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3. 23. 수
1.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는다."사람의 편견은 대상과 직접 부딪히며 생기는 경우보다는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슬림과 성소수자를 교회가 혐오한다. 편견을 갖는다. 대면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문자주의 설교에 학습되었기 때문이겠다. "낯선 존재는 두려움을 유발하고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같은 사람'임을 느끼려면 시간과 노력이 든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편견을 갖는다. 게으름이 편견의 원인이다.
2.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주민등록초본을 준비하다. 내가 존재한다는 걸 정부가 서류로 증명한다. 내 존재 증명을 위해 국가에 기여한 게 없지만, 내 부모가 한국인이라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내 존재를 어렵잖게 서류로 증명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부모가 외국인이면, '미등록이주아동', 소위 불법체류자다.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서류로 증명할 수 없다. 서류로 존재 증명을 하지 못하면, 휴대폰 개통, 은행 계좌 개설, 인터넷 거래, 대학입학, 비행기 탑승 등 불가능한 게 많다. 신학을 공부하며, 신존재 증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데카르트 [방법서설]에 소개된 신 존재 증명을 그럴듯하다 끄덕었으나, 아무리 시도해도 신존재는 이론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미등록이주아동'은 그 존재가 쉬 증명되지 않는 신을 닮았다. 내 연약한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 '미등록이주아동'
3.
독일어로 영화 대사 들으며 실내자전거 12km. 둔한 몸에 깃들만한 게 없다.
4.
정명구 장로께서 들르셔서, 키르케고르 [고통의 기쁨] 과, 한윤수[오랑캐꽃이 핀다1] 를 구매하시다. 민들레교회 예배에 참여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으신다. 어른이 있다.
5.
책 [오랑캐 꽃이 핀다]를 책방에 들였다. 책을 쓴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한윤수 목사님과 통화하다. 1948년 생 한윤수 목사님과 1975년 생 영준 목사는 신대원 동기다. 스물 일곱살 차이다. 600명 넘는 신대원생뿐만 아니라 학부생들까지 이름을 모두 외우셨다. 학교 안에 다니는 사람들 이름을 외우며, 불러주셨다. 그렇게 모든 학생의 이름을 불러주니, 모든 학생이 한윤수 목사님을 알았다. 신학을 하시기 전 '청년사'라는 출판사를 경영하셨고, 박정희 시절 노동자들의 일기를 모아 책을 펴내신 게 문제되어 쫓겨다니셨다. 목사 안수를 받으신 후엔 청년노동자들을 다시 만나는 마음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을 도우셨다. 이 땅에서 오랑캐 취급받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일상에 핀 꽃 송이들을 책으로 남기셨다. 어른이 있다.
6.
발달장애인자조모임 '푸른하늘'. 지영, 다은, 학영, 현아(은미), 희영, 영준 모여 국밥으로 저녁식사. 4월 초에 일산호수공원으로 벚꽃나들이 가기로 결정하다. 벚꽃 나들이 할 때, 다은 씨가 커피와 음료 사기로 명토박다. A 씨에게 다른 사람 그릇 속에 있는 음식이나 옷 주머니 속 과자를 빼지 말라고 잔소리하다. E씨는 결혼할 사람이 있어 강원도에 이사 갈 예정이라는데, 신랑이름을 물으면 모른다. 청첩장이 나오기만 주겠다고 한다. E씨의 망상은 현실만큼 중요해서 말로나마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