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2월이면 가족모임이 잦아지게 마련이다. 칠남매중 무려 세명이
태어난 달이기 때문이다. 생일도 생일이려니와 농사일로 바쁜 둘째언니네가
바빠지기 전에 하룻밤 함께 지내기 위해 부안 채석강쪽으로 계획을 잡아놓은
참이었다. 세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익산 둘째 며느리가 생일상 차려준단다. 채석강 가는 길에 이모님들 모두
함께 오시란다"
"정말이요 그냥 입으로만 하는 말 아니유? 여덟명 밥하려면 힘들텐데
마음은 알았으니 그만두라고 하세요. 애 둘 기르는 것도 기특하구먼.
며느리 힘들게 하지말구"
친정 조카가 무려 열여섯명이지만, 특히 남자 조카가 여덟명이지만 조카며느리가
직접 지은 집밥 얻어 먹어본 적 아직 없으니 하는 말이다. 며느리한테 밥 얻어
먹기가 어려운 시대라는거 다들 안다. 쿨해졌다고 자부하는 요즈음 시어머니들을
비롯하여 나이먹은 사람들은 아예 기대도 않는다. 더구나 언감생심 조카며느리라!!
조카며느리.스물세살에 일찌기 시집을 와서 이제 겨우 스물아홉살, 두 아이
잘 길러 이미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남들은 이제 결혼할 나이다.
할머니를 비롯한 대식구 틈에서 자라난 때문인지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가
부드럽고 편했다. 시부모하고 함께 살겠다고도 했단다. 놀러오시라는
말은 기본이다. 하룻밤이라도 더 주무시고 가라고 붙잡는단다.
현모양처나 효부 라는 낱말에 길들여진 나 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마음씨를
지녔다. 시댁의 시 자도 싫어 시금치 나물을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에
은근히 동감하는 나다. 어쩌다 오신 시어머님께 더 주무시고 가시라는 말도
조카며느리처럼 선뜻 하지 못했지만, 시댁식구를 대하는 내 태도는
진심이라기보다는 의무감에서였다는 말이 맞는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시대
여자도 아닌 서른살도 되지 않은 둘째 조카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일상을 직접
차리겠다니. 시이모에 시이모부에 시삼촌까지 모시고 말이다.
"밥이나 하고 미역국이나 끓여놓으면 다행이지 뭐"
시어머니인 세째언니는 그렇게 시큰둥하게 말했고 우리도 별반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어여쁜 말만으로도 이미 배불리 먹은거나 다름없었다.
고추전 해물전 고기전에다가 보쌈에다가 야채말이에다가 쭈꾸미무침에다가
잡채에다가 미역국은 물론이고 퉁퉁장까지 구수하게 끓여놓았다.기특하여라.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조카 출근시키고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그리고
언제 다 준비했나 싶었다. 얼마나 종종걸음을 쳤을까도 상상이 되었다.
특히 보쌈 맛이 보통이 아니었다. 돼지고기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씹히는 식감이 쫄깃하고 구수했다. 인삼도 넣었단다. 내가 만들었을 때보다
허겁지겁 꽤 여러 첨을 먹었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준비한 사람의 마음씨도 먹는다.
음식은 손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맏며느리 노릇하느라 밥 얻어먹는 일이 드물었던 나는 오랜만에 대접받는
기분을 맘껏 누렸다. 막내라서 어딜가도 설거지 담당이었는데,
설거지도 조카 며느리가 다 해냈다.야호홋!!
메세지를 보냈다. 고마운 감사한 기특한 어여쁜 조카며느리의 마음, 고 이쁜
마음을 진심으로 칭찬했더니 답장이 왔다.
"너무 빨리 가셔서 섭섭했어요 다음번에는 아주 길게 길게 놀다 가세요
언제든 놀러오시구요 더 맛있는거 해 드릴께요"
길게 길게 놀다가라는 그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 여운을 본받아 이번 여행에서 나도 노력을 해 보았다.
고스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언니오빠들한테 심술도 부리지 않았고
일찍 일어나 누룽지도 끓여들이고 쓰레기도 정리했다. 다들 말씀하셨다.
막내야 수고했다. 흐흐흐 뭘요!!!
앞으로 쭈욱 부려먹으려면 막내가 튼튼해야한다나 뭐라나
보약 한재 선물로 받았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