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시오 구즈만은 칠레의 대표적인 기록영화감독이다. 구즈만은 원래 스페인에서 극영화를 전공했으나 칠레에 귀국한 후에는 기록영화작업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특히 아옌데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방대한 기록영화 [칠레 전투]의 감독으로 이름이 높다.
1970년에 수립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민중정부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구 지배세력의 저항에 부딪쳐 많은 난관과 싸우고 있었다. 영화작가들로 구성된 소집단을 이끌며 아옌데 정권을 지원했던 구즈만은 칠레가 사회주의 국가로 바로 서기 위해 겪고 있던 위기와 극복의 순간을 필름에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칠레 전투: 무기없는 민중의 투쟁]이란 제목이 붙은, 총 3부로 구성된 이 4시간 30분짜리 대작은 1973년 2월부터 그해 9월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로 붕괴하기까지의 순간을 담고 있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기록영화이기도 하면서 당시의 사회현실을 더할나위없이 세심하게 분석한 [칠레 전투]의 필름은 아옌데 정부가 무너지면서 구즈만과 동료들이 쿠바로 망명해 6년 여에 걸친 편집을 거쳐 완성했다. [칠레 전투]는 [부르주아지의 봉기], [쿠데타], [민중의 힘] 등 3부로 나뉘어 발표됐다. 칠레사회를 정교하게 분석한 이 영화는 기존 국가의 기구들을 그대로 놔둔 채 사회주의로 평화롭게 넘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계급투쟁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지를 격동기 칠레의 한복판에서 차분히 묻는다. 역사에선 패했지만 구즈만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성찰의 힘은 놀라운 것이다.
구즈만은 그후 [바람의 장미]라는 기록영화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1980년 스페인에 이주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다.
'칠레 전투' 제작 노트
(칠레전투)는 최근 전 칠레 대통령인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국제적인 "응징" 움직임 속에서 새삼스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상영시간 4시간47분짜리 이 대작 기록영화는 1973년 2월부터 그해 9월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로 붕괴하기까지를 담고 있다. 먼저 1부는 (부르주아지의 봉기)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민중연합정권을 창출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승리와 우파 부르주아지와 제국주의의 폭력적인 저항을 담고 있으며, 2부 (쿠데타)는 1973년 6월부터 시작된 군부의 쿠데타 시도로부터 아옌데가 살해당하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장악하기까지를 기록했다. 마지막 3부 (민중의 힘)은 이후 노동자와 농민들의 정치투쟁과 파업에 맞서 자본가들이 벌이는 공장폐쇄 등의 탄압을 그리고 있다.
(칠레전투)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참여파 기록영화이기도 하면서 당시의 사회현실을 더할 나위없이 세심하게 분석한 작품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데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무너지면서 구즈만 감독과 동료들은 그동안 찍은 필름을 6개월에 걸쳐 밀반출해 쿠바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부터 6년간의 편집을 거쳐 영화를 완성했다. 칠레의 사회구성체를 정교하게 분석한 이 영화는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로 옮겨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계급투쟁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따위의 고전적인 질문들을 옛 지배세력과 민중간의 처절한 싸움이 있었던 그해 처참했던 칠레 현실의 한복판에서 차분히 묻는다. 아옌데 정권이 역사에선 패했지만 구즈만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성찰의 힘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진보운동과 투쟁의 교과서라는 평가에 손색이 없다.
출처: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