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6ㄴ~9)
루카 복음 13장 6~9절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말씀이다. 루카 복음
13장 1~5절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는 멸망에 대한 경고라면, 13장 6~9절은
지금이 하느님께서 인내하시는 때로 곧바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함을 교훈하는 비유이다.
보통 구약에서 포도나무(시편80,9~12; 이사5,2)와 함께 무화과나무(예레24,3;
호세9,10)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a fig tree)도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할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문맥상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티스'(tis; a man)는 '포도밭 주인'인 '하느님'을,
'열매'는 '회개'를, 그리고 13장 7절의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특별한 기대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심어 놓았다'에 해당하는 '페튀튜메넨'(pephyteumenen; planted)는
'심다'는 뜻의 '퓌튜오'(phyteuo)의 수동태 완료 분사이다.
여기서 동사를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을 가리키는 완료 시제로 표현한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심어 놓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이제 완전히 자라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13장 6절의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에 해당하는 '제톤 카르폰 엔 아우테'
(zeton karpon en aute; and sought fruit on it)에서 '제톤'(zeton)의 기본형
'제테오'(zeteo)는 '집요하게 구하다', '열심히 찾다'는 뜻이고, '카르폰'(karpon)은
'열매'를 말한다.
여기서 '제톤'(zeton)은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포도밭 주인이
그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구하기를 계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무렵부터 계속해서 그 무화과
열매를 기다리며 열심으로 찾았던 것이다.
루카 복음 13장 7절에는 구체적으로 삼년 동안 열매 얻기를 구했다고 말한다.
'보게, 내가 삼 년째'에 해당하는 '이두 트리아 에테'(Idu tria ete; Behold three
years)에서 '보라'는 뜻의 감탄사 '이두'(Idu)를 문장 서두에 사용하여 '삼 년'(tria ete)
을 강조해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 동안 열매 맺기를 기다린 포도밭 주인의 인내를 암시하는데,
바로 지금까지 심판을 유보하시어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 '삼 년'은 하느님께서 회개의 열매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신 오랜 기간을 상징하지만,
하느님께서 마냥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을 '삼 년'이란 시간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회개할 시간이 무제한을 주어지지 않고 한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13장 7절에 '잘라 버리게'에 해당하는 '엑콥손'(ekkopson; cut down)이
등장한다.
이 동사의 기본형 '엑콥토'(ekkopto)는 '나무를 잘라내다' 또는 '완전히 제거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는데, 부정과거는 완료적 결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제거, 즉 영원한 멸망을 가리킨다.
이제 루카 복음 13장 8절은 비록 포도밭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도 재배인이 끝까지 열매 맺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한 이 구절은 하느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말미암아 유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의 노력은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것'인데, 이것은 별개의
행동이 아니라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주기 위한 한 가지 행동을 중복하여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주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고, 보호자 성령님을 통해 은총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하느님의 심판이 유보되었는데, 유보된 시간도
거름을 주어 열매를 기다리는 '한 해'라는 한정된 시간이다.
따라서 '거름'에 해당하는 '코프리아'(kopria; dung)로 비유된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바로 이때가 '구원의 시기'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국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비유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