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시인의 시집 [그해 겨울 강구항]이
2013년 2월, 동학사에서 나왔다.
박미자 시인은
1965년 경북 영덕 강구 출생으로
제32회 샘터시조상 장원, 2007년 [유심],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다음은 '시인의 말'의 일부이다.
"... 가끔 내 안의 문을 열어달라고 덜컹대는 겨울바람,
현재형의 은밀한 작업이기에 아직은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음은 이우걸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의 해설 <섬세하고 따뜻한 내간체의 시조> 일부이다.
"... 박미자 시인은 따뜻한 시조를 쓰는 시인이다.
여류시인만이 쓸 수 있다고 단언할 만큼 모성애적 언어로 시조를 쓰는 시인이다.
대상을 치밀하게 살펴보고 그려내는 섬세한 시인이다.
그리고 세계와의 불화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포용하고 긍정하기 위해
바라보는 시인이다. 그리고 가식적인 언어를 장식적으로 사용하는 시인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시조를 쓰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는 주로
생활주변 일상사를 즐겨 노래하는 시인이다. 정들지 않은 대상을 억지로 노래하는 것은
이 시인의 체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조집에서 바다와 수용의 눈은
그를 시인으로 만든 가장 아름다운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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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 박미자
가난한
종가(宗家) 뜰에
잔치가 있나 보다
층층이
쟁여지는
깨끗이 닦인 접시
조금씩
가까워지는
웃음소리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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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강구항 / 박미자
극 끝난 화면처럼 다 쓸린 해안선 따라
더 이상 참지 못해 안부 묻는 비릿한 초설
복숭뼈 아려오도록 길을 모두 감춘다
흰 이빨 드러낸 파도 밤새 기침 해대고
사연 낚는, 집어등 즐비한 환한 횟집
화끈히 불붙는 소주로 동파의 밤 데워 간다
가출한 갈매기 떼 돌아오는 아침이다
풍향계 돌려 대는 바람은 신선하고
풀리는 뿌연 입김에 인화되는 흑백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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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블루스 / 박미자
미로를 더듬어 가듯 산 번지 밟으며 간다
다닥다닥 어깨 맞댄 하늘 아래 첫 동네
가건물 낡은 처마 밑 줄소주잔 꺾는 소리
마구잡이로 먹어 치우는 포크레인 잡식 공룡
허리 반쯤 잘린 난간 신음소리 새어나와도
쓰러진 페트병에선 춘란 한 촉 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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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성* / 박미자
소복 입은 자작나무 눈물 달고 반짝인다
석축에 묻은 이끼 그날 증언 침묵하고
의병이 놓친 창검은 고사목이 되었다
성터를 둘러보며 파편 한쪽 주워든다
가로세로 빗살무늬 새겨진 비밀들은
부식된 격전 임란사 들먹이고 있었다
치마폭에 감싼 얼굴 지아비 잃은 아녀자
원한은 계곡물로 밤낮 넘쳐 흐르고
산성산 능선바람은 우우우우 곡을 한다
* 과부성 : 천전리성. 의병들이 모두 죽고 여자만 남았다 하여 붙여진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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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 박미자
기 펄펄 살아남이
늘 그대론 줄 알았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왕소금 만나고부터
팍 꺾인
불통의 고집
꼬리 슬슬 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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