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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 책이 의미 있을 단 한 사람을 위해”
전-자해러이자 현-임상심리학자가 두 세계를 오가며 써내려간
은밀한 러브레터이자 다정한 보고서
『자해를 하는 마음』은 그동안 자극적인 기사로 소비되거나 학문적 영역에서만 다뤄지던 자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첫 대중교양서다. 이 책을 쓴 저자 임민경은 자해를 연구하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전-자해러다.
그는 책에서 당사자 입장에서 겪은 경험과 생각, 당시의 심정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는 한편, 연구자답게 과학적이고 객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며 국내외 연구 논문과 역사 문헌을 꼼꼼히 톺아본다. 본인의 한정적인 경험을 넘어 더 많은 자해 당사자의 진짜 속내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현재 자해를 하는 혹은 과거에 자해를 했으나 최근 중단한 당사자 열 명을 인터뷰한 내용도 책에 실었다.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는 선생님과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이 그저 자해를 이해해달라며 감정에 호소하거나 관찰자 입장에서 자해 당사자를 타자화하지 않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어둡고 위험한 주제를 선택한 것도 모자라 별로 내키지 않고 누군가는 궁금해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놓는 게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책을 계속 써야 할지 망설이고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상담해주는 상담 선생님의 한마디에 용기를 낸다. “이 책이 의미 있을 단 한 사람을 위해 계속 써보라”는 말. 머리말에 “욕심이 많아서 단 한 사람을 고르지는 못했”다고 썼으나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는 이 책이 과거의 자신에게(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자해 당사자 모두에게) 보내는 은밀한 러브레터이자, 한편으로는 ‘살 만한 삶’이란 무엇일지를 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조심스러운 제안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임민경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받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3년간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인천스마일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만났으며, 지금은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애독자이자 무언가의 애호가다. 지은 책으로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가 있다.
📜 목차
머리말 이 책이 의미 있을 단 한 사람을 위해
1장 자해의 역사
두 세계
뿌리 깊은 역사
정신분석과 자해
얌전한 자해 신드롬
아름답고 슬프고 성나고 자유로운
자해는 한때의 가벼운 유행일까
인터넷의 등장과 자해러의 탄생
2장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비자살적 자해
자해의 유익과 장벽
자해의 기능
오라, 달콤한 고통이여
여길 좀 봐줘요
3장 쥐고 태어난 과자 깡통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왓슨 시대와 헝겊 원숭이 시대
각성의 창문
비빌 언덕
불행과 책임 사이에서
4장 회복과 도움
회복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
회복의 여정
타당화
공감이 하는 일
참고문헌
미주
📖 책 속으로
자해 당사자는 다분히 주관적 입장에서 자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해 자체가 아니라 지금 겪는 감정적·존재론적 고통이며, 자해는 그저 그것을 해소하거나 밖으로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자해 당사자는 자신의 자해에 관심을 가지는 이를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데만 관심이 있고’, ‘자해를 멈추는 데만 급급해서 진짜 문제는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자해를 중지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 p.15
자해는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 만약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수치스러워할 일이 아니며 비난받아 마땅한 일도 아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의도로 자해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그만 관심을 꺼야 한다는 신호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관계나 관심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 p.33
오늘날에도 남성의 자해는 ‘자해 행동’으로 곧바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 청소년이 크게 화가 나서 손으로 유리창을 깨부수었다고 하자.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것을 그저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지 자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어쩌다 한 번 분노해서 이런 일을 하기도 하며, 그런 행동을 자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 반복적으로 벽이나 책상, 유리 등을 친다면 이 행동을 자해로 볼 것인지 아닌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식의 ‘분노 표현’을 ‘남성성의 표출’로 여긴다.
--- p.36
어떤 사람들이 하는 특정 행동을 그저 분석하는 것과, 그들이 지닌 서로 다른 특징을 함께 나열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은 대체로 이렇다’고 규정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이 환자들을 따로 커터라고 지칭할 만한 과학적이고 임상적인 근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와는 별개로, 이 의사들은 ‘서로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지적했던 일련의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커터’라고 부름으로써 전형적인 ‘커터 캐릭터’, 즉 매력적이고 똑똑하지만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고 애정결핍이며 약물에 의존하기 쉬운, 주로 젊은 백인인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 p.51
자해 자체는 수면 위에 드러난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해는 멋있는 게 아니라, 한때의 유행일 뿐’이라고 깎아내려 봤자 그 아래 있는 진짜 문제인 심리적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자해를 예방하거나 멈추게 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오해에 기반한 지적은, 자해 당사자에게 모욕감을 주어 자해를 더욱 드러내지 않고 감추게 하며, 그들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더욱 가중시켜 여러 정서적·행동적 증상들을 심화시킬 뿐이다.
만약 ‘자해는 전염될 수 있다’ 또는 학술적으로 표현해서 ‘자해 행동이 사회적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좀 우려스러운 어조로 말하고 싶다면, 지금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자해를 접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만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 p.62
누군가는 (그것이 정신건강전문가라도) 남몰래 자해를 갈망한다는 사실은 감추기보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왜 자해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자해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설명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해는 보편적인 인간 행동에 속하지는 않으며 분명 어느 정도는 병적이지만 “미친 사람이나 하는” 짓은 아니며 세세히 뜯어보면 그 배후에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있다.
--- p.106
자해를 하는 사람은 흔히 대인관계 문제를 겪는데 이들은 자해를 하지 않는 또래에 비해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경향이 있으며, 갈등도 더 많이 겪는다. 그런데 변호를 하자면, 자해와 부정적 대인관계가 높은 상관을 보이게 된 데에는 자해를 하는 사람이 처한 환경이 지금껏 이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탓도 일부 있다. 일반적으로 자해를 하는 사람의 가족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족보다 덜 수용적이며, 더 많은 갈등을 겪고, 서로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 p.124
아동기 부정적 경험이 이토록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당연히 비자살적 자해도 그 영향권 안에 들어 있다. 이와 관련한 수십 건의 개별적 연구를 통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는 성인기에 이루어지는 비자살적 자해와 자살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이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는 그것이 신체적·정서적 학대든 방임이든 성적 학대든 그 종류와 상관없이 자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 p.153
우리가 생각하는 회복이 사실은 불완전한 관념이며 심지어 이런 불완전한 인식이 때로는 회복을 방해할 수도 있음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대개 치유나 회복의 상태를, 아예 증상이 없는 상태 그리고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만족하며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거의 늘 평안하고 안온하게 지내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회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회복보다는 ‘이상(理想)’ 또는 ‘최고의 상태’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것은 회복을 너무나 협소하게 바라본 개념이다.
--- p.200~201
초보 상담자들은 ‘공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계속 공감만 하고 있으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할 같아서 불안하다. 공감만 계속해도 되느냐, 대체 공감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공감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란 정말 어렵다.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본다면, 나는 사람이란 먼저 이해받아야만 변할 수 있으며 또 충분한 타당화를 경험하는 것은 개인이 타인을 포함한 외부 세계에 쳐두고 있던 방어벽을 조금은 허물 수 있게 해준다고 답할 것 같다.
--- p.223
🖋 출판사 서평
“자해는 보편적인 인간 행동에 속하지는 않지만
미친 사람이나 하는 짓은 아니다“
자해의 역사와 정의부터 이유와 회복까지
자해를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첫 대중교양서
“끊어버리고만 싶어 이거 다/그만 놔버리고 싶어 모두 다 (…) 난 사랑받을 가치 있는 놈일까/방송 싫다면서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 보게 해/이대로 사는 게 의미는 있을지 또 궁금해” 2018년 엠넷의 히트작 〈고등래퍼2〉에 출연한 래퍼 빈첸이 쓴 가사 중 일부다. 당시 빈첸은 뛰어난 랩 스킬뿐 아니라 암울한 상황을 비관하는 마음과 자기혐오감, 우울감을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적은 가사로 또래 집단을 넘어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라는 은유적 표현처럼 손목을 그은 자해 경험을 숨김없이 꺼내놓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는 말이 많았다. 공교롭게도 그 해에 자해 청소년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에는 여러 언론에서 기획 기사 또는 단발성 기사로 자해를 집중 보도했으며, 9월 20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자해 대유행, 대한민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특별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국내에서 진행한 자해 연구 동향도 그 흐름을 반영한다. 2010년에서 2013년까지 4년간 출간된 자해 관련 연구 논문은 단 4편이었으나 이후 2016년에서 2019년까지 4년 동안에는 30편으로 대폭 늘었다. “마음의 전염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하는 자해는 마치 베르테르 효과처럼 모방되고 전염되는 걸까?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본다는 관점에서 비교하자면, 자살을 주제 삼은 책은 많았다. 우울증과 조울증, 불안장애와 ADHD 등 병리적인 면을 다룬 책도 당사자 에세이부터 전문서까지 다양하게 출간됐다. 주제 자체의 난해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앞서의 질문처럼 ‘한때의 유행’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유달리 자해에 관해서 만큼은 치료자 혹은 부모를 위한 가이드북이나 학술 교재만 있었을 뿐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은 없었다.
『자해를 하는 마음(아몬드 刊)』은 자해에 관한 첫 번째 대중교양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자해의 역사와 정의, 기능과 회복 등을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폭넓게 다룬다는 점에서 새롭고 독보적이다. 책을 쓴 저자 임민경은 자해를 연구하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전-자해러다. 그는 책에서 당사자 입장에서 겪은 경험과 생각, 당시의 심정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는 한편, 연구자답게 과학적이고 객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며 국내외 연구 논문과 역사 문헌을 꼼꼼히 톺아본다.
본인의 한정적인 경험을 넘어 더 많은 자해 당사자의 진짜 속내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현재 자해를 하는 혹은 과거에 자해를 했으나 최근 중단한 당사자 열 명을 인터뷰한 내용도 책에 실었다.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는 선생님과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이 그저 자해를 이해해달라며 감정에 호소하거나 관찰자 입장에서 자해 당사자를 타자화하지 않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자해러=관종’이라는 발명품
자해의 역사 그리고 자해 혐오의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 깊다
2010년대 후반 자해 논의가 폭발하는 것을 목격한 저자는 “학술적, 사회적 관심이 (그 시절의 나나 내 친구들에게 보이는 관심인 것 같아)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고 고백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적 시선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자해 당사자를 향한 편견과 오해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해하는 애들은 관종(관심종자) 아냐?” “자해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짓이잖아?” “다들 손목 자해를 하는 걸 보면 그냥 친구 따라하는 거잖아?” 같은 경멸 섞인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책의 첫 장은 자해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할애했다. 자해의 역사가 곧 ‘사람들이 자해와 자해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반응했으며 자해가 어떤 과정을 거쳐 편견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자해러=관종’이라는 등식은 현대에 발명된 것이 아니다. 19세기 의사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은 히스테리아 환자에게 ‘정서적 불안정성’이 동반된다고 판단했는데, 자해하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불안정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였는지 이들도 히스테리아로 진단하곤 했다. 문제는 “히스테리아 환자는 관심과 동정을 매우 좋아한다”는 편견도 함께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26쪽)
자해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1875년 뉴욕주립치료감호소에 입원한 헬렌 밀러에 관한 것이다.(28쪽) 밀러는 입원 직후부터 우울감을 호소하고, 팔에 유리조각, 못, 바늘 등을 찔러 넣는 자해 행동을 보인 환자였다. 당시 의료진은 밀러에 관한 증례 보고서에 “그녀가 가장 행복해할 때는 (…) 외과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때였다”, “그녀는 며칠 간 음식을 거부했으나,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자 다시 음식을 섭취했다”, “이 증례의 경우에는 언제나 히스테리컬한 요소가 있었다. (…)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에만 자해가 이루어졌다”고 적었다. 의료진의 관점은 현재의 ‘자해러=관종’이라는 인식과 일맥상통한다. 자해 행동만큼이나 자해를 향한 편견이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행동주의가 제시하는 소거 원리(어떤 행동을 발생시키는 강화물을 주지 않음으로서 행동을 없애는 원리)에 따라 의료진의 관점과 치료 방식이 일부 이해는 되지만, ‘관심 금지’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적절한 방식으로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반드시’ 함께 붙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의료진이 ‘밀러에게 관심을 끄는 일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는 점은, 오늘날 자해를 대하는 우리의 게으른 태도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저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자해를 많이 한다’, ‘자해는 주로 리스트 컷(손목 자해)이다’라는 흔한 인식이 생겨난 과정도 추적한다. 미국에서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손목 자해는 그렇게 두드러지는 현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1960년대에 미국 동부의 일부 정신과 의사들이 ‘손목 자해 신드롬’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내놓으며, ‘커터(손목을 긋는 사람)’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내놓은 논문에 따르면 “전형적인 커터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으로 평균 23세이며” “모든 연구 대상자가 대인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경험했”다.(48쪽)
저자는 “1960년대 후반이 되었을 때,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실제로 리스트 커팅이 급증했는지, 만약 그렇다면 여기에 영향을 준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불명확하다(47쪽)”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다만 “문제는 이 ‘리스트 커팅 신드롬’을 다룬 소위 ‘고전적 논문’ 중 13편이 모두 단 4곳의 병원에서, 특정 의견을 공유하는 의사들이 생산했(50쪽)”기에 혹시 편향이 있지는 않을지 의심한다. 어떤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그저 분석하는 것과, 그들이 지닌 서로 다른 특징을 함께 나열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해는 진통제다
자해의 정의와 기능으로 이해하는 자해러들의 진짜 마음
자해 연구자들이 꼽는 최초의 자해자는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기원전 5세기의 인물 클레오메네스 1세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그는 “칼을 손에 들자마자 정강이부터 허벅지, 복부까지 고기를 썰 듯 잘게 잘라버렸다”고 한다.(22쪽) ‘이게 과연 자해일까’ 싶은 이 행동은 현대적 의미의 자해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 정신건강 연구자들이 공식적으로 정의하는 ‘자해’는 ‘비자살적 자해’ 즉 자살의 의도가 없는 자해를 뜻한다. 2장에서는 자해의 정의뿐 아니라 자해를 하는 이유를 살펴보는데, ‘자해란 무엇인지(77쪽)’, ‘자살 의도가 있는 자해와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는 어떻게 구분하는지(78쪽)’뿐 아니라 ‘자해가 자살 위험을 높이는지(80쪽)’, ‘만약 자해가 자살 위험을 높인다면 왜 그런지(83쪽)’ 등이 소상하게 담겨 있다.
2장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왜 누군가는 자해를 선택하고 지속하는지’를 다룬 대목이다.(104쪽)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해의 기능’이라고 일컫는데 저자는 “기능이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로 자해를 시작하고 유지하는지를 설명하는 중립적인 말”임을 밝히고 들어간다.
자해의 기능은 주로 ‘2요인 이론’으로 설명된다. 2요인은 ‘개인 내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으로 나뉜다. 개인 내적 기능은 한마디로 말하면 ‘정서 조절 기능’이다. 긍정적인 기분이나 감각을 경험하거나 부정적 정서를 완화하기 위해 자해를 한다는 의미다. 사회적 기능은 말 그대로 대인관계에서 영향을 받거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관심을 원해서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 비율은 전체 중 5~10% 정도에 불과하다.(17쪽) 자해의 정서 조절 기능은, 오늘날 사람들이 자해를 지속하는 핵심적인 이유로 전체의 66~81%(연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70%가량)를 차지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자해 당사자들이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말에서도 자해의 ‘정서 조절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자해의 기능을 설명할 때 ‘안정된다’, ‘편안해진다’ 단어를 사용했다.(107쪽) 이밖에도 ‘살아 있는 느낌’, ‘답답한 게 좀 풀리는’, ‘해방감’, ‘카타르시스’와 같은 표현도 등장했다.(108쪽)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나, 많은 사람이 정서 조절을 목적으로 자해를 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체 왜 그럴까. 저자는 누군가에게 자해는 ‘진통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왜 누군가는 자해를 선택하는가
자해로 향하는 다양한 이유와 경로들에 관하여
정서 조절이 목적이든,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알리고 싶어서든, 자신을 처벌하고 싶었든, 자해는 어느 정도는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해는 목적과 다르게 상황 악화로 이어진다. 비용 대비 효율의 측면에서 대단히 효율이 떨어지는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효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데, 그 이유는 자해가 주는 유익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사람, 선택의 폭이 좁아져 있는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는 데 있다.
저자가 ‘쥐고 태어난 과자 깡통’이라고 표현한 이 ‘좁아진 선택의 폭’을 만드는 요인은 유전이나 태어난 지역, 경제 수준이나 재난 발생 유무, 따돌림, 실직, 빈곤, 사회적으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는 것 등 다양하다. 연구자들은 이들 중 특히 위험성이 높은 요인을 추려내는 데 성공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동기 부정적 경험이나 학대’다.
책에는 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요인이 어떻게 자해로 이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심리 실험의 후일담이 등장한다. 바로 해리 할로의 ‘철사 엄마 원숭이, 헝겊 엄마 원숭이’ 실험, 그 이후의 장면이다.(141쪽) 출생 직후 어미에게서 분리되어 6개월간 사회적 접촉을 박탈당한 원숭이가 그들을 취재하러 온 사진사를 보고는 자기 털을 뽑거나 몸을 긁거나 손발을 물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새끼 원숭이들이 경험한 것은 학대의 일종인 ‘정서적 방임’인데 원숭이에게 정서적 방임이 이렇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면, 비슷한 일을 경험한 인간에게 동일한 결과가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146쪽)
실제로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자해 당사자 중 3분의 1은 복합적인 학대 속에서 자랐다고 이야기했으며, 한 가지 유형을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3분의 2였다.(150쪽) 저자는 “이들의 자해나 정서적 문제는, 비록 일대일의 인과관계까지는 아니라 해도 과거의 학대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었다”고 말한다.(151쪽)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동기 학대라는 ‘내가 선택하거나 조절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힘든 건가’ 싶어 절망감을 느낄 독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를 덜 나무라고 자신을 책임지는 일을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오해를 넘어 이해로
자해에 있어 과연 회복이란 무엇인가
책의 마지막 장은 ‘회복’을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이 ‘회복’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저자가 견지하는 조심스러운 자세, 이론적이지만 따뜻한 태도는 ‘회복’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치유를 둘러싼 자해 당사자와 치료자, 주변 사람의 생각이 미묘하게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자해 당사자 중에는 자해를 자기 문제 중 최우선 순위라고 느끼고 스스로 멈추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해 이야기를 꺼내는 일 자체를 망설이거나 꺼린다. 이들은 대체로 자해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밑바닥에 깔린 다른 문제에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자녀나 학생의 자해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자해 자체를 줄이거나 없애는 데만 집중해 화를 내거나 나무라거나 눈물을 흘린다. 상황에 압도되어 아예 침묵하거나 완전히 무시하기도 한다.
자해의 회복이나 치료가 다루기 까다로운 이유는 ‘과연 회복이란 무엇인지’를 정의내리는 일이 어렵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보통은 ‘자해 중단=회복’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진짜’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고, 계속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힘든데 자해만 그만둔다고 그게 회복일까. 저자는 물론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자해를 그만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시점에는 눈에 띄지 않더라도 기저에 깔려 있는 변화를 대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자해 문제를 겪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개인마다 기질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조언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대원칙은 분명히 있다고 얘기한다. 저자가 매우 공들여 소개하는 이 원칙은, 바로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 마샤 리네한이 제안한 ‘타당화’다.(209쪽)
타당화는 모두 6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저자는 타탕화를 한마디로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잠시 누르고 타인의 고통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요약한다.(212쪽) 저자는 타당화가 “머리로는 이해하가 쉽지만 제대로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자해 당사자 주변 사람들이, 언젠가 한두 번쯤은 타탕화를 고려해주기를 바란다며 간곡히 당부한다.(225쪽)
어둡고 위험한 주제를 선택한 것도 모자라 별로 내키지 않고 누군가는 궁금해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놓는 게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책을 계속 써야 할지 망설이고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상담해주는 상담 선생님의 한마디에 용기를 낸다. “이 책이 의미 있을 단 한 사람을 위해 계속 써보라”는 말. 머리말에 “욕심이 많아서 단 한 사람을 고르지는 못했”다고 썼으나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는 이 책이 과거의 자신에게(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자해 당사자 모두에게) 보내는 은밀한 러브레터이자, 한편으로는 ‘살 만한 삶’이란 무엇일지를 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조심스러운 제안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