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3. 큐티
창세기 41:1 ~ 24
바로의 꿈
관찰 :
1) 바로가 꿈을 꾸다
- 1절.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요셉은 여전히 보디발의 집에 있는 정치범 수용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감옥에서 나오게 해 줄 것을 기대하며 희망을 품었던 요셉은 이 2년의 시간이 참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 소망을 다 내려놓게 되었을 즈음에 하나님이 일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서 바로에게 꿈으로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 2절 ~ 4절.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 바로의 꿈은 2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꿈의 내용은 일곱 마리의 살진 암소와 일곱 마리의 파리한 암소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일곱 마리의 흉한 암소가 일곱 마리의 살진 암소를 먹는 아주 흉한 꿈이었습니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가운데 바로는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 5절 ~ 7절.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 두 번째 꿈도 흉했습니다. 충실한 일곱 이삭과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가는 일곱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흉한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으로 인해서 바로는 번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번민하는 바로에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추천하다
- 8절.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바로는 두 번째 꿈을 꾼 뒤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침이 되기를 기다려 애굽에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고, 해석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예지몽이었기에 인간이 이것을 해몽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행하시면서 그 계획을 통치자에게 보여주시고 미리 알려주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통치자는 바르게 그 나라를 이끌지 못합니다.
-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 술 맡은 관원장은 그제야 요셉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보디발의 집에 있던 정치범 수용 감옥에서 자신을 극진히 섬기고, 또 자신의 꿈을 해몽해 주었던 요셉에게 복직이 되면 감옥에서 꺼내주겠다 약속을 해놓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그것을 “내 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을 볼 때 술 맡은 관원장이 그렇게 악하거나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위해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과 관련된 일을 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의 비서실장 정도 되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10절.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보디발의 집 감옥에 가두었을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역시 기억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떡 굽는 관원장이 죽고, 그 사건과 관련된 숙청이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 11절.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 술 맡은 관원장은 그 때 자신과 떡 굽는 관원장이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때의 꿈도 뜻이 있는 꿈이었다고 바로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술 맡은 관원장이 보통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뜻이 있는 꿈을 분별하고, 그것을 확인한 사람인 것입니다.
- 12절 ~ 13절.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 술 맡은 관원장은 그 때 꿈을 요셉이 풀어주었고, 그 꿈대로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억울함이 풀리고, 죽을 위기에서 살게 된 이 놀라운 사건을 잊어서는 안되는데 잊었던 것입니다. 그런 요셉을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의 꿈으로 인해서 기억하게 되고, 바로의 꿈을 해몽하기 위해서 추천하고 있습니다.
3)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이야기하다
- 14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 바로는 즉시 요셉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요셉을 부르러 보디발이 갔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를 알현하기 위해서 수염을 깎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수염을 기르는 문화가 있었지만, 애굽에서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의를 벗고 새 옷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갔습니다.
- 15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 바로는 이 때까지는 요셉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술 맡은 관원장을 신뢰하기에 요셉을 부른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16절.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요셉은 자신이 꿈을 해몽하는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신다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있게 바로의 꿈을 이야기하면, 그 꿈에 대해서 편안한 대답, 즉 그 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 꿈에 대한 대처 방안까지 이야기 해 줄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이 바로 앞에서 그 꿈을 온전히 해몽해 주실 것이라는 언질을 미리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이 커서 요셉은 바로 앞에서도 담대히 이렇게 말하고 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17절 ~ 24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한데 이전에는 없던 내용을 보충합니다. 파리한 암소 일곱이 살진 암소 일곱을 잡아 먹었지만, 먹은 듯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 했지만 애굽의 그 누구도 이 꿈을 해몽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요셉이 입학한 고난 학교, 혹은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의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소망스러운 상황으로 순식간에 역전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주십니다. 성경에서, 또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역전을 이루는 것을 즐기십니다. 삼손, 에스더, 다니엘, 바울 등등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전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은 가장 깊은 바로의 시위대장의 집 지하에 있는 정치범 수용 감옥에서 바로 외에는 자신보다 높은 자가 없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신분이 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요셉은 정말 절망의 시간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2) 요셉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시간에, 헤브론에서 야곱이 요셉이 죽은 줄 알고 고통 속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은 일하신 것입니다. 유다가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그 며느리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게 되는 상황,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상황, 요셉을 팔아버린 죄책감으로 무엇을 하던지 기쁨이 상실된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바로에게 알려주신 미래에 대한 해석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은 애굽의 바로이지만, 또한 이스라엘의 가정이기도 했습니다.
3) 하나님은 애굽의 통치자 바로에게 미래에 있을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14년 동안 일어날 일을 알려주심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사람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동행을 함으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사인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해석 능력을 잘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오늘날도 동일하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4)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큰 일을 준비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은 실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시간을 결정하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요셉을 졸업시키시고자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도 고난 학교,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의 학교에서 졸업 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가 아니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 모든 일이 순식간에 역전이 되는 일을 기대합니다.
2)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합니다. 그것이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이 어그러져 가고, 힘들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