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비가 내릴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자골로 향했다 산나물을 뜯기 위해서 양자산을 오르려던 계획은 일요일로 미루고 대신 모종을 심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리지는 않는다. 멈추는 틈이 있다. 바로 그 틈을 이용하면 모종을 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다. 우리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틈이었다.
그 틈은 기회일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있다. 공부도 그렇고 씨앗을 뿌리는 일도, 모종을 심는 시기도 그렇다.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일도 틈을 놓치면 지나가버리고 만다. 비가 내리지 않는 틈처럼 사랑이 느껴지는 찰라를 그냥 무심히 넘겨버리면 얼마나 허망한가. 손이라도 잡을 일이다. 눈이라도 맞출 일이다. 인생은 짧다.
고추 청양고추 방울토마토 찰토마토 오이 가지 모종을 샀다. 텃밭에서 뭉텅이로 자라고 있던 도라지와 더덕도 옮겨 심었다. 검은 비닐색과 흙색이었던 텃밭이 푸른 기운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생명 자체가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백이십포기나 심었던 고추모종을 올해는 삼십포기로 줄였다. 손이 많이 가면서도 성공할 확률이 적었다. 특히 말리는 작업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일을 줄여보자는 속셈도 한몫했다.
나이를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은 계속되어지는거라고 착각했다. 어느날부터인가 쑤신다는 말과 결린다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비로소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심코 지나쳤던 말이 아니었던가.
신기한 일이다. 일을 끝마치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비가 내렸다. 거기다가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였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밖이 소란스러울수록 안은 평화가 깃드는 법이다.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마주 누워 바라보는 나도 그도 평화다. 이 일 저 일로 늘 시끄러운 마음이 고요해지는 틈을 얻을 수 있는 여기 지금! 나는 또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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