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 투병 7년째 박승일씨
박승일씨를 간병하는 친구 김중현씨(35)가 승일씨의 눈동자를 따라 글자판을 가리키고 있다. 원하는 자음이나 모음에서 승일씨의 눈꺼풀은 미세하게 떨린다. 어머니와 간병인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이 떨림조차 마비되면, 그가 세상과 소통할 방법은 사라진다. [박종근 기자]
기자가 박승일(38)씨를 처음 취재한 것은 2005년 가을이었다. 그는 이미 4년째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었다. 눈을 깜박여 ‘안구 마우스’로 글을 입력하는 방법으로 그는 4개월에 걸쳐 편지를 작성해 신문사로 보내왔다. 병의 고통과 그래도 살겠다는 의지,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전문 요양소를 짓고 싶다는 꿈이 담겨 있었다. 이 내용은 4회에 걸쳐 <루게릭, 눈으로 쓰다>라는 기사로 보도됐다.
루게릭병 전문 요양소는 승일씨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루게릭병 환자를 ‘물귀신’으로 표현했다. 24시간 가족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처지를 “가족을 피말려 같이 죽음까지 불러들이는 물귀신”이라고 빗댔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연약한 몸이지만, 정신과 감각은 더 또렷하게 살아 환자를 괴롭힌다. 짜증이 늘어나는 자신을 ‘샤프 심’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요양소가 있으면 환자와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며 간병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잠시 숨을 돌리러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편지는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움직였다. 김 장관은 승일씨의 집을 찾아 “희귀·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승일씨의 카페 회원도 크게 늘었다. 요양소 건립의 꿈은 머지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 도움으로 서울역 앞에 문을 연 ‘희귀·난치성 질환자 쉼터’는 루게릭병 환자 같은 중환자는 이용할 수 없는 구조다. 침대차가 들어갈 만한 엘리베이터도, 응급 상황에 대처할 의사도 없다. 당시 매달 15만원 나오던 간병비 지원금은 30만원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환자들은 100만원 이상의 간병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전문 요양소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도 더디기만 하다. 한국ALS(루게릭병)협회는 요양소를 짓는 데 수십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협회에 모인 돈은 승일씨의 기부금을 합쳐도 1억5000여만원뿐이다.
요양소를 향한 그의 힘겨운 싸움에 응답해주는 것은 고정적으로 카페를 찾는 수십명의 회원뿐이다. 이번 기부금의 대부분은 이 회원들이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내내 카페에서 온라인 바자회를 열었다. 남편이 샴푸 회사에 다닌다는 한 회원은 300만원어치의 샴푸와 린스를 기증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또 다른 회원은 추수한 쌀 7부대를 보내왔다. 선물받은 화장품, 돼지 갈비를 내놓은 회원도 있다. 이 물품을 회원들끼리 사고팔아 수익금을 모았다. 물품을 보내는 수고도, 택배비도 모두 회원들이 스스로 부담했다.
승일씨는 지쳐 있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가능하다면 안락사하고 싶어요.”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글자판을 짚으며 눈물을 흘렸다. 목에 인공호흡기를 달기 위해 뚫은 구멍이 헐거워지면서 그는 30분 이상 이어 잘 수가 없게 됐다. 깊은 잠이 들면 목 주변 근육이 이완되면서 산소가 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만 두 번 산소 부족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그를 괴롭히는 것은 안구 마우스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인공호흡기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뒤, 그는 안구 마우스를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표현했다. 하지만 최근 소통의 끈을 놓치자 삶의 의욕을 부쩍 잃었다는 것이다.
“요양소를 건립하고 싶다고 그렇게 매달렸는데, 지지부진하니 더 힘든 게죠….” 어머니 손복순(68)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간병비 대기도 빠듯한 살림에 6700만원을 기부하자는 아들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안락사’를 언급했던 그도 요양소 얘기를 할 때면 유일하게 힘을 냈다. 마지막 소망이 뭐냐고 묻자, “책을 내서 수익금을 요양소 건립에 보태고 싶다”고 글자판에 다시 썼다.
승일씨 방문을 닫자, 거실에선 마침 국내 최초의 안락사 시행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자꾸 이런 뉴스가 나오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손씨가 서둘러 TV 볼륨을 줄였다.
임미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루게릭병=공식 병명은 ‘근위축성 측상경화증’.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차례로 마비되는 병이다. 하지만 촉각·청각·후각 등의 감각 신경과 의식은 그대로다. 말짱한 정신이 굳은 몸에 갇혀 있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 유명 야구선수 루게릭이 이 병으로 38세에 숨진 뒤 루게릭병으로 불렸다. 영국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루게릭병 환자다.
연세대 농구선수 출신
최연소 코치 발탁 돼
박승일씨는 프로농구 선수를 거쳐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가 됐었다. 문경은(SK나이츠)씨가 그의 연세대 농구부 동기다. 이상민·우지원·서장훈 등 잘나가는 동료들 틈에서 선수로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기아차 농구단에서의 짧은 선수생활을 뒤로 하고 그는 미국으로 농구 유학을 떠났다(2000년). 그리고 2002년 봄, 서른하나의 나이에 현대모비스의 코치로 발탁돼 귀국했다. 그가 ‘인생의 전성기’로 기억하는 때다.
전성기는 너무 짧게 끝났다. 그해 6월, 그는 서울대 병원 신경과에서 루게릭병 선고를 받았다. 11개월 만에 휠체어를 탔고, 20개월 뒤 침대에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발병 뒤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루게릭병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사회 각계에 도움을 요청했다.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전문요양소를 짓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2004년 봄 호흡기관이 마비되면서 그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같은 해 연말 누나들이 구해온 ‘안구 마우스’로 다시 인터넷 홍보활동을 재개했다.
박승일씨의 소통 방법
■ 현재 : 글자판
- 눈동자를 움직여 글자판의 다섯 구획 중 원하는 곳을 가리킨다.
- 간병인이 구획 안에 있는 자음(또는 모음)을 차례로 짚으면 원하는 글자에 눈꺼풀을 미세하게 떤다.
- 이런 방식으로 하나하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문장을 완성한다.
■ 과거 : 안구 마우스
- 컴퓨터 상단에 부착된 렌즈를 응시하면 눈동자를 따라 모니터상의 마우스 가 움직인다.
- 원하는 글자 위에 마우스를 놓고 눈을 깜박이면 글자가 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