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빛고을향토사] 영양 월록서당
오늘은 일월면 주실마실에 있는 월록서당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월록서당月麓書堂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로서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227번지에 위치하고있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英祖) 49년(1773)에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1658~1737) 의 손자인 월하(月下) 조운도(趙運道, 1718~1796)가 발의하고
한양조씨(漢陽趙氏), 야성정씨(野城鄭氏), 함양오씨(咸陽吳氏)등이 주축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이 서당에서 공부한 이들 가운데 많은 석학(碩學)과 명현(名賢)들이 배출되었다.
한양조씨는 원래 영양에 입향한 후 원당리(原糖里: 영양읍 하원동)에 살다가
호은공 조전(壺隱公 趙佺)선생이 주곡동 으로 옮겨간 뒤 자손이 번성하고 벼슬과 학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호은선생의 아들 정형(廷珩)선생은 1630년 (인조8年)에 진사하고,증손 호봉(壺峯) 덕순(德純)선생과, 옥천(玉川) 덕린(德?) 선생의 형제가 숙종조에 대과하여 호봉은 문과에 장원하여 벼슬이 지평에 이르렀고, 옥천은 승지로서 성학과 문장으로 당시 남인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그러나 옥천 선생의 손자 월하(月下) 조운도(趙運道) 선생과 만곡(晩谷) 조술도(趙述道)선생이 서당이 없어 학자의 수업에 지장이 있음을 크게 개탄하고 월록서당을 영건하게 되었다.
월록서당은 영산서당을 서원으로 승격한 후 서당으로서 본군에서는 처음이며, 일월산록에 간좌곤향(艮坐坤向)으로 위치가 한적하고 집이 4칸 겹집으로 넓고,
앞으로는 장군천이 남쪽으로 흘러 서당 앞을 돌아서 낙동강의 원류를 이루었으며,
주봉인 일월산이 뻗어내려 만장광경(萬丈光景)을 이루었으니 그 전망(展望)이 화려하며 수석(水石)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유생들이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앞으로는 독산과 멀리는 흥림산이 안대(眼帶)를 이루고 있다. 서당의 중간은 마루이고 양쪽이 방인데, 왼쪽은 존성재(存省齋), 오른편은 극복재(克復齋)라는 편액이 불어 있으며,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의 서당기와 천사 김종덕(川沙 金宗德)과
간옹 이헌경(艮翁 李獻慶)의 시판이 새겨져 있다.
이 서당은 월하와 만곡을 위시하여 향내 후진양성은 물론 동남문풍의 중심이 되었다.
서당의 현판은 숙종조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선생의 친필이다.
서당건물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렸으며 전면에는 4주문을 세워 서당으로 출입케 하였다.
평면른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연접시켰는데,대청의 전면에는 각 칸마다 4분합문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다.
서당의 전면에는 계자난간을 세웠으며 양측면에는 평난간을 둘렀다 가구는 오량가의 굴도리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