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모처럼 만난 친구인데 건성으로 인사를 하곤 폰을 꺼내들고 좌불안석이다. 저장메모리가 꽉 차서 사진이며 메시지를 열 수 없다는 경고가 떴는데 삭제가 안 된다고 한다. 심란한 표정이 역력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연신 스마트폰을 만작거리는 친구. 마음이 허공에 뜬다. 그대로 있어봐야 허방 짚은 기분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아 얼른 AS센터에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 왔다.
해질녘 풀숲에서 고추잠자리가 날았다. 잠자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아랑곳없이 피안의 날갯짓으로 나를 다독였다. 조금 느리게, 서서히 가는 것도 좋지 않느냐는 말을 걸면서. 하늘가에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공중전화로 안부를 전하던 때가 그리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학생 두 명과 퇴근중인 듯한 중년 남성이 역시 폰에 정신이 팔려있다. 한 평 공간이 서늘하기 그지없다. 스마트족에게 주변인은 거치적거리는 존재일 터, 벽면에 붙은 ‘이웃과 인사합시다’란 스티커를 열없이 바라보다 내렸다.
몇 안 되는 식구가 식탁에 앉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들 녀석. 식사 때만이라도 그놈의 것 좀 던져두고 나오라고 일렀건만 듣는 둥 마는 둥 말짱 허사다. 개명 천지에 통신 기술을 끊고 살수야 없겠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다 큰 놈 마음대로 나무랄 수도 없다. 그저 벙어리 냉가슴일 뿐이다. 설거지를 마친 뒤 집안은 더욱 고적하다. 남편은 거실에서 아들은 제 방에서 나는 안방에서 전능하신 스마트폰님께 순종하고 있다. 이 기기가 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가족 간의 대화가 더욱 줄어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회의가 밀려온다. 한 찌개뚝배기에 숟가락 얹고 사는 식구들 말은 건성으로 흘려들으면서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말에는 깍듯한 관심으로 재깍재깍 마음을 표시한다. 오늘도 카톡창에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수없이 방사된다. 연계된 곳이 많으니 어떤 날은 그야말로 콩을 튀긴다. 번잡한 소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대체로 침묵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영 모르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죽하면 대화방 옥살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야심한 시간에 카톡 주점에 앉아 세상사 얄궂은 심사를 토로하는 입담 좋은 사람들. 이모티콘은 눈요기 좋은 고명이다. 이미 만원사례인 자리에 나까지 뭘 더 보태랴싶어 눈으로만 동참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흠집 난 영혼 어르고 달래기 위해 가갸거겨 오요우유 감싸고 쓰다듬는 우리네 삶의 쓸쓸한 뒷모습을. 더러는 위로 받고 이해 받기 위해 틈틈이 안과 밖을 뒤집어야하는 그 허우룩한 기분을.
두둥.. 두둥.. 까톡 까톡.. 온갖 소리와 신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른다. 이러나저러나 끌어안고 살 수 밖에 없는 모바일이 또 다른 고리가 되어 나를 옥죈다. 요즘 들어선 사생활의 경계도 모호해진 것 같다.
날아가는 새떼에 합류하지 못하고 지상에 외따로이 남은 새가 나란 종자일런가. 아무리 쓸모 있는 문명의 도구라 해도 일상에 깊이 끼어들어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수시로 빼앗는 건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소통과 공유라는 측면에선 좋지만,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색할 여백이 자꾸 줄어드니 뭔가 헛도는 느낌이다.
얼마 전 ‘한국인 스마트폰 없이는 못살아. 보유율 세계 1위’라는 기사를 보았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어찌하여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스티브잡스란 사람도 자기 자식한테는 앱 사용을 자제시켰다 하고, 어느 시인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게 하시고, 나뭇잎이 튕겨 올리는 햇빛 한 오라기도 감격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라는 기도의 글을 썼다. 스마트폰이 영혼의 서식지가 되어가는 세태를 염려한 것이리라.
나는 신인류 시대의 맹꽁이. 어렸을 적 큰물 지기 전 토방 아래서 울음으로 일기를 예보하던 맹꽁이처럼 그예 한마디 하고 싶다. 생활방식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지 못하면 머지않아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대로 로그아웃 없는 시간을 살다가는 삶이 한순간 통째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부탄이다. 어느 기자가 그 나라 왕에게 비결이 무어냐고 물었다. 대답이 돌아왔다. 핸드폰 사용을 절제하고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라는 충고였다.
(전민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