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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면적 679ha(3.415/ 20%)
농가수 1,757호(4,423/ 39%)
생산량 503ton(3,624/ 14%)
위는 전남농업기술원 차시험장 자료에서 발췌한 2005년도 하동차의 현황이며(()안은 전국 합계와 전국 대비율), 위의 현황은 당분간 하동차 극성기(極盛期)의 수치로 기록되리라 생각된다.
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추산해 보면, 2005년도 각 농가당 연간 차엽 생산량은 약 300kg이다. 이는 이른 봄(4/15~5/15)에 손으로 딴 고급 잎차용 차엽 60kg(전체의 20%)과 기계로 딴 대중형 티백용 차엽 240kg으로 나눌 수 있고, 금액으로는 \1,740,000(60*25,000=1,500,000, 240*1,000=240,000. kg*단가=판매액) 가량이다.
차엽 생산농가의 채산성을 살펴보면, 지대(地貸)와 재배 및 관리의 비용 등은 모두 제쳐두더라도, 농촌 여성의 1일 임금이 \40,000이므로, 우전급(4/15~4/25) 1kg, 세작급(4/26~5/5) 2kg, 중작급(5/6~5/15) 3kg 등을 1일 기준 채엽량이라 하면, 차엽의 kg당 단가는 우전급 \40,000, 세작급 \20,000, 중작급 \13,000 등이 최저한계선이다.
2006년도부터는 수매 가격을 낮추거나 수매를 제한 또는 거부함으로써, 고급 잎차용과 대중형 티백용 차엽의 수매가 격감하였는데, 2007년도에는 5월에 들어서자마자 고급 잎차용 차엽의 수매가격이 kg당 \10,000 이하로 추락하였고, 대중형 티백용 차엽은 판로 자체가 막히게 되었다.
우리차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던 1980년대, 우리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화개차(花開茶, 하동 화개 지역에서 나는 하동차의 주력)가 최고의 성가(聲價)를 올렸었는데...
초기의 하동차는 그 소규모성 때문에 과다한 시비(施肥)와 농약의 해악이 없는 친자연적 재배가 담보되었고 그 영세성 때문에 자동화된 공장형 기계제 찐차 설비 대신에 가내수공형 수제 솥 덖음차의 제법이 적용되었으니, 정성이 듬뿍 담긴 고품질의 수제 솥 덖음차는 후진성(달리 말해 순진성)의 역설이 아니었을까?
대규모 차밭을 소유한 단일 거대기업형 위주의 제주도차나 기업형이 주도하는 보성차 등과는 달리, 하동차는 소규모(평균 1,000평 남짓의) 차밭을 보유한 다수의 차농가와 중소규모의 차 제조업체가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차잎의 생산은 다수의 농가에서 담당하고 차의 제조와 판매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제다업체에서 전담하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
“초의의순(草衣義恂: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智異山花開洞 茶樹羅生四五十里 東國茶田之廣料無過此者(지리산화개동 다수라생사오십리 동국다전지광료무과차자;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사오십리에 걸쳐 비단결처럼 펼쳐져 있는데, 우리나라 차밭으로는 이보다 넓은 곳이 없다.)’
6,70년대의 화개에서는, 경작이 어려운 산비탈 돌밭이나 대나무 아래에 그나마 군데군데 자라나 있던 차나무에서 봄가을에 차잎을 따서 가용(家用)차나 만들었을 뿐이었고, 제대로 된 차밭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차를 만들어 파는 집이라곤 조모씨네와 홍모씨네가 고작이었다.
8,90년대에 들어 화개차가 일부 호사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얻게 되자, 너도나도 차밭을 일구어 다듬고 앞 다투어 차를 만들게 되었다.
오늘날 화개차의 재배면적은 200여년 전 초의와 추사가 보았었을 수준을 너끈히 넘어섰다고 짐작된다. 이는 화개 차 농민들의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나, 골짝골짝에 살아남아 있던 우리의 재래 토종 차나무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졸고 <야생차(野生茶)를 에 대한 착각과 집착>(2005.6)> 중에서-”
“출발이 늦었던 화개차가 보성 영암 강진 해남 제주도 차를 누르고 차인(茶人; 차에 대해 특별한 소양을 갖추었다고 자인하는 무리들이, 일반인들과 구별하여, 스스로를 높혀 부르는 이름)들의 각광을 받게 된 까닭은 토질 지형 기후 등의 환경요인과 재배방식과 제다법 등이 결합된 성과이다.
수령이 어리고 소규모 산식(散植)으로 재배한 화개차는 노화가 시작된 대규모 밀식(密植) 재배한 타 지역의 차에 비하여 원료의 품질이 우수했고, 규모의 영세성 때문에, 일본식 대규모 기계제 찐차보다 향미가 좋은, 소규모 수제 덖음차의 길을 강제(?)당하였다. 그랬던 화개차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차나무가 크고 재배면적도 늘어나 원료차엽의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자, 이에 발맞추어 농협을 비롯한 유력 제다공장들의 대형화 기계화(대부분 덖음차를 유지하면서)가 진행되었고, 특정 공장은 화개차의 근본에 반하는 일본식 찐차 시스템을 수용하게 된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혀 저렴한 대중차의 생산을 늘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고급 수제 덖음 잎 녹차의 본령을 포기한 화개차는 국제 경쟁력을 도저히 갖출 수 없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화개차는 끝내 사멸하고 말 것이다!
화개차 자멸의 길은 점점 가속화되는데,...
원료차엽의 수급이 담합에 의해 과점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농협을 앞세워 화개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차엽을 일괄 수매하면서 그 가격을 몇몇이서 맘대로 결정하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마저 부정하면서, 가격으로 원료차엽의 양과 질을 통제하려 한 저들의 무지막지한 행위(아마, 뭘 잘못 했는지 아직도 모를 것임)가 끼친 폐해는 실로 엄청나다.
이들의 행태는 다수 대중의 공익과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마저 무시하고 자기 패거리의 금전적 이익에만 혈안인 ‘후진성 저질 배금주의’와 '전근대성 미숙 자본주의' 의 전형적 본보기이다.( '천민자본주의'라고도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참으로 천박한 표현이다! '천민'이라니?!)
이로 말미암아, 하루라도 빨리 키워 높은 값을 받으려는 농민들의 야간 비료살포가 본격화 되고, 개별 협상의 여지가 없는 종량제 아래에서 차엽을 한잎한잎 손톱으로 꺾어 따지 않고 손아귀에 움켜쥐고 뜯어 따기 시작했다.
관(官)에서는, 이 과점이라는 엄연한 범죄행위를 수수방관하였다. 또,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제주차 전문가인 이모 박사를 초빙하여, 불러 모인 농민들에게 ‘질소질 비료를 많이 줄수록 차가 맛있어지고 많이 난다’는 면죄부를 주어, 과도한 화학비료의 시비를 방조하였다.
이 같은 경향은 2000년대에 들어 봉지차(티백)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그 찬란했던 화개차의 르네상스는 끝났다!
차나무가 천연청정성과 자생건강성을 잃으니 원료엽질은 날로 저하되어, 제품 포장의 고급화에 반비례하여, 담긴 차의 형색향미기(形色香味氣)는 날로 열악해졌고, 소비자들의 외면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졸고 <하동차의 현실; 그 과점의 폐해(2006.6)> 중에서-”
2008년 현재에도 하동차의 재배면적과 농가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이는 쉽게 갈아엎을 수 없는 다년생 심근성 상록수라는 차나무의 특질 때문이다.
하동차의 생산이 순조롭다면, ha당 고급 잎차용 차엽 생산량이 200kg일 때, 고급 잎차용 차엽의 총 생산량은 135ton(0.2*679=135)이고, 가공한 마른차로는 27ton(100g짜리 270,000 봉지)이며, 총 수익은 \8,100,000,000(100당 평균가를 \30,000이라 하면)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언감생심!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날개를 퇴화시켜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기사회생하느냐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하동차를 튼실하게 키워내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농법부터 걷워치우고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거래는 끝장내어야 할 것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고, 나무에는 달리지도 않으니까.<8315 麗春嘉樹>
1.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한 송이 차잎은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 깨끗한 물과 넉넉한 흙이 피워낸 천지(天地)의 총아(寵兒)이다. 아무리 정성스레 만든다 해도, 제대로 길러낸 차잎이 아니라면, 향미와 기운이 모자란 차가 된다. 맛있고 힘찬 완성차는 튼실한 원료차엽의 반영(反影)인 셈이니, ‘차나무 기르기’가 ‘차 만들기’를 앞선다.
가야의 칠불사 창건 설화, 고운선생의 진감선사비, 백운거사의 유차시, 경재선생의 화개차시, 서산대사와 내은적암, 추사선생과 쌍계사 금당, 초의선사의 다신전과 동다송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의 옥사발 같은 산세와 도화 뜬 맑은 물을 모두 갖추고 있는 무릉도원인 화개동천의 골짜기마다에는 고대 가야에서 근세 조선까지 웅장하게 이어져 내려온 우리차의 영화(榮華)가 전설처럼 스미어 있다.
다질링은 히말라야산의 아래에서 나고, 롱징은 시후(西湖)의 옆에서 나며, 하동차는 지리산 아래 섬진강 옆에서 난다. 해저 침강과 화산 분출, 빙하 침식 등을 겪은 적 없는 장엄한 지리산은 양분이 풍부하면서도 물 빠짐이 좋은 토질과 지형을 갖추었고, 섬진강을 따라 불어오는 따스한 남풍은 서늘한 산바람과 어우러져 차나무 생장에 알맞은 기후를 이룬다.
산천은 옛날 그대로인데 잘났던 인걸들은 다 어디로 갔냐고 물었듯이,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화개차의 불씨를 지켜낸 것은 돌팍 사이에 야생처럼(?) 내깔려 두었던 우리의 재래 토종 차나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하동 화개에서 차 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로서는, 무턱대고 자신이 기르는 차나무가 야생 차나무이고 그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차는 야생차라고 굳게 믿는 동료들과, 야생차의 진위(眞僞)는 따져보지도 않거나 속으론 의심하면서도 겉으로는 목청을 돋우어 야생차를 선전하는 이들을 흔히 만나게 된다.
야생이란 들판에서 제 스스로 생겨나서 자란 생물을 일컫는 말이니, 꿩이나 고라니 등의 야생 조수(鳥獸)나 억새나 도토리나무 등의 야생 초목(草木)에나 어울리는 말이고, 야생 차나무는 인적이 닿지 않았던 원시림 속에서 자생(自生)하는 차나무를 찾고 나서야 부를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심어 가꾼 차나무를 어찌 야생이라고 우긴단 말인가?(중략)
우리가 야생이라고 속거나 속고 싶거나 속이고 싶은(?) 차나무는 짧게든 길게든 방치(放置)되었을 뿐이다. 착각은 자유이나, 잇속을 숨긴 채 스스로와 남을 속여서야 되겠는가?
차는 선사 이래로부터 동아시아인들의 귀중한 마실거리였다. 때문에 차나무는 합목적적으로 재배되었고, 그 재배와 가공 기술은 개선되고 발전되어 왔다. 뭣 땜에 세월을 거스르려 하는지?
아그배나 똘배보다는 사과나 배가 탐스럽고 맛있는데, 차도 다르지 않다. 질 좋은 우리 차나무의 육종과 보급에 힘을 쏟아야 할 이 때에, 웬 야생차 타령이란 말인가?’-졸고 <야생차에 대한 착각과 집착>(2005.6) 중에서-
자동화된 대형 기계제 찐차 설비와 승용형 관리기를 이용하는 대규모 기계화 차밭을 추진하여 차 품질의 하향 획일화와 자연 훼손의 폐단을 드러낸 일본차와 민영화와 기계화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중국차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대중용 저가차를 생산하려면 대규모 차밭에서의 화학농법과 기계화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과다한 시비와 과도한 채엽은 농약의 남용과 차엽의 품질 저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토질, 방향, 표고, 경사도, 일조량, 풍향, 풍량 등 차밭의 입지 조건과 품종, 식재 방식, 비료 주기, 병충해 방제, 잡초 제거, 가지치기 등의 재배법을 세밀하게 살피고 따져야하는 친자연농법은 통상(通常)의 화학농법보다 훨씬 까다롭고 힘들다.
그렇지만, 산지(山地)차밭에서, 천혜의 자연 조건을 살린 친자연 농법으로, 고품질의 차를 만들어내는 것이 화동차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여 지속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믿음을 버릴 수는 없다.<8326 春樹>
2.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후롱징(西湖龍井), 리산우롱(梨山烏龍), 우지교구로(宇治玉露), 다질링(Darjeeling), 우바(Uva),...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이름난 차들이 지명이거나 지명을 앞세우는 것은 그 차들이 그 지역의 자연조건에 알맞은 품종과 재배방식으로 기른 최선의 원료차엽과 그 원료차엽에 적합하게 정립된 최적의 제다법이 만나서 이루어진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7,80년대에 부활하기 시작하였던 우리차는 재래의 차산업과 차문화가 단절되다시피 했으므로, 전해 내려와 남아 있는 전통(?) 제다법이 매우 박약하였다.
홍차권인 인도권이나 아프리카권이 아닌, 녹차권인 동아시아 중일 양국의 당시 제다법은 손으로 솥에서 덖어 만드는 재래형 덖음녹차의 중국식, 공정별 기계를 선별 적용하는 개량형 오룡차의 대만식, 자동화 대규모 기계식 찐녹차의 일본식이 주류였다.
손으로 솥에서 덖어 만드는 재래형으로 출발한 화개차는, 솥에서 덖어 익히고 비비거나 누르거나 덖어 말리는 롱징(龍井), 비뤄춘(碧螺春), 마오펑(毛峰) 등과는 달리, 일부 중국차에서 채용하는 솥에서 덖고 꺼내어 비비기를 반복하는 제법이었는데, 온돌방에 널어 말리기를 더하기도 하였다.
이후 화개차 제다의 여러 공정에는 기계와 개량형 공정이 무더기로 혼입되었는데, 대형 자동식 찐차 기계 설비, 원통형 기계 덖음솥(초청기(炒菁機)), 비빔기(유념기(揉捻機)), 털이기(해괴기(解塊機)), 열풍 건조기, 냉풍 건조 방식, 과도한 마무리 덖기 등이 그것들이며, 품질 향상보다는 생산성 제고가 주된 목적이었다.
90년대부터 오늘까지 위의 경향이 본격화되고 심화되어 오는 동안, 가혹한 경쟁 속에서 제다업체는 양극화되고, 신비주의로 치장한 명인(名人?)과 명가(名家?)가 아닌 군소 업체들은 몰락하였으며, 원료엽 생산과 제다 부문은 분리되어 대립하게 되었다.
초기 화개차의 경쟁력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맡고 손으로 느끼면서 만드는 실천 경험을 통해 이룬 것이었는데, 축적하고 정립하지 못한 채 왜곡되고 도태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되돌릴 수는 없으나 다시 접목할 수는 있지 않을까? <8321 春樹>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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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하동차 재배인들에게 드리는 고언!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포함하며 vision을 제시하면 이렇습니다... 꼭 해야할 일 1. 극단적으로 비료+ 농약 친 차밭을 갈아 엎으라! 2. 유기농 인증을 받아라! 3. 녹차는 그만 만들고 발효차 만들어라!(그렇다고 녹차를 만들지말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4. 3-4년 새로이 유기농으로 차밭 일구어 다시 시작하라! 5. 보성지역 찻잎으로 제다하고 하동차라고하는 소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주시길....올해도 원하시는 바 [선친의 깊은 뜻 헤아리며 차농사에 임할 고려다원]을 비롯한 여러 하동 차재배하시는 분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낌니다...._()()()_
차밭마다 조금씩이라도 환경이 다르니..각각 차밭마다 차맛이 다를텐테....찻잎을 일괄로 수매하는 것은...수제품의 차를 생산하는 곳에서는 썩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그 다원에서 나오는 찻잎으로 그 다원의 제다인이 제대로 만들어야 좋은차 혹은 개성있고 차별적인 그 다원만의 차맛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물론 찻잎을 따기도 여건이 좋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고 지역의 발전을 위한 감도 있겠지만 수제품으로 생산되는 차라고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차밭의 찻잎을 가지고 제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차나무(차밭)에 더이상의 위해적인 방법은 근절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닌곳들도 많겠지만,솔직히 예전의 녹차맛과 지금의 녹차맛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다른 차밭끼리의 찻잎이 섞이고,또는 다른 지역의 차를 가져와 차를 만들고....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이 차맛을 다르게 만든 요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힘들겠지만 무엇보다도 차밭을 안전한 음료의 원초 기지로서 되돌려 놓아야 하고 차나무 스스로의 본래의 기운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렵고 바꾸기 힘든 난제일 수도 있지만 신뢰로서 승부하는 것이 하동의 차 또는 화계의 차 또는 구례의 차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다인들의 위와 같은 행태는 비단 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좋은 차를 마시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차인들의 희망사항이지만 그만한 댓가를 지불하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살아남는 것이 공급자의 생리라는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1차생산자와 최종수요자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간 매개자들의 역할 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차 제조업자가 1차 생산자와 직접 거래만이 어느정도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뭏던 하동의 명예가 다시 살아나서 적당히 비싼 가격에 좋은 차를 음다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1차 생산자..2차 재조업자란 어떤 의미 인가요..^^;..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설명 부탁 드립니다...^^...()
요몇일전에도 하동을 두루 둘러보고 왔습니다. 섬진강변을 따라 하동읍까지 가다보면 차 밭마다 화학비료 푸대가 쌓여있는걸 지나가면서도 볼수있었습니다. 또한 쌍계사 계곡과 칠불사 계곡도 매 마찮가지였습니다. 마냥 차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가슴아픈 일이지만 이제 화개의 야생차의 신화는 끝이 보이고....???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지만 화개의 차는 이미 추락해 버려서 다시는 날수없을것 같네요... ^*^!
유기농퇴비 포대일지도.../ 백성과 하늘을 위하신다는 분께서 회생의 희망이 없다는 그런 가혹한 속단을...? 즐거우십니까?
즐겁지않은건 사실이지만 잘못을 덥어 두려는 것보다는 백배 났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직접 확인까지 했습니다. 유기농 퇴비 푸대 아닙니다... ^*^! 저는 우리농업을 무지 사랑합니다. 어느날엔가 사랑이 반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반감은 우리농업을 살리기위한 극약이라 생각했기에 서슴없이 칼날을 세웠습니다..자본주의의 논리속에서 화개의 차농민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개척하지 않은 이상 화개의 차는 더이상 비상하지 않을것입니다. ^*^
제 생각에는 글이 올라오고 올려 졌다면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이 원하는 얘기만 들을 수는 없겠지요...그러한 생각이 모여서 우리도 모르게 다음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동안 우리나라는 우리차의 대해서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에 아무도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결국은 그것이 우리차의 추락을 자초한 것일수도 있다고 봅니다.이제는 우리차의 대해서 서로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런 시간들이 훗날 우리차의 내성을 기를 것이며 튼튼한 우리차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정 앞에 모든 어려움은 극복 되는것이라 믿는 사람입니다...한사람의 열정이 훗날을 기약하게 한 예는 역사에 무수하니 춘수님의 열정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올봄도 세상만사놓고 열심히 차만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