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다.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내사랑이다.
날개 달린 너를..
자유로운 너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널 가질 것이다.
'천사를 줍게 되다' - 14
오랫동안 계속 되는 연회.
레이첼은 이런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괜히 이안은 이런곳에 나오게해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며 투덜거렸다.
입술을 약간 삐쭉 내밀고는 오물오물 거리는 폼새가 꽤나 귀엽다.
하지만 정작 천에 가려져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수가 연회에 빠져들지 못하고 지루함에 몸을 베베꼬고 있을 때 쯔음..
그녀는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한 여자의 표독스러운 눈매에 화들짝 놀랐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친 여자.
아까 그 징글징글한 인상의 노인과 함께 서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는 엄청난 기세로 레이첼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눈빛으로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는 기세로 말이다.
곱슬 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에 요염하고 도발적인 외모.
그에 잘 어울리는 검은 색의 타이트한 드레스는 조금 천박해 보이기도 했다.
레이첼은 알수없는 적의에 얼굴을 찡그렸다.
왜 자신이 저런 눈빛을 받아야만 하는지 이유따위는 없었다.
이유도 모르는 적의따위는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쓰였다.
한참을 그여자와 눈싸움이라도 하는 사람 마냥 그 쪽을 주시하던 레이첼은 이안이 말을 검으로써 시선을 돌렸다.
"레이첼."
"...?"
"이만 나가자. 별 볼일 없는 연회따위에 더이상 붙어 있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말야.."
끄덕-
이안의 말에 레이첼은 전적으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둘은 다른 이들의 이목을 되도록이면 끌지 않으려 노력하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연회장을 빠져나온 후 이안과 레이첼은 10여분을 조금 넘는 시간을 마차를 타고 서쪽궁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시니어스 리온 유다 공작이 그와 그녀를 반겨주었다.
"스승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직도 스승이라고 부르시다니..
폐하께서는 이제 황태자가 아닌 왕이 시옵니다.
그 누가 왕 위에 올라선단 말입니까. 그런 호칭따위는 거두어주십시오.폐하."
"훗-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의 차리지 마시고 평.소.대.로 하시지요?"
"흠흠..아직도 옛 일을 기억하고 계시다니...여전히 쪼잔하시기 그지 없으십니다."
헛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유다공작.
그는 굉장히 선량해보이는 눈매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트리고 조그마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옷차림도 굉장히 수수해 책 한권을 들고 있는 폼새가 유명한 학자처럼 보였다.
뾰족한 모자를 씌어놓으면 마치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마법사같아 보일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원판의 테이블에 도란도란 앉았다.
"여기는 레이첼."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니어스 리온 유다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레이첼님의 아버지 역활을 할 늙은이이니 잘부탁드립니다. 허허허."
말하는 폼새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냥 아버지 역활을 할 사람이라며 잘부탁한다며 호탕하게 웃어재낀다.
그런 유다 공작의 행동에 레이첼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라니...아버지라니..
레이첼의 아버지는 온화해보이기는 커녕 우락부락한 인상에 항상 공사판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근육질에 다져진 몸매.
그리고 성격또한 고지식하고 완고해서 레이첼은 한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본적이 없었다.
성격또한 다혈질에 일단 손부터 나가는 성격이라 알아서 몸사리며 살아야만 했다.
도대체 어머니와 왜 그런 남자에게 빠져서 결혼을 하고 또 여태껏 살았는지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남자였기에..
레이첼에게 온화해보이는 유다공작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조금 낯설었다.
"어떻게 된거죠..?
아버지니..양녀니..다 무슨 소리죠?"
앞 뒤만 알고 몸둥이는 모르니 레이첼이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레이첼의 물음에 이안은 그녀가 좀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우리 샤이나 국에는 왕 다음으로 공작이라는 지휘가 가장 높지.
공작은 4대로 권력이 나뉘어지는게 기본이야.
혹시라도 권력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왕권을 노리는 자가 나올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든것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서로 싸움을 붙여놓고 서로의 힘이 더이상 크게 되지 못하게, 혹은 약해지게 만드는게 목적이야.
여기계신 유다공작은 나의 어렸을적부터 나를 가르치신 스승님이시자 전대 왕이신 아버지의 친구분이시지.
유다부인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병으로 돌아가셔 자식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너를 스승님의 양녀라고 밝혀둔거야.
만약 신분도 명확하지 않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너를 왕비로 들인다면 만만치 않은 반대세력에 부딛치게 될테니까..
그들이 입도 뻥긋못하게 먼저 말뚝을 박아놓는 것이지.
한 나라의 공작의 양녀라면 적어도 좋은 태생일테니 말야.
네가 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감히 반대할 인간은 없겠지만은.. 그것은 나혼자 공유하고 싶거든.
그니까 앞으로 착한 딸로써 잘부탁한다."
이안의 말을 요약해보자면 한마디로 권력싸움이였다.
현재 이안의 정실과 후실은 합해서 3명.
그것도 유다공작은 뺀 나머지 공작들의 영애들이였다.
만약 그들보다 낮은 계급의, 또는 신분조차 불확실한 레이첼을 왕비로 세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반대에 부딛칠 것이다.
그런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자식이 없고 믿을수 있는 유다공작의 양녀로 들여보낸 것이다.
서류는 완벽하게 몇일전부터 작성되었고, 은밀하게 귀족들 사이에 소문을 퍼트린 것도 이안이였다.
정말 용의주도한 이안이였다.
레이첼은 반정도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해서 그런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왕비'라는 단어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고스란히 흘려보낸 그녀였다;
"아..그렇게 된거라면..뭐...
알아서 하든지..흐음..
여튼..유다공...아니 아버님..안녕하세요.
저야말로 잘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편히 말 놓으세요. 한참이나 제가 어린대..존댓말 하시지 마시구요."
레이첼은 겉으로는 생긋- 웃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자신은 역시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의 열혈소녀라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상당한 푼수기질이 많은 그녀였다;
"허허...천인이시라 하여 많이 긴장했는데 괜한 걱정이였나 보군요..후후..
앞으로 잘부탁드립..아니 잘부탁하네.
그럼 난이만, 밤이 깊었으니 돌아가야겠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폐하."
"밤이 깊었으니 조심히 가세요."
"알았다. 허허허.. 갑자기 딸이 생기니 참 어색하군.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허허허, 하고 연신 웃음을 터트리던 유다공작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물러갔다.
늦은 밤.
레이첼은 몰려드는 잠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기지개를 폈다.
레이첼이 두 팔을 쭈욱 위로 치켜세워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사이 이안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겨버렸다.
천이 떨어져나가고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밖으로 드러났다.
"난 자야겠어."
라며 자리에 일어난 레이첼은 질질 끌리는 드레스를 한손으로 끌어올리고는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이안은 그녀의 머리를 덮고 있던 천을 한참 바라보다가는 자신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넣어놓고는 이미 사라진 레이첼의 침소로 향했다.
"너! 안나가?"
퍽-
눈앞으로 날아오는 하얀 베게를 가볍게 피한 이안은 눈쌀을 찌푸렸다.
레이첼의 침소에 들어오자마자 날아오는 베게.
이 천인은 너무나도 건방졌다.
한 나라의 황제를 이렇게 막대하는 인간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황제의 어머니라도..이미 죽어버린 전대 왕이라도 해도 말이다.
이러한 대우를 받아본 적없는 이안은 기분나쁘다는 오로라를 내뿜었지만 레이첼이 그런 것을 따질 위인이 아니였다.
다만 그녀에게 이안은 숙녀의 방에 함부로 침입하는 침입자일뿐..
"너..네 방으로 돌아가지 왜 여기는 기어들어와?"
".....말버릇부터 고쳐야겠군.
자신의 남편에게 '너'라니..
어디서 베게를 던지는거지? 예의부터 뜯어고쳐야겠어."
"뭐...뭐얏?"
이안의 말에 한순간 머리끝까지 뚝- 하고 끈기는 느낌을 받은 레이첼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방 크게 먹여줄 심산으로 가녀린 손을 움켜쥐고 휘둘렀지만 당연히 이안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레이첼을 붙잡은 이안은 어렵지 않게 그녀를 살짝 들여올려 침대로 향했다.
털썩-
두 사람이 침대에 거칠게 뛰어들자, 침대의 한쪽이 움푹 들어갔다.
얼떨결에 같이 눞게 된 두 사람.
처음에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던 레이첼은 같이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자신의 위에 올라타(???) 있는 이안의 존재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비...비켜....!"
"..싫다면?"
그의 입술이 매력적으로 휘어올라가져 간다.
한눈에 보아도 장난끼 가득한 표정.
레이첼은 그런 이안의 표정이 마음에 안드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이안이 낮게 웃는다.
"이대로....덮쳐줄까..?"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다.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내사랑이다.
날개 달린 너를..
자유로운 너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널 가질 것이다.
'천사를 줍게 되다' - 15
그말에 레이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레이첼이 바둥바둥대자 이안은 더욱더 짖굿은 표정을 하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레이첼이 입고 있는 옷이 가슴선과 어깨선을 강조한 옷이라 드러나 있는 그녀의 하얀 피부에는 곧 붉은 반점들이 피어올랐다.
그 바람에 더욱더 패닉상태에 빠져든 레이첼은 마치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팔 다리를 허우적대며 반항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패닉상태에 빠져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그녀가 이안을 이길수는 없었다.
이안은 키득키득 웃으며 레이첼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
"..이대로 끝까지 가줄까..?"
'이..이건 악마의 속삭임이야...!!!! 악마의 속삭임..악마의 속삭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다못해 하얗게 변한 레이첼의 얼굴은 꽤나 볼만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이안의 시각에서...;)
그녀는 연신 속으로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며 매력적인 그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는 중이였다.
"...저..저리 비켜.."
"...비켜주세요."
"비....비켜...어어.......흐잉.."
레이첼이 울먹이며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냥 눈감고 따악 한번만 하면 되는 것을 왜저리 고집을 부리는지 이안으로써는 이해할수 없었다.
만약 이런 이안의 마음을 레이첼이 알았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라 이 xxx야!!!!!!!!]
...라고 말이다.
"비.켜.주.세.요."
강한 어조로 한글자 한글자 끊어말하며 그녀의 어깨죽지를 지분거리는 이안.
그 바람에 더욱더 딱딱하게 굳은 레이첼은 더이상 떨어질 곳없는 패닉상태의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저 악마를 어떻게 해서든 떨어트려야해..!'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찰 뿐..
"비...비켜...주세요오......"
비굴한 모드로 돌입한 레이첼은 울먹이며 말했고 그녀의 그런 모습에 이안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레이첼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빨개진 얼굴을 보이기 싫었는지 이불속으로 파고 든다.
"쿡쿡...왜그래? 보기 좋은데..후후...이제 잘까?"
"여기서..?당신하고..?"
혹시라도 또 보복당할까봐 이번엔 '너'가 아닌 '당신'이라고 칭호가 올라간다.
정말 놀리는 재미가 있는 여자라며 웃음을 떨어트릴 생각을 하지 않는 이안이였다.
"자자."
이안은 레이첼을 꽈악 껴안고 편하게 누웠다.
처음엔 바둥바둥 거리던 레이첼은 꽤나 피곤했는지 점점 움직임이 줄어들더니 이내 색색- 거리며 잠이 들었다.
레이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이안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옆에 있는 줄을 두번 당겼다.
이윽고 종소리를 듣고 에밀리가 나타났다.
줄은 시녀를 부를때 사용하는 것인데 줄 끝에 달려있는 종이 울려서 그 소리에 시녀가 오는 것이다.
에밀리에게 자고 있는 레이첼의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라고 명령한 이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이안으로써 레이첼은 조금 특별한 상대였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특별한 상대이다.
옆에 있으면 바라보게 되고, 신경쓰이게 되고, 없으면 생각나고,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안들리면 듣고 싶어 자주 입을 열게 만들고, 칭얼거리며 안겨오는 폼이나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까지 너무나 사랑스럽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같은 편안함과 친숙함이 그녀를 더욱더 특별하게 만든다.
무언가 알수없는 힘이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
"이런게..사랑인가..?....사랑?"
자신도 모르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이안은 스스로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피식- 웃고는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에밀리는 이안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 짧은 시간동안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빠른 속도로 레이첼의 화장을 지우고 온몸을 정성스럽게 닦은 후 잠옷까지 갈아입힌 뒤 이미 방을 빠져나간 후였다.
원래 주인이 가라고 하기 전까지 움직이면 안되지만 아마도 야심한 밤 남녀가 나눌 은밀한 속삭임을 생각해서 일부로 자리를 피해준 듯 했다.
침대에 누운 이안은 작고 여린 레이첼을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풍성하고 부드러운 금발에 코를 묻고는 깊은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
.
흔히 축복받은 색이라 불리우는... 언제나 하늘의 중심에서 당당한 해를 닮은 찬란한 금색..
세상에서 가장 태양과 가깝다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앞에 있는 심기 불편한 인물을 바라보는 레이첼.
아침부터 처들어와서는 헛소리만 늘어놓는 시종들을 바라보았다.
누구인지 모르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값비싼 귀금속을 가지고 오질 않나, 동쪽에서 가지고 온 귀한 향수라며 향수통을 가지고 오질 않나, 북에서만 사는 은색곰의 모피를 가지고 오질 않나..
물론 선물을 받는 것은 좋고 기쁜 일이나.. 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시종을 시켜 보내오는 것인가가 문제였다.
'뭐야.. 나한테 잘보이려고 그러나? 이건 부정부패의 하나인 뇌물공세??'
하나같이 드럽게 길기만한 이름을 늘어놓으며 잘부탁한다고 하니 레이첼이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 그러한 목적이 아니라면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레이첼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호의는 필요없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
아까부터 아무말도 하지 않는 레이첼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시종을 확 째려보는 레이첼.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천을 뚫고 그 시선이 느껴지는지 시종이 움찔- 거리며 시선을 내리깐다.
"누가 보냈다구요?"
"그게....켄...드리쉘 르포닌백작니께서.."
"그렇군요. 성의만 받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이런식의 호의는 전혀 달갑지 않군요.
친하지도..아니 모르시는 분께 이런 값비싼 물건을 받았다가 나중에 뒷탈이 생길까봐 무섭네요..후후후.."
"하...하지만 르포닌 백작님께서는 레이첼님과 친하게 지내보자시는 취지에서..... ..."
"지.금 제.말.에 토.다.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더이상 서로 얼굴을 마주할 필요는 없겠군요. 나.가.주.시.죠?"
레이첼의 독설에 완전히 K.O 되버린 시종은 눈물을 머금고 가지고 왔던 선물들을 가지고 퇴장했다.
레이첼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옷과 장식품이 있었다.
그것들을 줄이면 줄였지 늘리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었다.
게다가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그따위 것들을 가져오니 레이첼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부터 물질적(특히 꾸미는 것)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었기에 레이첼에게는 보석따위는 그저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지구에 있었더라면 팔아서 랍스타나 그런것을 샀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넘쳐나는데 굳이 이상한 물건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레이첼을 조금만 더 잘알았다면 그런 선물 따위를 보내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식으로 도착한 모든 물건들을 물리친 레이첼은 스스로의 행동에 뿌듯한 듯 콧노래를 부르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물론 에밀리에게 그런 물건들을 모두다 물리라는 부탁을 해놓고 말이다.
레이첼의 모든 유혹을 떨쳐내고 난 다음날..
그녀에 대한 악성 유머는 성안에 파다하게 널리 퍼졌다.
수다떨기 좋아하는 귀부인들은 근거없는 소문으로 그녀를 내리깍았고..
교양없는 여자라는 둥, 천민이라는 둥, 싹부터가 노랗다는 둥 입방아에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다.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내사랑이다.
날개 달린 너를..
자유로운 너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널 가질 것이다.
'천사를 줍게 되다' - 16
"흐음.. 그렇단 말이지?"
"네. 아무래도 레이첼님께서 귀족들의 성의를 무시하셔서 귀족들의 자존심을 건든 것으로 생각됩니다."
"후훗..성의라..그런건 성의가 아닌 뇌물이라고 하는거다. 아르미."
"아..죄..죄송합니다."
"죄송할꺼까지야..이만 가봐."
"네."
얼굴을 붉히던 검은 복면의 사람.
전체적인 몸의 굴곡이나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 것으로 보면 여자 임이 틀림없었다.
아르미라고 불리우는 인물.
샤이나 국의 최고의 어쎄신집단인 '월영(月影)'의 단장.
여자이고 또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어쎄신 집단인 '월영'을 이끌어나가는 당차고 능력있는 여자.
그녀는 샤이나 국의 젊은 황제를 마스터로 모시고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였고, 그들이 하는 일은 썩어빠진 돼지들의 정치적 생명의 줄을 끊어놓는 것이였다.
모든 것들이 비밀스럽고 또한 극소수의 쓸대없는 정보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월영'
사람들의 입에서만 전해지는 그 전설적인 어쎄신 집단의 단장인 아르미는 물러가라는 말에 짧게 대답하고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홀로남은 이안은 혼자 열내며 있을 레이첼을 생각하며 피식- 하고 웃음짓고는 다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
.
"그니까.. 내가 핏줄도 모르는 천한 태생에다가 예의없고 천박하고, 황제의 총애를 등에 지고 무서울 것없는 오만한 계집이라고 떠들었다고?"
"...그...그게...."
레이첼이 눈을 부릅뜨고 따지듯이 물어보자 시녀는 울쌍을 지으며 자신의 싼 입을 원망했다.
흉흉한 소문이 도는 레이첼.
그녀의 귀에 그런 소문들이 돌지 않도록 얼마나 시녀들을 입단속시켰던 에밀리였던가..
그녀는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레이첼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그렇단 말이지..후후후..가보라구...가봐도 돼..니가 무슨 책임과 잘못이 있겠니..
다 내 잘못이지..? 그치 에밀리?"
싱긋-
음산하게 웃는 입과.. 금방이라도 도끼로 머리를 찍어버릴 듯한 살기를 내뿜는 눈동자.
시녀는 흠칫흠칫- 거리며 울듯한 표정으로 저먼 복도로 도도도- 하고 뛰어갔다.
"레..레이첼님...
그저 무례한 아랫것들의 수다내용입니다. 그렇게 신경쓰지 마세요.... ...."
"그럼...내가 왜 신경을 쓰겠습니까아?
절대로! 네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지요. 후후후.."
레이첼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그런 어체를 구사했다.
그 바람에 에밀리의 얼굴 안색이 더욱더 창백해졌다.
레이첼은 수련을 하다 무심코 들고온 칼의 칼날을 쓱쓱- 매만지며 씨익- 웃어보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에밀리는 그런 레이첼의 행동에 울상이 되어서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게..이게 아닌데...
레이첼님.. 왜 괜찮다면서 화를 내시는 건가요...힝힝..!'
방에 도착한 레이첼은 생글생글- 웃으며 에밀리를 내쫓았다.
물론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간접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혼자 남은 레이첼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는 눈을 번쩍- 빛내며 이불 끄트머리를 잡고 이빨로 물어뜯으며 화풀이를 시작했다.
"므이야아아앗-?
건방진? 천한 계지입? 오만한? 천박한 태생이라구우?
이 잡것들을 그냥!!!!!!!!!!!!!"
그녀는 온몸을 흔드는 분노를 이불을 물어뜯는 이빨에 쏟아부었다.
차마 그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는 꼴을 보일수는 없었다.
그렇다.
앞에서 작가가 했던 말은 사실은 레이첼이 몰랐다는 전제하에 이뤄졌던 것이다.
그녀는 태평하기는 커녕.. 아니 독자들은 그녀의 성격으로 미뤄보아 전혀 태평하게 있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유추해보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눈을 번뜩이며 이불에 화풀이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광적인 모습을 내비추었다.
누가 봤더라면 심장마비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잡것들....훗날을 두고보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분노의 이빨을 가는 그녀였다. (;;)
그 후 몇일이 지난 지루하고 따분한 어느날의 오후..
천장이 없는 아름다운 인공 정원.
깔려있는 잔디는 대리석과 정원을 구분해주고 있었고, 파릇한 꽃들과 분수대에 노닐고 있는 금색의 이름모를 물고기.
봄바람처럼 산들산들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은 레이첼을 간지럽히며 지나갔다.
이글거리는 태양도 고개를 수줍게 숙였고, 창공은 맑은 이슬을 머금은 듯 구름한점 없이 깨끗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서로의 몸을 요란하게 부딛치며 노래를 부르는 나뭇잎들.
모든 것이 평안하고 조용한 시간.
레이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따분해서 지겨울 정도다.
레이첼은 반쯤 감긴 풀린 눈을 하고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황급한 걸음걸이로 나타난 에밀리가 레이첼을 깨웠다.
"레이첼님!! 레이첼님!!"
"...응...응..응?"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떨결에 대답하는 레이첼..
에밀리는 정말 다급한 듯한 목소리로 레이첼을 보챘다.
"큰일났어요. 어서 이 천을 쓰세요!! 어서!!"
"...에밀리...무슨 일.....이야...?"
잠에서 도통 벗어날줄 모르는 레이첼은 반쯤 떠진 눈으로 얼떨결에 에밀리가 내밀은 천을 뒤집어 썼다.
에밀리가 수라도 놓은 것인지 하얀천은 금색 테두리가 박혀 있어 매우 고급스러워보였다.
천으로 얼굴을 가린 레이첼은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에밀리의 손길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나려고 애썼다.
그리고.. 낮선 여인들의 등장에 에밀리는 황급히 예를 차렸다.
한번도 못보았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친분이 있는 여인도 아니였고 기억속을 헤집어서 겨우겨우 찾아낸 인물들이였다.
'그 바람둥이..!!!!'
레이첼은 들어오는 세 여자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이안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녀들은 바로 이안의 정실 부인과 후궁들이였던 것이다.
레이첼은 일단 배운대로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피아님, 로스아르님, 페이라님,"
"앉으세요. 레이첼님. 저희는 그냥 놀러온 것 뿐이니....."
레이첼은 살갑게 웃으며 말하는 소피아.
그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안의 정실 부인이였다.
하지만 말이 좋아 정실부인이지 후궁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지라 귀족들을 항상 그녀를 무시하고는 했다.
4대 공작중 가장 힘이 약한 가문의 여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갈색 머리에 어울리는 베이지 계통의 수수한 드레스 드레스..
뒷머리는 늘어트리고 옆에만 살짝 꼬아 말아올린 머리카락이나 연하게 한 화장은 그녀의 매력을 한층더 높이 발산하고 있었다.
순수해보이는 소피아와 달리 페이라는 굉장히 활기차보이는 스타일이였다.
파란색 머리칼에 투명한 피부, 선량해보이는 동글동글한 눈매에 이마에 장식한 파란 서클릿.
초록색의 드레스는 전혀화려하지 않고 단아했고, 그녀는 마치 방금 숲속에서 나온 엘프같은 이미지였다.
셋중에 가장 외모가 딸린다고 말한다면.. 그녀들의 외모가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수한 차림의 소피아 그리고 페이라와 달리 엄청 화려하고 색스럽게 꾸민 여자는 척보아도 기분나쁜 이미지를 풍기는 여인, 로아였다.
붉은색이나 검은색에 집착하는 것인지, 검은색 드레스에 붉은 루비 장신구..
게다가 불편하게 검은색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붉은 곱슬머리에 잘 어울리는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 금방이라도 남자들을 유혹할 것같은 살짝 벌어진 입술.
거만해보이는 눈빛이라든지, 당당한 태도는 누가보면 그녀가 이나라의 여왕이라도 되는 것 마냥 생각할지도 몰랐다.
"앉으세요. 에밀리 차 좀 부탁해."
레이첼의 말에 에밀리는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고는 조신하게 뒷걸음 치더니만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네 여자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런 유대감도, 또한 이야기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그들이 처음부터 대화라는 것을 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에 못이겨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어색하게 입꼬리가 올라가져 있었지만 천때문에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볼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나요..?"
"레이첼님과 친해지기 위한 티타임을 갖고 싶어서요."
조심스러운 레이첼의 질문에 소피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아를 처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면 절대로 친목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레이첼을 확신할수 있었다.
그 누가 저런 살벌하고 재수없는 표정을 짓는 로아의 얼굴을 보고 단지 친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라고 믿을수 있겠는가?
레이첼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안겨주는 로아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소피아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어차피 천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미소였지만.. 왠지 소피아는 그녀가 자신에게 웃어주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고마워요."
레이첼의 옥피리 같은 청아한 목소리에 소피아는 속으로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비록 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얼굴이지만.. 분명 그 누구의 외모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미인이 틀림 없었다.
팔하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그 작은 동작도 우아함과 고상함이 베어나왔다.
그 누구도 감히 흉내낼수 없는 기품이 흘렀고, 그 누구도 갖을수 없을 신비한 이미지가 풍겼다.
소피아는 진심으로 레이첼의 얼굴을 궁금해하며 눈을 빛냈다.
에밀리가 차를 가지고 오기까지 또 다시 테이블 위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다.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내사랑이다.
날개 달린 너를..
자유로운 너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널 가질 것이다.
'천사를 줍게 되다' - 17
달칵-
레이첼은 아직 식지 않은 차를 한모금 머금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무말없이 차를 마시는 여인들.
겉으로 보기에는 참 눈도 즐겁고, (물론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상당히 썰렁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는 숨통을 죄어올 정도였다.
'왜 와서 이지랄이야. 지랄이!'
따뜻한 오후날 휴식을 방해받아 한껏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레이첼은 속으로 궁시렁 거렸다.
이 여인들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놀고싶은 마음은 없지만 분위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지만.. 그러한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나이가 몇이지?"
한참을 말없이 차만 홀짝인 후, 정말 말 한마디 하지 않을 듯이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로아가 입을 열었다.
레이첼로는 뜻밖의 일이였다.
그녀의 표정은 '난 천한 것들이랑은 얘기안해.' 요런 식이였기 때문에 레이첼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 아무렇게나 반말을 찍찍 내뱉는 로아의 언행에 레이첼은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싫어하는 것까지는 봐줄수 있어도 이런식으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굉장히 거슬리는 일이였다.
레이첼은 참을 인 자를 마음에 새기며 감정을 억제한 뒤, 입을 열었다.
"21살 입니다."
"꽤나 나이먹었군."
'야!!! 열혈청춘 21살이 뭐어때서!!!'라고 소리치며 하마터면 테이블을 뒤집을 뻔 했다.
입술을 잘끈 깨물며 화를 참는 레이첼.
'그래. 친하게 지내자는 표시이다. 절대로 시비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난 참아야한다..으드득..!'
레이첼을 그렇게 자기합리화 시키며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랬다.
로아는 그런 레이첼이 가소롭기라도 하듯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해서 유다공작의 양녀로 들어가게 된거지?"
"....그게...그냥 어쩌다보니.."
레이첼은 무어라 대답할까..하다가 그냥 대충 얼어무렸다.
그러자 로아의 한쪽 눈썹이 휘어 올라간다.
"그전에는 평민이였다면서?"
발끈-
레이첼은 자신을 비웃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로아때문에 남몰래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점점 험악하게 돌아가는 테이블의 분위기.
로아와 레이첼의 신경전에 다른 두 사람은 어쩔줄 몰라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는 중산층이였습니다."
"...?"
레이첼의 말을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처다보는 로아.
그녀는 막연히 '좀 나가는 상인의 딸이였나?' 라고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레이첼이 살던 '지구'라는 곳은 자본주의 사회로 이곳과는 전혀다른 구조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예>평민>상인>몰락귀족>하위귀족>상위귀족>왕 순이 아닌 오직 돈이나 명예로 잣대를 저울질했다.
물론 중산층은 극히 평범한 일반 가정에 포함되었지만 이곳에서는 돈좀 있는 상인이나 몰락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정말 운이 좋은 경우군.
한낱 천한 집안의 자식이 나라의 공작가문의 양녀로 들어오다니....후후후.."
비꼬며 레이첼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로아의 말에 레이첼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로아는 아름다운 얼굴로 생긋- 웃으며 레이첼의 속을 박박 긁어댔다.
한참 쫑알대던 로아는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안어울리게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참 그러고보니 궁금한점이 있는데..
왜 머리에 베일을 쓰고 있는거죠?"
"...저..그게.."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레이첼을 당황하며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로아가 그것을 딱 잘라내었다.
"소문이 사실이였나보군요.
얼굴이 못생겼다더니...역시..그런일 때문에..
그런데 어떻게 폐하의 마음을 사로잡은건지..참 궁금하기 짝이없군요.
침대에서의 기술이 좋은건가? 호호호호-"
도를 지나친 로아의 말에 소피아와 페이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레이첼을 주먹을 꽉- 쥐고 훗날을 다짐하며 분노를 속으로 삭였다.
"그렇게 소문이 나있는줄은 저도 몰랐군요.
하지만 폐하께서 다른이에게 저의 얼굴을 보여주시기 싫다면서 어린애같은 질투를 하시지 뭡니까?
그래서 폐하의 특.별.한 명에 따라 이리 베일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랍니다.
궁금증이 풀리셨으면 하는군요.
아, 벌써 이리 시간이 지났나?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이나라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관계로 수업을 받아야할 시간이 되었군요.
가시는 길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이첼은 고개를 살짝 까딱이고는 천천히 조신한 걸음으로 퇴장했다.
레이첼에게 한방 먹은 로아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거칠게 일어났다.
나머지 두 사람이 어정쩡하게 일어나서 퇴장하는 걸로 오후의 살인적인 티타임은 막을 내렸다.
.
.
.
챙- 챙-
"크흑.. 하..항복이예요. 레이첼님!!"
쉭-
가나가 다급하게 항복이라고 외쳤지만 레이첼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뱀이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던 칼에 가나는 사색이 되어 도망치기 바빴다.
기사로써 참 꼴불견인 모습이였지만 다른이들은 그저 불쌍하다는 듯이 가나를 처다보기만 할 뿐이였다.
"명복을 비마. 가나."
"불쌍한 녀석.."
기술적인 면과 경험이 적은 레이첼이였지만 특유의 체력과 힘그리고 가벼운 몸에서만 날수 있는 빠른 스피드.
그녀는 천상 기사의 몸을 가지고 있었는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이제는 1:1 대결에서 지지 않을만큼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여자로써는 정말 이륙하기 힘든 경지까지 도달한 것이다.
무엇이 그리 심기가 불편한건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나타나서는 대련을 한답시고 가나를 사정없이 두둘겨패고(?)있는 레이첼이였다.
"으아아아~~~ 그만하세요. 레이첼님!!!!!!!!"
꽁지에 불붙은 마냥 잽싸게 도망가며 처절히 외치는 가나의 말에 번뜩- 하고 정신을 차린 레이첼은 뛰어가던 다리를 멈췄다.
"아..미안..."
"..내..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크흑.."
가나는 덩치에 안맞게 훌쩍- 훌쩍- 거리며 칭얼댔고, 레이첼은 어색하게 미안하다고 하고는 축 처진 어깨로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추측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요즘 황제폐하께서 찾아주시지 않는건가?"
"글쎄..그건 아닌것 같은데.. 저번에도 두 분이 같이 있는걸 봤지.. 물론 레이첼님이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있었지만.."
"흐음...권태기?"
"그런건가?"
하지만 그 누구도 레이첼의 속사정을 알리가 없었다.
한편, 수련장을 빠져나온 레이첼은 힘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여자...다음에 만나기만 해봐...진짜...이안한테..다......!
..............도대체 여자가 몇명인걸까?
부인이 셋이니....숨겨진 다른 여자는?
그럼 나는 뭐야?
하아.....'
로아를 ?銖? 꿍시렁대던 레이첼은 이안생각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안을 생각하면 괜시리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 싶었다.
'정말..내가 좋아하는건가?
그래서 이렇게 신경쓰는건가..?
그런거야?
정말..좋아하게 된건가.....'
한참 이안의 생각에 레이첼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체 무작정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레이첼은 자신이 모르는 길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나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또 모르는 길이였다.
하지만 한번 와본적은 있는 곳이였다.
금지구역..
예전에 길을 잘못들어 오게된 곳.
레이첼은 다시 자신이 왔던 곳을 되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봤지만 길을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어디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젠장.."
레이첼을 신경질적으로 베일을 벗어버렸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곳이였고, 갑자기 솟아오르는 짜증에 자꾸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베일을 벗자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잠시 허공에서 하늘하늘 거리다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레이첼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에는 이 금지구역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한 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마음을 먹었다.
마침 이곳을 지키는 기사들도 없었다.
레이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며 씨익- 하고 웃어보였다.
"탐험이야..이건...좋았어!!"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다.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내사랑이다.
날개 달린 너를..
자유로운 너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널 가질 것이다.
'천사를 줍게 되다' - 18
복도는 끝이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길었다.
성안인지라 그 길이의 한계가 있을 법도 한대 이상하리만큼 깊숙했다.
양쪽 벽에 걸려있는 등물만이 길을 밝혀주었고, 음산하기 짝이없는 복도는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같이 오싹했다.
레이첼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움츠려들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힘차게 걸어갔다.
한참을 걸었을 쯔음..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복도의 끝이 보였다.
복도의 끝은 넓은 홀이였는데 홀 바닥에는 이상한 문장이 그러져 있었다.
그 문장은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했으며 언뜻보면 무언가를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유없는 친숙함.
레이첼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벽에는 그림벽화같은 것들이 그러져 있을 뿐..
잔뜩 기대하고 있던 레이첼은 실망하여 투덜거렸다.
"뭐야.. 이런걸 보려고 몆시간 동안 걸은거야?
에구..다리아프게.."
레이첼은 더이상 못걷겠다는듯이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그리고는 다리를 주무르며 휴식을 취했다.
한참을 그렇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처음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용암이 들끓어오르는 듯한 열기로 변해 옷을 뚫고 피부로 느껴졌다.
화들짝 놀란 레이첼이 폴짝- 하고 뛰어일어났다.
하지만 레이첼이 미쳐 피하기도 전에 레이첼이 앉아있던 문장에서 환한 빛이 새어나오더니 이내 시야 가득히 채워졌다.
드르르르- 스스스스-
돌과 돌이 부딛치며 얕게 흙먼지가 일어났고 돌들이 움직였다.
둥그런 홀안의 벽에서는 들쑥날쑥하게 돌들이 움직여댔고, 빛을 내뿜던 문양은 천천히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에? 에?"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당황하던 레이첼은 문장이 밑으로 내려가자 황급히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레이첼이 문장밖으로 몸을 피하기도 전에 문장과 레이첼은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레이첼이 있던 곳은 아까의 모습 그대로였다.
벽이 울쑥불쑥 거리던 것은 모두 언제 그랬냐는 마냥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다른점은 바닥에 그러져 있던 복잡한 문장과 그 위에 서있던 레이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
.
.
.
쿵-
"아얏!!"
레이첼은 엉덩이뼈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에 짧게 신음을 터트렸다.
한참동안 저릿한 통증에 엉덩이를 쓱쓱 문지르던 그녀는 한참 나중이 되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어둠속에서 빛을 비춰주는 단 하나의 횃불은 벽에서 나홀로 외로이 어둠에 맞서고 있었다.
레이첼은 갑작스러운 두려움에 횃불의 가까이가서는 그 횃불을 집어들었다.
횃불은 손쉽게 벽에서 떨어졌고, 레이첼은 그것을 마치 제 생명줄인마냥 잡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탁- 팟-
"꺅!!"
갑작스럽게 어둠속에서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밝은 빛이 공간을 가득 메꿨다.
갑자기 환해진 주변.
레이첼은 강렬한 빛때문에 질끈 감은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주변에는 정체를 알수없는 오색의 비눗방울 같은 모양의 빛덩어리가 둥둥떠다녔다.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 튀어나올 듯한 섬세한 벽화와 거대한 돌문...
벽화가 그러져있는 돌문은 굉장히 거대하고 웅장했다.
벽화속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들과 여기저기 먹구름이 껴있는 가운데 군데군데 환한빛이 황폐한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하늘 아래 세상은 욕망과 쾌락, 잔인함과 번들거리는 물욕, 서로가 서로를 견주고 미워하는 칼과 방패.
대지위로 스며드는 피와 살...
전쟁의 모습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천사들의 모습은 굉장히 대조되는 이미지를 이루고 있었지만 묘하게 신비스러웠다.
레이첼은 알수없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이끌리듯 문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인지 몰라도 문정 가운데 박힌 금색의 보석에 손을 대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은 워낙에 컸고 레이첼의 팔은 그곳까지 닿지 않았다.
레이첼은 강한 의구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왼손약지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뺐다.
펄럭-
반지를 빼는 동시에 레이첼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대략 6~7살의 어린아이의 키만큼되는 날개는 천천히 날개짓을 하였고 금방 레이첼은 하늘로 솟아오를수 있었다.
처음으로 하는 비행.
날개가 있기는 있었으나 날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몰랐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그녀는 처음으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레이첼이 날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확실히 날고 있었다.
펄럭-
깃발이 바람에 흔들릴때나 들리는 소리와 레이첼의 날개가 허공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와 비슷했다.
레이첼이 그 금빛의 보석에 손을 대자 드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반으로 쪼개져 열렸다.
그리고 레이첼은 겁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넌누구냐…」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중저음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누구..?"
「천인이로구나..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 어떻게해서 이곳에 들어오게 된것이냐…
이곳은 오로지 영웅이자 아버지이신 그분의 후계자만이 출입할수 있는 곳.」
"그분..?"
「후계자의 표식도 없는 천인이 이곳에 들어올리는......설마...?」
"도대체 무슨말인지..모르겠군요...."
후계자라든지..그분이라든지..레이첼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말그대로 목소리는 혼자 떠들고 있었다.
잠시동안 말이없던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역시'라고 중얼거렸다.
「너는 '그녀'....'그녀'가 틀림없다.
이곳에 후계자외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는 것은.. 그녀뿐...」
"...?"
「설마 천인으로 환생할줄이야.. 인간을 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무슨소리를 하는거죠? 그녀라니?"
「드디어 내가 할일이 끝났다는 소리다.」
"?"
레이첼의 질문을 가벼히 씹어먹고는 동문서답을 하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레이첼의 이마에는 사거리 마크가 줄줄히 달렸고 이내 버럭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나 무시하는거지?!!"
「훗-
..변한건 하나도 없군.. 저런인간을 누가 성녀라고 부른거지?」
"뭐?!!"
「잠시 기다려.」
도무지 이어지지않는 대화에 레이첼은 가슴을 푹푹치며 분통터져했다.
윙-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하얀색의 긴머리를 늘어트리고 하얀색의 옛 로마시대에서나 나올법한 의상을 입고 있는 남자는 여자 뺨치게 아름다웠다.
아마 목소리와 가슴이 납작하지않았다면 충분히 여자로 보아도 무방한 정도였다.
한순간 레이첼은 넋을 놓고 남자를 바라보았고, 그 바람에 남자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지못했다.
머엉~ 한 상태로 남자를 바라보던 레이첼은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는 남자의 행동에 눈을 크게 뜨고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읍?!!"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다.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내사랑이다.
날개 달린 너를..
자유로운 너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널 가질 것이다.
'천사를 줍게 되다' - 19
입술에 닿은 온기에 레이첼이 버둥거렸지만 정체불명의 남자는 입술을 뗄 생각은 커녕 더욱더 거칠게 레이첼의 입술을 탐했다.
시간이 흐르고 레이첼은 온힘을 다해 남자를 밀처냈다.
의외로 금방 떨어진 남자는 붉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훓텄다.
레이첼은 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입술을 가리며 정체불명의 남자를 손가락질하며 황당함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그랬군.」
목소리의 주인공이였다.
그가 입을 열자 아까 들려왔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그랬어..」
"......?
뭐...뭐야 당신..! 너...너....나한테..키..키..키....키......!"
「키?」
"여...여튼! 숙녀에게 무슨 짓이야!!!"
차마 '키스'라는 단어를 얘기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 레이첼과 달리 남자는 태연한 모습이였다.
「방금전의 접촉을 말하는건가? 그것은 너의 과거 데이터를 복사하기 위함이였지, 의미있는 행동이 아니니 신경쓰지 말도록.」
"과거 데이터를 복사?"
「그렇다. 너의 영혼의 과거를 읽기 위함이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접촉이 필요하다.」
"그거..꼭 입술로 해야하는 것..?"
레이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다는 듯이 남자를 처다보았다.
접촉에 의해야한다면 입술이 아닌 다른 부분도 충분치 않은가...
「물론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너무나도 태연하게 피식- 웃으며 말하는 이 남자.
그의 행동에 레이첼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화르륵- 솟아올랐다.
"너...너..이 자식!!"
레이첼은 순식간에 용수철처럼 땅을 박차고 올라 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런 방어없이 서있던 남자는 보기 좋게 레이첼의 주먹에 맞아떨어져야......정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라?"
레이첼은 묘기를 부리듯 한바퀴 휙- 돌며 남자를 그대로 통과하여 중심을 잃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놀랍게도 레이첼은 남자를 그대로 통과하게 된 것이다.
"유...유령?"
레이첼이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가르키며 말했다.
하지만 분명 아까 입술이 닿았었다.
「아니.. 나는 인간도, 이 세상에서 심장을 가지고 숨을 쉬는 생명이 아니다.
나는 프로그램. 실체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그램?"
레이첼은 가상현실을 떠올렸다.
현실과 똑같이 비춰지지만 그렇지 않은 세계..
첨단 과학으로 이뤄낸 가상현실을 떠올린 레이첼은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까전의 입술에 닿은 강한 힘이나 온기 같은 것은 무엇으로도 설명할수 없었다.
「너는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있구나.」
"그녀..? 그녀의 영혼이라니..?"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의 임무는 여기에서 끝..
널 만났으니...이제 신계로 올라갈수 있겠구나.」
"신계..?"
「아이야. 기억하거라 운명은 거스를수 없는 것이다.
너는 그녀의 영혼, 그녀의 환생. 너의 모든 것이 그녀이고 그녀가 너인 것이다.
조금씩 모든 것이 기억날 것이니. 날 받아들이고 운명을 깨달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길이 보일 것이다.」
그의 몸에서 환한 빛이 나오고 다시한번 이어지는 가벼운 키스.
그리고 그는 레이첼에게 흡수당하듯이 빨려들어갔고, 이내 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며 레이첼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
.
.
와장창-
"폐...폐하.. 진정하시고 조금더 기다려보심이.."
"감히 나에게 기다리라는 것이냐! 어서 그녀를 찾아내라!
왕궁 마법사들까지 동원하여 찾았는데도 그 작은 여인조차 찾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안은 있는대로 화를 냈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기사는 왕의 노여움에 입술을 질끈 깨물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너는 레이첼이 어디있는지조차 모른단 말이냐!!"
"죄..죄송합니다. 폐하..
수련장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지만...."
사색이 된 에밀리는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바람에 이안의 화만 더 돋구는 꼴이 되어버렸다.
기분 좋은 마음에 레이첼을 찾은 이안은 레이첼이 방에 없자 에밀리를 찾았고 레이첼을 찾고 있던 에밀리는 급히 이안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다.
레이첼이 오랜시간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안은 불같이 화를 내었고 결국엔 이 지경에 달하게 된 것이다.
"그만가서 얼른 내앞에 그녀를 데리고 와! 지금 당장!!"
이안의 명령에 두사람은 목례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혼자 레이첼의 방에 남은 이안은 쥐고 있던 보석상자를 거칠게 바닥으로 내던졌다.
레이첼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였다.
이안은 침대 맡에 앉아 레이첼의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날이 밝도록 레이첼은 나타나지 않았다.
날을 꼬박샌 이안은 냉정히 굳은 얼굴로 서쪽 궁을 빠져나왔다.
집무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도망간 것이라면.. 절대 용서치 않겠어..!'
.
.
.
오늘도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집무실에 처박혀 있는 이안.
왕이라고하면 다들 부러워할 위치겠지만 정말 피곤하기 그지없는 직업이였다.
넘치고 넘치는 것이 부였지만 인간다운 따스한 정이라고는.. 감정적인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결정하나의 수천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하고 무거운 직책.
이안은 밤을 꼬박새고 또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마지막 서류를 결제하고는 의자를 뒤로 젖히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안.
그는 집무실을 빠져나와 레이첼의 궁으로 향했다.
"결국 레이첼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냐."
"예.. 죄송합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무래도 이미 궁을 빠져나가신 것 같습니다."
"대국 샤이나국의 왕성의 경비가 고작 한 여인에 의해 뚤린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기사가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가라. 가서 왕성 뿐만이 아니라 수도 전체를 통제하라.
만약 그녀를 찾지 못한다면.. 내 목숨을 걸어야할 것이다."
그의 싸늘한 목소리에 기사는 고개를 숙이곤 물러섰다.
「주군.」
이안이 혼자있는 공간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습을 감추고 있는 어쎄신이였다.
"찾았나?"
「예. 일단 찾기는 했습니다.」
"그녀는 어디에 있지?"
「그것이..」
어쎄신은 말을 흐렸다.
뜻밖에도 레이첼이 발견된 것은 황제의 침소.
즉, 이안의 침소였다.
.
.
.
레이첼은 행방불명된지 1일만에 발견되었고,
그녀는 어떠한 충격으로 인해 3일동안 깨어나지 못했으며 왜, 그리고 어떻게 철통경비를 자랑하는.. 이중..아니 삼,사중으로 쳐있는 마법 방벽을 뚫고 들어온 것인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죽은 듯이 창백한 얼굴로 이안의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첼.
작게나마 몸을 들썩거리는 것으로 그녀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처음에 이안은 불같이 화를 내었으나 어디서 누구에게 이렇게 되었는지... 또 레이첼이 깨어나지 않자 그녀의 곁에서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2일동안 국정을 자신의 침소에 처박혀 처리고 하고 있는 중이였다.
레이첼으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하고 테이블에 앉아 한참동안 펜을 움직이던 이안...
침소에는 고요한 침묵과 펜 사삭- 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안이 일을 하고 있는 동안 한번도 미동없던 레이첼이 몸을 뒤쳤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얇고 부드러운 천이 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한참을 뒤척거리던 레이첼의 눈커풀이 열리고.....바다를 닮은 아름다운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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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판타지]
'천사를 줍게 되다.' - 14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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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옵; 레아님 오랜만에 뵙는것 같네요 ㅇㅅㅇ... 역시 재밌습니다.
☎_☎오랜만입니다 ㅇ_ㅇ
오랜만에 인소닷에 왔는데 레아님의 소설이 !! 그것도 폭탄으로 !! >< 쪼아 ! ㅋ
오옷!정말오랜만이네요!재미있어요~레이첼의 전생이 뭐였는지 궁금해요~다음편 기대할게요~♥
재미있습니다/ㅁ/
으윽... 이럴땐 완결난거 아닌걸 본다는게 너무 불편해 ㅠㅠ 정말 너무 재밌어용 ㅎㅎ
짱 재미있어요ㅜㅜ
재밌다~>0<
정말 재밋네용-ㅇ-ㅋㅋ 언제나올려낭.ㅠㅠ
절말 재밋써요~!
뉴뉴뉴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