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대피소 안은 덥다. 더온 온도 때문에 목이 더 마르다.
몇 번 일어나 배냥 옆주머니의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3시가 채 못되었는데 국공 직원이 랜턴을 켜고 올라온 산객들에게 훈계를 하고 있다.
3시에 산행시작 시점은 노고단 대피소이지 성삼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과태료르르 부과할 수 있다고도 한다.
바람없는 하늘엔 큰별들이 반짝인다. 기온은 5도를 윗돈다.
3시에 일어나 3시 반에 출발해 일출을 보고 임걸령 샘에서 아침을 해 먹고
피아골로 내려가 12시 20분 구례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여러번 일어났기에 알람을 끄고 3시가 지나자 배낭을 들고 로비로 나온다.
3시 반이 지나자 얼굴이 푸석한 바보가 배낭을 들고 계단을 내려온다.
더운데다 쉴새없이 드나드는 사람들,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한 숨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짐을 나눠 조정하려는데 안 가면 안되겠느냐고 한다.
짜증이 나려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혼자 반야봉 갔다가 되돌아오겠다고 한다. 반야봉은 같이 안가더라도
천천히 나와 노고단 올랐다가 임걸령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며
노고단 탐방예약을 내 이름으로 해 두었다고 말한다.
바보의 배낭에 물을 넣고 다운 점퍼를 입고 혼자서 노고단 고개 입구에 서니
3시 50분이 다 되어간다.
노고단고개 통제소엔 벌써 불이 켜져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복면을 한 건장한 남자가 입구에 서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일행을 기다리나 했는데 빠른 걸음으로 날 지나치며 장터목까지 가느냐고 한다.
난 반야봉만 다녀오겠다고 한다.
가벼운 배낭을 매었는데도 걸음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랜턴 불빛이 나의 발밑을 비추더니 한 떼의 산객들이 지나간다.
천왕봉까지 간다고 한다. 이제 난 천왕봉까지 하루에 걷는 건 포기한 걸까?
모른다. 산악회 따라가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조망 열린 곳에 서지도 못하고
길가에 낮게 앉은 꽃들에게 눈길을 주지 못한 채 숨 헐떡이며 앞사람을
따라가는 지리산 종주를 할 수는 있겠다. 그러고 보면 산행은 유람이 아니라 단련이다.
임걸령샘이 가까워 오는데 한 떼의 사람들이 밝은 랜턴을 켜고 배낭을 정리하고 있다.
비박을 한 건가?(내려오며 보니 반야봉 시설 설치 일꾼들의 숙소다.)
오르막길에 땀을 염려해 겉옷을 벗고 오른다.
노루목 오르는 길을 가파르게 올라 길게 걷는다. 생각이 게을러서인가
혼자 어둠 속에 힘없이 걸어서인가 노루목은 나타나지 않는다.
5시 20분을 지나 노루목에 도착한다. 출발 후 1시간 반이 걸렸다.
잘하면 반야봉엔 6시쯤 닿겠다.
어둠 속에 노루목 이정목을 사진 찍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반야봉을 올라간다. 바람이 쌀랑해진다.
삼거리 부근에는 등산로를 정비하려는 장비와 제품들이 쌓여있다.
바위를 지나며 동쪽을 봐도 아직 해는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불빛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편하게 걷다보니
철계단이 철거되어 나무 사이에 누워있다.
공사중이라고 길도 막아두고 우회로를 두었다.
렌턴 빛에 의지해 혼자 오르는 반야봉은 가끔 바람소리만 들리고
멀리서 짐승소리인지 묘향암 목탁소리인지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반야봉 전에 바위에 서서 동쪽 하늘을 보니 천왕봉이 파랗게 드러난다.
구름 아래로 붉은 기운이 드리운다. 반야봉에 6시가 지나 도착한다.
다시 겉옷을 입고 사진을 이리저리 찍는다.
추위 피해 천왕봉 쪽의 목책 뒤에 앉아 게으르게 천왕봉의 왼쪽과 오른쪽을 본다.
경상도 쪽으로 하얀 구름이 가라앉고 구례쪽 섬진강으로도 구름이 앉아 있다.
한 사나이가 올라오더니 이어 산악회 무리가 올라와 점령한다.
난 먼저 내려온다. 점차 밝아지니 노란빛을 더해 붉어져 가는 단풍나무가 보인다.
임걸령에 와 물을 마시며 바보에게 전화하니 잠결이다.
한 시간 후에 노고단고개에서 만나 노고단에 오르자 하니 사양한다.
배가 고프다. 다리에 힘이 없다. 피아골로 내려가지 않고 성삼재로 가는 것이 차라리 잘 됐다.
노고단 고개에 오니 8시 40분이 다 된다. 노고단은 포기하고 고개 위 바위에 서서
천왕봉과 왼쪽 서북능선 너머의 전라북도 산군들을 보고 대피소로 내려간다.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 밥을 먹는다. 술이 없으니 조금 아쉽다.
10시가 못 되어 11시 40분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간다.
바보는 힘이 남아돌고 난 멀리 뒤쳐져 힘겹게 따라간다.
평화통일 마라톤 달리기 후 풀린 줄 알았던 허벅지가 꽁꽁 뭉쳐
다리에 힘을 줄 수 가 없다. 멀리 쳐져 걸으며 단풍사이로 내려가는 바보를 본다.
10시 40분이 다 되어 성삼재에 닿는다.
바람이 차 가게 안으로 들어가 씁쓸한 오미자 차를 마시며 기다린다.
주인의 눈치를 보며 오래 앉아 있다가 앉은 채로 잠깐 졸고나니 몸이 풀린 듯하다.
11시 40분 정각에 구례여객 버스는 부드럽게 고개를 내려간다.
양홍권의 가게 앞으로 차를 가지러 가니 나오며 점심 먹고 가란다.
사양하고 광주로 오며 석곡에서 돼지불고기를 먹으러 즐르는데
식당에 사람들이 가득 차 기다려야 한다기에 옥과 송원식당에 가
만원짜리 떡국을 먹는다.
잠 자고 바보는 사람 만나러가고 난 한결이 생일축하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상무지구에서 배부르지 않은 초밥을 먹고 한강이가 시간 내 영화를 보자는데
난 다음에 보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