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파이터의 초대
원제 : Invitation to a Gunfighter
1964년 미국영화
감독 : 리처드 윌슨
출연: 율 브리너, 자니스 룰, 조지 시갈
팻 힝글, 클리포드 데이비드, 브래드 덱스터
'황야의 7인' 이전까지 율 브리너는 주로 '미국'이 아닌 곳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러시아계 였던 그는 샴왕(왕과 나), 러시아인(카라마조프의
형제, 추상, 여로), 이집트 인(십계), 유태인(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 이국적인 역할이
필요할 때 잘 활용된 배우였습니다.
1960년 '황야의 7인'이 크게 성공하고, 이 영화에서 검은 복장과 검은 모자를 쓰고 강한
카리스마를 뽐낸 율 브리너는 이후에 주로 백인계 배우들의 전유물과 같았던 서부극에
간혹 출연했는데, 그때마다 특유의 검은 복장을 입고 나오면서 강인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건파이터의 초대' '돌아온 황야의 7인' '아디오스 사바타' '웨스트 월드' '풍운아 판초빌라'
같은 작품들이 그런 서부극이었습니다.
'건파이터의 초대'에서 입고 나온 검은 양복은 '황야의 7인'에서의 거친 느낌의
남방셔츠 형태와는 다른 말쑥하고 단정한 양복재킷 복장이었는데, 검은 모자와 함께
검은색을 통한 강인한 이미지는 비슷했습니다.
'황야의 7인'에서 의외로 상당히 서부극에 어울리는 간지를 보인 그는, 같은 스타일의
폼잡는 역할의 총잡이로 등장했습니다. 표정과 폼은 '황야의 7인'과 비슷했지만
영화의 내용은 1959년 작품 '여로'에서의 역할과 아주 비슷합니다. 서부극판 '여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치아픈 남부인을 죽이라고 고용된 총잡이지만 그 남부인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끌려, 오히려 그 부인을 위해 남부인을 살려주고 대신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는 내용은 영락없는 '여로'의 짝퉁입니다. 아마 '여로'를 참조하여
율 브리너의 카리스마를 그 영화에서와 같이 재활용하기 위해서 급조된 이야기를
만들고 영화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처드 윌슨 감독이 만들었는데 이 감독은 1955년 로버트 미첨 주연의 '권총을 가진
남자'라는 서부극을 통해서 데뷔했지만 띄엄 띄엄 영화를 만드는 편이었고, 평생
연출작이 10편이 채 안될 정도로 그다지 활발한 활동은 안한 감독입니다. 별로
유명한 감독은 아닌데, '왕과 나'로 유명세를 탄 율 브리너는 50년대 이국적인
역할에서는 제법 좋은 영화들이 많았지만 60년대에는 '황야의 7인'에서의 눈 부릅뜬
카리스마로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다소 평범한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미국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한 카리스마와 독특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차별받은
느낌입니다. 따라서 '건파이터의 초대'역시 2진급 서부극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율 브리너의 폼잡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오프닝 장면에서 멋진 곡예를 하듯
마차에서 위로 올라가는 묘기를 한 번 보여주는데, 이건 스토리와 크게 상관없는
그냥 율 브리너의 간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넣은 장면입니다.
남북전쟁 이후에 뉴멕시코에 있는 자신의 고향에 돌아온 남자가 겪는 수난을 다루고
있습니다. 매트(조지 시갈)라는 청년이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자신의 농장은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 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루스(자니스 룰)는 역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갈데가 없어진 매트가 농장을 빼앗아간 사람을
죽이고, 마을의 골치덩이가 되자 마을의 사악한 세력가 샘 브레스터(팻 힝글)는
총잡이를 고용하여 매트를 죽이려고 하는데 마침 마을을 지나던 총잡이 줄(율
브리너)이 고용됩니다.
율 브리너는 흑백혼혈로 태어난 남자로 등장하며, 남북전쟁 이후의 이야기라서
북군과 남군의 끝나지 않은 갈등, 그리고 노예제도의 철폐 등에 관련된 나름 철학적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루기에는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여
그냥 율 브리너라는 이름있는 배우를 앞세운 마이너 서부극 같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돈만 받으면 살인을 서슴지 않아야 하는 총잡이가 유부녀인 루스라는 여인에게
이끌려 죽여아할 목표를 오히려 살려주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떠나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이면 꽤 순정파 킬러를 다루고 있는 셈입니다. 냉혹한 총잡이도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약하다는 뭐 그런 통속적 내용입니다.
여주인공 자니스 룰은 그다지 유명한 스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꽤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배우입니다. '사랑의 비약'이라는 영화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차이는
비운의 여인으로 등장했고, '알바레스 켈리' '서부 3형제' '태양의 유혹' 같은 몇 편의
개봉작이 있는 여배우입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돌아와보니 다 빼앗긴 남군출신
청년 매트역은 '레마겐의 철교' '블러디 선데이' 등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조지 시갈
입니다. 율 브리너를 제외하고는 A급 배우들은 없으니, 2진급 감독, 배우들 틈에서
율 브리너가 하나 끼워 있는 영화입니다.
율 브리너의 인기가 우리나라에서 꽤 높아서 그가 출연한 아주 평범한 영화들도
많이 개봉이 되었고, '건파이터의 초대'는 66년 신정특선 프로로 개봉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A급 배우가 등장한 서부극 치고는 범작에 속하고, 특히 '황야의
7인'과 비교하면 훨씬 격이 낮은 영화입니다. 폼 재던 주인공이 허무하게 죽는
엔딩도 좀 어이가 없고. 특히 그가 후반부에 부리는 난동은 갑자기 영화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남자의
울분이 폭발되어 보여지는 광기랄까요. 역시나 2진급 영화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뒷심이 약한 느낌입니다. 율 브리너 팬들을 위한 '편수채우기 킬링타임용 영화'
정도라고 볼만한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율 브리너는 영화속에서 종종 매력적인 바리톤의 중저음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도 아주 잠깐이지만 연주와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담배를 달고 사는 듯한 모습도 여전하고. 대표적인
꼴초 배우지요.
ps2 : 말이 아닌 마차를 타고 다니는 총잡이라는 점이 좀 특이합니다. 어쨌든
좀 특이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주인공입니다. 흑백혼혈에 이름은 프랑스식,
말을 타지 않고, 검은 양복, 꼴초 그런 와중에 여인에게는 약한 모습이고....
ps3 : 60년대에 영어의 우리말 표기가 지금과 꽤 다른 것이 많았는데 총(Gun)'을
'건'이 아닌 '간'이라고 표기한 것이 독특하죠. 그래서 개봉당시에는 '간화이터의
최후'라고 표기했지요.
[출처] 건파이터의 초대(Invitation to a Gunfighter 64년) 율 브리너 주연 서부극|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