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김관식>이 그리운 시절,
며칠 전 길을 지나다 공연 광고 포스터를 보았다.
<대한민국 이문세> 전주 공연 포스터였다.
이문세씨의 노래와 ‘노랫말’을 좋아해서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대한민국‘ 이라는 네 글자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다시 광야에>라는 시집을 상재했던 김관식金冠植(1934 ~1970)시인이었다.
자신의 명함에 <대한민국 김관식>이라고 새기고 다녔었고,
4·19 직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당시 26세의 나이로 정계의 거물인
장면의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던 사람,
그 때 선거를 치르느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남김없이 털어먹고 말았고,
오기와 술과 기행(奇行)으로 전 생애를 살다간 시인이 바로 김관식이었다.
그런 김관식 시인의 행적을 내가 제대로 파악한 것은
시인의 아내 방옥례 여사가 쓴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모 잡지에 당선된 글을 읽고 나서였다.
김관식은 논산에서 태어나 호남 명문 중의 하나인 강경상고를 졸업했다.
서울에 올라온 그는 당대 한학의 대가들인 정인보(鄭寅普), 오세창(吳世昌), 최남선(崔南善) 등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그는 <주역>과 <반야심경> <동의보감>을 비롯 당시(唐詩)들을 꿰뚫었다.
시를 공부한 김관식은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기 위해 미당 서정주의 집을 드나들었고
그때 서정주의 집에서 어여쁜 처녀를 보았는데, 그가 바로 미당의 처제 방옥례(方玉禮)였다.
우여곡절 끝에 자살을 결행한 용기로 방옥례와 결혼한 그는 기행과 기벽으로 세상을 살았다.
직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서울공고에서 교편을 잡았었고, 세계일보 논설위원까지 지냈으니,
하지만 그는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며 살 팔자가 아니었다.
그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이 어느 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술에 취해 뒤늦게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나타낸 김관식은 씩씩하게 장기영 앞으로 나서며 그를 밀쳐냈다.
“자네는 그만 하게. 내가 할 말이 좀 있으니까……”라고 말문을 연 그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격정어린 말로 육두문자를 펼쳐냈다.
영혼이 자유로웠던 시인 김관식은 번뜩이는 재기, 그리고 시와 한학에 대한 호기와 자부 심 하나로 <대한민국 김관식>이라고 자위하며 세상을 우롱했으나 한 번도 그의 삶은 활짝 펴지 못했다.
김관식 시인의 시를 읽다가 보면 그의 서정적인 시재詩才가 얼마나 대단했던가, 그의 생애가 얼마나 기구했던가를 알 수가 있다.
그의 시 몇 편을 살펴보자.
다시 광야(曠野)에 김관식
“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른 창문을 열어놓고 당신의 그림자가 어리울 때까지를 가슴 조여 안타까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그러면 저의 옆에 가까이 와 주십시오.
만일이라도…… 만일이라도……
이승 저승 어리중간 아니면 어디든지 당신이 계시지 않을 양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몸뚱어리는
암소 황소 쟁기 결이 날카로운 보습으로
갈아 헤친 논이랑의 흙덩어리와 같습니다.
따순 봄날 재양한 햇살 아래
눈 비비며 싹터 오는 갈대순같이
그렇게 소생하는 힘을 주시옵소서.“
“나는 아직도 청청이 어우러진 수풀이나 바라보며 병을 다스리고 살 수 밖엔 없다. 혼란한 꾀꼴 새의 매끄러운 울음 끝에 구슬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 받아 얼른 또 넘겨 빽빽한 가지 틈을 요리조리 휘돌아 구르듯 살아가면 앞길이 열리기로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길은 물이 흘러가는 길
산마을 어느 집 물 항아리에 나는 물이 되어 고여 있다가
바람에 출렁 거려 한 줄기 가느다란 시냇물처럼 여기에 흘러왔을 따름인 것입니다.“
김관식의 <자하문紫霞門 밖>의 도입부다.
“놀라워라. 어느 새 말렸다 풀어지는
한 오리의 희미한 실구름 같이
흐르던 피 뚝 끊어지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어려운 한고비를 숨결 넘어 가면은 사랑도 원수래도 살뜰히 잃어버려 삶이란 한참 스쳐간 소나기비 선잠 깨인 꿈자리 그게 아니면 서글픈 쓰디쓴 웃음이로다.
구을러 흩어지는 풀 이슬같이.“
김관식의 <풀 이슬같이>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 몸져 누운 지 이제 10년. /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길은 없는 것이냐. /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오장(五臟)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 생물학 교실의 골격표본처럼 / 뼈만 앙상한 이 극한상황에서…… /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 디이젤의 엔진 소리 /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 기침이 난다. /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 방안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 것, / 백금白金 도가니에 넣어 단련鍛鍊할수록 훌륭한 보검寶劍이 된다. /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 「병상록(病床錄)」
<대한민국 이문세>라는 공연광고 포스터를 보면서 <대한민국 김관식>을 떠올린 것은 김관식 같은 시인이 어느 시대에나 한 두 사람쯤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대한민국 아무개> 라고 쓸 수 있지만 그렇게 쓸 때 가장 어울렸던 시인 김관식, 그가 문득 그리운 것은 밤이 길어서 그런가?
계사년 시월 초나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