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 선사(懶翁禪師)오도송 (悟道頌)
오도송(悟道頌)
選佛場中坐 (선불장중좌) 仄仄平仄仄 : 선불장(選佛場)에 앉아서
惺惺着眠着 (성성착면착) 仄仄仄平仄 : 정신 차리고 눈 여겨 잘 보라.
見聞非他物 (견문비타물) 仄仄平平仄 : 보고 듣는 것 다른 것이 아니요,
元是舊主人 (원시구주인) 平仄仄仄平 : 원래가 그것은 “옛” 주인일세!
<나옹 선사(懶翁禪師)>
이 게송(偈頌)은 나옹(懶翁) 선사(禪師) 오언 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오도송(悟道頌)이다.
압운(押韻)은 착(着)은 입성(入聲), 약통(藥統) 운족(韻族)이고,
인(人)은 상평성(上平聲) 진통(眞統) 운족(韻族)으로 작게(作偈)했다.
근체시(近體詩) 평측(平仄) 작법(作法)으로 보면 맞지는 않다.
열반송(涅槃頌)은 칠언 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偈頌)이다.
칠십팔 년을 살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천지 산하 온 우주가 다 고향이네,
삼라만상 모든 것 다 내가 만들었으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참 고향일세.
<七十八歸故鄕 天地山河盡十方 刹刹塵塵皆我造 頭頭物物本故鄕>
(칠십팔 귀고향 천지산하 진십방 찰찰진진 개아조 두두물물 본고향)
나옹 선사(懶翁禪師)는 고려 말(高麗末) 태고보우(太古普愚)와 백운경한(白雲景閑) 선사와 함께
삼대(三大) 고승(高僧) 선지식(善知識)으로 알려졌다.
중국(中國) 임제종(臨濟宗) 선풍(禪風)을 들여와서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켰다.
원(元) 나라에도 가서 인도(印度) 승려(僧侶) 지공(指空)을 찾아가니,
지공이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보여 보아라 하니. 나옹 화상이 지공 스님 가까이 가서 가슴에 손을 포개고 차수(叉手)하고 섰다.
그리고 게송을 지어서 지공 선사에게 드렸다.
산하 대지가 눈 가운데 헛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네,
자성은 원래 청청한 것임을 알면 먼지마다 세계마다 이대로가 법왕의 몸일세,
미혹하면 산하 대지가 경계가 되고, 깨닫고 보면 먼지마다 세계가 온전한 법신일세,
미오(迷悟) 둘 다 몽땅 쳐 부수어 나니, 아침마다 수탉은 오경에는 우는구나!
<山河大地眼中花 萬象森羅亦復然 (산하대지안중화 만상삼라역복연)
自性方知元淸 塵塵刹刹法王身 (자성방지원청 진진찰찰 법왕신)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미측산하위소경 오래진진시전신)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미오양두구타료 조조계향오편제)>
나옹 선사께서 정자사(淨慈寺) 평산처림(平山處林) 선사(禪師)를 찾아뵈니,
평산 선사가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대도(大都)에서 왔습니다.
오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왔는가? 서천(西天) 지공 선사(指空禪師)를 만났습니다.
지공은 매일 무엇을 하는가? 지공은 매일 천검(千劒)을 씁니다.
지공의 의 천검(千劒)은 그만두고 너의 일검(一劍)을 내 놓아 보아라" 하니.
나옹 선사가 좌구(坐具)로 평산(平山)을 후려쳤다.
평산 선사가 쓰러지면서 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고 소리치자.
나옹 선사(懶翁禪師)가 평산 선사(平山禪師)를 이르켜 세우면서
나의 검은 능히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吾劒能殺人(오검능살인)>
또한 능히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亦能活人(역능활인)>하자,
평산 선사가 크게 웃고 나옹 화상 손을 잡고 방장(方丈)실로 가서 차(茶)를 대접하고
몇 달 간 묵어가게 하였다.
평산 선사가 법의 신표(信表)로 법의(法衣) 한 벌과 불자(拂子)를 주었다.
나옹 선사는 선문답(禪問答)으로 보면 중국 선지식들의 지도하에 깨달은 것이 아니라
중국 선지식들을 점검차 가서 인가(認可)를 받고 온 셈이다.
이렇게 법을 받고 귀국하여 청평사(淸平寺)에 주석하다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왕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공부선대회(工夫禪大會)를 주재(主宰)를 하고 왕사(王師)가 되었다.
1372년 양주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 주지(住持)를 맡아 사찰을 중수(重修)하고
문수회(文殊會)를 열어 낙성식(落成式)을 가졌다.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죽고, 우왕의 칙명(勅命)을 받아 밀양(密陽) 영원사(靈源寺)로 가다가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入寂)하였다.
나옹 선사 시중(詩 中)에 훨훨 청산가(靑山歌)로 많이 알려졌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청산혜요 아이무어 창공혜요 아이무구)
聊無愛而無增兮如水如風而終我 (료무애이 무증혜 여수여풍 이종아)
靑山要我生無言 蒼空請吾活無塵 (청산요아 생무언 창공청오 활무진)
解脫貪慾脫去嗔 如水若風居歸天 (해탈탐욕탈거지전 여수약풍거귀천)>
나옹 선사(懶翁禪師)는 토굴가(土窟歌)가 유명하다.
선방(禪房) 수좌(首座)들은 아침 도량석을 천수경(千手經) 대신
나옹화상(懶翁和尙) 토굴가(土窟歌)로 많이 한다.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徑)에 배회(徘徊)하니,
녹양춘삼월하(綠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處處)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중에 무슨 일이 세상(世上)에 최구둔(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默默)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을 기한정(期限定)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今日)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무명장야(無明長夜) 업파랑(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제불회상(靈鷲山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든
소림사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 소냐!
청산(靑山)은 묵묵(默默)하고 녹수(綠水)는 잔잔(潺潺)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消息)인가?
일리제평(一理齋平) 나둔 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천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커든 세욕(世慾)이 있을소냐!
욕정(慾情)이 담박(淡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누었다.
교교(皎皎)한 야월하(夜月下)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듯 올라
무공저(無孔笛)를 비껴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 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舞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령(無着嶺)을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漫開)하더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 靈山會上 佛菩薩).
토굴가는 외울수록 말뚝 신심이 솟는다.
오늘은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오도송(悟道頌) 열반송(涅槃頌) 평측운목(平仄韻目)을 맞추어
반추(反芻) 해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_(이계묵)_나옹 선사 오도송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