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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주 자전거여행 후기(2016.6.2. ~ 6.8)
여행!
생각만 해도 설렘을 느끼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친구들과 하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약간의 두려움이 더해지는 이번 자전거 제주일주 여행은
늘그막에 있는 최고의 기회이자 커다란 경험으로 내 인생의 좌표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Pain is Suffuring is Optional) 일본이 배출한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전적 에세이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서문에서 인용한 문구다. 마라토너들이 장거리를 뛰는 동안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쓰는 만트라(mantra. 짧은 음절로 된 일종의 주문)다.
플코스를
30회 이상 완주한 그는 이 말을 ’마라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썼다. 42,195km를 달리는데 다리 아프고 힘드는 건 당연.
다만 달릴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는 당신의 선택이라는 얘기로 풀이하고 싶다.
나도 10km 단거리를 몇 차례 뛰어본 경험은 있지만 플코스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 마라톤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제주 자전거 일주도 같은 맥락에서 적용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비록 자전거로 일주를 하지만 250km 이상을 달린다는 것은 우리 나이에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힘든 어떤 것을 해내고 난 후의
상쾌한 보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마라톤. 큰 산을 오르는 일.
산티아고 길800km를 걷는 일. 히말라야 트레킹 등.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국내에서 10km를 뛰는데도 참가비가 있다.
돈!
돈으로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근사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일? 아니면 명품으로 휘감는 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려운 듯하지만,
우리는 지금 질문에 적확한 답을 이 여행을 통해 정확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여행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의 힘은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것뿐 아니라 일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떼어 내어 멀리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떠남은 특정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만은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떠남은
타성에 젖은 생각이나 입장,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버릇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찾는 것이다.
때문에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삶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야말로 평소 느끼지 못했던
친구들의 면면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예부터 친구를 진실로 이해하려면 ‘같이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목욕하라’고 권하고 있다. 여행은 바로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어 100%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부터 7일 간의 일정을 지극히 주관적인 형식과 생각으로
메모해 나가려 한다. 물론 편집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써내려가므로 읽는 사람들의 양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 기억의 한계로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재황의 제의로 나는 5월 30일 자전거를 창덕이 집에 놓고 왔다.
6월 2일의 일정을 쉽게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인공폭포 삼거리에서
창덕과 도킹하기까지 약 3세간이 걸렸다. 반포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도착하였지만 그 후부터는 힙도 아프고 지루하여 20여분마다
쉬기를 몇 번. 삼거리에서 잠시 쉬고 15분 정도 걸리는 창덕이네로
이동하여 자전거를 안치했다. 창덕은 방 하나를 자전거 보관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가히 자전거 마니아로 말할 수 있겠다.
창덕의 안내로 맛있는 설렁탕으로 점심을 먹고 6월 2일 아침에 와야
하는 길을 확인하면서 전철을 이용 하남으로 왔다. 창덕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함을 전한다. 2014년 재황에게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제주도 일주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오월 하남으로 이사를 오면서 연습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러므로 해서 테크닉이나 체력이 좋아졌다. 하남은 자전거를 타기엔
최적의 환경이라고 누구나 입을 모아 인정하는 동네다.
지난해 10월 중순 오른 무릎이 고장이 나서 두어 달 동안 걷기,
산을 오르는 일.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모든 게 끝인가?’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꾸준히 침을 맞고 연말이 되어 옛날처럼은 아니어도 95%이상 좋아졌다.
2016년 1월부터는 실내자전거로. 3월부터는 바깥에서 연습을 해오다가
4월 중순부터는 나름 계획을 세워 철저히? 연습에 열중하였다.
비교적 중거리, 장거리를 소화하면서 어느 정도 팀원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단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도 자전거에 오르면 불안한 게 사실이다.
늘그막에 내 인생에 커다란 좌표를 찍는 제주일주 자전거 여행을
스케치하려 한다. 친구들과 하는 이번 여행이야말로 내 삶을 좀 더
활력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읽는 분들의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을 터이다. 내가 하는 표현이 적확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나이가 나이니만큼 기억의 한계가 있어 사실에 의거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 드디어 6월 2일. D-day!
가슴 설레는 아침이다.
알람을 6시 30분에 맞추어 기상했다. 집에서 7시 20분 쯤 출발해서
9시 20분 쯤 창덕의 집에서 도킹하였다. 자전거를 5월 30일
거기에 맡겨놓았기 때문이다. 내무장관인 안재월씨와 악수.
선풍기 바람과 쥬스는 순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잘 다녀오겠노라는 인사와 함께 곧 자전거 라이딩을 스타트 하였다.
한강변에 나가자 천사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집게와 비닐봉지를
가지고 한강변에 떨어져 있는 휴지 등을 줍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안재월씨께 받은 황홀한 써비스와 한강변에서 만난 그
천사 아주머니는 이번 제주일주 여행의 청신호를 알려주는
어떤 메시지라 생각이 들었다.
방화대교에서 일행과 만난 시각은 10시 15분. 대장 홍재황. 대장의
제일 참모인 노정길. 통뼈 김상학. 그리고 김명환. 허창근.
장군체격인 전창덕. 그리고 나. 모두들 약간 상기되고 설레는
가슴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다. 이 병주는 직접 공항에서 도킹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상학친구는 제주도 라이딩을 여러 차례 했음에도
이번에는 나 때문에 이번에 또 제주행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맙기 그지없었다. 나를 배려한 홍재황 대장이 내 안장을 교체하여 주었다.
늘 감사할 따름이다.
방화대교를 출발한 시각은 10시 40분. 재황이가 단골로 다닌다는
김치찌개를 잘하는 음식점으로 들어가 아점으로 식사를 시작한
시각은 11시 10분경. 식사를 마치고 음식점을 출발한 시각은 11시 45분.
12시 05분 공항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해부하여 짐을 꾸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친 시간이 오후 1시.
대장인 재황이 없이는 이 잔차 모임도 어려울 것이란 감이 잡혔다.
오늘 자전거 해부와 짐 꾸리기 등등이 그 친구 없이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다. 타고난 성품이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란 것이 오래 전부터 친구들의 평이다.
2시 40분 제주행 제주항공 7C 0121기. 우리들 좌석은 18a ~f.
그리고 19ab이다. 약 200 여명이 탈 수 있는 저가 항공이다.
둘러보니 만석이다. 우리 일행이 제주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3시 50분.
제주 날씨 22도. 바람 다소 강하게 분다는 기내 방송이다.
자전거 조립 완료가 5시. 공항을 약간 벗어난 도로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라이딩이 시작된 시각은 5시 10분경이다. 한강변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와는 전혀 다른 도로컨디션이다. 자동차와 같이
나란히 달리는 도로에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도로를 나는
겁을 잔뜩 먹은 가슴으로 일행을 뒤따랐다.
그렇게 달리기를 몇 km인지? 거의 한 시간이 되어서 그래도 안전하다고
할 만한 자전거만의 도로가 나왔다. 한강변 전용도로에서만 연습하던
나는 조금은 의아하고 겁먹은 가슴으로 리더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달려 도로 내리막에 위치한 첫 번 째 인증센터를 마났다. 이름하여
* 다락쉼터에서 벅찬 가슴으로 인증을 받고 잠시 쉬고 있는 중에
후미 그룹이 도착하였다. 오른 쪽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왼쪽은 자동차들이 달리는 그런 도로 옆에 다락쉼터 인증센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십 명이 함께 다니는 팀이 한꺼번에 도착하면
조금은 비좁은 그런 쉼터였다.
드디어 해는 지고...
7시 지난 시각에 애월항에 도착했다. 숙소를 찾으러 간 재황과 정길이
돌아온 것은시간이 꽤 지나 주위는 어둑해졌고 약간의 추위를 느끼게
되었다.
빨리 숙소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배도 많이 고프고...
11시 김치찌개로 아점을 하였으니 이 시각에 쪼르륵 소리가 안 날 리가 없다.
* 애월바당 *이란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정하여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투숙하였다. 코골이와 아닌 친구의 두 부류로....
방에 들어가니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하여는 전혀 무관심한 그런 매너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끼리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
술 마시고 얘기하고 놀다가 다시 자기만의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고 먹고...
이런 식의 여행을 한다고 한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엔 혼밥 이나 혼술 같은 혼자생활하는
것이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는 말을 뉴스에서 접한 생각이 들었다.
각자 집에서 출발하여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지내다가 다시 혼자가 되고
또 다음 날도 그렇게 하고...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려운 삶의 형태이다.
게스트하우스는 40대 후반 쯤 되는 인상 좋고 조금은 인테리로 느껴지는
부부가 운영하는 듯하였다. 침대가 이층으로 된 방이었다.
창덕. 정길. 재황. 그리고 내가 한 방을 썼다.
짐을 풀고 순대를 채우기 위해 아까 숙소를 향해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나갔다.
들어간 곳은 개업을 한 지가 얼마 안 되는 듯한 음식점이다.
‘해송 수산물 회센타’라는 음식점이다. 기본 반찬도 맛있었고,
주인을 비롯해서 도우미들의 성의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산 ‘한라산’도 부드럽게 목을 통과했다. 정말 맛있고
즐거운 식탁의 분의기였다. 오늘 저녁은 창덕이가 계산했다.
사랑스런 부인 안재월씨의 배려라는 게 창덕의 말이다. 그
부부께 고마움과 정을 느낀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운 시간은 10시가
넘어서이다. 모두 소년시절 수학여행 온 기분으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분위기다. 나는 오늘 그리 길지 않은 라이딩인 데도 피곤해서
바깥에 나가질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한동안 담소가 이어진 것을
다음 날 아침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여행 첫날을 보냈다.
나는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이라 그런지 오늘 하루의 여정이 아주 긴
것처럼 느껴졌다. 피곤하다.
*** 둘째 날. 6월 3일(금요일)
나는 새벽 3시. 5시 잠이 깨서 이글을 핸드폰에 메모하고 다시 누웠다.
기억의 한계로 경험한 사실의 선후가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상실되거나 순서도
상황도 많이 바뀌게 된다. 우리 기상시각은 7시로 정했으나 5시부터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고 큰 기침으로 인하여 누워서 자는 것 같지만 잠에서
깨어 있게 된다. 떠나기 전 이런 것들에 염려를 했지만 100% 지켜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상학이와 병주의 컨디션이 궁굼하였다. 본인들의 말로는 괜찮다는 것이지만....
상학이보다 병주가 더 염려가 되는 감이 잡힌다.
상학이는 감기몸살 후유증으로, 병주는 어제 집을 출발해서부터
공항까지 오는데 평소보다 오버 페이스한 것이 원인이라고 자신이
말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속이 많이 불편한 듯.
식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상학이는 그런대로 괜찮은 듯 하다.
술도 마시고 식사도 잘 하는 편이니까.
창덕을 비롯해서 몇 사람은 커피를 타서 마시며 담소를 이어 간다.
숙소 밖에 응접실과 같은 형태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8시경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간단한 메뉴였지만 맛은 있었다.
스테미너 식품인 고기류는 물론 없다. 숙박비에 포함된 식사이기에
큰 기대를 한다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아침식사를 포함한 숙박비는 1인당 2만원이다.)
식사 후 짐을 꾸려 다시 우리는 둘째 날 라이딩을 시작하려
숙소 앞에 모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서서히 다음 목적지인 한림을
향해 페달을 서서히 밟았다. 한라산이 이렇게 가깝게 보일 수가 없다.
청명하고 상쾌한 날이다. 8시 30분 출발 – 한림항에 9시 20분에 도착했다.
해거름 인증센터 마을에 10시 30분에서 인증을 받고.
인근 바닷가에 도착 휴식을 취했다. 계속 바다를 오른 쪽에 두고
라이딩하기 때문에 한없이 펼쳐진 바다는 우리들 가슴이 그만큼
넓어짐을 느낄 수 있다. 계속해서 ‘아~!’ 하는 감탄사를 발하면서
페달을 밟고 또 밟는다.
오후 2시 모슬포 항에 도착하여 ‘부두식당’이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3시 20분경 송악산 입구에 도착하여 한동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상학이와 명환. 그리고 나는 송학산 둘레 길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다녀왔다.
제주도는 섬 중심에 한라산이 우뚝 솟아 있는 타원형 모양의 화산섬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자연과학분야 3관왕(생물권보호구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으로 송악산, 쇠소깍, 성산일출봉 등으로 세계적인 섬이다.
우리는 그런 섬을 일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쉬던 곳에서 가까운
‘송악산 인증센터’에서 인증을 받고,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방산 탄산수리조트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는 과정에서 조금은
우왕좌왕했었다.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의 말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2층으로 된 게스트하우스! 2층엔 침대가 있고, 아래층은 그냥 넓은 방이었다. 1
8만원으로 목욕을 2회에 걸쳐 할 수 있는 티켓을 써비스로 받았다.
이층 침대방은 정길과 창덕이 이용하였고 아래층은 6명이 같이 이용했다.
짐을 풀고 들어간 탕은 상당히 넓었고.... 우리들은 간만에 따뜻한 탄산수로
피로를 풀었다.
저녁식사는 목욕탕 앞에 자리한 이층 식당에서 먹었다. 회덮밥,
문어를 넣은 국수 등, 취향대로 시켜 먹었다.
*** 셋째 날. 6월 4일(토요일) 비 그리고 강한 바람
어제 저녁을 먹던 식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이슬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을 뚫고 오늘의 목적지인 중문을 향해
출발한 시각이 8시 30분. 산방산을 왼쪽에 두고 오르고 또 내려갔다.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정길이가 안내한 한라봉 가게에서 주
이 건네주는 한라봉으로 충분히 목마름을 달랬다. 우리들은
각자 집으로 또는 친구들에게 택배를 주문했다. 나는 한의원과
집으로 두 상자를 주문했다. 한라봉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뼈해장국과 순대국. 정길이는 제주 특유의
맛을 보기 위해 건너편 음식점을 택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도 정길이를 따라갈 것을 하고 ... 마음 속으로 후회했다.
정길이는 자전거 수준도 수펴맨이고 길이나 음식에 관해서도
대단히 박식한 친구였다. 늘 조용한 가운데 우리 일행을 리드하고
안내하였다.
이슬비속에 곤파스 동생 쯤 되는 강한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나는 여러 차례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
사실 겁이 많이 났지만 친구들에게 표현은 할 수가 없었다.
서귀포를 향해 가는 바닷가의 바람은 헤쳐 나가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언덕과 비와 바람은 우리를 많이도 괴롭혔다. 나는 중간 휴식처인
‘퍼시픽 오션’인가 하는 곳에서 출발할 때 배낭을 그냥 두고 자전거만
타고 한 참을 달렸다. 입고 있던 비옷이 유난히 바람에 심하게 날리는
것 때문에 배낭의 밴드가 생각이 났고 때문에 등에 배낭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가려했는데 재황이가
슈퍼파워를 발휘하여 금세 다녀왔다. 또 고맙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현장의 주변은 오늘날 우리 세대의 갈등과
가치관의 상충이 빚어내는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와 바람은
그 현장을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강정마을을 뒤로하고 잠시 후
정길이가 안내한 아메리카노 커피 맛은 평소 느끼지 못하는 훌륭한 맛이었다.
우중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피로와 함께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한참을 달려 서귀포 모텔 촌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려 몇 군데 다녔다.
방이 없거나 우리들 일행을 맞을 만한 숙소를 고르는 데는 몇 군데를
거쳐야했다. 드디어 언덕을 한참 올라가 정한 곳이 ‘대명모텔’. 자전거를
보관하기도 좋고, 숙소도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곳이었다.
밖은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생각한 것이 모텔에서 음식을 시키기로 했다.
중국음식이다. 탕수육. 팔보채. 깐풍기. 이렇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모두 맛이 있었다. 모두 수준이 있는 중국집으로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음식과 ‘한라산’을 즐기면서 각자 가지고 있는 건강비결이나 운동법.
스트레칭. 건강식에 관한 얘기로 저녁시간을 보냈다. 전립선에 효과가 좋은 약.
cj제품을 창덕이가 소개 헸다. 소변줄기와 힘은 그 마누라의 행복과
비례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새벽 1시에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위축 된 것은 당연하다.
회식 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아리아 한 곡을 친구들에 들려주었고(녹음 된 것)
거기에 나오는 단어 하나를 유머를 섞어 얘기를 나누었다. 명환이는 수첩에
기록하기도 했다 . 집사람에게 써먹는다고... (Mio sol Fiore! O sole mio.\!)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여! 오 나의 태양이여! 다음 날 명환에게
단어 하나를 더 알려주었다. I’te Vurria Vasa! 이떼 브리아 바사!
당신에게 입맞추리! 이태리 가곡이나 아리아는 이태리어다.
곡명을 잘 이용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 있다. 미오 쏠 피오~ㄹ! 오 쏠레 미오! 이떼 브리아 바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여! 오 나의 태양! 당신에게 입 맞추리!
한국말로 하면 계면쩍거나 쑥스러운 친구들은 이태리어로 사랑스런 아내에게
한 번 써먹어 보기를 권한다. 부인이 의아해 물어볼 때 한국말로 해석해 주면
얼마나 더 기뻐할까...?
한 번 쯤, 아니 가끔 써먹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몸이 거구이며 무릎과 허리가 불편한 창덕이와 환자 병주는
침대를 쓰고 나와 재황은 전기매트 위에 침구를 폈다. 말리다 만 옷들은
요 밑에 깔고 잤다. 아주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 넷째 날 6월 5일. 일요일. 날씨 화창.
7시 출발하여 천지연폭포, 세연교를 다녀왔다. 어제와 달리 날씨는
화창하였고 바람도 없다. 천지연폭포는 그 전보다 떨어지는 물의 양이 많아
더욱 힘차게 떨어졌다. 기념촬영을 하고 세연교를 거쳐 언덕 빼기 위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 닫은 곳이 많다.
복 해장국 5. 김치찌개 3. 이렇게 주문했다. 마주 앉은 병주는 복 건데기를
나에게 모두 덜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또 옆에 앉은 창덕에게 반은 덜었다.
병주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친구들의 걱정이 많다. 병주는 밥도 국건더기도
먹지 않고 국물만 조금 뜨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상학이는
이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명환이의 피부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한다.
그 좋아하는 술을 마다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재황은 자전거 8대 모두 윤활유룰 바르면서
중간 정비를 하였다. 나는 20m 떨어져 있는 열린 화장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일을 보고 나왔다.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라이딩이 잘 될
것같은 생각이 든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정방폭포에 들렀다가 10분 정도 머무르며
기념 촬영만하고 이내 9시 50분 쇠소깍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쇠소깍 인증센터에 도착하여 10시 30분 경 인증을 받았다.
정방폭포에서 쇠소깍에 이르는 바닷가의 풍경은 하나의 작품이다.
어떻게 그 풍경의 진가를 말로써 설명해야할지.....?
이 쇠소깍은 다른 곳보다 사람들이 많이도 붐볐다. 올레길을 걷은 사람들,
승용차를 타고 가족끼리, 애인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온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 명소였다. 주차장도 여러 곳이 눈에 들어왔다. 쇠소깍 근처를
라이딩할 때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었다.
응원을 보내는 싸인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는 힘을 얻었고 또 답을 건넸다.
* 쇠소깍 : 제주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의 하구(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계곡)를 가리켜 ‘쇠소깍’이라 부른다.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연못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쇠소’에 뜻의
제주어에 깍이 합해진 단어. 원래 이곳은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비경.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어 수상카약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
쇠소깍에서 표선으로가는 길은 편안한 언덕과 내리막이 편한 라이딩이
계속 되었다.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즐거운 라이딩이다.
가끔 해가 나오긴 하였지만 대체로 구름이 얇게 덮인 하늘 아래에서
바람의 세기는 미풍으로 우리들 얼굴을 간지럽게 하였다.
오른편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정경은 우리들 발걸음을 잡았다.
쇠소깍에서 얼마 가지 않은 곳에 바닷가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정길이가 이걸 놓치지 않고 우리들을 안내 했다. 그 옛날에도 이곳에서
머물렀던 얘기와 함께... 상학이가 여기서 먹었던 일을 잊지 않고
정길에게 했던 것이 오늘도 머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가 최악의 라이딩이었다면 오늘은 콧노래가 나오는 코스가 계속 되고 있다.
중간 휴식 때 먹는 귤 맛은 꿀맛 바로 그것이었다. 10시 30분 해안도로에
진입하였다. 일기예보에 서울은 오늘 기온이 31도가 넘는 혹서...
여기는 바람이 살살 부는 22도 전후가 되는 바닷가를 우리는 달리고 있다.
표선을 4km 정도 남기고 바닷가 정자에서 휴식. 해녀 5~6명이 바퀴가
네 개가 달린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이동하면서 해녀일을 하는가 보다.
언젠가 신문인가 TV에서 해녀들이 바닷물의 상태(바람이나 수온 때문에)
에 따라 이동을 하면서 일을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해녀들은 나이가
상당히 된 여인들이었다. 바람은 잔잔하였고 바다는 끝없는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아직 병주와 재황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바닷길을 따라 오는 것은 많이 돌아오는 길이어서... 병주를 위해 지금길인
자동차길을 이용하여 표선으로 오겠다는 것이다.
현재 시각. 12시 50분. 곧 출발하여 표선인증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1시 10분.
늘 하는 것처럼 정길이는 우리들에게 인증도장을 찍어주었다. 우리는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고기국수를 시켰다. 재황과 병주는 약 1시간 후에 도착
예정이다. 점심을 먹고 있는 중에 순국 내외가 왔다.
(신 순국은 서울교육대학 후배로서 나와는 아주 가까운 후배.
명퇴를 하고나서 이곳 제주에 내려와 살고 있다. 미혼인 아들 형제는
용인 집에서 둘이 잘 살고 있다.)
어제 전화로 내가 제주에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교회를 다녀화서 이곳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점심값을 치러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얼마 후 병주와 재황과 도킹하였고 병주는 또 점심을 굶고 재황이 점심이 끝난
2시 30분 경, 재황과 병주는 택시로 나머지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성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3시 경 휴식시간. 성산 쪽의 하늘이 많이 흐려있다.
아마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큰길의 이정표에 성산 9km... ‘다 왔네!’ 잠시 후 해안도로에 들어서니
성산 14km! ‘아직 멀었네!’ 웃음이 나왔다. 숫자 하나로 희비가 엇갈리는
우리들 마음의 간사함 때문에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또 휴식.
목표지점이 가까워 휴식을 자주해도 지장이 없을 듯. 3시 30분 경
출발하여 성산에 자리 잡은 ‘용궁’이란 민박집에 도착한 시간이 5시.
전망은 좋았지만 나머지 것들은 점수를 주기에는 많이 부족한 민박집이었다.
그래도 ‘변하는 대로 놓아두어라’한 어느 스님의 법문을 따르기로 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는 중에 상학이가 내 손을 잡는다.
내 손 안에 무엇인가가 잡힌다. 설명을 들으니 내가 건네준
공진 단 세 알 중에 한 개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처음에 상학이 만났을 때
(병주 만나기 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보였다. 딸아이가
아버지 힘내라고 준 것 다섯 알 중에 내가 두 개를 먹고 상학에게
세 개를 주었던 것인데... 그것을 처음에 복용하고 하나는 지금까지 갖고
있다가 나에게 주면서 병주에게 전해주라는 것이다.
그때 병주는 성산에 도착하여 재황이 약국에서 사온 우황청심환과 속을 달래는
약을 이미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 공진 단을 쥐어주며 40분 쯤 지난 후에
씹어서 먹으라고 일렀다.
어떤 것 때문에 효과가 있었던지 24시에서 사온 죽을 3/2정도 먹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은 얼마간 안심했다. 정말로 다행이다.
한의원에서 보약이라면 체질에 따라 탕재로 복용하는 것도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보약 중에는 경옥고와 공진단이 있다. 값이 만만치 않아 딸이
건네주는 것이라도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약이다.
나는 제주일주를 위해 나름 몸을 만들었지만, 한의원에서 경옥고를 가지고
와서 한 병 반을 먹고 출발해서인지 그리 힘든 줄 모르고 지금까지 견디고 있다.
병주의 상태가 나아진 것을 보고 나머지 친구들은 약속된 탐라 흑돼지를
사냥하러 나갔다. 이날 흑돼지 사냥은 지금까지 나를 배려해준 친구들에게
약간의 보상을 한다는 차원에서 적지만 내가 쏘았다. 능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숙소로 돌아와 22시부터 중계하는 축구대표팀의 체코 전을 보면서 담소를
이어갔다. 안주가 되는 얘깃거리도 많았다. 명환이가 준비한 ‘한라산’과
나를 위한 캔 맥주 한 개를 상학. 재황. 명환. 나까지 돌아오기엔 약간 부족한
듯 했다. 병주의 상태는 이상이 없는 듯 아까 먹은 죽이 넘어오지 않고 안정된
것 같다.
어느덧 상학은 잠자리에 누워 1분도 안 되어 코를 골았다.
저런 통뼈의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잠인 것 같다.
다음 날 새벽 정길과 명환. 나. 이렇게 셋이서 일출봉에 간다고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4시 반에 일어나기로....
*** 다섯 째 날. 6월 6일. 월요일(현충일) 안개 많음. 흐림. 비
새벽에 일출봉에 오르려던 일은 가랑비로 인해 취소했다. 잠이 부족한 나는
한 편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7시 30분 지나 재황은 병주와 명환을 대동하여
3km 떨어진 병원으로 갔다. 리더인 재황은 여러모로 고생이 많다. 조금 후
정길은 성산 인증센터를 찾아 나섰다. 근처에 있는 줄 알았는데 3~4km나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따라나설까 망설이다 쉬고 싶어 주저앉았다. 잔차팀에서 재황과 정길의
존재감은 강조를 거듭해도 모자란다. 현재 시각 7시 20분 성산 일출봉이 바로
앞인데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 때문이다. 어제의 라이딩은 60km가 넘었지만,
오늘은 25km 남짓이라 한다. 지갑 분실소동. 짐을 꾸리던 창덕이 지갑이 없다고
한다. 배낭을 뒤지고 또 뒤져봐도 보이지 않는다. 첫날 계산을 하고 빠뜨린 지도
모르는 일이라 내가 그 집 명함들 촬영해낸 것을 보고 전화를 해보았지만 답은
‘아니오’다. 공항에서 수속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신분증은 해결하기로 하고
카드는 집에 연락하여 신고했다. 나머지 현금 약간?은 술 한 잔 사 먹은 것으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일단은 수습은 했지만 잃어버린 장본인은 찜찜하고 뒷맛이
씁쓸한 것은 당연하리라. 위로해 마지않는다.
오늘 타는 코스는 25km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비가 온다. 편한 라이딩은 아닐 듯. 얼마 후 재황과 명환은 숙소로
돌아왔고 병주는 링거를 맞고 1시간 후에나 우리와 도킹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숙소에서 멀지않은 ‘정든식당’에 가서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으로
화려한? 아침상을 맞이했다. 병주가 오기 전에 흰죽을 부탁하여 우리들이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려 병주가 식당에 나타났고, 흰죽을 많이도(전날에 비해)
먹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안심했다. 나머지 죽은 우리들이 나누어 먹었다.
아주 맛이 있었다. 그 후 김포에 도착할 때까지 아픈 기색은 없었다.
큰 다행이다. 그동안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11시 경. 병주는 택시로 함덕으로 갔고. 우리의 라이딩이 시작 되었다.
비가 계속되는 와중에 비자림을 향해 나아갔다. 1시 비자림 도착. 창근. 창덕.
그리고 나는 입구에 있는 카페에 남고 나머지 친구들은 비자림으로 들어갔다.
* 비자림 : 태고의 숲으로 ‘숲 천년’. 비자림의 비자나무숲을 일컫는 이름이다.
448.165평방미터의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곳이다. 높이 7~14m. 직경 50~110m의 천연기념물
374호로 지정된 나무다.
‘아닐 비(非)를 닮아 비자(榧子)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
2시 비자림을 출발하였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고 자동차와 같이 달리는
도로가 이어진다. 비는 점점 더 오고... 도로 컨디션은 점점 나빠진 상태에서
라이딩은 계속 된다. 이번 제주 라이딩의 특징을 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위험한 것을 말할 수 있겠다. 2시 50분 만장굴에
도착 성게미역국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모두들 젖은 옷 때문에 축축하였고
따끈한 성게미역국은 맛이 없을 수 없다. 비교적 많은 양의 미역국이다.
3시 30분 만장굴을 출발하여 함덕인증센터에서 인증을 받았다.
인증센터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아주머지는 혼자서 제주일주를 하고 있었다.
언행에 여유가 보였으며 부드러운 자태에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아주머니였다.
한마디로 대단한 분이셨다.
병주가 먼저 택시로 도착하여 잡은 함덕장이라는 모텔에 도착한 시각이 5시.
모두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범벅이다.
숙소는 비교적 좁은 것 빼고는 괜찮았다.
오늘의 라이딩은 엊그제 비바람 속의 악천후 다음으로 힘든 일정이었다.
6시 30분. 정길의 군대 후배인 문사장의 초대로 함덕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바다목장’에 초대를 받았다. 낚시로 걷어올린 돌돔이 주 메뉴였다.
회가 입에 짝짝 붙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처음부터 나오는
메뉴 모두가 100% 만족했다.
나는 창덕에게 초반 레이스에서 오버 페이스를 하지 말라고 몇 차례 일렀건만....
지켜지지 않는다. 오늘도 같은 말을 했건만 막판 레이스에서 젓가락을
놓고 말았다. 나는 양이 적은 대신 아주 천천히 레이스를 이어갔기 때문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끝까지 맛있는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마라톤에서 처음에 오버 페이스하여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다. ㅎ!ㅎ! ㅎ! 정길의 군대 후배인
문 사장은 제주가 고향인 사람으로 예전부터 큰 사업을 하는 통큰 인물 같았다.
술은 전혀 못하는 사람이지만, 한 달에 술값이 2천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옛날 군에서 만난 사람을 지금까지 우정을 갖고 만난다는 것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편 내 인생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잠깐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내 주변에는 어떤 친구들이 있는가? 나는 그 친구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만나고
있는가? 그 인간관계로 인해 나는 얼마나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할 대목이었다.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할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관계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행복에 가깝게 접근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거기에 돈 얘기는 없다. 돈은 행복의 조건에 들지 않고 오히려
불행으로 몰아가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가끔 아직도 동창 몇 사람?은
돈에 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열심히 사는 것은 보기 좋지만....
오늘은 제주에 내려와 가장 훌륭한 식단을 마주하였고 행복했다.
오늘 저녁 특기할만한 얘기는 병주가 상에 차려진 음식을 대부분 조금씩이라도
먹었다는 것이다. 일행을 위해 본인을 위해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학교 근무할 당시 스카우트 아이들을 5~6년 지도했었다.
야외 캠핑을 가서 텐트를 치고 세끼를 모두 아이들이 해결하며 교육상 외치는
말이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였다. 어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여행 중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에서 병주 자신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번 경험으로 앞으로의 건강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야말로 세 가지를 대체적으로 잘 해낸 것 같아 높은
점수를 스스로 주고 싶다.
정길 덕분에 훌륭한 대접을 받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앞에 걸어가는
정길을 위해 노래 한 곡을 불렀다. (고마운 마음을 말이 아닌 노래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태리 가곡. ‘오 솔레 미오’ 내가 평소
좋아하는 노래다.
하루 종일 젖은 옷. 양말. 운동화 등을 말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다.
젖은 옷과 양말은 세탁기의 위력으로 물기를 많이 제거하여 하루 밤을 지낸
후에 거의 마른 상태가 되었다.
빗속의 라이딩. 환상적인 저녁 초대. 그리고 포근한 저녁.
모든 게 지나고 나면 재미를 더하는 추억으로 남는 법.
오늘도 그렇게 또 지나갔다.
*** 여행 여섯 째 날. 6월 7일. 화요일. 비교적 흐림
새벽 5시 재황의 큰 기침소리에 잠에서 깼다.
병주와 창덕이도 깼다. 창덕은 엇저녁 먹고 들어와 새벽까지 내쳐 잤다.
그렇게 오래 동안 잘 수도 있구나....? 오늘 제주지방 일기예보는
대체로 맑고 기온은 22도 내외. 8시 출발. 숙소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위치한 ‘함덕 해녀촌’에서 전복죽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전복을
크게 쓸어 넣어 씹는 맛이 제대로였다. 맛있는 전복죽은 그 양도 많아
허리띠의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찾아낸 ‘함덕 해녀촌’!
사람들이 많이도 찾아온다. 이 지역에서 이름이 있는 음식점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식사가 끝난 시각이 9시 10분. 해변도로의 환경과 날씨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최고의 점수를 줄 수 있는 날씨였다.
9시 55분 휴식시간. 삼양3동이란 동네 바닷가에 있는 정자에서 쉬었다.
나는 아침을 많이 먹어서인지 화장실이 나를 초대하였다.
엊그제처럼 이 동네도 열린 화장실이 있었다. 좁았지만 깨끗하였고.
화장지도 여러 통이 놓여 있었다.
휴식을 끈내고 10여 분이 지나서 뒤에 오는 상학이가 말했다.
창근이 배낭이 없어! 조금 전 쉬었는데 또 쉬게 되었다.
상학과 나는 그늘에서 다른 친구들은 그냥 햇볓을 즐기고? 있었다.
20여 분이 지나서 창근이 배낭을 찾아 돌아왔다.
제주 박물관을 관람하려 했으나 어제가 현충일이라 오늘 휴관이라는
안내문이다. 그 길로 사라봉 공원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30분.
친구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정길이가 공원 정상에
가겠는냐고 묻는다. 처음엔 걸어서 가는 줄 알았는데 자전거로 간단다.
내심 켕기는 마음이다. 단 둘이 출발했다. 내가 어물어물할 때 정길은
벌써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40분 출발하여 악?을 쓰고 끝까지 올라가
시간을 보니 7분 정도 걸렸다. 하체의 힘이 빠질대로 빠졌다.
정길은 벌써 정자에 올라가 셀프폰을 찍고 있다.
날이 흐려 저 밑에 있는 바다는 희미하다.
12시 정각. 사라봉 공원을 출발하여 마지막 인증센터가 있는 용두암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40분. 나에겐 역사적인 시간이다.
아마 창덕이도 명환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코스를
우리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병주도 마찬가지 초행이지만 컨디션
때문에 전 코스를 달리지 못해서 우리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만난 70대 초반?쯤 되는 남자를 만났다.
그 분은 남한 전체를 자전거로 섭렵하는 분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그 분에 비하면 어린 아기였다. 대단한 분을 또 만났다.
제주도 일주 자전거 행렬에 정작 제주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옛날 서울 사람들은 창경원에 가지 않는데, 시골사람들은 서울에
올 때마다 가는 것처럼 말이다.
용두암 인증센터를 뒤로하고 제주항을 거쳐 공항 활주로를 우측에 두고 공항
쪽으로 공항 쪽으로 서서히 옮겼다. 잠시 공항 앞에서 멈췄다가 도청으로
가는 길 언덕마루에 있는 말고기 전문음식점에 도착했다. 1시 45분이다.
제목이 ‘말 한 마리 가든’이다.
말고기 코스(회부터 시작하여 샤브샤브까지) 35000원이다. 나는 제주도에
일년에 한 두 차례 다니러 오지만 말고기는 처음이다.
별미로 맛을 보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맛있는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식사가 끝난 시간이 3시 20분. 그 길로 우측으로
돌아 시내 쪽으로 가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큰길 가에 있는 ‘제주 미주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정길과 재황이 교섭하러 들어간 사이 호텔 앞에 앉아 있는
창덕을 촬영하여 안재월씨께 보냈다.
4시 20분. 택시로 동문재래시장으로 갔다.
여행에 달관한 정길이 안내한 오메기 떡집으로 먼저 갔다.(진아 떡집.
064*757*0229. 자)752*0459). 혹시 제주에 갔을 때 필요한 분을 위해
전화번호를 기록해 드렸음. 그 떡집은 13일까지 주문이 밀렸단다.
오늘 작업은 이미 끝이 났고.
꿩 대신 닭을 찾아 인근에 있는 ‘알뜰 떡집’에서 택배를 주문했다. 3
0개 들이가 택배비까지 3만원이다. 우리 손자가 좋아하는 떡이니 사오라는
집사람의 부탁으로 주문했다. 친구들은 오메기. 쵸코렛을 주문했다
우리 8명이 웅성대며 서 있으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우리들은 최소한 떡 한 개씩은 얻어먹었다.
말고기 코스로 배가 부른데다가 또 떡을 먹었으니 배가 꺼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시장 전체를 지붕을 덮었다. 그야말로 전천후 시장인 셈이다.
시장 안은 품목별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으며 품질도 꽤나 양호한
느낌을 받았다. 값도 저렴하다고 한다. 신선한 제주 갈치가 kg당
6만~7만원이다. 시장 아이 쇼핑을 하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인근 커피숍에 앉아 담소를 하다가 창근이 제공한 빙수로 또 배를 혹사?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입에서는 감미로운데... 아래로 내려가면 조금은
불편함을 모두 느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먹던 나머지는 창덕이가
해치웠다. 역시 장군의 덩치로 식욕도 그 양도 비례하는가 보다.
커피숍을 떠나 일식집 ‘청해일’에 도착한 시각은 7시 20분이 조금 지나서다.
약간의 시간을 밖에서 소요하고 40분 쯤 방으로 안내 되었다. 함덕의
‘바다목장’에 버금가는 식탁이 단계별로 마련되었다. 종류도 다양하였고
맛도 좋았다. 옆에 앉은 창덕은 ‘야! 그래도 잘 들어간다. 야! ’하면서 젓가락질
운동을 잘도 한다. 오늘도 초반의 레이스에 오버하지 말라고 또 말했다.
술도 한 잔을 받아놓고 젓가락질 운동만 한다. 나는 쏘맥으로 몇 잔을 마셨다.
음식을 극히 조절하면서.... 마주 앉은 명환은 피부 때문에 마시지 않고.
상학만이 가끔 잔을 비울 뿐이다. 마지막 메인 메뉴가 들어왔을 때 친구들의
팔운동은 지극히 둔해져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 오늘도 막판의 레이스에서
창덕은 또 기권하고 말았다.
나는 기권은 안 했다.
체력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낮부터 식사양이 많은 관계로 술의 소비도
적었다. 먹는 인사보다 안 먹는 인사가 많았으니까....
9시 30분이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이를 닦기 위해 칫솔을 찾았으나 없었다.
전 숙박지에 두고 왔다고 생각해서 호텔 건녀편 25시에서 3500원 주고
사가지고 와서 양치질을 하고 나니 재황이가 내 칫솔 통을 찾았다.
재황도 칫솔을 잊어버렸다고 하더니 나중에 찾아냈다. 모든 것들을
나이 탓으로 생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창덕과 병주는 벌써 꿈나라로... 재황이 옆방에 마실을 다녀와서
나와 재황은 조금 늦게 잠이 들었다.
*** 여행 마지막 날. 6월 8일 수요일. 대체로 흐림.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이 밝았다.
6시 30분 기상했다.
옆방은 일찍 식사를 마쳤고 우리 방은 7시 30분이 다되어 내려갔다.
아주머니 얘기는 7시 30분이 식사 마감시간이란다. 나는 어제 듣기를
10시까지라고 들었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아차하면 아침을 굶을 뻔 했다.
숙박 두당 2만 원 짜리 치고 메뉴와 맛은 괜찮았다. 특히 갈치구이가 맛있었다.
식사 중에 일단의 단체 여자여행객들은 식당에 남아 시끌벅적,
그 중 한 여자는 노래하고 춤추고 가관이다. 저렇게 상식 밖의 소행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거의 동시에 큰소리로 제동을 걸었다. 미안한지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 장본인이 아닌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사과하여
마음이 조금은 풀리게 되었다.
모두 모인 중에 재황이가 그동안의 회계 등을 보고하였다.
일단은 모두 만족이다. 호텔에서 8시 45분 출발하여 가까운 공항에 9시에
도착했다. 창덕은 2번 게이트 쪽으로 가서 신분을 확인하는 박스에서
주민표를 만들어 왔다. 비교적 쉽게 되었단다. 수수료도 200원. 50분간
자전거를 해부 짐으로 만들어 수속을 마치고 1번 게이트로 가는 중 나는
담배 ‘에세 수’를 한 보루 샀다.
수고한 재황에게 전하려고...
탑승을 기다리는 중 커피 두 잔을 뽑아 창덕이와 함께 마셨다. 한 잔에 천원.
맛이 꽤 괜찮았다.
오던 날 김포의 출국장이나 오늘 제주의 출국장 모두 사람들로 붐빈다.
내국인 중국인들. 일본인들. 남녀노소로 붐빈다. 평일에도 이렇게 붐비니
주말엔 얼마나 혼잡할까...? 쉽게 예상이 된다.
다들 경험했겠지만, 패키지로 하는 여행도 닷새정도가 지나면 피곤한 것을
경험했으리라.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에 안내하고 식당과 숙소도 신경 쓰지 않는 패키지여행은
이번 우리들 자전거 여행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대체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마지막까지 왔다.
(병주만 제외하고)
보딩 타임 11시 50분. 출발 12시 05분. 비교적 순조롭게 탑승하였다.
우리들 좌석은 9F 한 줄과 그 뒷좌석 둘이다. 올 때 보다 반쯤 앞으로
배석 받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출발이 늦어진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지막 버스를 타고 있는데도 떠나지 않는 이유를 한참 만에 알게 되었다.
중국인 10명 정도가 출국장에 나타나지 않아 아마도 방송으로 한동안 소동을
빚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비행기 출발은 30분 이상 늦어지게 되었다.
김포에 도착한 시각은 1시 30분. 병주는 택시로 이미 떠났고...
자전거 조립이 끝난 것은 2시 30분. 나는 그냥 전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조립이
필요 없어 다른 친구들을 돕는 시늉을 했다. 자전거에 대한 상식이 없기 때문에
그냥 시늉이라도 해야 친구들에게 미안함이 덜하기 때문이다. 대충 조립이
완성될 쯤 인사를 나누고 전철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8명이 같이 다니다가
혼자 떨어져 나오니 왠지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중간에 파리바게트에서
작은 빵 두 개와 우유 작은 병 하나를 샀다. 전철 안에서 점심으로 먹으려고...
상일동까지는 1시간 20분. 짧은 시간은 아니다. 허리도 좀 아플 것이다.
빵을 먹은 후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하여 저장해 놓은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안경도 주머니에 넣고....
중간 중간 내 머리가 떨어지는 느낌이 올 때마다 잠에서 깨기를 몇 차례...
이제 많이 왔을 것이란 짐작으로 눈을 떠보니 아차산 역이다. 다 왔다!
몇 정거장이면 상일동역이다. 4시경 재황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은 아직 공항근처에서 밥을 먹고 있노라고....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는 길이 조금 멀었다. 낑낑....
택시를 잡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친절한 기사를 만나 마음이
조금은 편치 않았지만 이 마당에 내가 ‘을’이란 걸 스스로 인정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 아파트 현관 앞에 내린 시각이 4시 50분.
멀고 먼 여행의 끝이었다. 6시 50분 경 상학에게 전화가 왔다. 벌써 집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마쳤노라고... 내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고맙다.
나는 이런 친구들 덕분에 행복하다.
우리 일행이 제주항을 나와 일주한 인증센터의 코스를 살펴 본다.
다락 쉽터 – 해거름마을 공원 – 송악산 – 법환바당 – 쇠소깍 – 표선해변
– 성산일출봉 – 김녕요트해변 – 함덕해변 – 용두암.
일주 거리는 약 240km 프러스 알파하여 약 300km를 라이딩 했다.
적지 않은 거리다. 일정이 조금은 느긋하였지만 70이 넘은 친구들이
이런 역사(力事)를 썼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긍심과 더불어 찬사를
보내는 박수를 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전거 도로가 확실히 확보되지 않은 불안한? 도로에서 그것도 악천후 속에서
했냈다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앞에서 리드하고 뒤에서 돌봐주는 일을 바꿔가면서 우리들을
리드한 재황과 정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떠나기 전부터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상학. 피부질환으로 많은 애로를 갖고 말없이 여행에
참여했던 명환, 기진맥진하고 속이 너무나 불편한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버틴 병주, 오르막에 힘이 달려도 노련한 테크닉으로 나를 리드해 준
창덕과 창근. 모두 훌륭한 자전거 마니아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는 것,
정지해야할 때 노련하게 정지하지 못하는 부족한 테크닉으로 나는 여러 차례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였다. 좁은 길을 빠져나가는 기술은 캐리어가
있어야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그런 노련미가 있었으며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자연히 해결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라이딩하는
도중 휴식시간에, 또는 식사시간. 숙소에 들어와 쉬는 시간. 모두 기억에 오래
남을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후회 없는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여행 중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을 배웠으며 친구들의 진면목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기회가 된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소득이었다.
늘 잔차 행사에 합류하던 건호, 오현, 광덕. 두영. 그리고 두 사모님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을 남는다. 그 외 생각은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같이 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아쉬움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기회가 되면 그 친구들과도 이런 여행을 더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전합니다.
행복은 이야기 거리의 양과 비례한다고 한다.
여행도 인생도 고생한 과거의 추억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고생 없는 평탄한 인생과 여행은 기억이 어렵다. 또 얘깃거리도
안 된다. 중간 중간에 고생한 일들은 여행과 인생을 멋있게 채색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주일주 여행은 고생과 즐거움과 행복과 우정을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우리들 자신이 선택한 여행이다.
삶은 작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시시껄렁해 보이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인생의
큰 무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가급적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세상을 떠날 때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물건이나 돈이 아닌 감동이라는
추억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주여행이야말로 내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기록에 한계를 느끼며 최대한? 쓰려고 애를 썼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허점이 많이 들어날 것이다. 특히 여행을 같이한 친구들이 메모하여 알려주면
칸칸이 부족함을 메우고 싶다. 메모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도
그냥 지나쳐야할 곳. 그곳을 지나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기억의 한계.
핑계라 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평소 좋아 하는 시 한 편을
올리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행
길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나는 서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길은 유년기의 숲에서 성공의 도시로 이어져 있었다.
내 가방에는 지식이 가득했지만
두려움과 무거운 것들도 들어 있었다.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그 도시의 황금 문으로 들어가리라는 이상이었다.
도중에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에 이르렀고
내 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나무를 잘라 다리를 만들고 강을 건넜다.
여행은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비를 맞아 몹시 피곤해진 나는 배낭의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나는 숲 너머에 있는 성공의 도시를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난 목적지에 도착했어. 온 세상이 부러워할 거야!’
도시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문 앞에 있는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들여보낼 수 없어. 내 명단엔 당신의 이름이 없어'
나는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고, 발길질을 해댔다.
내 삶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걸어온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곳까지 오면서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을.
도시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그것이 내가 승리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강을 건너고, 비를 피하는 법을 스스로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그것이 고통을 가져다줄지라도.
나는 알았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임을.
나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 낸시 함멜
2016년 6월 9일 밤. 하남에서 김 상연 드림
첫댓글 긴여행 무사히 다녀온 친구들 자랑스러워라~~~
잘 보고갑니다.
성일 형을 비롯해서 영두회 많은 친구들이 염려해 준 덕분으로
잘 다녀 왔습니다. 작은 사고도 없이 마무리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땡큐!!
김화장의 잔차팀의 제주 견문록을 읽노라니 거기에서 아직은 젊음의 우정과 건강과 강인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삶의 과정에 큰 의미를 두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김회장의 의지에 경의를 드립니다.지나간것은 지나간데로 의미가 있습니다.
시의 한 귀절처럼 우리 모두 성공과 황금의 도시로 함께 손잡고 걸어갑시다. 비록 그 곳에서 성공과 황금이 가득찬 문을 열어주지 않을지라도....
오~! 강물. 별일 없었지. 사모님도 잘 계시고? 늘 관심과 우정을 전해주는 친구가 있어 살 맛이 나는가 봅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많은 얘깃거리를 가지고. 생각지 않았던 환자가 생겨서 끝까지 조심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무사히 마치되었습니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언제나... 처음 제주도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내 얘기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녀왔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관심과 우정을 느끼게 되는 흥운형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처럼 쑥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글을 올린지 이틀이 지난 오늘. 다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오자. 탈자. 어색한 문장이 많이도 발견되어 쑥스럽습니다.
자전거 소식 코너에 올린글에 정정하였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 ! 재미진 여행이네, 난 왜 못갔을고?
같이 행동했으면 더 좋았을 걸.... 다음 또 기회가 있겠지.
이제야보아소!잔차팀무사귀환축하드리오감히도전성공일기를보니감회롭고새로운곳도배웠다오우리네인생현재까지는잘살아온인생아니겠소충분했지만부족함도있었겠지만여러친구들께감사드린다오우리영두회원모두가박수칠께요화이팅~~~
의리의 싸나이! 고맙네. 재미도 있었고, 위험하기도 했고, 힘도 많이 들었어. 늘그막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왔다네. 축하해 주어 고마워.
다녀와서 생각난 문장이 있어 소개 하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어떤 학자가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번에 나를 위해서 그 옛날에 이미 썼나봐. 모든 친구들 참고하시기를....
내가 가끔 써 먹는 문장이 있었지.
'저 밝아오는 아침 어딘가에 기적이 숨어 있다.
새로운 아침, 새로운 시작.
또 한 번의 출발이야말로 얼마나 큰 기쁨인가!
위에 쓴 문장과 일맥 통하는 문귀라고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써 보았네. 땡큐!!
글을 카페에 올린지 시간이 꽤 지난 오늘.
영두산악회 남산둘레길을 다녀와서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틀린 단어나 문장을 정정했다.
또 다시 읽으면 잘못된 것이 또 발견이 되겠지만.... 또 읽어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썼지만 재미도 없으면서 길기만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