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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9일째; 희운각~1275봉~마등령~황철봉~미시령(12.1km)
2011년 5월 19일 목요일, 흐리고 강풍, 때때로 비
희운각 대피소에서 배정받은 자리에 담요 4장을 펴서 2장을 들치고 대원과 함께 담요속으로 들어간다. 잠자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담요를 능률 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춥지는 않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라면, 한 잠하는 대원隊員도 여기서는 어쩔 수 없는 듯,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2층으로 된 대피소에 여러 사람이 있다 보니 늦게까지 밖으로 들락날락 거리거나 2층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부산스럽기도 하거니와 통로에 켜놓은 통로등이 너무 밝아서 자는데 방해가 된다.
나는 2년 전 이맘 때쯤, 대간大幹 순례 첫날밤에 지리산 장터목대피소에서 잠을 못자고 거의 꼬박 밤을 세웠던 것이 생각났다. 그날은 여기보다 산꾼들도 훨씬 많았고 소란스러웠다. 오늘 밤은 잠이 들지 않으니 낮에 전도顚倒 사고난 부위가 불편하다. 이마도 아프고 왼쪽 팔에도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없고 참을 수밖에 없다.
나는 라이트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11시가 되었는데, 아직도 밖에서는 간이 식탁에서 5~6명의 산꾼들이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있다. 밤공기가 싸늘한데 우려하던 비는 오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렸다 안으로 들어와보니, 침상에 자는 사람들이 머리를 통로쪽에 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둔 사람도 있어 제각각이다. 자리로 와서 대원隊員에게 머리를 반대쪽으로 해서 자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누웠더니 통로 불빛도 차단되고 통로에서 나는 소음도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게 아닌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마 군대 생활의 잠재 의식 때문인 것 같다. 불침번 깨울 일도 없는데..., 그러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순토 시계의 알람소리..., 어제부터 4시에 일어난다. 건너편 침상에 자던 여자들이 벌써 일어나 들락날락 하고 있다. 이 산꾼들은 남자2에 여자들이 5~6명인데, 남자 둘은 60대 중반으로 보이고 여자들은 50대 중반에서 60대초반까지 다양한 계층이다. 이들은 어제 한계령까지 우리와 같은 버스로 왔는데 대청봉을 오를 때는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우리를 앞질러 가더니 희운각에는 4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가 희운각에 왔을 때는 저녁 식사를 거의 끝내고 있었다. 이들은 오늘 공룡능선을 지나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 설악동에서 귀경 한다고 한다.
나는 라이트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으나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식탁 옆에는 밤새도록 불어 댔을 그 강풍 속에서도 대 여섯명의 산꾼들이 침낭속에서 비박을 하고 있다. 아마 어제 늦게까지 밖에서 식사하던 바로 그 산꾼들인 듯..., 식탁에는 먹다만 음식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나는 화장실에 들렸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와 짐을 챙긴다. 건너편 침상에서는 여자들이 둘러앉아 화장을 하느라 분주하다.
우리는 산행을 하다가 아침을 먹을 생각으로 배낭을 메고 나와 산행 채비를 한 다음 5시 정각, 강풍을 헤치고 잘 다듬어진 등로를 따라 신선대로 향한다.
[신선대로...]
[무너미고개]
어느새 왼쪽에서 귀때기청봉이 어둠을 떨고 일어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곧바로 무너미고개에 이른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가야동계곡을 따라 오세암을 거처 백담사로 가게 되고 우측으로 가면 천불동계곡을 따라 비선대를 거처 설악동으로 간다. 여기서 백두대간은 신선대에 올라 공룡의 등을 타고 마등령으로 향한다. 우리는 직진, 공룡능선으로....
설악산에는 아름다운 봉우리를 이어 주는 능선이 크게 4개가 있다. 가장 으뜸이되는 서북주릉西北主陵을 비롯하여 용아장성릉龍牙長城陵, 공용능선恐龍陵線, 화채능선華彩陵線이 있고 그 능선과 능선사이에는 계곡이 만들어져 그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그리고 우리 한반도의 큰 마루금인 백두대간은 점봉산에서 한계령을 지나서 서북릉에 올라 대청봉을 만나고 다시 공룡능선을 타고 가서 마등령, 황철봉, 미시령을 건너 신선봉, 마산을 지나 진부령에 이른다. 다시 진부령에서 향로봉을 지나 우리민족의 비극인 분단의 장벽을 넘어 금강산으로 달리게 된다.
나는 이번 산행을 준비하면서 진부령너머에 있는 향로봉까지 가려고 관할부대인 1862부대 정보참모처에 "향로봉답사"허가 신청을 했더니 담당자가 전화로 불가함을 통지해 왔다. 그 사유는 2010년 산림청산하 양양국유림사업소에서 향로봉일대를 산림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탐방자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향로봉일대를 관장하는 군부대로 2차례나 협조 공문을 보내 왔다고 한다. 따라서 그때까지 시행해 오던 '군부대 안내 향로봉 탐사'는 중단 되었다는 답변이다. 그래서 나의 대간 순례도 아쉽지만, 진부령까지 할 수밖에 없다.
어제는 서북능선..., 오늘은 공룡능선을 가기 위하여 신선대를 오르고 있다. 공룡능선은 백두대간 마루금일 뿐만아니라 강원도내에서 시계市界와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경계 지우기도 한다. 즉~ 능선의 왼쪽은 인제군으로 내설악에 해당하며 오른쪽은 속초시인 동시에 외설악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백두대간은 동과 서를 경계지우고 있다.
[신선대]
신선대 통바위 옆구리를 돌아 신선대에 오른다. 그런데, 예상대로 바람이 얼마나 센지 몸을 가누기 힘든다. 신선대 정상은 오른쪽 암봉을 올라가야하나 오늘은 강풍 때문에 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곳은 어둠에 잠긴 설악의 비경을 깨우는 일출日出이 장관이라 사진 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은 일출 시간이 지나기도 했지만 날씨가 흐린 탓으로 햇님을 볼 수가 없다. 강풍에 버티며 뒤에 있는 대청봉大靑峰과 다가오는 1275봉을 감상하고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신선대에서 바로 내려간다.
[신선대에서 본 대청, 중청, 소청봉...]
[앞으로 갈 공룡능선...]
가운대 가장 우뚝한 암봉이 1275봉, 그 뒤에 있는 암봉은 나한봉, 다시 그 뒤에 있는 부드러운 봉우리 두 개는 각각 마등령 정상과 황철봉이다. 오늘 황철봉까지 가서 다시 울산바위 갈림길을 지나 미시령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1275봉 우측능선에는 범봉이, 마등령 우측능선에는 세존봉이 서로 비슷한 형상으로 우뚝 솟아 있다.
[뒤돌아본 신선대...]
뒤 따르는 대원이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대자 모자를 배낭에 메달고, 날리는 머리카락은 수건으로 감쌌다. 여기를 오르다 마주 오는 산꾼들을 맞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설악동에서 새벽 3시에 나섰다고 한다. 아무튼 공룡의 등뼈에는 오늘도 산꾼들로 붐비고 있다.
[지나온 공룡능선과 그 너머로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는 대청봉...]
[1275봉으로..., 완만한 오르막]
[뒤돌아본 공룡과 대청...]
[1275봉에...]
1275봉에 오르고 보니 멀리서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끝이 보이지 않는 큰 암봉사이 공터에 이정표만이 자리하고 있다. 1275봉은 이정표 맞은편에 있는 암봉이다. 오늘은 강풍때문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고 이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내려가야만 한다.
[나한봉...]
1275봉을 내려오며 바라 본 나한봉...,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나한봉까지는 무명 암봉을 하나 지나고 1시간 반이나 걸린다. 아침 식사로 빵을 먹으며 쉬기도 했지만...,
나는 나한봉을 오르며 다시 나의 화두話頭를 찾아내어 조용히 되뇌어 본다. 지리산을 지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화두..., 그리고 비를 흠뻑 맞으며 덕유산을 오를 때나 한밤중에 백화산을 돌아 이화령으로 내려올 때, 그리고 추위에 시린 손을 녹여가며 태백산을 지날 때나, 눈 속에 칼바람을 맞으며 함백산에 올랐다 무릎까지 잠기는 눈길을 헤치며 두문동재를 내릴 때 뿐만 아니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부드러운 대관령을 걸으면서도 문득문득 되뇌곤 하던 나의 화두를 오늘도 읊조려 본다. 과연 나는 나의 화두에 얼마나 다가선 것일까? 아니면 더욱 멀어진 것은 아닌가?
[무명암봉에서 바라 본 마등령정상, 1326.3m]
마등령 정상과 그 우측에 위치한 세존봉..., 어느새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세존봉 너머에는 몸이 무거워 금강산까지 가지 못하고 설악에 주저앉은 울산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내가 가고 있는 14차 산행, 전全구간 중에서 과거에 나의 발걸음이 닿은 곳이라고는 한계령과 미시령..., 2지점 뿐이다. 그것도 물론 자동차로 고개마루에 올라 휴게소에 들린 것이 전부지만..., 뿐만 아니라 10여 차례 이상 설악산에 오면서 내가 밟아본 곳은..., 권금성, 금강굴, 울산바위가 전부이다. 그러기에 이들을 오늘 공룡능선을 걸으며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나한봉을 오르는 대원隊員...]
암봉을 오르 내려며 마침내 나한봉에 올랐다. 이제 내려가면 마등령..., 공룡능선도 끝나가고 있다. 때마침 바람도 잦아 들었다. 주위에 있는 나한羅漢들이 바람을 막아 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나한봉 정상에서 커피를 한잔들고 공룡의 끄트머리에서 설악을 감상하며 잠시 감회에 젖어본다.
세존봉 너머 울산바위는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다. 대청봉에서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승령, 안산까지 장쾌한 서북능선과 앞으로 갈 마등령, 그리고 비선대와 대청봉에서 화채봉을 거처 뻗어온 화채능선華彩陵線 끝에는권금성이 자리하고 있다. 권금성은 산꾼이 아니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면 거이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역시젊은 시절에 설악에 가면 애들과 함께 오른 기억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권금성 케이블카는 어린이들의 손을 잡은 행복한 가족들을 가득 태우고 권금성으로 오르내리고 있을 게다.
[비선대와 설악골...]
좌측 암봉 능선이 금강굴과 비선대..., 그곳에서 계곡건너 있는 암봉이 권금성이다. 젊은시절 포항에 있을 때 여름, 또는 겨울에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려 설악을 찾곤 했다. 애들과 함께 온 것이 4~5회는 되는 것 같은데, 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한화 콘도에서 2박3일 일정으로 보내곤 하였다.
어느 해인가 한화콘도에서 자고 1월1일 새해 첫날, 미시령 휴게소 옆에서 애들과 함께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다 마침내 산 능선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 해 소망을 기원한 적도 있다. 그때는 설악에 오면,주로 케이블카로 권금성에 가거나 흔들바위까지 가거나 하였다. 한번은 울산바위까지 갔다 내려오는 계단에서 작은 애가 계단을 헛디디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이 있기도 했고 또, 겨울에 랜드로바를 신고 비룡폭포로 가다가 미끄러워 혼이 난 적도 있다.
눈이 자욱한 한계령과 미시령을 오르내리며 설악의 풍경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 용대리에서 황태 정식을 맛있게 먹고는 삼거리 공터에서 30센티 이상 내린 눈위에 대원隊員이 애들과 함께 벌렁 드러누워 몸도장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기억들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가고 말았다.
[대청봉과 서북능선...]
[수렴동계곡과 서북능선 대승령, 안산방향...]
[마등령과 황철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마등령으로 오르는 등로가 가늘게 보이고, 마등령 정상에서 좌측으로 꺾기어 암봉을 지나면 황철봉으로 이
어진다.
[오세암 갈림길...]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오세암을 거처 백담사로 가게 된다.
[마등령삼거리에 있는 출입금지...]
오세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공터를 지나 마등령 삼거리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예상했던대로 반갑지 않는 '출입금지판'이 우리 순례대巡禮隊를 또다시 가로 막고 나선다.
출입 금지판 너머로는 동물은 다닐 수 있고 인간은 다니지 말라는 표식으로 어떤 인간이 줄을 처 놓았고, 또다른 인간들은 그 줄을 너머 가서 발자국으로 길을 만드러 놓았다. 인간과 인간의 갈등이 이 곳에도 있다.
우측에는 금강굴과 비선대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놓여져 있고 계단 옆에는 '이구간은 급경사 붕괴위험 구간이니 탐방객은 유의 하시기 바람니다' , '마등령 정상, 1320m' 으로 표시된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마등령 정상에 가려면 여기서 20여분 더 올라가야 하므로 이것은 명백한 허위 정보다. 우리 인간적으로 허위정보는 게시하지 말자. 우리 팀은 줄을 넘어 마등령 정상으로 향한다. 여기서 부터 미시령까지는 출입금지 구간이라 이정표가 없으니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등령정상에서 돌아본 공룡능선과 대청봉]
[마등령 정상, 10여미터 앞에 있는 대간길...]
마등령 정상에서 몇 걸음 되돌아 나와 찍은 사진인데..., 대간 길은 왼쪽으로 와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알바하기 십상이다. 마등령 정상에도 큰 나무는 없고 낮은 잡목만이 세찬 바람에도 옹골차게 버티고 있다. 이제 막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는데 진달래 꽃잎이 꼭 연산홍처럼 낮으막하다.
[마등령을 내려 오며 바라본 황철봉, 1381m]
마등령에서 황철봉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꿈틀대며 뻗어 나간다. 대간 길은 능선을 내려가 앞에 보이는 암봉을 넘어 가면 저항령이고 저항령에서 우측에 보이는 황철봉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어느새 2병째 물병이 겨우 바닥에 깔렸고 마지막 물병 하나만 남았다. 아무래도 저항령에서는 물을 보충하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마등령정상에서 볼 때는 내려가는 길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보였는데 조금내려 오니 숨겨져 있던 너덜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부터 험한 너덜 길이 시작되는 것인가?
[숨겨져 있던 너덜길...]
[점심 ]
세 번째 만난 너덜길에서 점심을 먹는다. 아침끼니를 빵과 커피로 때웠더니 11시인데 벌써 시장하다. 대피소에서 준비해 온 햇반..., 햇반이 집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배낭에 꽂아 두었던 깔판이 언제 날라 갔는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1178봉에서 본 울산바위...]
점심을 먹고 1178봉에 올랐더니 울산바위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4시간을 가면, 울산바위 갈림길이 나오고 거기서 미시령까는 40여분 걸린다.
[저항령계곡...]
우측으로 저항령에서 설악동 신흥사로 곧게 뻗어 가는데..., 저항령계곡에는 녹음이 짙게 물들어 있다. 능선
너머에는 울산바위..., 설악동 왼쪽 봉우리는 달마대사를 닮은 달마봉(626m)이 자리하고 있다.
[다람쥐...]
대간길에 비스듬이 누운 참나무에서 다람쥐 한마리가 앙증맞게 도토리를 먹느라 사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설악산 다람쥐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고 하더니 어제부터 심심찮게 다람쥐들이 잠깐씩 순례길에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연속되는 너덜길...]
마등령 정상에서 보았던 암봉(1249m)을 좌측으로 지루하게 돌아가다가 거의 다 돌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 암봉을 넘어가야 저항령이 나온다. 그런데 좌측으로 도는 길이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때때로 너덜길을 지나기도 하는 지루한 길이다. 지도에는 마등령 정상에서 암봉까지 1시간 거리이나 너덜길을 지나 가느라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저항령으로...]
[저항령으로...]
[저항령으로...]
너덜길 구간에는 돌에 붉은 폐인트로 화살표가 있기도하고 또 짧은 너덜 구간일 때는 건너편 나무에 달려있
는 표지리본이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제 넘어진 적도 있어 바짝 긴장하며 지난다. 어제는 이
보다 훨씬 평범한 길에서 넘어지지 않았나...!
[저항령으로...]
[1249.5암봉...]
드디어 1249.5봉 아래에 왔다.이제 저 홈통 사이를 넘어 내려가면 저항령이다.
[1249.5암봉 오르기 직전...]
홈통을 힘들게 기어 올라 1249봉 만디에 올라서는 순간....!
[저항령과 황철봉 黃鐵峰, 1381m...]
나는 홈통사이로 암봉을 기어올라 고개를 들었더니, 눈앞에 펼처진 전경全景에 흠칫 놀라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는 또다시 너덜돌이 마치 폭포수처럼 펼쳐져 있는 데다 왠 시뻘건 노끈이 산발을 한 채 강풍에 펄럭이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앞에는 정상 부근에 여기저기 너덜돌이 덮혀 있는 황철봉이 황량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어쨋든 내려가면 저항령..., 조심해서 내려간다.
[저항령으로...]
[너덜길은 다 지나 갔나? 하면 또 나타나고...]
[저항령, 1100m]
너덜길이 끝나고 저항령에 닿았다. 저항령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데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등산로가 나 있다. 우측길은 희미하나 좌측, 인제쪽으로는 뚜렷한 것으로 보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것 같다.
지도를 보니 우측으로 곧게 뻗어 있는 저항령계곡을 따라 3시간 반 정도가면 '노인정'에서 설악동~ 비선대 등로와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오봉산을 지나 용대2리로도 갈수 있고 백담사로도 갈 수 있는데 모두 4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저항령에 앉자서 그동안 너덜길을 지나느라 지처서 너덜거리는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잠시 쉬는데..., 아무래도 물이 부족할 것 같다. 여기서 미시령까지 4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3병씩 가져온 물이 마지막병 2/3정도 남아 있다.
지도에는 여기서 인제쪽으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물' 표시가 있다. 배낭을 저항령에 두고 물병 2개씩을 가지고 대원隊員과 함께 물을 찾아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다보니 우측에 계곡이 시작되는데..., 계곡은 말라서 건천乾川이 되어 있다. 15분 정도 내려갔지만 여전히 물이 없다. '이러다 너무 멀리 내려가는게 아닌가? 그렇다고 물을 못 구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데 어떻하나' 하고 망서릴 시점..., 어디서 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등로를 조금 벗어나서 물 소리 나는 곳에 갔더니 큰 너덜 돌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물병을 옆으로 누이니 물 병이 잠길정도..., 쉽게 물병을 체울만큼 수량이 충분하다. 한 통을 떠서 대원을 주고 나도 한 통을 떠서 마신다. 물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한 통을 다 마시고 나서야 갈증이 풀린다. 반통 정도씩 더 마시고는 각자 두 통씩 들고 배낭 있는대로 돌아왔다. 물을 뜨느라 40여분을 소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물을 충분히 준비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저항령을 떠나 황철봉을 오른다.
[황철봉으로...]
[황철봉으로...]
황철봉을 오르는 길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너덜 길을 오르게 되어 있다. 나는 그동안 너덜을 지나면서 야간에 여길 지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드랬는데..., 여기에는 야광 폴대가 드문드문 꼽혀 있는 것으로 보아 밤에 지나는 산꾼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야광폴대는 대간 길의 방향만 안내할 뿐, 결코 쉬운길을 안내하고 있지는 않다.
[돌아본 너덜길...]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에 저항령으로 내려온 너덜길이 보인다. 여기서 보니 마치 1249봉에서 너덜 돌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리는 것 같다.
[황철봉(1,381m) 아래에...]
오르막 너덜길을 힘겹게 지나고 황철봉 바로 아래에..., 기대감을 갖고 정상에 올랐으나 황철봉에는 '자연보
호구역' 이라는 표시말뚝만 한 개 박혀 있고 정상석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힘들여 오른 만큼 전망은 훌륭하
다. 만발한 진달래 밭 너머로 앞으로 갈 미시령 방향도 시계가 열려 있다. 미시령 너머에는 상봉과 신선봉이
뿌연 안개를 뒤집어쓰고 내일 만나자고 한다.
[1318.9봉 아래에...]
황철봉을 지나고 편한 길도 잠시, 또다시 나타난 너덜길을 지나 50분 정도 나아가자 너덜돌로 된 깔닥고개
아래에 이른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 라면 1318.9봉인 듯한데..., 그렇다면 삼각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
덜너덜 지친 몸으로 깔딱고개를 올랐더니...,
[1318.9 봉...]
반갑게도 삼각점이..., 여기가 1318.9봉이 틀림없다. 삼각점 옆에 앉아 빵을 반쪽씩 나누어 먹고 물도 마시고 잠시 쉰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울산바위 갈림길이 있는 1080봉까지는 긴 너덜지대를 지나야 하는데 지도에 '너덜지대에 있는 돌탑은 등산로를 표시'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너덜길에 화살표나 야광폴대 또는 돌탑같은 표시가 없다면 너덜지대를 통과 하면서 대간마루를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여 너덜 길을 다 통과 했을 때 이어지는 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조금전 부터 멀리서 천둥이 치기 시작하더니 인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작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람은 줄어 들었으나 기온마저 떨어진 듯하여 배낭커버를 씌우고 바람막이를 걸친 다음, 미시령으로 향한다.
[1318.9봉에서...]
삼각점을 지나자 마자 길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좌측방향의 나무에는 로프가
걸려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왠 로프...? 하다가 지도를 꺼내본다. 지도에는 대간 마루가 삼각점이 있는 바로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기는 게 아닌가...! 그제서사 로프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대간마루를 걸어오면서 저렇게 길을 안내하는 로프를 몇차례나 보았지만 벌써 내 기억 속에 그 의미가 희미
해져 있다.
[너덜 바다...,미시령으로...]
그런데 로프를 따라 몇 걸음 옮기자마자..., 길게 흘러가는 너덜길이 마치 바다처럼 눈앞에 전개되어 우리 순례대의 기를 꺾어 놓고야 만다. 그러나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옅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미시령이 보이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그렇다, 이 너덜을 지나 저 앞에 보이는 울산바위 갈림길이 있는 1080봉만 지나면 미시령까지는 순한 길이다. 대원에게 주의와 희망을 동시에 실어주고 너덜길에 들어 선다.
그런데 많은 비는 아니지만 조금 전부터 뿌린 비로 돌이 젖어 있다. 이끼 낀 돌이 물기를 머금고 있으니 꾀 미끄럽다. 물가에 있는 바위에 낀 이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미끄러워, 비 내리기전 보다 너덜돌 지나기가 한층 어려워지고 말았다. 만일 경사진 돌을 디디다 미끄러지면 깊은 너덜돌 틈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마치 방파재에 파도를 막기 위하여 엉기성기 쌓아 놓은 '테트라포드(4발 콘크리트 구조물)' 를 지나는 것 같다. 그래서 가급적 경사진 돌을 피해서 발을 디디려고 하니 발걸음이 훨씬 더 힘든다. 롱 다리라면 조금은 유리하겠지만 지금와서 늘일 수도 없고..., 부득이 두 발 또는 네 발로 건너간다.
드문드문 돌탑이 보이기는 하나 방향만 도움이 될 뿐, 편한 길을 안내하는 것 같지 않아 내 나름대로 길을 잡아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대원도 내가 지난온 곳을 따라오기도 하고 또 다른 루트로 오기도 한다. 걱정은 되지만 어쩔 수 없는데..., 잘 따라오고 있다 오히려 대장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너덜길을 한참 지나오자 미시령과 상봉이 성큼 다가오고...]
[계속되는 너덜길...]
미끄러운 너덜길 구간이 끝나고 1080봉에 올랐다. 기대대로 갈림길이 있는데..., 길 양쪽 바닥에 있는 돌에 왼쪽에는 '대간', 오른쪽에는 '해'라고 써 놓았다. '해'가 무슨 뜻일까? 울산바위 방향이라면 '울'이라고 해야하지 않나...? 어쨌던 대간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오늘의 목적지 미시령까지는 40분 거리..., 길도 무난하고 8시 전에는 도착 하겠는데...,
[상봉과 미시령이 눈앞에...]
미시령이 눈 앞에 다가왔는데, 여기서 보니 미시령은 상봉으로 오르는 백두대간의 허리를 파고 들어가 있다.
다행히 비는 한 두방울씩..., 거이 그첬다. 미시령 건너편에 내일 만날 상봉이 우뚝 서 있다. 미시령에 내리기 200여 미터 전방에 우측으로 갈림길이 있는 곳에 앉아 쉬면서 예약해둔 '미시령 산채' 김종성씨에게 전화를 해서 8시까지 차를 갖고 나오도록 연락을 했다.
이 시간에 탐방 금지를 단속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펜스가 높히 처져 있을 테니 넘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 산꾼들이 주로 이용하는 우측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우회하기로 한다. 우측 소로를 따라 미시령 정상에서 속초쪽으로 조금 비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소로를 덮고 있는 작은 나무와 풀들이 비를 흡뿍 먹음고 있어 이들를 헤치고 나가다 보니 바지가 금새 다 젖어 버린다.
도로까지 내려오니 도로에는 어쩌다 하나씩 차들이 불을 켜고 지나간다. 미시령 터널이 뚤리고는 지나는 차들이 거이 끊어진 듯..., 그런데 철망 펜스는 끝났지만 산쪽으로 처져있는 가슴 높이의 안전 철제 펜스를 넘어가야 도로에 내릴 수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대장隊長이 먼저 넘고 배낭을 넘겨 받은 다음 대원隊員도 따라 넘는다.
[미시령 정상, 767m]
펜스를 넘어 도로에 섰다.
도로를 따라 미시령 정상으로 오르는데 우측 도로변에 폐쇄된 미시령 휴게소가 나타났다. 어둠에 묻힌 휴게소 건물이 입구에 켜진 보안등 불빛만 희미하게 밝히고 있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유령의 집처럼 을씨년스럽다. 옛날에는 행락객들로 북적댔고, 나도 여러번 저 곳을 이용하곤 했는데..., 세월의 변화 앞에 이제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간다.
미시령 정상에는 조그마한 표지석 하나가 홀로 서서 이곳이 미시령彌矢嶺임을 알려 주고 있다. 저 표지석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필체이다. 이 구간이 산행 금지 구간이다 보니 큰 고개마다 있던 백두대간 표지석이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섰더니 인제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골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 오늘 총 산행시간; 15시간, 산행거리; 15.1km(백두대간; 12.1km) --
민박집 김종성씨가 무소를 몰고 왔다. 배낭과 스틱을 트렁크에 싣고 미시령을 내려와 미시령 터널 입구에 있는 '미시령 산채' 로 왔다. 스틱은 차에 두고 배낭만 들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미시령산채'는 식당인데 김종성씨는 우리와 비슷한 연배로 35년째 식당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종성씨가 하는 대로 비빔밥을 준비하는 동안 막걸리를 찾았더니 마침 막걸리가 떨어졌다며 사 오겠단다. 맥주나 한잔하면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자기가 산에 다녀봐서 하산하면 막걸리가 생각나니 막걸리를 드셔야 한다며 나가더니 인제막걸리를 사 왔는데..., 막걸리통이 2리터 짜리다.
비빔밥에 된장찌게, 각종 산나물이 차려진다. 산나물 맛이 그만이다. 특히 오늘 마신 '인제막걸리'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김종성씨도 합석해서 한 잔씩 주고받는다. 그러나 내일 산행을 위하여 자리를 정리하는데, 그래도 약간은 과음한 듯하다.
김종성씨에게 내일 아침식사를 5시에, 식사가 끝나면 다시 미시령 정상에 복귀시켜 달라고 하고 도시락까지 부탁한다. 그리고 비용을 얼마를 드리면 되겠는냐고 했더니 숙식비 10만원에 기름값쪼로 5만원만 주시죠 한다. 그러시라면서 15만원을 주는데 약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방으로 들어와 대충 씻고 나서 어제 넘어진 흔적을 거울에 비추어 보니 이마와 왼쪽 팔, 무릎에 약간씩 찰과상이 있다. 비상약을 꺼내 바르고 파스를 붙혀둔다. 대원은 벌써 꿈나라로 빠저들었다. 나는 TV로 내일 날씨를 확인 하는데..., 우려했던 대로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할 거라고 한다.
지도를 펴 놓고 내일 갈 구간을 따라가 본다. 내일은 미시령에서 첫 번째 만나는 상봉까지가 가파르고 또 그전후가 난코스가 될 것 같다. 아무튼 내일은 우중 산행에다가 더구나 미시령 들머리부터 '출입금지구간'이라마음에 부담이 된다. 백두대간 순례의 마지막 밤을 여기서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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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화두가 무얼꼬~~ 아마 너덜길을 지나고 나서는 화두가 바뀌지 않았을까?
지나가는 산객도 없는 험하디 험한 산행 길의 최악의 길 너덜지대를 통과한다는 것은 고행길이라,,, 아마도 무슨 화두가 떠 올랐을텐데.... 아직도 수행을 더해야만 화두가 떠 오를까??? 손대장과 대원의 앞날에 서광이 더욱 비추어지리라...
대간 종주하는 산꾼들의 이야기는 몇 번 들었는 바는 있지만 이렇게 대원 한 분과 동행을 하면서 종주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면서 다만 경외의 대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