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 무아와 연기는 해탈로 가는 진리입니다.
< 질문 >
순간순간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거기에 어떤 사상이나 생각이 개입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있을 뿐 거기에 '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아'를 진리로 말하면서, '무아'이고 영원한 것은 '참나'라고 하는 사상이 궁금합니다. '무아'를 깨달으면 끝인데 에고가 영원한 '참나'를 만들어 놓은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는 '무아'만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 답변 >
무아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아가 아니라는 것은 나라고 하는 것이 없고 단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정신과 물질만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항상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정신이 나의 것이라고 한다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죽기 전에 내 마음대로 호흡을 연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르기 위한 명칭인데 이것이 실재하는 것으로 아는 것이 무명입니다.
참나는 이것과 다릅니다.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고 항상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힌두교 교리를 차용한 것입니다. 상좌불교가 대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힌두교의 사상이 접목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민중 속을 파고 들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리가 중국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부처님 사상의 핵심은 무상, 고, 무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처님의 사상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특성입니다. 부처님께서 최고의 지혜로 이것을 발견하시고 중생들에게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는 부처님이 만들어낸 사상이 아니고 역대의 모든 부처, 벽지불, 성자들이 찾아낸 진리입니다.
무상, 고, 무아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위빠사나란 계정혜를 말하고, 계정혜란 팔정도를 말합니다. 특히 위빠사나의 접두사 ‘위’는 분리하다는 뜻입니다.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알아차리면 고요함이 있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면 무상, 고, 무아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궁극의 진리를 알게 됩니다.
무아와 연기는 불교의 핵심사상입니다. 자아가 없다는 무아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윤회하는 연기는 해탈로 가는 진리입니다. 윤회하는 연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아를 알아서 갈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묘원 올림
첫댓글 친절한 답변,감사합니다 _()_
현상적 무아=절대적 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