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의 『복자에게』
얼마 전 나는 김금희 작가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래동안 생각해』를 읽었다. 책을 구입할 때 한 작가의 책을 한꺼번에 두 권 이상을 구입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시집이나 소설의 경우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초등학생 이영초롱은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서울에서 고모가 사는 제주도 고고리섬으로 전학 간다. 영초롱은 어려서부터 ‘실패’의 쓰라림을 체득한다. 적응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영초롱에게 손을 내민 친구가 복자였다.
이영초롱과 복자는 고고리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복자 엄마의 친구인 이선 고모가 운영하는 섬의 휴게점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한구석에 죽치고 앉아 온종일 일본어로 된 만화를 읽고 그 댓가로 이선 고모에게 노래도 불러준다.
이영초롱은 중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올라가고, 복자와는 한동안 연락을 끊은 채 지낸다. 시간이 지나 영초롱은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판사가 되어 어느 날제주도로 발령을 받는다. 제주도로 돌아온 영초롱은 어릴 적에 헤어졌던 복자와 다시 마주한다. 서로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영초롱과 복자 두 사람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영초롱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 해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법정에서 어느 변호사에게 한 욕설이 크게 문제가 되어 영초롱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제주도 성산지법으로 발령을 받는다. 복자는 제주도에 있는 한 의료원의 간호사가 되어 결혼한다. 그러나 의료원의 열악하고 잘못된 환경에서 아이를 유산하고, 남편과 별거한 채 홀로 지낸다.
같은 의료원에서 일한 간호사들 가운데 30명에 달하는 간호사가 유산하고, 출산한 경우 아이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유산과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근무 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의료원 측이 완강히 부인해, 복자는 의료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홀로 외롭고 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가끔 만나 밥을 먹기도 하고 다정히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복자의 소송 사건을 영초롱이 맡게 된다. 영초롱은 친구의 일인 만큼 잘해보려고 하는데 복자는 영초롱에게 자신들의 재판이 이겨야 한다고 부탁을 한다. 그 말로 두 사람은 관계가 끊어진다.
복자가 제기한 소송 사건을 마지막으로 이영초롱은 법관의 옷을 벗고, 사법 연구원이 되어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그리고 얼마 뒤 코로나19가 터진다.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인 사람들, 셧다운 상태가 된 파리, 막혀버린 하늘길, 영초롱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그때 영초롱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복자와의 관계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복자야 안녕?”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복자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구촌의 팬데믹은 ‘살아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에게 그것은 언제든지 잃을 수도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복자와 영초롱은 여러 문제로 인해 관계가 흐트러지지만 친구 자체는 소중한 존재였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모두 힘들어졌지만 아버지 자체는 소중한 존재였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판사는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팬데믹 시대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이영초롱은 이제 소중한 친구 복자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녀의 무한한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 어느 섬에서 한 해를 보내면서 취재를 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하여 소설을 써 내려갔다. 사실 제주도 방언을 동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이끌어 갔다. 민간인들에게 쉽지 않았을 판사의 삶과 고뇌 또한 잘 삭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