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요한10,11-18)/ 반영억 라파엘 신부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착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양입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습니다. 스스로 내놓는 것입니다.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은총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성소(聖召)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부르십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자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 중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하느님 자녀에로의 부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소’ 하면 성직자나 수도자의 부름만을 생각하는데 사실은 성직자, 수도자 이전에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세례 이전에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기 부름을 받은 대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직자는 성직자로서,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삶을 살아야 하고 결혼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혼인 안에서 가정을 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성소는 더 높고 낮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양들을 알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면 이웃을 위한 희생, 봉사에 한몫을 다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부름입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의 양 떼를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양도 목자를 알게 되고 또 그의 음성에 기쁘게 달려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반가워야지 부담스러우면, 안 되겠습니다. 부담스러우면 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반가운 목소리, 기다려지는 음성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 만큼, 나도 주님을 알기에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모르면 그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 안에서, 또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를 알고 서로의 음성에 귀 기울여 주는 넉넉함이 그 구성원임을 확인해 줍니다. 한 주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웃을 위한 헌신과 희생, 봉헌의 삶을 새롭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성직자 수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영적 풍요로움에 도움이 되느니만큼 특별 성소의 부름에 응답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우리 공동체에서도 가까운 시기에 성직자 수도자 성소에 응답할 수 있는 젊은이가 나오길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는 고유한 생활 신분에서 나름대로 작은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희망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직자는 “복음 선포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고,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성찬의 빵과 함께 자신을 쪼개어 나누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모든이에게 드러냅니다”(프란치스코교황).
저는 누가 신학교 입학의 동기를 물으면 ‘오기(傲氣)로 갔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께 지나가는 말로 “신학교 갈까?” 하고 던져놓은 것이 어머니에게는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저에게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버스터미널에서 친구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대뜸 “너 신학교에 가야 하겠니? 신부 되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께 효도 해야지. 어머니께서 걱정하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 어머니하고 저의 어머니하고 그러셨답니다. ‘사위 삼았으면 좋겠다.’‘며느리 삼았으면 좋겠다.’ 실은 그 여자 친구보다 더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어쨌든 그 말씀을 듣고 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신학교 갈까?’가 아니라 “어머니, 저 신학교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반대는 시작되어 “신학교 가면 학비는 물론 용돈도 주지 않을 것이고 너와 나는 끝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서 “그래도 갑니다” 하고 버텼습니다. 그때 후원자가 생겼습니다. 바로 위 누나가 공무원이었는데 학비를 마련해주겠다고 제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때 누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안배였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원서를 준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본당신부님께서 추천서를 써 주실까? 실은 본당을 떠나 공부하였기 때문에 신부님을 잘 몰랐습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나?
그런 가운데 시골 공소를 방문하신 테오필라 수녀님의 “하느님의 뜻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힘들게 하지 말고 기쁘게 보내라”는 말씀에 어머니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입학할 때는 학비도 살림살이도 모든것을 어머니가 준비해 주셨습니다. 신학생 신분으로 있을 때 여자에게 전화만 오면 걱정하시고 신부가 되어서도 자나 깨나 걱정하셨습니다. 이놈이 끝까지 잘 살아야 할 텐데…그러면서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시면서 꼬박꼬박 졸기도 하시고, 그래서 묵주기도 한번을 몇 시간을 하시는 줄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도 나오고…그냥 주무시라고 해도 상관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당신이 할 것은 다 해야 한답니다. 졸음을 지적하니 자존심이 상하셨나 봅니다. 이런 어머니의 기도가 저를 여전히 지켜주었고 이제는 신부로 33년을 살았습니다.
한번은 여자 신자 분이 옆자리에 앉으신 것을 보고 ‘보기 좋지 않다’. ‘뒤를 돌아보지 마라.’고 편지를 쓰셨습니다. 미국 사목을 할 때 한번 편지를 받았는데 ‘공부할 때 용돈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게 가슴이 아프고 신학교 간다고 할 때 반대한 것이 안타깝고 면목이 없으시다’고 쓰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신부님 생각하면 한없이 기쁘다. 앞날을 보고 사는 것이 인생이니까 어려움을 잘 견뎌라. 집 걱정, 어미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하느님의 부르심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옆에서 잘 부추겨 줘야 하고 어떤 사람은 오기가 생기도록 해 주어야 하고요. 사실 ‘제가 신학교 갈까?’ 하고 얘기한 것도 시골 공소 회장님이 “너는 신부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시골 공소에 어울리는 4명이 있었는데 하나는 시집가고 하나는 수녀가 되고 둘은 신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르심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한마디 말이 귀한 열매가 맺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응답은 나의 몫입니다. 하느님은 부르시고 나의 협력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특별히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입기를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참된 목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꺼이 선택하시길 기도합니다. “어느 곳에서 살아가고 있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투신합시다. 투신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집시다.”(프란치스코 교황).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