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ION NOTE 1] 1930~80년대 유럽으로의 환상적인 시간여행! 세계대전부터 종전 그 후의 불안한 유럽의 초상까지… 전설적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영감을 얻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Zubrowka)’의 온천관광 도시에 위치하고 전 세계가 동경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현재가 아닌,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유럽의 모습을 담고 있다.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을 비롯해 또 다른 주인공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외관과 함께 내면도 변화를 겪는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중심 사건인 마담 D. 피살사건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벌어지게 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호화스러운 전성기를 누리던 호텔과 주브로브카의 주민들, 그리고 그 평온하고 예술을 사랑하던 시대 자체는 종결되고 만다. 이윽고 전 유럽을 뒤덮은 끔찍한 대학살 사건과 전쟁들이 발발하게 되고 계속되는 나치즘, 파시즘의 도래는 영화 속에서 구스타브-제로와 드미트리-조플링의 맞대결과 국경에서 신분수색을 하는 헌병대의 등장으로 묘사 되는 기상천외하고 미스터리한 모험담 이면에 숨겨진 유럽의 어두운 과거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가 지나고, 모든 것이 쇠퇴해가는 지점에 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평화로웠던 ‘주브로브카 공화국’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관객들 앞에 빛 바래고 텅 빈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이야기의 흐름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앞서 밝힌 것처럼 유럽의 전설적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 후 아내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작가의 기구한 삶과 직관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읽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시작하게 된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이 같은 철학적 메시지까지 덧발라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이전 작품들 이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사유거리를 던진다.
[PRODUCTION NOTE 2] 오래된 백화점이 모두가 동경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재탄생? 동계올림픽보다 더 짜릿한 스키 추격신! 알고 보니 미니어처? 실제 그 이상의 공간,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창조해내다!
제작 단계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호텔의 명성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는 일이었다. 호텔의 전성기인 1930년대, 그 이후 파시즘에 장악 당하는 모습, 그리고 공산주의 시대에 몰락하는 모습까지. 호텔은 시대에 따라 여러 변화를 거치게 되므로 제작진은 유럽적인 특징과 함께 시각적인 유연성도 엿보이는 장소를 물색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곳은 유럽에 위치한 리조트와 호텔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철거 또는 대대적인 재건축 작업이 필요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 호텔 촬영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우연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독일 동부 도시 ‘괴를리츠’에 있는 거대한 백화점을 발견했다. 제작진은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 텅 빈 백화점 안에 시대를 반영한 고풍스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세트를 지어, 기상천외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이 펼쳐질 주요 무대를 완벽하게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외에도 괴를리츠에서는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에서 근대적인 아르누보의 곡선이 돋보이는 특색 있는 건축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어 주요 촬영지로 낙점되었다. 다른 촬영도 괴를리츠의 인근 지역에서 이뤄졌다. ‘체크포인트 19 감옥’은 1시간 거리에 있는 츠비카우에서, ‘멘들스 빵집’과 ‘미술관’은 드레스덴에서 찾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제작진은 호텔 외관을 정교한 미니어처 세트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구스타브와 제로가 모험을 떠날 때 등장하는 케이블카와 스키 추격신 역시 대부분 미니어처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창고에서 미니어처 모델을 만들어 외부로 옮겨와 자연광 아래서 카메라로 미니어처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며 촬영을 진행해 자연스러움을 극대화시키고자 했다. 가장 큰 스케일의 주요 스키 추격신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이 작업을 위하여 앤더슨 감독은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에서 함께 했던 이들과 조우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애덤 스톡하우젠은 “한 장소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매트 페인팅(합성 배경 그림), 미니어처 세트, 그리고 다른 장소로 나뉘어서 하나로 완성된 경우가 많다. 힘든 도전이었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며 제작진들이 매 순간 모든 장면들과 배경에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확인시킴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높은 완성도를 자신했다.
[PRODUCTION NOTE 3] 틸다 스윈튼, 단 한 컷을 위해 분장만 무려 5시간 한 사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전격 지원에 나섰다! 오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화려하고 클래식한 의상, 소품, 분장의 향연!
틸다 스윈튼이 84세의 미망인 마담 D.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매일 꼼짝없이 5시간 동안 헤어와 메이크업 분장을 해야만 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비로소 틸다에게 노인 분장을 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정말 특별한 느낌이 더해졌다. 그녀 역시 즐거워 했다.”며 그녀의 연기투혼과 완벽한 노인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분장을 위해서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해리포터> 시리즈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고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마크 콜리어 분장감독과 ‘웨스 앤더슨 사단’ 프랜시스 해논 등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들은 “틸다의 팔, 가슴, 목, 등에 보형물을 잔뜩 넣었고, 끝도 없는 가발에 백내장으로 인한 콘택트 렌즈, 나이에 어울리는 치아, 귓불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작업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이토록 섬세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앞서 공개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예고편 속에 과연 틸다 스윈튼이 진짜 나왔는지 관객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해 전 세계를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했다. 이외에도 마담 D.의 전체적인 의상 스타일은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클림트에게 영감을 받아, 분장 외에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또한 영화계뿐만 아니라 패션계 역시 사랑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을 위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바로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가 사용하는 빈티지한 여행가방과 구스타브 일행의 뒤를 쫓는 무자비한 킬러 조플링의 시그니쳐 아이템인 검은색 가죽재킷이 프라다의 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영화 속 시대 배경인 1920~30년대에 출시 됐던 프라다 빈티지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것으로, 오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을 위해 새롭게 제작되어 더욱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지난 베를린 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프라다 플래그쉽 스토어에는 마담 D.의 풀네임이 그대로 박힌 여행가방 등 영화 속 소품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많은 패션피플과 영화인들 사이에서 화자 되었다. 이처럼 오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웨스 앤더슨의 감각이 담긴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과 소품, 분장들의 향연을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은 새로운 스크린 아트의 극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엔 다시 없을 호텔이다. 배경은 주브로스카 공화국이라는 상상의 동유럽 국가다. 중심은 벨에포크 시대의 때갈을 반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특급 호텔이다. 호텔의 콘시어지 구프타브(레이프 파인즈)는 외로운 귀부인들의 훌륭한 위로자다. 아랍계 이민자인 제로(토니 레볼로리)는 콘시어지의 가르침을 받아 견습사원이 된다. 어느 날 호텔에 투숙했던 80대의 대부호 마담 D(틸타 스윈튼)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구스타브는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무고함을 입증하고자 탈옥한 구스타브는 마담 D가 유산으로 남긴 걸작 <사과를 든 소년>을 되찾는 과정에서 제로와 함께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은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최대 화제작이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역대 웨스 앤더슨 영화 중 가장 유쾌하고 대중적이며 장엄한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개인들의 역사를 개성적으로 파고들던 웨스 앤더슨의 시야가 역사적으로도 넓어진 것은 분명한 변화다. 그만큼 공감대도 넓어졌다. 파시즘, 그리고 이어진 냉전 시대가 양산한 폭력과 문화적 불모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락은 20세기의 기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살인사건에서 출발한 미스터리는 어느 순간 문명사적 지평으로까지 확장된다.
화려한 캐스팅도 기대감을 높인다. 앤더슨 사단이던 틸다 스윈튼, 빌 머레이, 윌렘 데포를 비롯해 새로 호흡을 맞춘 레이프 파인즈, 시얼샤 로넌, 주드 로 등 명품배우에다, 프라다 CF에서 만난 적 있던 레아 세이두까지 합류했다. 스쳐가는 조연들까지 모두가 신스틸러일 정도다. 빈티지하면서도 세련된 의상, 가구, 소품들도 심상치 않다. 앤더슨의 전작처럼 스토리는 창의적이며 무대미술은 섬세하고 완벽하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독창적이고도 장인적인 영상미학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화면비율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영화의 리듬은 우아하면서도 스릴 넘치게 전개된다. 체크포인트 감옥, 맨들스 빵집, 미니어처 세트로 지어진 케이블카와 스키 활주로 장면 등도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영화는 낡았지만 매혹적이며, 화려하지만 애수에 젖어 있고, 여유롭지만 긴박한 시대의 공기를 상상해냈다. 이전의 영화들이 달콤하고도 멜랑콜리한 디저트 같았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다채로운 감성들이 어우러진 만찬 같은 작품이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우리를 긴장시키지만, 유머와 관용으로 폭력과 증오를 끌어안는다. 글 송효정(영화평론가) 2014-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