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냥은 끝났다. 돌 하나로 세 마리 새를 다 잡았으니 이만하면 만족이다. 아내는 또 다른 약속을 위해 자기 갈 길을 가고, 나는 주문해놓은 잉크를 찾아 일단 밖으로 나왔다.
잉크 값은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그것도 만족이다. 새가 아니라 봉을 잡은 셈이다. 나는 로또나 맞은 것처럼 득의의 미소로 길을 걸었다.
12시 20분,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별로 어렵지도 않은 고민을 나는 어렵게 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대화를 계속했다.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까. 아니다. 혼밥(혼자 먹는 밥)은 싫다. 그러면 친구를 불러 같이 먹을까. 아니다. 며칠 후면 만나게 된다. ‘빽다방’에 가서 옛날 다방커피라도 한 잔 마실까. 아니다. 이유는 없지만 무조건 아니다. 집에 가서 모처럼 늦은 점심을 먹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겨? 코~올!
고추를 팔러 다닐 때, 도시락 없이 학교에 다닐 때, 그때는 늘 혼자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맛도 모르고 먹었다. 배도 너무 고프면 빈 자루에 곡식 담듯이 담을 뿐 무슨 맛인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정도로 늦는 날은 제대로 꿀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서울의 선생님들 여름연수에 강사로 초대를 받았다. 그때 잠깐 보릿고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보릿고개는 조령이니, 대관령이니 하는 고개하고는 다르다. 보릿고개는 실체가 없지만 조령, 대관령은 지도에 있다.
보릿고개는 관념상에 있는 고개다. 그런 예로 아리랑고개를 들었다. 그랬더니 어느 수강자가 아리랑고개도 실존하는 고개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돈암동에서 정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아리랑고개였다. 원래는 정릉고개였다.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거기서 찍었고, 훗날 그 사실을 역사에 남기고자 아리랑고개로 이름을 고쳤다.
관념상의 두 고개, 아리랑고개와 보릿고개 중에 아리랑고개는 실체가 없지만 보릿고개는 실체가 있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열네 살 때 고추를 팔러 넘어 다니던 고개라고 설명을 붙일 셈이었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했다. 남들은 보릿고개가 실체가 없다고 인식을 해도 나한테는 지긋지긋했던, 끔찍했던 그 고개가 보릿고개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때가 지났지만 옛날처럼 아주 지나지는 않았다. 배는 적당히 고팠고 이런 정도면 꿀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다. 꺼내서 식탁 위에 차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편리하다니, 옛날에 이처럼 뚝딱 밥을 차릴 수 있었다면 가정부 자리가 신의 직장이 아니었을까.
현미찹쌀로 지은 밥이다. 처갓집에서 보내온 쌀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장모가 안 계셔도 쌀은 온다. 감자, 고구마, 가지, 상추···들 하나가 통째로 온다. 내가 사랑받을 만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반찬은 취나물, 오이고추, 꽈리고추와 멸치조림, 파김치 등 저번 날 모란시장에서 사온 것들이다. 아내에게 빈대떡과 막걸리를 사줘가면서 모란시장으로 유인했다. 그래서 싸게 구입한 것들이다.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는 식당이 있다. 사람들은 그 집 음식이 특별한 줄 알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맛이 없어도 남이 먹는 걸 보면 침이 흐르고, 침을 흘리며 기다리다 보면 맛이 난다. 늦은 점심이 꿀맛 같은 것도 그런 이치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커피를 타고 TV를 켰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가지 전적은 1승 3패. 마지막 5국이다. 해설자가 미세한 대국이라며 판세를 분석했다. 사실 이 바둑은 승패에 의미가 없다. 1200대의 컴퓨터와 한 인간의 싸움이 공평하지도 않다.
이세돌이 장고에 들어갔다. 반면에 알파고는 이세돌이 손을 떼는 것과 거의 동시에 둔다. 얄밉다. 이세돌이 집을 계산하는지 장고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도 찬스였다. 나도 오전 업무의 수지계산을 따져보기로 했다.
경제의 양대 축은 생산과 소비다. 생산 없이 소비가 이루어질 수 없고 소비가 없으면 생산은 의미가 없다. 경제를 유통이라고도 하는데 생산과 소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생산을 장려하고 소비는 억제했다. 그때는 워낙 물자가 부족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장사가 안 된다고 모두가 아우성이다.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동안 가격을 인하해 소비를 부추겨도 보았지만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장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이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사람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덜 쓰고, 저렴한 것을 쓰고, 아예 안 쓰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분당의 물가에 불만을 가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부천에 간 것도 그러한 이유다.
카트리지 잉크 두 개를 샀다. 늘 한 개를 사다 두 개를 사서 그런지 종전 가격과 비교해 한 개에 3천5백 원이 쌌다. 그래서 3500x2 해서 7천 원의 지출을 줄였다.
사진 값에서는 무려 1만 8천 원을 줄였다. 이것만 해도 2만 5천 원의 수지개선 효과를 거두었다. 만약 그날이 이발하는 날이었더라면 추가로 8천 원을 더 줄일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수치로 나타내보자. 부천은 지리가 빠삭해서 발로 때웠지만 택시를 탈 기회가 두 번 있었다. 기본요금 3000x2=6000(원) 먹지 않은 점심값 6천 원. 왕복 버스비 5천2백 원.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을 빼면 6천8백 원. 마지막 합계 2만 5천+6천8백=3만 1천8백(원)
다시 TV화면으로 돌아왔다. 이세돌은 막판 역전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지지 않았다. 알파고는 승리에 도취할 줄도, 시청자에게 감사할 줄도 몰랐지만 이세돌은 지고서도 웃었다. 시청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깍듯이 했다. 그리고 마지막 명언을 남겼다.
“제가 졌지 인간이 진 게 아닙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잔돈푼을 계산하는 나 자신이 약간 겸연쩍기는 했다. 스스로 좁쌀영감 같기도 하고 왕소금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등치지도 않았고 속이지도 않았다.
나는 떳떳했다. 누가 만약 나더러 ‘좁쌀영감’이니 ‘왕소금’이니 한다면 나는 이렇게 받아넘길 셈이었다.
“네들이 좁쌀 맛을 알기나 해? 네들이 짠 맛을 알기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