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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유달산에 올라 목포의 눈물을 부르다. 글/사진: 이종원
노적봉은 해발 60m 바위봉우리로 이뤄어졌다.1597년 10월부터 1598년 2월까지 목포에 머물던 충무공이 적은 군세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 봉우리에 짚마름을 덮어 군량미를 쌓아 놓아 노적봉(露積峰) 처럼 꾸며 우리 군사가 많은 것 같이 속여 왜적이 함부러 쳐들어 오지 못하게 했다.
새천년 시민의 종. 개항과 더불어 우리나라 근세사의 전면에 선 목포. 좌절과 보람의 역사를 지닌 목포. 새천년 목포 시민의 소망이 널리 울려퍼지길...김대중 대통령 현판이 보인다.
목포시내를 내려다보는 이순신 장군상
오포대는 1909년 4월정오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종이다. 원래의 종은 현종때 만든 조선의 종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가져와 매일 시간을 알렸는데 화약 30량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발포때마다 뒤로 밀려나는 구식이어서 1913년 일본식야포로 대체되었고 이전의 포는 태령양전쟁때 공출해갔다. 전쟁독가 생활도구로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유달산에 올라 목포에 눈물을 목놓아 불러보는 맛이 틀리다. 1930년 일제 수탈의 현장인 목포. 그 응어리진 서러움을 안으로 삭이며 핍박한 삶을 노래로 달랬다. * 이유야 어떻간에 목포의 눈물이 한국 정치사에 미친 영향이 결코 작지는 않다. 대통령도 불렀고 해태타이거스 팬들도 목놓아 불렀다. "목포의 눈물 부르는 DJ" 28일 목포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역광장에서 열린 환영대회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목포 방문은 퇴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재임기간인 지난 1998년 8월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무안구간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를 방문한 지 8년2개월만이다 [연합뉴스] 2006-10-28 16:16
4월학생혁명기념비
유달산(儒達山) -최재환 소문 없이 왔다가 예고 없이 떠나가는 중년의 허리를 구름 한 점 목을 빼고 북천北天에 머물다. 신의 말씀이 있기 전에 하늘은 열리고 그 비어 있는 언저리에 긴 휴식을 정리하면서 은밀히 어둠을 발산한다. 나이를 잊고 살다보면 가마휘장에 묻어 온 시집살이가 이순耳順이면 풀리는 것을 파도소리 귀 멀어 새벽잠 설치는 산. 문을 꼬옥 닫고 앉아 화살 끝에 핏멍울 진 기억속의 아픔을 이끼 낀 바위틈에 정성스레 묻고 한 번쯤 산자락을 훨훨 날아 학鶴처럼 회유回遊하고픈 가벼운 향수여. 발 아래 그림자 지듯 밤 물이 바뀌고 온갖 통속을 실어가는 낮은 바람이 마음보다 앞서 모자를 벗어 든다
동동주 한잔 놓칠 수 없다.
거대한 고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고래바위
어른 10명이 앉아서 쉴 정도로 너른 마당바위. 이곳에서 바라본 일몰이 좋다.
바당바위에서 바라본 압해도. 홍도, 흑산도, 가거도등 목포에서 출발하는 배는 이 앞바다를 지난다.
대일여래의 사자인 부동명왕과 장보고 시대때 진언종의 시조인 홍법대사. 일본불교는 개항후 7개 종파가 목포에 침투했는데 이중 진언종파가 유달산 바위에 조각해 놓았다. 일제의 잔재가 여태 남아 있는 것이 의아스럽다.
사꾸라와 홍법대사.
목포시사. 단순히 시인의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한 유림의 문화결사단체다. 오늘날 봄가을 한시 백일장으로 유명하다.
유달산 오르는 길
목포는 홍어골목으로 유명하다.
일본식 건물을 만날 수 있다.ㅣ
* 네이버에서 퍼옴 현재 우리나라 길은 1963년 관할부처가 생기면서 국도화되기 시작하였고 1966년 들어서면서 신의주-목포 구간인 현재의 1번국도로 지정하였다. 이 신의주- 목포 구간인 1번국도는 1번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고려하여 우리나라의 대표국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먼저 도로노선번호는 동서방향도로의 경우는 끝번호를 짝수로 하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노선번호를 부여하고 있다.(즉 자리수가 짧은 국도는 남쪽 지방에 있고 자리수가 큰 국도는 경기 북부나 강원 등에 있다.) 2. 국토를 종단하는 남북방향도로는 끝번호를 홀수로 부여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노선번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의 국도는 홀수가 되어야 하고 가장 서쪽에 있으므로 1번국도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3. 고속도로의 경우 처음에는 노선수가 얼마되지 않아 건설순서대로 부여하였으나, 얼마전 도로번호부여체계에 따라 번호를 재부여 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는 그 상징성 때문에 1번고속도로의 영예를 계속 갖고 있다.) 1번국도는 총연장 약 498km로 한반도의 남북을 관통하면서 많은 도시를 통과하고 있다. 목포, 무안, 함평, 나주, 광주, 장성, 정읍, 김제, 전주, 익산, 논산, 공주, 조치원, 청원, 천안, 평택, 오산, 화성, 수원, 시흥, 의왕, 군포, 안양, 광명, 서울, 고양 그리고 현재는 파주에서 멈추고 있습니다. 통일되면 신의주까지 연장되겠지.
한국문단 최초의 여류소설가 박화성이 머물렀던 곳.
육필원고, 저서, 생활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박화성 문학기념관 있다.
깨알같은 글씨.
1897년 10월 1일 목포가 개항되었고 10월 26일 일본영사관이 들어섰다. 1900년 1월 일본영사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착공했고 12월 완공했다.
르네상스건축양식이 인상적이다. 해방후 목포이사청, 목포부청, 시청으로 상용하다가 1974년 목포시립도서관, 1999년 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사관 뒷편에 일제 방공호가 자리하고 있다.미군의 공습과 상륙에 대비하기 위해 파 놓은 인공동굴로 길이 82m로 길다. 전쟁이 상흔이 여태 아물어지지 않았다.
성옥기념관. 이훈동회장의 소장 그림과 골동품을 볼 수 있다. 의외로 볼거리가 풍부하다.
추사, 소치, 남농등 귀한 서화를 만날 수 있다. 윤두서의 글씨까지...
이훈동정원. 일본풍이라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위에 일본놈과 싸웠던 충무공의 노적봉이 보인다. 정원앞에 있는 향나무는 일본 원산으로 인공적으로 심은 것이 아니라 화산폭발로 씨앗이 이곳까지 날아와서 싹텄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신안비치호텔에서 만난 일몰
목포 루미나리에
목포 아구탕 거리
우리나라에서 민어회로는 최고를 자랑하는 영란횟집 민어회. 을지병원 근처에 이다. 061-243-7311
진희회타운의 홍어애탕. 취재왔다고 양을 더 주었는데 삭힌 냄새가 지독해 먹느라고 고역이었다. 동명어시장앞. 061-242-6360
썩어도 준치란 말이 있다. 준치회덮밥으로 유명한 선경준치횟집. 목포항에서 신안비치호텔 가는 도로변에 있다. 061-242-5653
하당 맛집거리에 있는 장터의 꽃게살. 꽃게살을 넣어 밥에 비비면 꿀맛061-285-1888
갈비 전문점 나무포. 목포역에서 국제서점 가는길. 061-243-8592 |
첫댓글 옛날 사진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2년전에 찍은 사진인데...아직도 남아있네. 대장이 대학때 우리과 예쁜 여학생이 목포출신인데..졸업후 다시 목포로 귀향하더니 그쪽 남자에게 시집갔다고 하는데...유달산 아래 어느 집에 살고 있겠네요~
나도 추억 찾아 가볼까나? ㅎㅎㅎ
목포의 눈물...찍찍거리는 옛 레코드판 인가요..? 요즘의 CD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스라한 정취!!~~ 대장님의 창고엔 사진과 추억이 무궁무진하네요~~^^*
목포는 유별 일제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도시지요~관광개발이란 명목하에 유달산은 너무 인위적으로 깎고 다듬어서 옛정취가 안나더이다~신안비취호텔 앞에 고하도로 연결되는 섬도 보이네요~대장님 귀한 사진감솨
1번국도 북편의 문화원(옛 일본영사관)쇠로된 기와지붕의 일화, 목포도로모양의 일화, 복원된 삼학도, 다리가놓여져 섬아닌 섬이된 압해도의 뻘낙지, 자연사박물관, 해양박물관,남농전시관의 연로한 문화해설사님의 열정어린 고향사랑이 생각납니다. 구석 구석 발품팔아 다니시고 자세한 이야기 구구절절하게 쓴 후기에 대단하시다는 말씀 밖에는...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노래도 멋드러지구요
우리 딸이 목포대학 교수로 있어 자주 갑니다 모든정보 감사 합니다.대장니니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