잠자리같이 보이는 비행기 한 쌍이 기자림 위에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열두시의 기적이 난 지도 이십 분이나 지났다. 신작로 옆에 ‘평화 고무공장’ 하고 쓴 붉은 굴뚝을 바라보며 벤또통을 누렇게 되어가는 잔디판 위에 놓고 관수는 마꼬를 한 개 붙여서 입에다 물었다. 점심을 먹고 물도 안마신 판이라 담배가 입에 달았다. 한번 힘껏 빨아서 후 하고 내뿜으며 그대로 언덕을 등지고 네 활개를 폈다. 눈은 광막한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파랗게 점점 희미하여져서 없어지는 담뱃 내가 얼굴 위에 너울거리다 풀숲을 스쳐서 오는 바람을 따라 그대로 없어지곤 하였다. 그는 연거푸 그것을 계속하였다.
"염려 마라 우리에겐 조합이 있고 단결이란 무서운 무기가 있네."
신작로 위에를 뛰어가며 하는 직공의 노랫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철롯길 옆이라 먼 곳에서 오는 듯한 기차의 소리가 땅에 울리어 왔다. 그밖에 이 넓은 보통벌에는 가을바람에 불리는 벼이삭의 소리가 살랑살랑할 뿐이다.
때때로 관수의 마음은 몹시 가라앉았다. 혼자서 담배를 빨며 앉았으면 초조하는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최근에 이르러 자기가 완전히 초조하여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자기 앞에 남겨놓은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있는 데까지의 지혜와 경험을 털어서 모든 것을 해보았어도 일은 마음대로 되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조그만 불평불만이라도 잡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공장 안엔서 일어나는 불평불만을 대표하여 그의 선두금은 하나도 없었다.
관수도 무엇인지 똑똑하게는 몰라도 자기에게 결함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그럴 때마다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지나간 여름, 파업이 완전히 실패에 돌아가고 몹시 전열이 혼란해져서 입으로 옮길 수 없는 악선전이 공장과 공장을 떠돌 때에 돌연히 잠깐 참말로 번개같이 잠깐 동안 만났던 어떤 사나이한테서는 그 후 지금까지 두 달이 되어도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 사나이가 지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침착한 태도로 말하던 그 사나이는 말하는 품으로 보아서 결코 이곳 사람은 아닌데 그때 파업의 사정과 또 파업 수습에 관해서 일후에 활동할 것을 어떻게 그렇게 똑똑히 아는지 몰랐다. 평양의 모든 일을 환하니 꿰어두고 이곳서 사는 사람보다도 잘 알았다.
그를 만난 이후 관수는 혼자서 생각하였다. 물론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자기에게 그 사나이와 만날 시간과 장소를 가르쳐준 일환이는 그때 벌써 폭○행위 위반으로 끌리어갔을 때였다. 좌우간 일환이와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인 줄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환이는 어떻게 이 사나이를 알았을까?
파업 때에 관수가 자기와 아무 면식도 없는 사람과 이렇게 만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 방울 같은 눈을 가진 사나이는 그들과는 어는 곳인가 다른 곳이 있었다. 이 사나이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공상 같았다.
"아마 일 개월 안으로 어쩌면 좀 늦게 다시 만나게 되던가 혹은 서로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
그 사나이는 잠깐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다시 머리를 들고 말을 계속하였다.
"일후에 누구를 만나서 인사를 할 때에 그 사람의 성명의 가운뎃자가 타탸 줄이고 열한 글씨, 즉 획수가 열한 개면 그 사람을 믿어주시요. 또 그러노라면 같이 일할 동무들이 생기겠지요!"
말을 끝맺고 힘있게 악수를 하고는 다시 뒤도 돌려다보지 않고 가버렸다.
일 개월이 지나고 이 개월이 지나도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이렇게 언덕 위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하면 그 사나이를 만나던 생각이 머리와 눈앞에 떠올랐다.
‘타탸 줄 열한 획수. 타탸 줄 열한 획수.’
공장에서 기적이 울었다. 관수는 궁둥이에 묻은 마른 풀잎을 털면서 벤또통을 들었다. 그리고 언덕길을 걸어서 공장을 향하여 걸어갔다.
"관수! 관수!!"
그는 그를 부르는 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그것은 공장 뒤였다. 두서너 직공이 손짓을 하며 빨리 오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신작로를 뛰어서 공장문으로 모여드는 직공들이 많았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뭐이가?"
"뭐이가 얘?"
신작로를 뛰어오는 직공들이 지저귀었다.
관수는 벤또통을 덜거덕 소리 안 나게 바싹 쥐고 언덕길을 달음질쳐갔다.
[2]
벌써 작업실로 들어가는 낭하에는 남직공 여직공이 겹겹이 싸여 돌았다. 앞에 서 있는 자들은 얼굴이 노기가 올라서 붉으락푸르락하며 무엇을 소리 높여 고함치고 있으나 지금 달려온 맨 뒤에 선 직공들은 사건의 내용도 모르고 그대로 웅성웅성하기만 하였다. 어떤 젊은 직공은 앞에 선 직공의 뒤를 무르팍으로 떠밀고 후닥닥하고 뒤를 돌려다보는 놀란 얼굴을 하! 하! 하고 웃었다.
관수는 사건의 내용을 알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잘 들을 수가 없었다. 발을 곧추고 앞을 넘겨다보았다. 일은 결코 낭하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낭하에서 수도가 있는 물 먹는 방으로 가는 그 사이에서 생긴 것 같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속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였다. 이번에는 일을 삼아본다 하는 결심이 덤비는 가운데서도 생각되었다. 그는 몸을 틈에다 비여꽂고 가운데로 뚫고 들어갔다.
"물을 먹어야 살지 않우!"
그는 그 속에 얼굴을 들었다.
"좌우간 덤비지 말고 조용들 해!"
대답하는 소리는 완전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 구정물을 먹으라고 수도를 막다니! 직공은 개돼지란 말요?"
너무도 그 소리가 커서 웅성웅성하던 소리가 잦아들고 그 목소리에 군중이 통일되는 듯하였다.
"좌우간 넓은 데 나가 이야기하지!"
"자, 넓은 데 나가서 합시다!"
최전무의 말을 받아서 군중에게 외치는 것은 고무직공조합의 간부로 있는 김재창이의 목소리가 정녕하였다. 관수는 재창이 목소리를 듣자 벌써 간섭하기 시작한 그의 행동을 직각하였다.
"나가긴 뭘 나가! 여기서 하지!"
관수는 반동적으로 그와 대항하여 이런 말씨가 입을 뛰어나왔다.
"아, 그럴 게 없이 넓은 데 나가 잘 토의해!"
재차이이의 말에는 덤비지 않는 숙련된 곳이 있었다. 직공들은 관수의 말을 꺾고 재창이 말대로 돌아서서 마당으로 나갔다.
"밀지 마라! 넘어진다!"
"글쎄, 직공들은 개굴창 같은 우물에 가서 물을 먹으라니, 합쳐 수도세가 몇 닢이나 하겠나! 너머 직공들을 즘생같이 너겨!"
밀려 나오면서 관수와 앞뒤에 선 직공들이 침이 튀도록 지저귀었다.
"파업 때에 들어준 대우개선이란 뭐이야?"
"그러케 말이다!"
웅성웅성하며 마당 안에 꽉 차도록 몰리어나왔다. 여직공, 남직공, 늙은이, 젊은이, 시든 얼굴, 열 오른 눈…… ‘루라’실에서도 ‘노두쟁이’고급노동자들이 배합사와 화부들과 같이 머리를 내밀고 ‘하리바’직공들의 이 행동을 보고 있었다. 마당에 나오지 못하고 창문에 방울 달리듯이 매어 달려서 마당을 향하여 있는 직공들도 있었다.
"물을 안 먹이겠다고 수도를 막은 것이 아닐세. 그건 결코 그런 게 아니고……"
최전무가 사무실에서 문을 열고 군중을 내려다보면서 지저귐을 억제하듯이 손을 내둘렀다.
"그럼 물 먹겠다고 수도를 틀랴던 직공의 뺨을 갈긴 건 누구요?"
비로소 한 개의 굵은 목소리가 군중을 대표하였다.
"그건 그 직공의 태도가 건방져서 일시 감정에서 나온 것이지, 결코!"
"듣기 싫다! 물 먹겠다는 것이 건방져?"
앞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일동은 그 소리에 가슴이 물컹하고 갑자기 피가 얼굴로 오르는 것 같았다. 지난여름 파업 이래 전무를 그렇게 욕해보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여러분 ─"
군중의 한중복판에서 관수가 쑥 머리를 올려 밀었다.
"전무의 말을 듣거나 전무와 말다툼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처리하는 것이 어떻소?"
"그게 좋수다!"
누군가 혼자서 손뼉을 자락자락 쳤다. 그러나 곧 한 사람이 두사람이 되고 그것이 일동에게 퍼져서 장 안이 박수소리로 찼다. 마당을 들썩하는 박수소리 속에 알지 못할 소리로 고함을 치는 자도 있었다.
그 바람에 기운이 나서 전무가 열고 섰던 문을 이편에서 콱 닫쳐서 전무를 방 안으로 몰아넣은 자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박수소리가 났다.
관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박수소리도 마치기 전에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여러분, 방금 일어난 일은 이태껏 먹어오던 수돗물을 막고 저 다릿목에 있는 우물에 가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 우물의 물이 감히 먹지 못할 만한 것인 것은 우리들이 잘 아는 배가 아니요."
"그렇죠!"
창문에 매달린 여직공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키득키득 웃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벤또를 먹고 물을 먹을려고 밀리워간 직공들의 앞에 서서 그 수도를 열라고 한 직공을 건방지다고 귀쌈을 때렸다니 그런 몹쓸 짓이 어데 있겠소!"
"그놈을 잡아오자!"
하는 자도 있었다.
"이건 완전히 우리 전직공의 힘이 약해진 것을 기회로 우리들의 조고만 이익도 빼앗을라는 악독한 술책입니다!"
"옳소!"
"그렇소!"
"여러분! 파업 때에 들어준 고나마 몇 조건까지 지금에는 하나도 지키지 않는 고주들의 행동을 보시요! 우리들은 종살이가 하기 좋와서 매일매일 내음새나는 고무를 만질까요?"
"결코 아니요 ─"
가늘고 높은 여직공의 목소리가 날 때에는 조금씩 웃는 사람이 있었다.
관수는 군중을 쭉 한번 살폈다.
"우리는 굶어 죽지 않을라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거요!"
못을 박듯이 힘을 주어서 뚝 말을 끊고 그는 다시 군중을 살폈다.
군중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띠었다. 저편 사무실 문 앞에 있는 재창이의 얼굴을 보고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말끝을 맺었다.
"우리가 지금 아무 대책도 생각지 않는다면 고주들은 하나씩 하나씩 우리들의 이익을 빼앗아갈 것이외다!"
(원문에서 5자가량 삭제됨) ─ 이다 하는 자도 있었다. 관수의 말은 여기서 좀 끊어질 것을 보였다. 그때에 재창이는 곧 군중을 향하여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여러분 ─"
재창이가 군중의 눈알을 자기 얼굴 위에 모았다.
"이제 관수 동무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반드시 무슨 대책이 있어야 될 것이외다!"
"옳소!"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흥분한 채로 일을 저지르면 죽도 밥도 안되고 맙니다. 그리구 또 이런 데서 이렇게 회합을 하면 곧 위험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조합이 있습니다. 조합에 보고하여서 그의 처결을 기대리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노동자는 조합에 단결해야 됩니다. 조합이 있는 이상 우리가 우리끼리 어물거리다가는 크게 망치고 맙니다. 그러니까 새로이 위원을 선거할 것도 없이 조합집행위원이 있으니까 곧 보고하기루 내에게 다 일임해 주시요!"
관수는 대단한 분함을 가지고 그의 말에 반박하려고 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끼리 일을 처리합시다!"
그는 힘을 주어서 주먹을 내흔들었다.
"관수! 여보, 자네는 법률을 모루누만! 이 이상 더 여기서 떠들문 위험해! 옥외집회로! 애, 야 쓸데없소. 같은 값에는 희생자 없이 일을 잘할 게지! 자, 그러니까 여러분 내에게다 다 맽기시요! 그리구 벌서 고주 측에서 알기웠는지 모르니까 곧 헤어지고 맙시다!"
[3]
관수는 저녁때가 되어도 저녁 먹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또 한개 그 타락간부에게 불평불만을 뺏기고 말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몹시 분한 생각이 나면서도 그 간부한테 속아 넘어가는 직공 일동이 미워지기도 하였다.
내일이 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같이 기적은 다시 울고 직공들은 다시 묵묵히 신을 붙이고 그리고 그 재창이 놈은 조합에 보고했으니까 무슨 교섭이 있을 터이라는 간단한 한마디로 모든 것을 걷어 치울 것이로구나.
관수는 오늘 그 좋은 기회에 조합 간부인 재창이를 폭로하지도 못한 것이 몹시도 분했다. 원통하도록 후회가 났다.
재창이를 폭로하려면 조합도 글렀닥 하여야만 된다. 그러나 지금 조합까지 글렀다고 선전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이런 생각이 마음에 걸려서 그는 항상 재창이를 폭로하기를 주저한 것이었다.
조합!…… 아무리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 하여도 이제는 그것을 폭로하여야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지금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 일은 생각만 해도 우울해졌다.
담배가 떨어져서 삿귀를 들치고 꽁초를 찾았다. 지질리어서 납작해진 조그만 꽁초를 주워서 곰방이에다 담아서 뻑뻑 빨았다.
"큰아야! 누구가 찾는데!"
부엌에서 그릇 부시던 모친의 소리에 문을 열어보았다. 한 공장 안에 있는 길섭이라는 직공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구!"
"들어갈 것까지 없어. 좀 나오게!"
관수는 대를 톡톡 떨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좀 이르게 올걸, 시간이 촉박했는데. 공회당 앞에 큰 포플러 나무 세 주가 있을 텐데, 그 왼바른편 나무 아래에서 자네를 잠깐 만나보자는 자가 있는데……"
길섭이는 굴뚝 뒤로 가서 관수에게 그렇게 전하였다.
"내에게? 그런데 어떤 잔데?"
"좌우간 가보면 알지? 자네 알 사람일세…… 일곱시 반인데 지금 곧 가야 될걸!"
관수는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그가 "그럼 가지!"하고 대답했을 때 길섭이는 "그럼 늦지 않게 이제 곧!"하고 다시 한 번 되풀이 하였다.
"저녁 안 먹고 어델 나가니?"
그가 고무신을 신을 때 그의 모친이 뜰에까지 쫓아 나왔다.
"괜찮아요. 곧 댄겨올걸!"
그는 공회당을 향하여 집을 나섰다.
관수는 길을 걸으며 생각하였다. 마음에 직각되는 것은 파업이 끝날 때 만났던 사나이의 생각이다. 그 사나인가? 만일 그 사나이라면 어떻게 길섭이가 전할까? 그것은 그러나 물론 가능치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 방울 같은 하나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알 만한 누구일까? 타탸 줄 열한획수의 어떤 사나인가? 그는 여러 가지로 상상하며 저물어가는 교외의 길을 걸었다. 그가 공회당 가까이 가서 어떤 상점의 시계를 들여다보았을 때 바로 정한 시간에서 일 분을 남겨 놓았었다.
그는 마지막 일 분간을 뛰어갔다. 공회당 뒤를 휙 한 번 휘돌아서 포플러나무 선 곳을 본즉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곧 어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나이가 그 앞에 와 서서 담배를 붙였다.
관수는 가슴에 뛰었다. 그래서 언덕을 뛰어내려가며 본즉 그것은 자기 옆에서 일하는 창선이라는 직공이었다.
"여!"
그는 담배를 후 배뿜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관수는 좀 견주었던 곳이 어그러진 듯한 낙망을 느꼈다. 창선이면 물론 잘 안다. 창선이는 파업 이후에 신직공 모집에 끼어서 들어와 자기네 공장에서 일하게 된 직공이다. 이 사나이는 물론 타탸 줄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이 사나이가 내게 무슨 말이 있단 말인가? 관수는 마음속에 좀 불평을 느끼면서 창선 가는 길을 따랄 묵묵히 걸어갔다.
"자네, 지난여름 파업이 끝났을 때 경상골서 어떤 사나이 만나본적이 있어?"
창선이는 담배를 훅훅 재뿜으며 그에게 말했다. 물론 창선이 말과 같이 그 사나이를 만난 것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 없는데!"
하고 머리를 내흔들었다. 청선이 이름자는 타탸 줄도 아니고 열한 글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없어?"
창선이는 잠깐 관수의 얼굴을 보았으나 곧 딴것을 생각한 듯이 벌쭉 웃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내 이름은 사실인즉 박태순일세!"
그리고 손뼉을 내밀고 그 위에‘泰[태]’자를 써 보였다. 타탸 줄 연한획수!
관수는 다시금 창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창선의 손목을 꼭 쥐었다.
"신용하겠나?"
"믿고말구!"
길가에서 사람의 흔적은 적었으나 손목을 갑자기 쥐는 것이 이상했으므로 그들은 곧 손을 놓았다.
"자세한 말은 다음에 하구, 지금 곧 야듧시부터 같이 갈 데가 있네!"
창선은 길 어귀에 나선즉 선두에게서 왼편으로 굽어 돌았다.
창선에게 끌려서 여덟시 정각에 어떤 집을 찾아갔을 때 관수는 놀랐다.
거기에는 벌써 길섭이, 동찬이, 선녀, 창호, 보무어미 등등의 사오인의 얼굴이 등불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성큼 방 안에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4]
기역자로 지은 넓은‘하리바’안에서 이백오십 명이나 되는 직공들이 고무신을 붙이고 있었다. 가을 햇발이 유리창을 가로 비추고 해뜩 해뜩하게 떠도는 먼지를 나타낸다.
오정이 가까워오는데 이 공장 안은 어저께 아무 일도 없은 듯이 침묵하였다. 베어놓은 고무를 틀에다 씌우고 풀칠을 하여 손으로 통통 치는 소리가 노둔하게 들려올 뿐이다. 그리고 직공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공기를 더욱 무겁게 하였다.
관수와 창선이, 선녀, 길섭이 등은 몇 번인가 직공들과 섞여서 변소를 다녀왔다.
그들은 이따금 슬쩍 보고는 의미 모를 웃음을 남몰래 하였다.
드디어 열두시 기적이 울었다. 그리하여 열두시가 되도록 아무 일 없이 그러나 기미 나쁜 공기 속에서 직공들은 일을 하였다.
아무 소리도 없이 떨거덕떨거덕하며 직공들은 벤또를 가지러 갔다. 그리고 자기 각자의 벤또를 골라가지고 두서넛씩 패를 지어서 공장문 밖으로 나갔다.
관수는 다른 직공 세 사람의 틈에 끼어서 함께 벤또를 먹으러 갔다.
이 공장에서는 겨울이나 비 오는 날은 방 안에서 그대로 먹지만 대개는 들이나 벌에 나가서 먹었다.
"재창이는 조합에서 무슨 보고를 가지고 왔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누만!"
잔디판 위에 앉으며 관수가 직공들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아마 이제 무슨 보고가 있겠지!"
또 한 직공이 그렇게 대답하여 "에헤엠!"하고 무겁게 궁둥이를 놓았다.
"에케?! 이게 뭐이야?"
벤또를 풀던 한 직공이 벤또를 놓으며 여러 사람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내겐 없는데!"
"내게두 없는데!"
"건 내게두 없네! 좌우간 뭐이야?"
그들은 두 패로 갈려 그 종이를 둘러쌌다.
얇은 미농지 한 장에 복사지로 또글또글하게 하나 가뜩 써 있었다.
처음에 좀 예쁘게 굵은 글자로
‘평화고무 공장신문 일호’하고 씌어 있었다.
"공장신문? 오라! 우리 공장의 신문이란 말이로구나! 이건 또 누구 장난이야?"
직공 하나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으나 그는 종이를 놓지 않고 좀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얘! 이건 무슨 그림인가?"
한 자가 아래쪽에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요건 재창이 겉구나!"
"에키! 요건 최전무 같다!"
"이게 뭘 하는 게야?"
관수가 종이를 자기에게로 향하여 돌렸다.
"하하, 이게 지금 주는 건 돈이로구나!"
그 옆에 있던 직공이 그림 위에 쓴 글귀를 읽었다.
"최전무한테서 돈을 받는 몹쓸 놈 김재창이의 꼴을 봐라! 하하하!"
그는 종이를 놓고 웃었다.
"얘, 거 재미난다. 좌우간 글을 읽어보자!
"지난여름에 우리들의 파업을 팔아먹은 놈은 누구냐? 그건 김재창이 같은 타락한 조합간부다! 우리들은 그건 놈에게 조금도 우리의 일을 맡기지 말자! 그는 우리들의 마음을 팔아서 자기 배를 채우는 놈이다. 어저께 일어난 일도 우리끼리 처리해야만 된다. 우리의 마음을 꺾고 고주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재창이는 우리 편인 체하고 나서는 것이다. 어저께 아무 일도 없게 무사히 한 덕택으로 재창이는 전무네 집에서 술 먹고 요리 먹고 돈 먹은 것을 왜 모르느냐? 벤또를 빨리 먹고 곧 마당에 모이자! 그리하여 재창이를 내쫓고 우리끼리 지도부를 선거하자! 우리 편인 체하고 나서는 몹쓸 간부를 내쫓아라!"
"얘, 건 굉장하구나!"
"그대음 또 읽어라!"
"크게 쓴 글자만 먼제 읽자! 뭐이가 이게? 오라 공자로구나! 거 잘 썼는데, 꾸풀꾸풀하게 썼네! ─ 공장신문은 고무 직공의 전부의 것이다! 공장신문을 믿어라! 공장신문을 지켜라! 또 그 아래(원문에서 2자 삭제됨)들은 얼마나 이익을 보나? 전평화고무 직공 형제들아! (원문에서 2자 삭제됨)의 준비를 하여라! 다른 공장 형제들도 늘 (원문에서 2자 삭제됨)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곧 마당에 모여서 우리들끼리 지도부를 선거하자!
거기까지 읽었을 때에 관수는 공장문을 가리켰다.
"얘, 저것 봐라! 발써부텀 이걸 보구 모여드는 게다!"
"정말! 저것 봐라!"
관수가 후닥닥 일어섰다.
"벤또 싸가지구 우리두 다 가자!
"가자!"
[5]
박수소리가 마당 안에 가득 찼다. 모임은 지금 한창 진행중이었다.
"자, 그러면 우리끼리 준비위원을 선거합시다!"
또 박수소리가 났다.
"멫 사람이나 할까요?"
한 사람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아홉 사람이 좋겠수다. 그런데 나는 창선이를 선거합니다!"
일동은 그 소박한 말을 웃으면서도 박수를 하였다.
"아홉 사람 좋소!"
"창선이 좋소!"
"여보! 나는 박센네 합네다!"
"박센네 여뿐이 만세!"
남자들이 박수했다.
"여보! 나는 관수요!
"관수 좋소!"
이렇게 하여 아홉 사람 준비위원이 선거되었다.
"누구 연설해라!"
하는 소리가 나매 뒤를 이어 박수소리가 났다.
창선이가 쑥 머리를 내밀고 좀 높은 데 올라섰다.
"여러분, 이제야 두리들은 우리끼리 선거한 지도부를 가졌습니다.
우리들 아홉 사람(원문에서 2자 삭제됨) 준비위원회는 죽을 힘을 다하여 끝까지 여러분들의 의견을 대표하야 싸우겠습니다. 여러분, 자 일동이 ○ 준비위원회 만세 ─"
"만세 ─"
"만세 ─“
『조선일보』(1931. 7. 5~15)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