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경기에도 사랑의 온도탑 100℃ 넘었다
설 대목 경기가 썰렁하다지만 서울 달동네 사람들에겐 말 그대로 냉골이다. 고물가에 경기 한파까지 덮치면서 한 달에 열흘은 연탄불 없이 시린 냉기를 견딘다. 사회복지 단체에도 불경기에 팔지 못한 식품 기부만 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매년 연말연시를 맞아 전국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15일 100도를 넘어섰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4040억 원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1일 모금을 시작했는데 어제까지 4201억 원이 모여 기부 실적을 나타내는 온도계가 104도를 기록했다. 모금이 끝나는 이달 말이면 전년도 모금액(4279억 원)을 웃돌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피해가 심각했던 2021년과 2022년에도 115.6도로 펄펄 끓었던 사랑의 온도탑이다.
▷올해 모금에선 금융권의 기부금 증액이 두드러졌다. 연예인 팬덤기부도 새로운 트렌드다. 큰손들의 통 큰 기부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 안성의 노신사는 아내가 생전에 모아둔 동전과 장례비용을 합쳐 200만3550원을 내놓았다. 인천의 환경미화원은 지난 1년간 거리를 청소하며 주운 동전과 지폐 약 26만 원을 보탰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용돈을 모아서, 중년 부부는 아들이 무사히 전역했다며 감사 성금을 냈다.
▷팬데믹 이후 경기는 얼어붙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기부 인심은 오히려 후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자선지원재단 CAF가 매년 119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낯선 이를 도와준 적이 있는지 △돈을 기부했는지 △자원봉사를 했는지를 물어 산출하는 세계기부지수는 2022년 4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부지수 1위의 가장 관대한 국가는 5년째 인도네시아다. 상위 10위권 목록을 보면 미국(3위), 호주(4위), 뉴질랜드(5위), 캐나다(8위)를 제외한 6개국은 경제력이 중하위권인 나라들이다.
▷한국은 대만(91위), 프랑스(100위), 일본(118위)과 함께 88위로 여전히 하위권이다. 2014년 개인 기부금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뒤 기부 증가율이 정체 상태다. 기부의 특징은 하는 사람이 계속 한다는 점이다. 마음은 있는데 선뜻 시작을 못 하는 이들에게 전북 익산의 ‘붕어빵 아저씨’ 김남수 씨의 조언을 공유한다. 매일 붕어빵을 구워 번 돈에서 1만 원을 떼어 모아두었다 연말에 365만 원을 내놓는 기부를 10년 넘게 하고 있다. “목돈을 내긴 어려워도 하루 100원, 1000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매일 서랍에 누군가를 위해 1만 원을 넣을 때마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건 덤이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