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법에 침을 뱉으마!
이정우의 철학카페 32 ㅣ 오노레 도미에
사법계 날카롭게 풍자한 시대의 전사… 집달관 경험을 오롯이 판화에 담아
사진/ <법조계 사람들>(1834년). 석판화. 위싱턴 국립미술관 로젠월드 컬렉션.
오노레 도미에(1808∼79)는 프랑스대혁명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19세기 초에 가난한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1830년의 7월혁명과 1848년의 2월혁명, 그리고 파리코뮌까지 겪으면서 19세기의 한복판을 살았다. 그는 사법집달관으로 인생을 출발했으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법조계의 실상을 환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도 밑바닥으로부터의 시선을 가지고서. 그는 자신을 법조계라는 거대한 하수구의 한 마리 벼룩으로 생각했다.
도미에는 자신이 경험한 그 추한 세계를 판화를 통해서 다각도로 묘사했다. 판화는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으며 따라서 단 한장만의 원본이 있는 일반 그림과 다른 성격을 띤다. 그것은 계속 찍어내고 유포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표현방식이다. 아마도 이런 방식 때문에 판화는 역사적으로 격동을 겪는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1980년대에 유독 판화가 많이 제작되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미에는 판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미술가로서 시대의 전사가 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주구였던 사법계
도미에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풍자의 성격을 띤다. 비판적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미술은 대개 풍자의 형식을 띠게 된다. 칸트는 풍자를 과장과 연결시켰으며, 평균적 형상으로부터의 일탈로 보았다. 때문에 도미에의 그림들에서도 법조인들은 매우 극단적으로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그런 외형적인 과장은 바로 그들의 실상을 드러내기 위한 기법이었던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풍자는 부르주아 계급이 유럽의 실권자가 되는 시대에 탄생했다. 즉 부르주아 계급이 유럽을 장악하면서 그들은 풍자의 대상이 되었으며, 서민들의 적인 그들을 공격하는 한 방식이 풍자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미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부르주아 계급보다는 그 계급의 주구(走狗) 역할을 한 당대의 사법계에 비판의 화살을 겨누었다.
<법조계 사람들>은 법조인들의 몇몇 인물들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상반신의 군상(群像)으로 되어 있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뒤로 젖힌 얼굴, 보무당당한 걸음걸이, 자신에 찬 입모양 등을 통해서 법조인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배어나온다. 반면 그 옆의 인물은 어두운 색조로 처리되어 있으며 고민에 휩싸여 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일들이 법조계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사진/ <법정의 한 모퉁이>(1864년). 흑색 트레용과 펜 그리고 수묵 담체와 수채, 볼티모어 미술관.
<법정의 한 모퉁이>는 성공한 변호사와 실패한 변호사의 대조를 그리고 있다. 성공한 변호사는 역시 뒤로 젖힌 얼굴과 거만하게 다문 입, 당당한 걸음걸이를 통해서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과시하고 있다. 인기 없는 다른 한 변호사는 지나가다가 흘낏 뒤를 돌아보면서 그런 그를 부럽게 쳐다보고 있다.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또 다른 그림들에는 변호사들의 인간관계가 묘사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집단은 얼핏 점잖고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뜨거운 경쟁의식으로 달아올라 있다. 교수 사회가 대표적이다. 출세한 사람들의 사회일수록 질시에 의해 지배되는 법이다.
성공의 이면, 그 더러움을 보라!
<밝은 날>은 법정을 걸어나오면서 신문을 읽던 한 변호사가 만면에 웃음을 짓는 그림이다. 신문에는 자신이 전날 했던 변론이 실려 있다. 마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처럼 변호사들은 인기를 관리한다. 변호사의 변론은 하나의 연기이며 신문기사는 비평이다. 명성과 인기에 집착하는 법조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도미에는 법조인들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 못지않게 의뢰인들과 그들의 관계를 그렸다. 한 그림(도미에의 그림은 제목과 연대를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에서 예심판사는 피의자의 말을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있다. 그는 피의자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모든 판단을 하고 있으며, 피의자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 내보내고 있다. 그에게 다른 사람의 운명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송사란 그저 일상사일 뿐이다. 피의자들이나 의뢰인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가 그들에게는 그저 매일매일의 상투적인 업무일 뿐이다.
한 그림은 변호사를 찾아온 아가씨가 그려져 있다. 변호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 반대편에 또 한 사람의 변호사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있다. 그들에게 이 아가씨는 인간이 아니라 돈 덩어리다. 그들은 이미 그에게 얼마를 뜯어낼 수 있는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또 한 그림에서 변호사는 자신에게 의뢰하러 온 사람의 문서를 무심하게 훑어보고 있으며, 의뢰인은 손을 꼬면서 초조하게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그림들 중에서 가장 처절한 그림들 중 하나는 한 변호사와 흐느껴 우는 한 여인을 그린 그림일 것이다. 법정에서 억울하게 패했는지 여인은 손수건을 얼굴에 대고 흐느껴 울고 있다. 그의 손에는 아들의 손이 쥐어져 있으며, 우는 엄마를 따라가는 아이도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다. 그 옆에서 걸어가는 변호사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느긋하게 젖히고서 걷고 있다. 그는 자기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슬픔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않는다. 의뢰인의 참담한 심정과 변호사의 무덤덤함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법의 세계
19세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의 세기’였다.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과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 계급 사이에 밀고 밀리는 힘의 대결이 전 세기를 수놓았다. 도미에는 그 한가운데 살면서 법이라는 것이 결국 돈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것, 법조인들이라는 사람들이 결국 남의 불행을 빌미로 권력과 명예를 누리를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판화를 통해서 과장된 형식으로(요즈음으로 말하면 캐리커처) 그런 추한 모습들을 그렸던 것이다.
도미에의 그림들은 푸코의 작업들을 연상하게 한다. 푸코는 늘 19세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이 세기를 훈육사회가 뚜렷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사회로 그리고 있다. 도미에의 그림은 바로 그 시대의 이미지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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