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어구풀이
-동짓(冬至) :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에 있는 24절후의 하나. 일년 중에 가장
밤이 긴 절기임.
-한허리 : 한가운데, 가운데 토막
-춘풍(春風)이불 : 따스한 봄바람이 감도는 듯한 젊은 색시의 이부자리
-서리서리 : 길고 잘 굽는 물건을 포개며 휘감아 올리는 모양
-어룬님 : 정든 사람. 정든 서방님. 한편 ‘얼은 님’으로 보아서 취위로 꽁꽁 언
서방님으로 해석하는 설(說)도 있음.
-밤이어든 : 밤이거든
-굽이굽이 : 구불구불 굽은 곳마다
♣해설
-초장 : 동짓날 그 기나긴 밤중 한가운데를 너무 기니까 두 동강이를 내어서
-중장 :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 서리 휘감아 넣어 두었다가
-종장 : 정든 서방님이 남몰래 깊은 밤에 찾아오시거든, 그걸 꺼내어 굽은 곳
마다 펴고 바로 잡아서 그 날 밤을 길게길게 잡아 늘여보겠다.
♣감상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낸다’는 시상(詩想)은 시간을 제마음대로
가름한다는 말이다. 동짓달이 아니더라도 임 없이 지내는 밤은 지루하고, 임과
함께 하는 밤은 한없이 짧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그 긴 밤의 한 토막을 잘라
두었다가 임이 온 밤에 펴 오랫동안 임과 함께 지내겠다는 것이다. 황진이의
시상은 이렇게 차원이 높으며 그의 주관(主觀)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도 자유
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리서리 넣었다가’ ‘구비구비 펴리라’는 시어
(詩語)는 일상용어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난, 그 언어기교(言語技巧)를 통해 시
적 용어로 훌륭하게 승화시키고 있다.
♣작가소개
황진이(黃眞伊, 생몰 연대 미상): 본명은 진(眞),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개성 출신으로 조선 중종 때의 명기(名妓), 어릴 때 사서 삼경을 읽고
시·서·음률에 모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했다. 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자처했으며, 시조 6수가 전한다. 그의 시조 작품
은 뛰어난 기교와 우리말을 쉽고도 곱게 다룬 독특한 솜씨로 이름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