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들의 항일투쟁
- 박순근·이운허 스님의 항일무장투쟁 (1908~1933년)-
한일합방 전후의 불교계 인물의 항일운동으로 이운허 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1909년 운허 스님은 안희제·이원식·윤세복·남형우·김동삼·배천택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신민회 계열의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이운허(1892~1980)의 이름은 이시열이며, 운허는 호이며 승명은 용하이다. 7세부터 16세까지 한학을 수학했으며 1910년 10월 평양 대성중학에 입학하여 1912년 3월 수료했다.
1913년 1월부터 1914년 10월까지는 중국 봉천성 환인현 동창학교 교사를 지냈다. <운허 선사어문집>에 의하면, 그는 1909년이 아니라 동창학교 교사시절인 1913년 6월에 환인현에서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대체로 이 기록이 더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909년은 대성중학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나이도 기껏해야 18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교사시절인 1913년에 21세의 청년교사로서 청년단체에 가입했다는 쪽이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운허스님은 1915년 2월 봉천성 신빈현 홍묘자에 흥동학교를 설립하여 1918년 3월까지 이 학교에서 교포아동 교육에 전념했다. 또한 1918년 봉천성(만주) 통화현 반라배에 배달학교를 설립하여 1919년 3월까지 역시 교포아동 교육에 힘썼다.
그는 일경의 눈을 피하는 데 유리하며 또 평소에 관심이 많던 불교계에 투신하였다. 그는 이렇게 20대 초반에서 그 후반까지 교육과 독립운동에 열중하다가 일본경찰에 쫓기게 되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불교에 몸을 던진 것이다. 운허는 30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강원도 유점사에 들어가 경송 은천을 은사로 하여 출가하였다. 1924년 범어사 강원에서 사교(능엄경·기신론·금강경·원각경을 배우는 과정)를 공부했다. 1926년 2월 청담스님과 함께 전국불교학인대회를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서 개최하여 학인 동맹을 조직했다. 그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가 승려의 몸으로 젊은 날 못다한 독립운동에 재차 투신했다.
1929년 3월, 만주의 3대 독립군 단체인 정의부·참의부·신민부가 통합하여 국민부를 조직할 때 이에 간부로 참가했으며, 국민부의 정치조직으로 1931년에 조선혁명당이 조직되자 그 중앙집행위원 겸 교육부장을 맡아 봉천성 통화현 반라배에서 보성학교 교장을 지냈다(1929.7~1932.2). 또한 조선혁명당의 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의 간부로서도 활동했으며,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1932년 2월에는 조선혁명군이 양세봉의 지휘하에 만주인 의용군 이춘윤 등과 합작해 한중연합군을 편성하여 작전한 3월의 신빈전투에 참전하였다.
국가보훈처에서 편찬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1권 197쪽에는 이운허가 “1933년 8월에는 조선혁명군이 일본군 대부대와 만나 대혈전을 벌인 동창대 전투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사했다’는 이 기록은 완전한 오류다. 왜냐하면 동창대 전투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나, 그는 당시 전사하지 않고 귀국하여 1936년 경기도 봉선사에 불교강원을 설립하여 강사에 취임했던 것이다. 독립유공자로서 훈장을 받은 분들의 공훈을 기록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어떻게 이런 오류가 범해지고 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1936년의 봉선사 강원의 강사에 취임한 이래 동학사 강원, 해인사 강원, 봉선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해방될 때까지 승려로서 학인교육과 수행에만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광동중학교 교장(1946~1950), 광동학원 이사장(1959~1965), 동국역경원 원장(1964) 등을 역임했다. 1961년에는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하였고 한글대장경 간행에도 기여했으며, 1963년에는 독립운동에 종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는 등 교육과 불교학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1980년 11월 18일 세수 89세, 법랍 59년으로 입적했다. 제자로는 봉선사 주지인 월운 스님과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지관 스님이 있다.
저서로는 <한글금강경> <조계종요강> <수능엄경주해> 등 20여 권이 있다. 운허 스님은 세간·출세간에 걸쳐 조국독립운동에 몸 바쳐 투쟁하였으며 승려와 교육자로서 남긴 업적 또한 뛰어났다.
< 불교사 100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