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문고 비리재단 반대시위 >

1994년에 재단과 교장의 비리와 횡포를 도저히 감내하지 못하고 일부 교사들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상춘식 교장 및 그의 아내 이우자 이사장의 학생부 성적조작 및 공금횡령 비리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 전국구 병크를 터뜨렸다. 이 사건으로 이사장과 이사들이 구속, 수감되었으며 교육법이 개정되었다. 이 덕분(?)에,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다 1999년 말 부터 비리재단이 학교 복귀를 노리고 꼼수를 부리던 정황이 포착되면서 학교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2000년 1학기 말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시위에 돌입하여 학생회측에서 1학기 기말고사 거부를 하고, 2000년 7월 초에 아침 10시경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서초동 법원, 검찰청 앞까지 진출한 전대미문의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 시위는 계획된 시위가 전혀 아니었고, 학교 운동장에서 농성을 벌이다 누군가 법원으로 나가자는 즉흥적인 제안에 모두들 순식간에 동요되어 갑작스레 이루어진 시위였다. 운동권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비리재단 복귀를 반대한다는 일념하에 즉흥적으로 벌인 시위였기에, 일반적인 시위와는 달리 아는 운동권 노래도 전혀 없어서 교가와 애국가만 부르긴 했다...
1,500여명 가까이 되는 전교생들이 갑작스레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온 탓에 서울고 사거리와 그 주변 골목에서 출동한 전경들과의 대치상태가 상당히 심각했다. 학생들이 더 이상 진출하는 것을 막고자 전경들이 사거리 사방 길을 전경 차량을 활용하여 담을 만들어 전경들이 방패를 형성하여 차단막을 형성하였다. 학생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고 폭력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1,500여명의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이 힘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것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다 보니 압사를 당할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전경들은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차단 과정에서 학생들과 충돌도 발생하여 팔골절 등의 부상을 입은 학생도 있었고, 시위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을 막기위해 학생들과 전경 사이에 방패처럼 서 있던 학부모가 누군가 던진 물체에 맞아 부상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오전 10시 경에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서울고앞 사거리 일대의 교통은 당연히 마비된 상태였는데, 사정이 급한건지 짜증이 난건지 어느 덤프트럭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전경 차단막이 뚫리는 바람에 학생시위대가 서초동 법원, 검찰청쪽으로 진출하는 길을 터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서초동 서울지방법원과 검찰청 사이에 있는 대로변 막다른 길에 모인 학생들은 학생회장 및 학생회 임원들의 삭발식을 진행하고, 재단 반대 시위 구호와 교가를 부르며 계속 시위를 진행했으나, 시위 장소가 법원/검찰청이라는 워낙 국가 중요시설에 인접한 민감한 곳인지라 시위진압용 장갑차량까지 등장하여 해산방송을 하는 등 전경의 압박수위가 높아졌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학생들의 전투력이 급감한 탓에 이내 자진 해산하였다.
이 시위 이후로 조금 사태가 잠잠해지는 듯 싶었지만 아직 근본적 해결책이 없었기에 불안한 상황속에서 학교가 운영되다, 이듬해 2001년에는 재학생들의 등교거부, 담임교사 이중 배정, 신입생들의 학교배정 거부와 당시 2학년 학생들의 집단 전학신청으로 인해 학교 자체가 완전히 붕괴될 뻔했다.
교사들도 이 사태로 인해 파벌이 나뉘게 되는 참으로 못볼 꼴을 보이게 되는데, 재단복귀를 반대하는 쪽은 상대위(상문고사태 대책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찬성하는 쪽은 상미교(상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사들의 모임)로 그룹이 나눠지게 되었다.
당연히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재단 복귀를 반대하였지만, 시위 등의 각종 운동이 맞물려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 되고나서 학생회를 비롯한 일부 과격한 학생들은 상미교 측 교사들을 '상춘식에 미친 교사들'이라고 비방을 일삼기 시작했으며, 그 도가 지나쳐서 학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몹쓸 짓들까지도 하게 되었다.
상미교 교사들의 경우 상대위와 다르게 비교적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상미교의 주축이 되었던 일부 교사들의 경우 비리 재단측과 짜고서 재단측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서류들을 상춘식 일가 소유의 동인빌딩 내에서 몰래 태우려다 발각되기도 하는 등 상문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그들의 행동이 실제로는 진실되지 못함을 스스로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에 상대위교사들은 학생들의 지지를 얻으며 기세등등하며, 결정적으로 2002년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학교에서 완전히 세력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들의 상당수가 전교조 소속이었고, 이들 중 일부 교사들은 시위 분위기가 어느정도 안정이 된 후에도 학생들의 학습분위기 조성이나 담임교사로서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시위에만 몰두하는 등 교사로서 기본적인 의무를 져버렸으며, 상미교 교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위, 상미교 어느쪽에도 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던 일부 교사들에게도 압력을 가하여 전교조 가입을 시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문고 교사들의 전교조 가입율이 주변 학교에 비해 상당히 높게 된 것이고 이것은 현재 상문고의 학교 이미지에도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상미교 측 교사들의 '비리 재단복귀 찬성 입장'은 물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어찌보면 상대위측의 교사들의 시위과정 및 그 후에 학교를 정상화 시키는 과정에서의 교사로서의 의무를 져버리는 것 등의 행동들 또한 그리 떳떳하거나 잘한 것도 없다는 것. 재단 복귀 찬반여부를 떠나 중립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조용한 학교에 갑자기 난데없이 비리재단이 복귀한다고 설치는 바람에 교사들의 파벌 싸움이 극에 달했고, 결과적으로 당시 재학생들만, 학업으로나 심적으로나 이래저래 피해를 본 셈이다.
2002년에 대법원에서 전 이사장 상춘식에게 패소 판결을 내려, 현재까지도 교육청에서 이사를 파견해서 운영하고 있다. 덤으로 이 사건으로 당시 이사장이던 상춘식은 상씨 종친회에서 제명까지 당했다(...外관련기사). 덕분에 특이하게 '공립보다 더 공립스러운' 사립학교가 되었다. 과거 명문인 덕분에 동문회의 지원 등이 빵빵해서 사립같은 공립학교인 옆학교(서울고등학교)와는 정 반대되는 상황인 듯. 초대 교장이기도 했던 상춘식이 방해받기를 싫어하여 동문회를 억압했기 때문에 동문회 조직이 지금도 무척 약하며 2001년 학생들의 대량전학신청으로 당시 1학년의 전교생 수가 80%씩이나 급감하여, 2001년 이후의 입학생과 이전의 입학생의 연결고리가 희박하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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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쩝...티아라가 잘 못 했네요.
저의 모교입니다.. 제가 1학년때 저 사건이 터졌는데.. 지금은 많이 콩가루가 된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 사건은 광복이후 친일파 척결에 지지부진했었던 우리나라 모습의 축소판이라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제가 2000년도 졸업입니다. 졸업날짜가 무기한 연기됐었고, 나중에 졸업식장 갔을 때는 학교에 온갖 플랜카드와 붉은 락카칠로 졸업식 분위기도 아니었죠. 암튼 체벌 하나는 끝내주는 학교였습니다. 물론 사고 안 치고 착실하고 눈에 안 띄면 아무 상관 없었지만요.
말죽거리 잔혹사가 유하감독을 비롯한 상문고 동문들이 자신들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죠. 학생시절 이를 갈고 언젠가 이 악랄한 학교현실을 세상에 까발리겠다고 생각했던 동문들이 적극 지지했고 유하감독과 제작진들은 동문회에서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상까지 받았습니다.
아 우리 학교 ㅠㅠ 학급에서 저만 상문고 가게 돼서 부모님이 엄청 걱정하셨던 ...뭔가 체벌 이미지가 남달랐지요
제가 상문고 근처 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다니던 시절은 상춘식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시절입니다.. 들은 얘기로는 상문고 바로 옆에 골프연습장이 생겼는데 상춘식이 공금횡령해서 개인용도로 쓸려고 만들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정말 유별난 학교였죠.. 아침 7시까지 등교해야 하고 머리는 죄수들처럼 짧게 짤랐는데 교복은 유일하게 안입는 학교라서 인근 학교 여학생들에게는 가장 싫어하는 남학생들이 상문고 학생들이라는 우스개소리도 많았구요.. 제 친구 몇몇도 상문 출신인데 지금까지 아주 이를 갈고 있습니다..ㅎㅎ
상문 포스가 대단했죠. 제 친구들도 몇 갔었는데 교복 없고 군인 머리... 학교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험악한 남고라서 그런지 주변에 악명도 높았습니다. 강남 일대 3문(상문, 경문, 휘문) 중 하나였죠.
제 동생 및 제 친구들 학교...교복은 젤 멋있다능...
상문고 인간들 때문에 고등학교 때 말버스 타기가 힘들었던 1人 ㅠ_ㅠ 서울 상문에서 애들태워서 울학교 앞으로 오니 탈 수가 없었다능 ㅠ_ㅠ
94년도 비리사건 때 제가 1학년이었죠... 상문 출신은 아니지만 친구들이 마니 다녀서... 그땐 학교 안가는 것이 부러웠던 철없는 시절이었네요~
근데 저 인간들 다 복권되서 다시 학교 장악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제가 대방동에 있는 성남고 나왔는데....;;;;; 저희 학교랑 좀 비슷한 학교네요....
고3때 갑자기 기자들 몰려오고. 기억나네요.... 근데 본문에 2001년 1학년 80%가 전학갔다는건 과장이 있는거 같네요... 한 학년에 1000명인데... 800명이 전학갔다는건... 믿을수가 없네요..
저 당시로는 정확히는 한 학년이 800정도였고, 2001년 입학생은 결국엔 1백명 정도 남았습니다.
헐... 대박이네요... 제가 다닐때는 한반에 50명씩 20반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