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 224(최종회). 함께 엮어갈 미래 여행은?
▶몽골 국민 작곡가와 조해화 할머니
몽골인들은 다양한 인사말을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 인사가 있고 계절별로도 서로 나누는 인사가 다양하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기후변화 속에 살면서 그렇게 다양한 인사말이 생겨났다.
‘우글루니 멘드’(Өглөөний мэнд)는 자고 일어나 아침에 나누는 인사다.
‘상쾌한 아침입니다.’라는 의미의 아침 인사다.
이 아침 인사가 음악으로 만들어져 아침이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온다.
초원에서 울려 퍼지는 이 노래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도 꽤 있다.
아침을 상쾌하게 만드는 경쾌한 멜로디의 이 음악은 몽골의 국민 작곡가 담딘수렌이 만들었다.
그는 몽골 국가(國歌)를 만든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음악과 함께 몽골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남아있다.
그와 함께 살아왔던 부인 ‘달라이 체첵’은, ‘바다 꽃’이란 이름의 뜻 그대로 한국 이름 조해화(趙海花) 할머니다.
▶수교 전 한국인과 몽골인 부부 극소수
조 할머니는 남편은 음악을 통해 매일 만나지만 모국 한국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고 살았다고 했다.
1990년 이후 몽골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이 늘어나고 한국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한국에 대한 마음을 되살리게 된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울란바타르에서 조 할머니를 만난 지가 20년도 더 됐으니 아마 지금쯤 할아버지를 뒤따라 떠났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몽골로 흘러들어 몽골 군인과 결혼한 북한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몽골의 수교 전에 특별한 인연으로 몽골인과 부부의 연을 맺은 한국인은 극소수였다.
그런데 한몽 수교 30년 이상 지나는 동안 사정이 상당히 달라졌다.
▶한국. 몽골인 부부 천여 커플
지금 몽골에는 몽골인과 한국인이 부부의 인연을 맺은 커플이 어림잡아 천 커플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로 공부하러 갔다가 몽골 여성을 만나 결혼한 한국 남성이나 한국에서 일하면서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한 뒤
몽골로 들어와 살고 있는 커플 등 다양한 인연으로 부부가 된 사람들이다.
YTN 사장으로 재직 중 몽골을 방문했을 때 현지 YTN 통신원이 몽골 여성을 만나 결혼한 한국인이었다.
항상 취재할 때 부부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과 몽골의 커플은 궁합이 잘 맞는지 대부분 문화적 갈등 없이 비교적 잘살고 있다는 것이
몽골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다.
▶한국 몽골 다문화 가정의 긍정적 역할
충선왕을 비롯한 고려시대 충(忠)자 달린 왕들이 대부분 한국 왕과 몽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북원 제국 최초의 칸도 몽골 아버지와 고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 역사를 되돌려 보면 그때가 한국인과 몽골인이 부부의 연을 맺어 다문화 가정을 형성하는 출발점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별로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아무튼 두 나라 남녀가 만나 다문화 가정을 형성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두 나라 사이를 원활하게 이어주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부부 가운데 상당수는 울란바타르에서 한국식당을 비롯한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한국과 몽골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취업 다녀온 몽골인 30만 명 이상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161만 명이다.
이들 가운데 수교 후 한국을 다녀온 사람이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에 사는 몽골인의 5분 1 정도가 한국을 다녀왔다는 얘기가 된다.
불법체류자까지 합치면 50만 명이 넘어서 거의 3분의 1이 한국을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관광으로 다녀온 것이 아니라 취업해서 최소 3년을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몽골인들이다.
몽골인들은 한국에 취업을 다녀오는 것을 ‘코리안 드림’, 또는 ‘솔롱고스 드림’이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3년 일해서 착실히 돈을 모아 돌아오면 울란바타르에서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것이 쉬워진다.
한국에서 3D업종에서 일해도 환율 등을 고려하면 큰 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 달에 2백만 원을 벌면 환율 등을 감안해 몽골에서 5백만 투그릭을 버는 셈이 된다.
교사와 공무원의 월 소득이 2백만 투그릭 전후, 의사가 3백만 투그릭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코리안 드림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만하다.
지금도 한국에 취업해 일하고 있는 몽골인이 대략 4만 8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골 한류 대중화 단계
이 같은 상황은 몽골에서 한류가 이미 성숙 단계를 넘어 대중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만든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처음 가는 한국인은 몽골의 신시가지가 한국의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놀라게 된다.
곳곳에서 한국의 CU와 GS25 편의점을 만날 수 있고 노래방과 찜질방, PC방 등이 늘어선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카페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CU는 지난해 울란바타르에서 3백호 점을 열었고 올해(2024년) 기준으로 네 번째 E마트도 등장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탄의 신도시 모양 같다고 해서 그곳을 ‘몽탄 신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식당 이용자 90% 이상 몽골인
울란바타르에 있는 한국식당이 현재 70여 개에 이른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 2백여 개에 달했던 한국식당이 지금이 많이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한국식당을 가보면 손님들의 90% 이상이 몽골인들이다.
그들이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며 땀 흘리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특히 김치 소비가 최근에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그 손님들이 거의 모두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몽골인들이다.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생활 풍속에 익숙해 있는 이들이 바로 한류의 대중화를 이끄는 몽골인들이다.
▶민간사절인 몽골 주재 한국 사업자
몽골 BBQ의 김일한 회장은 몽골에 들어가 사업을 시작한 지 19년이 됐다.
지금 그는 울란바타르에 6호점까지 오픈해 6개 매장을 관리하고 있다.
몽골인 종업원만 50명이 넘는다.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배타적인 몽골의 까다로운 자세와 법적 문제 때문에 한때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태다.
시장경제 체제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몽골이 이전보다 여러 면에서 유연한 자세로 돌아서면서 사업이 훨씬 쉬워졌다.
게다가 몽골의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해서 내수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래서 요즘 같으면 사업을 해볼 만하다고들 얘기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그냥 찾아온 것은 아니다.
김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문화교류 차원에서 한국과 몽골을 연결시키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 왔다.
‘Face of Mogolia’라는 이름으로 몽골의 모델들이 한국으로 진출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활동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최근 들어서는 씨름 등 스포츠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몽골을 도와가며 한국과 몽골을 연결하는 그의 진심을 알게 된 몽골이 여러 가지로 도와주고 편의를 봐주면서
더욱 보람 있는 몽골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가까이 지냈고 몽골에 있으면서도 수시로 소통하는 지인인 김회장의 최근 편안해진 모습이 보기 좋다.
▶한국 몽골 인적 교류 급증
김일한 회장처럼 몽골에 머물면서 한국과 몽골의 관계를 이어 가는 한국인 체류자는 현재 4천 명 정도가 된다.
한때 5천 명을 넘어섰던 체류자가 코로나 사태 이후 일부 선교사와 자영업자가 철수하면서 천명 이상이나 줄었다.
코로나 사태 전에 20만 명이 넘던 양국 방문자도 코로나 사태 때는 몇 천 명에 정도로 줄었으니 그럴만했다.
2022년부터 코로나 사태가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몽골이 비자 면제 조치를 취하면서 2022년에는 방문자 수가
5만 명 선으로 늘었다.
특히 2023년, 지난해에는 그 세배인 15만 명 수준으로 늘어나 양국 인적 교류가 다시 활발해졌다.
이에 따라 울란바타르에 자리 잡는 한국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 가장 높아
몽골인들의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 즉 한국에 대한 정서는 특별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하다.
일본과 중국은 대체로 싫어하지만 한국과 러시아를 특히 좋아했던 몽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러시아에 대한 정서가 많이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엘벡도르지 前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영유권을 주장하는 푸틴에게 과거 킵차크한국이 러시아를 지배한 사실을
적시하면서 러시아 영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는 삭으로 비꼰 것도 그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살펴본 역사 속에서도 봐온 대로 한국과 몽골은 여전히 서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호의적인 관계다.
▶미래 여행으로 이어질 관계 기대
한국과 몽골 민간의 상호 호의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몽골 정부도 한국과의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몽골은 한국을 몽골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의 협력 확대를 주요 외교 목표로 설정하고 한국과의 교류협력 확대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지난해 양국 교역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對 몽골 투자도 2023년 상반기에만 5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이처럼 두 나라는 민간이나 정부 차원에서 함께 미래를 이야기 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돼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바탕위에서 관계를 심화해 나가고 있다.
넓은 땅과 많은 자원을 가졌지만 인구가 적어 내수시장이 빈약하고 고급 노동력이 부족한 몽골이다.
기술력과 자본력은 물론 고급 노동력까지 가진 한국이지만 자원과 땅이 부족한 한국이다.
두나라가 가진 특성을 고려해 보면 함께 그려갈 미래의 그림이 어느 정도 보인다.
오랜 기간 과거를 되짚어 온 대몽골 시간여행이다.
그 여행이 이제 두 나라가 함께하는 미래의 여행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길게 몽골의 역사를 따라온 시간여행을 마무리한다.
여정에 동참해 준 많은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