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 울트라 마라톤! 그 놈 참…..
출발 라인에 섰다.
천천히 길게 마지막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 첫 경험에 대한 야릇한 설레임, 나도 여기에 서 있다는 묘한 우월감은 마치 불을 끈 신방의 신랑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5km를 페이스란 단어를 잊어 버리고 달리고 있다…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55km를 달렸다는 어느 분의 말씀에 난 온 만큼의 20배를 달려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순천만의 짙은 뻘 냄새가 나는 듯하고 밤에 왜 이리 시끄럽냐고 눈을 부릅뜬 짱뚱어가 머리를 들고 째리는 듯하고, 놀란 게는 앞으로도 못 가고 옆으로 도망가는 상상을 하니 싱거운 웃음이 나온다…
비포장길에 들어서니 얕은 안개 처름 날리는 흙먼지 냄새는 어릴 적 고구마트럭을 따라 가던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 이 또한 순천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동심의 세계일 것이다.
약간 패인 곳에 발을 디딜 때의 느낌은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과 여기서 발을 삐면 힘들게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교차 한다. 나 또한 약한 인간인가 보다.
깜깜하다. 가족과 함께 먹던 새우구이 집을 지나니 검은 바다가 보인다. 이 짙은 어둠의 질곡을 지나면 나를 반겨주는 여명이 밝아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동반주 해 주시는 형님의 덕분으로 어느새 42km를 지난다. 이것은 온 만큼 가고 나서 다시C8km를 더 가야 하는 산술적인 계산이 머리 속을 스치는 순간 힘이 빠져 간다. CP까지 3km가 남았다고 했는데 어매 멍거, 왜 이리 밥 먹을 곳이 보이지 않나..징하게 머네 하고 느끼는 순간 낮 익은 얼굴이 보이니. 꼭 군대 가 있을 때 면회 온 부모님 같은 느낌이다.
연습때도 못한 처음 뛰는 50km, 약간 찬 바람이 가슴을 움츠리게 만들고 귓볼로 스치는 찬 바람이 짜릿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도로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한 시인 처름 나도 시인었다면 어떤 시상을 했을까?하고 아쉼을 바람속에 날려 보내 버린다.
지금까지 즐겁다. 뛰는 것이. 이젠 60km 이때쯤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키도 크고 잘 생겼지, 마라톤 잘 하지, 인간성 마저 좋은 그는 항상 나를 주눅을 들게 하는데, 그 친구의 말이 60km 거리주, 9시간 시간주를 하지 않으면 힘이 어렵다고 겁을 주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 주는 그 친구가 지금 밤새워 봉사 하고 있다.
74km 지점, 선암사 종소리도 산 넘어 가 버린지 오래고, 스님의 독경소리도 끊긴 지금 새벽 4시 잠든 산새를 깨울 까봐 숨소리 마저 미안하고 나의 흔적이 남을 까 두려울 정도이다.
이젠 호박죽이 기다는 곳이 다가 오면서 여명이 점차 밝아오는 지금 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호수가 김기덕감독이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여기서 촬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마저 들도록 적막에 쌓인 호수가 아름답다.
호박죽을 보고 “어 죽이네”하고 말하고 먹어본다. 참 맛있다.
80km가 넘어 갈 즈음 나에게는 트리플 악재가 금융에서만 오는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찾아온다. 오른 무릎이 빠져 날 갈 듯 아프고, 사타구니는 헐어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주고, 위 경련으로 신물은 자꾸 넘어오고 이를 어찌하나….
이 고통 또한 나의 일부이고, 넘어 서지 않으면 멈춰야 되고, 누구도 나를 대신 해 줄 수 없는 지금, 포기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이 걷고, 달리고, 쉬면서 가야 한다.
가자 가자, 어차피 가야 할 것 이라면 일어서서 가자, 멋진 결승선 세레모니를 생각하면서..
지나가던 트럭에서 담배연기가 코 끝을 스치니 내가 당신보다 빠르면 금연을 하겠다고 하신 클럽 형님이 불연 듯 떠오른다. 근디 나는 당신 보다 빨리 뛸 수 없는데 어찌합니까. 형수님 죄송합니다..그 형님도 밤새 애를 태우고 계신다.
청암대 앞에서 미인의 마중의 선물 받고 걷고 뛰다 보니 빨간 카펫이 보인다. 여기를 꼭 가야만 하나..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완주 그것이 무엇일까?, 남들에게 보여 주는 것일까? 아님 자기 만족일까? 결승선을 통과하지 않는 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짧은 고민 끝에 패밀리(가족,백운마,회사)가 보이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그 선 위 서고 말았다. 축하의 말과 악수와 사진의 축제는 끝이 났다. 이젠 나 자신 그대로 돌아와야 된다.
식사 때 내년에 또 뛸 거냐고 지인이 물어 보는 순간 아내의 얼굴엔 긴장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마라톤이 “여성분들이 힘이 들어 다시는 얘를 낳지 않겠다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과 같지 않냐”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으면서
“100km 울트라 마라톤! 그 놈 참 오지다””하고 외치면서 쓰러져 버렸다.
첫댓글 후기 잘봤습니다. 정귀환 인간승리. 하면한다는 의지력에 찬사를 보냄니다. 아자 아자 정귀환 힘<<<<
잘 읽었습니다. 읍에 계신 회원님들은 주말마다 연습하는걸 알았지만 무사귀환님은 연습소식을 듣지 못해 중도포기하지 않을까 내심 염려를 했습니다. 골인지점에서 기다리며 청암대까지 마중을 나가신 노미선님과 <아직도 안보인다> <혹시 들어오지 않았는지 찾아봐!> <서성한님이 못봤다고 그러더라> 이런 내용의 통화를 하면서 결국 포기한게 아닌가 생각들었는데 반갑게 <만났다!!!> 라는 전화를 받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정말 대단한 의지력의 무사귀환이십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형님 너무나 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잘읽어습니다 나도연습열씸히해 내년에도전하고십어요 한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