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시집 『나비를 품은 모란』 발간
촌티학교 1기 졸업생인 김명희 시인이 첫 시집 『나비를 품은 모란』을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이 시집은 ‘시인의 말’ ‘1부 작약꽃 향기’ ‘2부 신대리 마을’ ‘3부 목화송이 따먹기’ ‘4부 글은 아무나 쓰나’ ‘5부 꽃길 따라 가거라’ ‘6부 참 다른 부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명희 시인은 1949년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7년 전에 충남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데, 이 곳에 ‘촌티학교’를 운영하는 분들이 봉사활동을 펼쳐, 그 분들로부터 시 창작에 대하여 배웠고, 그 결과물로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 서평
#1
김명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시 창작에 대한 자신의 내면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칠십 넘어 살면서 /들풀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넓은 들판 세상에 풍파 견디면서/비바람에 난 상처도 흉터로 남았지만/풀꽃은 혼자서도 피어나듯/소박한 꿈도 꾸며 키우며 이루기도 했습니다./그간 틈틈이 써놓은 글이/서툴고 어색한 이야기들이라 /마음이 오그라들지만 /시골집 마당 뜰에 오는 가을을 붙잡고/꺼내어 다듬고 펼쳐 봅니다/올가을은 풍성한 결실을 농부들에게/안겨 줄 것 같습니다/ 늦가을 장마가 걱정이지만/모자라는 시골 촌로의 두서없는 글이/가을날 한 알이라도/결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들에서 자란 잡다한 들꽃도/내년을 위해 씨앗을 맺으니까요.>
#2
이 시집의 6부에는 가족과 지인들의 글이 나옵니다. 김명희 시인의 큰아들 신동조 님의 글 일부를 소개하여 시인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두 딸과 함께 나온 휴일 오후, 조금 걷다 보니 오락기가 있는 게임랜드가 눈에 들어온다. 오락실을 내 어린 시절엔 그렇게 불렀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동네에 오락실이 생겼다. 거긴 말 그대로 천국이었고 문화충격이었다. 간판만 봐도 눈이 뒤집어지고 가슴이 뛸 지경이었다. 용돈을 탈탈 털어 푼돈을 쏟아붓던 어느 순간, 내게는‘돈=오락실’ 이란 공식이 생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돈<오락실’이라는 현실에 부딪혔다. 생각하기는 싫지만 그때 내게 도벽이 생겼다. 오로지‘오락실=돈’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그때부터 1년간 내 기억 대부분은 위의 공식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과 부모님에게 혼난 기억밖에 없다. 아마도 부모님은 “자식이 웬수여”수도 없이 말하셨을 것 같다>(일부)
#3
김명희 시인의 둘째 아들 신상준 님 역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써서 시인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엄마와 음식에 대한 두 가지 기억이 있다.
앵두.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초여름 고덕 장이 열리던 날이면 장 어귀에서 항상 앵두를 검은 봉지에 담아서 팔았다. 한 봉지 백 원.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면 그렇게나 안 사주셨다. 다 크고 얘기했더니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아무튼 그때 기억으로 난 아직도 앵두를 좋아한다.
팥빙수. 국민학교 때 서울에 올라와서 온 가족이 생고생을 했다. 이모 집에 얹혀살다가 반지하 단칸방이지만 우리 가족이 따로 나왔다. 엄마는 노동 막일을 하시며 나를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노력하셨다. 엄마와 둘이서 신월동 시장을 지나며 집으로 걷는 길. 어린 아들에게 "팥빙수 한 그릇 사줄까?" 엄마가 물어본다. 팥빙수 한 그릇은 비쌌고 나름 집안 사정을 아는 나는 괜찮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팥빙수를 보거나 먹을 때마다 이 기억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