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년대 말 나는 군 법무관 시험을 보고 훈련을 받기 위해 광주 보병학교에 입소했었다. 그곳에는 두 종류의 그룹이 합류해 함께 훈련을 받았다.
한 부류는 나같이 고시에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법무장교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십년이라는 기나긴 복무 기간이 앞에 있었다.
다른 한 부류는 고시에 합격하고 짧은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한 사람들. 제대를 하면 전원 판사나 검사로 임관이 되고 시간만 흐르면 앞날이 보장되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잘나가는 사람들 에 대한 시기심이 있었다. 그런 시기심은 실속 없는 건방짐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독특한 겸손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지방대를 나온 그는 얼굴도 미남이 아니고 덩치도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공손하게 상대방의 훌륭한 점을 인정했다.
그와 같이 전방으로 발령이 나서 이웃 부대에 근무를 하게된 나는 건방졌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도 "나는 나다, 너는 누구냐?'’라는 식으로 대해 적(敵)을 늘여 갔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달랐다. 사병에게까지 겸손하게 그리고 살갑게 대해 줬다. 그는 항상 대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보다 못난 사람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동기생 중에서 그가 제일 먼저 장군이 됐다. 그 얼마 후 그의 장군 계급장에는 별 하나가 더 붙었다.
장군이 되어도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다름이 없는 것 같았다. 별판이 달린 검은 장군 차를 타고 어깨에 번쩍 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으쓱거릴 만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실패한 동기생들을 보아도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국제 형사재판관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유능한 판사들이 차출되어 근무하는 곳이다.
십여 년이 흐르고 그는 육십 대 중반이 되어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그는 국제 형사재판관으로 재 추천되어 유럽으로 향했다.
국제 형사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그를 좋아해서 다시 재판관으로 모신 것 같았다.
칠십 고개에 다다른 그는 아직도 열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십여 년 전 함께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사람들은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한번 그의 입에서 “나 같은 놈이 성공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모두 주님의 덕(德)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그는 철저히 겸손했다. 위선적 겸손이 아니고, 처세의 겸손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성공을 보면서 세상을 이기는 가장 무서운 힘이 겸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동기생인 그의 앞에 마음의 무릎을 꿇는다.
성경 속의 예수는 수건을 허리에 동여매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흙 묻은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고 말했다.
“너희가 주님, 선생님하고 부르던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 같이 너희도 남에게 그렇게 하도록 본(本)을 보여준 것이다.
첫댓글 모든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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