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은 충무로에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룬 감독이다. <거룩한 계보>는 변함없는 ‘장진 영화’이면서 지속적인 변화의 기운이 그의 다른 영화들보다 더욱 크게 다가오는 영화다.
장진은 언제나 자기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 즐기는 사람이다. 자기가 직접 캐릭터를 구축하고 플롯을 구성하지만, 앞으로 그들 앞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관객보다 그걸 더 궁금해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 장진이 이야기를 만들고 살을 붙여나가는 과정의 핵심이다. <거룩한 계보>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우직하고 의리 센 깡패 동치성(정재영)이 조직이 시켜서 칼 담그고 교도소 갔는데, 친구 김주중(정준호)을 비롯한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감옥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정순탄(류승용)을 만나 탈옥해 복수하는 전형적인 누아르의 구조다. 그것은 또한 로맨틱 코미디 <아는 여자>로부터 미스터리 수사물 <박수칠 때 떠나라>를 지나 장진 감독이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장르 헤집기 시도다. 전형적인 누아르 혹은 장진식 엇박자 코미디를 병행하며 시작한 영화는, 의도적으로 수많은 영화들을 연상시키지만 그 마저 다 따돌리고 결국에는 장진식의 또 다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예전부터 한 작품을 시작할 때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잡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거룩한 계보>는 익숙한 누아르 혹은 액션 장면들이 많아 그나마 수월하지 않았나? 내가 말하는 그런 이미지들은 시놉시스가 특정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 영화의 기분, 아우라 같은 것들, 아니면 단초가 되는 단어 하나나 대사 하나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거룩한 계보>는 누아르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미지가 쉽게 잡힌 게 아니다. 기획 기간으로만 본다면 <아는 여자> 이전부터니까 무려 4년이 걸렸다. 사실 <킬러들의 수다> 끝내고 시작하고 싶었던 작품인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회사가 좀 어려워졌다. <거룩한 계보>는 눈대중으로 봐도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성격의 영화가 아니었는데 예산 문제 등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작업을 스톱하고 <아는 여자>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 영화는 늘 첫 장면이 좋다. 재미도 있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정서를 압축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는데 그건 <거룩한 계보>도 마찬가지다. 첫 장면은 늘 명확하게 정해두고 간다. 나 스스로 영화가 시작하고 5분 안에 전체적인 맥을 관통하는 걸 심어주고 가야 편안해진다. <거룩한 계보>도 인트로 크레딧부터 전투기가 파란 하늘을 날아가는 서정적인 느낌으로 시작한다. 다들 ‘조폭영화라고 알고 있는데 이게 웬?’ 할 때 바로 칼이 나오는 그 연속적인 느낌이 좋았다. 아무튼 영화 시작하고 초반 5분에 영화의 맥을 관통하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이미지와 핵심들이 비쳐지는 게 좋다.
소위 ‘장진 사단’이라 불릴만한 배우들 외에 늘 새로운 인물들을 끌어들인다. <킬러들의 수다>의 신현준과 원빈, <아는 여자>의 이나영, <박수칠 때 떠나라>의 차승원 등이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정준호다. 보통 새로 들어오는 배우들과 어떤 친화의 과정을 거치나? 한 영화를 하면서 감독과 배우로 만날 때 같은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사실 스트레스는 배우들이 더 많이 받을 거다. 나는 늘 주연, 조연, 단역 포함해서 새로운 배우들을 끌어들이지만 언제나 배우들의 70% 이상은 내가 늘 인식하고 있는 코드의 사람들로 채운다. 그리고 장진 영화라고 하는 집에 새로운 배우가 들어왔을 때 믿고 나한테 다 던져주거나, 납득할 만한 나의 해석을 잘 이해해주면 되게 편해진다. 신현준이나 차승원과 비교해서 정준호는 능동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 나서서 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현준, 차승원의 경우는 원체 먼저 상담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정준호는 지긋하게 날 잘 받아들여줬다. 고마운 건 1분 1초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고, 중간에 의문 나는 점들이 분명 있을 텐데도 내 해석이나 의도를 굳게 믿고 다 던져줬다는 점이다.
완전한 변신을 했던 신현준이나 차승원과 달리 <거룩한 계보>를 조폭영화라고 할 때, 정준호라는 배우는 그 조폭영화 장르에 가장 일가견이 있는 배우 중 하나다. 거기서 오는 미세한 문제점들은 없었나? 일단 조폭영화, 코미디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자기가 먼저 오버한다는 느낌은 없었고 간혹 익숙한 상태에서 연기를 쉽게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있었다. 그럴 때는 서로 대화를 나눴는데 기본적으로 나를 많이 믿어줬다. 다른 배우들은 내가 오케이 해도 자기가 납득하기 힘들면 모니터로 확인하고 다시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준호는 전혀 그러지 않는다. 내가 오케이를 하면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꿔 말해 나 스스로도 정준호라고 하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인 평균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걸 완전히 배반하고 가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아는 여자>에서 단역에 가까운 분홍 복면,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검사로 출연했던 류승용이 정재영, 정준호와 더불어 세 친구 중 하나로 등장하고 <아는 여자>의 ‘사고녀’였던 장영남이 <박수칠 때 떠나라>의 검사 역에 이어 동치성의 연인 ‘여일’로 등장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왠지 신하균과의 작별인사 같은 느낌도 들었고, 이렇게 새로운 배우들의 가세와 더불어 <박수칠 때 떠나라>를 기점으로 장진 사단 내에서 배우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가? 사실 이미 그전부터 시작했던 작업이고 나한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다. 주요 배우들도 서서히 바뀌어가지 않을까 한다. ‘화이’ ‘이연’ 등의 이름이 붙었던 여자 캐릭터들과도 작별을 고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예전부터 남자 주인공도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로 하려고 시나리오를 다 넣었는데 안 됐다. 그러면 정재영은 한다. 그래서 <거룩한 계보> 때는 반대로 정재영부터 시나리오를 주면서 시작해보자고 생각하고 줬는데 정재영은 처음부터 바로 또 한다고 한다.(웃음) 우스갯소리지만 매번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 폭은 크지 않고 점진적이다. 나는 작은 역할이라도 그 배우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상태에서 시작하려 애쓴다. 그 배우의 연기의 옥타브를 제대로 알아야 역할을 맡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매번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게 벅차긴 하다.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늘 70% 정도는 내 반경 안에 있는 배우들로 채운다.
정재영과는 뭐 늘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주연으로서는 <아는 여자>에 이어서 두 번째다. 그런데 장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미 함께했던 주연 배우를 완전히 다른 장르에 또 주연으로 투입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워낙 장르의 느낌이 달라서 그런 스트레스는 안 받았다. 오히려 비슷한 장르에 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갔으면 그게 더 위험할 거다. 그리고 <아는 여자> 이후 정재영이 했던 영화들의 노선이 그리 일률적이지 않았다. <실미도> 이후 계속 마초적인 걸 했으면 좀 식상했겠지만,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농촌 총각도 해보고 <마이 캡틴 김대출>에서 도굴꾼도 했으니.(웃음)
동치성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는 회유하는 검사를 향해 “검사님, 저 잘 모르시죠?”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동치성이라는 인물을 알아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번에는 정말 캐릭터에만 파고들었다.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정말 세밀하고 정교하고 정확하게 캐릭터만 만들면, 그 캐릭터를 내가 만든 플롯에 던져놓기만 하면, 멋진 말들이 그냥 나올 것 같았다. 그 검사와의 대화는 동치성의 성격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검사는 거의 협박조로 수많은 말들을 표준어로 내뱉는데 치성은 짧게 전라도 사투리로 내뱉고 만다. 그게 동치성이다. 부하 조직원이 교도소에서 맞고 온 것을 보고도 별 말 않고 ‘에이씨’ 하면서 그를 때린 사람에게로 달려간다. 그때 정순탄은 가만히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지만 굳이 자기가 안 끼어도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 장면들을 캐릭터를 쉽게 드러내는 장면과 반응 장면들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캐릭터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글 쓰면서 많이 배웠다. 캐릭터를 잘 구축하고 나면 말은 뒤에 술술 나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는 여자>에도 동치성의 아역이 나오는데 그때는 정재영과 달리 굉장히 꽃미남인 어린 야구선수를 등장시켰던 반면, <거룩한 계보>의 동치성 아역은 지금의 정재영과 가까운 얼굴이다. (옆에 있던 정재영이 끼어들며) <아는 여자>에서 실제로 나와 닮은 아이를 아역으로 썼다면 그 사랑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거다. 이연(이나영)이 어렸을 때 왜 나에게 반해서 지금까지도 좋아하는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그런 부담이 없었다.
정순탄이라는 캐릭터도 궁금하다. 세 친구들 중에서 동치성, 김주중과 비교해 과거 가장 과격했을 것 같은 친구인데 일단 웃겨주는 신도 없고 정적이다. 내가 이 영화를 하면서 가장 상상해야 될 인물이 순탄이었다. 사형수라는 설정이 외피적으로 내가 다룰 수 있거나 리서치 할 수 있는 범주의 인간이 아니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사형수는 현실을 초월하고 범인을 뛰어넘는 도인이라고 생각한다. 죄수들이 벽을 무너뜨려 탈출하려고 막 벽에 부딪힐 때도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기만 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우연찮게 벽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 됐을 때 순탄이가 가장 먼저 뛰어간다는 거다. 전혀 그런 쪽으로 생각 없던 놈이 부지불식간에 무너진 담을 보고는, 아무도 꼼짝할 수 없는 순간에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다.
당신도 영화에 직접 출연한 것으로 아는데 완성본에서는 편집된 건가? 김주중 캐릭터를 더욱 소심하고 유약한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 김주중의 친구 역할로 좀 출연했는데 김주중의 그런 속내 약한 면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배역이었다. 그런데 김주중의 그런 장면들이 문학적 설정으로는 합당하지만 영상으로는 안 어울린다는 지적이 좀 있었다. 김주중이 결국 친구들을 배신하는 거라면 계속 그를 ‘그럴 법한 놈’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유약함을 부각시키기보다 ‘저게 한 칼 가지고 있는 놈’이라는 인상이 중요했다. 드라마를 위해 지나치게 복합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게 덜 대중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정재영과 정준호는 영화 속에서 사실 몇 번 만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을 어느 시점에서 만나게 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나? 분명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둘이 죽마고우로 친구인데 정작 만나는 장면은 두 장면밖에 없다. 정순탄과 김주중은 심지어 주차장에서 딱 한 번 마주친다. 그래도 함께하지 않을 때의 끈끈함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충분히 상쇄된 것 같다. 가령 김주중이 동치성의 집을 찾아가서 밥 얻어먹고 하는 장면들은 좋다. 굳이 둘이 만나지 않아도 그런 데서 끈끈한 정서가 나온다.
이전에는 당신 영화들을 보면서 특별히 연상되거나 영향 관계에 있는 영화들의 목록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거룩한 계보>는 좀 다르다. 이번에는 <친구> <홀리데이> <쇼생크 탈출> 같은 다른 영화들이 많이 연상된다. 그런 점에서 <거룩한 계보>를 당신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라는 생각도 들고, 감독으로서는 그렇게 따라가다가 따돌리는 재미도 추구했던 것 같다. 이야기 자체가 원체 공유되는 시추에이션이 많은 이야기라 생각한다. 탈옥극, 복수극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온갖 메뉴를 만들어도 얼마나 달리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한계가 분명했다. 디테일로 들어가 봐도 가령 탈출을 위해 옷에 교도소 내부 지도를 그려서 면회하다가 몰래 보여주는 장면도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TV시리즈에서 나왔다고 하더라. 촬영한 다음에 들은 얘기인데 거기서는 몸에 지도를 문신으로 새겨서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게 장르 자체가 워낙 축적된 디테일과 이야기 구조가 단단한 장르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간단히 얘기하면 깡패가 조직이 시켜서 칼 담그고 교도소 갔는데, 배신을 당하니까 탈옥해서 복수하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얼개는 가만히 두면서 내 색깔을 집어넣고 싶었다. 전형적으로 가다가 살짝 삐끗하는 재미, 사람들이 ‘장진식’이라고 하는 정의를 나도 잘 모르겠지만(웃음) 아마 그런 지점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특별히 의식하고 영향 받아 만든 장면들은 없다.
종종 당신 영화의 유머를 얘기할 때 그 리듬이나 속도를 두고 기타노 다케시의 느릿느릿한 유머감각과 비교하는 평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조직원들이 산에서 총질 연습하는 장면의 경우 직접적으로 기타노 다케시를 연상시키는 인상이 있었다. 그게 <소나티네> 바닷가 장면이었던가. 재미있게 본 영화이기는 한데 역시 막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각도로밖에 못 찍는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찍었는데 보기에는 굉장히 인적 드문 산속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파가 굉장히 많은 관광지였다. 약간 각도만 틀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다리가 보일 정도였다. 그런 유머로 보자면 우연히 담 무너진 장면이 직접적으로 다케시를 연상시킬 거다. 담은 무너지고 수많은 죄수들은 그냥 가만히 서 있고, 아주 오래도록 정적이 흐르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관객도 배우도 함께 생각하는 순간이다. 서로 쳐다보면서 이거 어떡해야하지 고민하는 호흡을 담고 있다. 나는 그 호흡에서 좀 더 나가 조마조마하게 ‘어떤 놈이 먼저 나갈 것 같아’라고 하나씩 얼굴을 따서 보기를 보여줬다.(웃음)
영화 속에서 교도소 장면의 비중이 꽤 크다. 특정한 장소에서 이렇게 오래 찍은 적이 이전에도 있었나? 이번이 처음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를 하면서 실내 취조실 세트에서 오래 찍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규모 세트, 로케이션에서 길게 찍은 적은 처음이다.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익산 교도소 세트에서 몇 달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교도소 탈출 신의 경우 당신이 지금껏 연출한 몹신 중에서도 최대 규모였던 것 같다. 맞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오페라 하우스 장면이 있었지만 그건 실내였고 이 정도로 대규모이진 않았다. 이런 대규모 몹신을 사실상 처음 해보니 나름 쾌감도 있고 재밌는 일도 많았다. 먼저 단역, 엑스트라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서로 때리고 쏘고 쓰러지고 달아나는 큰 신이라 저 멀리 달아난 분들은 스피커 지시 소리도 잘 듣지 못했다. 너무 열심히 도망간 나머지 시내 터미널까지 갔다 온 엑스트라도 있다더라.(웃음) 특히 그 장면에서 느낀 내 개인적인 재미는 음악이다. <아는 여자>를 같이 했던 박근태 음악감독에게 굉장히 무게감 있는 클래식 음악을 주문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운 클래식으로 만들어온 거다. 그래서 그 음악에 맞춰 달아나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이전과는 다른 시도도 있는 반면 <킬러들의 수다>의 분할화면이나 <아는 여자>의 핸드헬드, <박수칠 때 떠나라>의 크레인쇼트 등 매번 영화들마다 시험했던 카메라 테크닉적 시도는 이번에는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메카닉적인 측면에서 특별히 시도한 것은 없다. 잠깐잠깐 하는 건 있지만 그리 티 나지 않는 것들이다. 대중적인 장르를 표방하면서 내 색깔을 집어넣는다고 할 때, 관객들이 봐서 당황스럽거나 감독의 테크닉적인 욕심에 의해 익숙하지 않는 화면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좀 더 장르의 가운데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 테크닉적 시도는 보통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두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런 게 맞지 않다고 봤다.
당신의 모든 영화는 코미디만큼이나 멜로적인 요소도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인공보다 방장이 마누라와 면회하는 장면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 몇 년간 당신 작품이 이전의 재기발랄함보다 다소 무거워지고 있다면 그런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늘 ‘멜로디가 어울리는 장르가 멜로’라고 생각해왔다. 그만큼 서정적인 드라마라는 건데 여기서도 치성의 멜로가 있지만 <킬러들의 수다>의 신하균이나 <아는 여자> 때와 비교하면 훨씬 약하다. 놓치기는 싫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봤다. 방장과 마누라의 만남도 일반적인 남녀관계와는 다르다. 인생에 있어 마지막으로 둘이 만나는 시간이 채 몇 분이 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둘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손이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그런 걸 떠올렸다.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끌린다고 할까. 예전 어렸을 때는 쇼크를 주고 싶었고 막 반응이 오길 기다렸는데 이제는 관객들을 살짝 앉혀놓고 싶다. 그런 재미를 느끼다보니 요즘 내 작품들이 무게감 있고 소위 비장성 있게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의 내 화두는 그런 점들을 능숙하게 잘 조절하다보면 대중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고, 나 스스로도 스트레스 안 받을 정도의 타협을 하면서 가슴에 깊이 남는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당신의 모든 영화에는 한국영화에서 꽤 흔한 쓸데없는 폭력이나 욕설, 성희롱 장면 같은 것들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 장진 영화는 언제나 건전하다. 그래서 당신이 조폭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어이없는 욕설 세례나 여성 비하, 그 흔한 룸살롱 장면 같은 것들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대 같은 건 있었다. 맞다. 그냥 내가 그런 것들을 무지 싫어한다.(웃음)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선정적인 장면들도 싫어한다. 싸게 얘기하면 그런 건 다 눈요기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아주 많은 부분에서 추구하는 눈요기의 속성이 있다. 굳이 없어도 아무 지장 없는데 그 눈의 재미를 위해 들어가는 장면들이 있다. 설사 그런 것들을 즐긴다고 해도 밖에서 떠들고 싶지는 않은 거고, 넓게 보면 사회의 치부이자 개인의 치부인데 굳이 왜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정사 장면이라든지 남자들의 선정적인 완력이 영화 속에서 작지만 중요한 진동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석을 내리면 갈 수 있겠지만, 난 아직까지 그런 필요를 느껴보지 못했다.
<아는 여자> 때부터 장르적인 접합 실험이라고 할까. 이전과는 색다른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같은데 본인 스스로의 의지라 할 수 있나? 오히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그 장르적 시각이란 게 탈장르적이지 않고 오히려 관습적이고 보편적인 장르의 한복판으로 뻔뻔하게 들어가야겠다고 느낀다. <아는 여자>는 ‘멜로를 하되 손 한 번 안 잡는 멜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그 장르 안에서 헤집기를 하는 순간 장르의 외연이 더 넓어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그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흔히 얘기하는 수사물 안에서 다른 관점을 펼쳐 보이고 싶었고. <거룩한 계보>는 평자들로부터 가장 회초리 많이 맞는 조폭영화 안에 들어가, 왜 이렇게 평가절하 당하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딱 깨놓고 포스터에도 ‘이거 조폭영화 맞습니다’라고 쓰라고 장난처럼 얘기했을 정도니까.(웃음) 할리우드나 다른 곳에서는 누아르, 갱스터라 해서 대가들의 손길이 어김없이 거쳐 가는 장르가 이건데 왜 우리나라에는 모범사례가 없는 걸까 고심했다. 그렇게 장르 안에서 그 넓이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게 작업자에게는 남다른 쾌감인 것 같다.
앞서의 영화들이 그 장르의 관습적 장면들을 골고루 배치한 느낌이었다면, <거룩한 계보>에서는 주로 후반부에 집중된 느낌이다. 감정의 심도가 워낙 센 영화라고 해야 하나. 내 아버지를 왜 찔렀냐, 왜 나를 배신했냐, 나 너 죽이려고 왔다, 하는 이런 감정들이 어떻게 좀 비틀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감정들이다. 그래서 내 영화의 치기어린 발랄함 같은 게 뒤로 가면 좀 티 안 나게 사라지고 장르의 관습적인 비장미로 희석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발랄함은 치성이 순탄과 함께 조폭들과 싸우기로 하면서 그에게 ‘여기 이 선 넘어 오지 마’라고 말하는 부분이 마지막이다. 그 안에서도 물론 고민을 했다. 비장함이란 것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애절한 서정성도 있고 멋진 복수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도 있다. 시나리오 인트로에 '내가 싸움을 시작한 것이 내가 선택한 세상과의 소통이었기에, 내가 싸움으로 마지막을 정리한 것 또한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맑은 하늘에 연기를 뿜으며 비행기가 추락한들, 그 또한 전혀 신기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약간 답답함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식으로밖에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처연한 표정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연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한때 당신의 영화를 두고 습관적으로 ‘연극적’이라는 말하는 비평이 많았다. 요즘은 좀 그런 이들이 드문 것 같은데 여전히 ‘장진식 코미디’라는 말은 유효하게 오가는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나? 연극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때도, 직접 연극을 많이 해본 입장에서 보면 정말 연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관습적이 아닌 거지. 보지 않던 걸 한 거고. 그런 점들을 뭉뚱그려 연극적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내가 남과 다른 걸 한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남과 다른 걸 한다는 이유로 남들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서 획득하는 보편적 재미로부터 멀어지면 안 되겠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도 찬반양론이 좀 있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래도 자만심은 아니지만 찬성이 좀 더 많을 것 같다. 반대라 해도 ‘왜 저래?’라는 극단적 반응은 아닐 거다. 내 작업방식으로 보면 결론은 나는 억지춘향으로 절대 못하는 놈이다. 단지 바라는 건 내가 해나가는 노선이 즐겁고 즐거워야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 노선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감성과 표현이 더욱 풍부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결론은 아직도 여전히 나는 내가 즐거워하는 것에 대한 탐닉으로 가고 있다는 거다.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있나? <아들>이라는 제목의 중편영화다. 장편영화처럼 90분 이상으로 길지 않을 것 같지만 정식 루트를 거쳐 극장 개봉하는 과정을 거칠 거다. 무기수 아버지가 15년 만에 귀휴를 나와 얼굴도 잘 기억 못하는 아들과 만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다. 내년 1월쯤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슬픈 코미디, 가장 처연한 하루를 담아낼 거다. 그래도 그 안에서 역시 갖가지 형태로 코미디는 많을 거다.(웃음)
사진 김병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