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년경 성 베네딕토에게 시칠리아 지역에 외인들이 들어와 자신들의 소유지라고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것을 들은 베네딕토는 그 지역의 주인인 메르툴로의 아들이면 문제는 쉬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며 플라치도를 보내기로 했다.
플라치도는 스승의 명을 받들어 곧 그곳으로 향했다. 도중에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의 특별하신 도우심으로 무사히 시칠리아 섬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 친구분들의 큰 환영을 받고 그들의 협조로 문제는 빨리 좋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우려고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일은 순조로이 진척되어 540년경에는 이미 성당 및 수도원의 축성식이 거행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플라치도의 덕망을 듣고 순식간에 30명이 모였으며, 그들도 몬테 카시노 수도원과 같이 침묵과 속죄의 생활을 했다.
수도원을 세운 지 1년만에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던 그의 형 에우티키오와 빅토리노와 그의 누이 플라비아가 수도원을 방문하러 왔다.
그들은 플라치도의 성스러운 생활을 보고서 참으로 많은 감화를 받았다.
그들이 도착한 지 불과 2,3일 밖에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저녁에 수도원 성당에서 수사들과 기도를 하고 있을 때
해적들이 습격하여 보이는 대로 죽이고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은 모조리 약탈해 갔다.
다행히 골디아노라는 한 청년이 목격한 바가 있어 전하는 것에 의하면,
수사들과 원장 플라치도는 형제들과 함게 붙잡혀 해적 두목 마누카에게 끌려갔다는 것이다.
그는 금품을 탈취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배교를 강요했다.
수사들이 이런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자,
해적두목은 그들을 용서 없이 구타하며 양손을 묶어 감옥에 가두어 1주일 동안이나 음식을 주지 않았다.
해적들은 낮이면 부근 마을을 약탈하고 저녁이면 돌아와 플라치도와 그의 동료들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두 주일 동안 갖은 형구와 불, 못 등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간혹한 형벌을 가하며
적은 음식물로 될 수 있는 한 그들의 생명을 늘려서 더욱 고통을 받도록 했다.
마침내 누이 플라비아는 무참히 맞아 죽었다.
플라치도는 가장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히 서서 동료들의 신앙을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다.
그들은 541년 10월 5일 참수 순교했다.
그들의 유해는 얼마간 그냥 버려둔 채로 있었으나 그 후 신자들이 와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지내 주었다.
해적들은 그 후 천벌을 받아, 배가 뒤집혀 모조리 익사했다.
축일: 10월 5일
성녀 파우스티나
Santa Faustina Kowalska
Glogowiec (Polonia), 25 agosto 1905 - Cracovia, 5 ottobre 1938
Faustina (come Fausta) = propizia, favorevole, dal latino
= Faustina (like Fausta) = propitious, favorable, from the Latin
하느님 자비심의 사도 파우스티나 꼬발스까 수녀는 1905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바르샤바의 자비의 성모 수녀원에 들어가 예수님의 성심과 일치하며 고통의 삶으로 죄지은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녀는 하느님의 종으로, 예수의 사도이며 비서가 되어
하느님 자비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고 이를 널리 전파하였다.
2000년 4월 30일 부활 제2주일, 대희년 첫 성인으로 탄생된 분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 파우스티나 수녀가 받은 계시 내용에 따라 부활 제 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계시나 환시같은 체험을 통해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가 전하는
하느님 자비 신심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세상에 일깨우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신심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 드리는 의탁이 필요하다.
또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말이나 행동이나 기도로써 매일 최소한 한가지 이상 실천해야 한다.
성녀의 일기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제 2주일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하느님 자비의 축일을 지낼 것을 요청하면서
이 축일이 모든 이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기를 바라시며,
이 날이 생명의 샘으로 다가오는 모든 영혼은 누구나 죄와 형벌의 완전한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날 합당한 영성체에 덧붙여지는 ‘죄와 형 벌의 완전한 사함’의 은총은
전대사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이것은 오직 세례 성사만의 성사적 은총이기 때문이다.
자비 축일에 대한 준비는 성 금요일날 시작하여 9일간 하느님 자비심의 5단 기도를 바치는 9일기도로 구성된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시각인 오후 3시에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가능하면 그 시간에 십자가의 기도를 바치고
그럴 시간이 없으면 성당에 잠깐 들러 성체 앞에서 자비의 성심을 찬미하는 시간을 바치라는 것이다.
1931년 2월 22일 환시 중에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난 그리스도는
수녀가 본 당시 모습 그대로 상본을 그리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글을 넣도록 하셨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고통스런 순간들을 예수님과의 일치 안에서 성화시킬 수 있음과,
특히 영성체를 통해 우리 마음에 일치하시는 예수님의 신비를 새롭게 할 것을 배운다.
성녀 코발스카는 1905년 8월 25일 폴란드 우지의 서쪽에 있는 글로고비에츠(Glogowiec)라는 마을에서 농부인 에스타니슬라오 코발스카(Estanisla Kowalska)와 마리아나(Mariana) 사이에서 10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스비니체 바르키에(Swinice Warckie) 본당에서 엘라나(Helen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가난하고 배운 것은 없었지만 신심이 깊고 올곧은 사람들로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순명, 부지런함에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9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어려운 가정환경 등으로 3년 정도 교육을 받은 후 12세 때 고향을 떠나 부유한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동생들과 부모님의 생계를 도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도성소를 느꼈고, 더 이상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수녀원 입회를 원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일단 성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 후 1925년 8월 1일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928년 마리아 파우스티나(Maria Faustina)라는 수도명으로 첫 서약을 하였다. 그 후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는 수도원의 여러 공동체에서 조리사, 정원사, 문지기 등의 소임을 담당하면서 수녀회의 모든 규칙을 성실히 지키고 동료들과 따뜻한 우애를 나누었다. 그녀의 일상적인 삶은 단조롭고 두드러진 특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이룬 삶이었다.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는 많은 환시와 예언, 그 외에 영적 은총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조롱과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체험한 가장 강렬한 환시는 1931년 2월 22일에 일어났다. 이 환시에서 예수님은 한 손으로는 자신의 성심 근처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내밀어 강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예수 성심에서는 붉은 색과 흰 색의 두 갈래 빛이 나왔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신의 성심에 대한 공경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이 신심의 이름은 ‘하느님 자비’이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 환시를 그림으로 그려서 체험을 기념하고 아울러 그 그림을 보고 공경하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녀의 일생을 통해 여러 번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영적인 지도와 기도의 은총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말씀은 성녀 파우스티나가 직접 기록한 일기에 담겨 있으며, 그 일기는 오늘날 “내 영혼 속 하느님의 자비”(Divine Mercy in My Soul)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기에 기록된 성녀의 사명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성서가 전하는 신앙의 진리를 세상에 일깨워 주어야 한다. 둘째, 특히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느님의 자비’ 신심 실천을 통해, 온 세상과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야 한다. 셋째, 하느님 자비의 사도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신심 운동의 목표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간청하며,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폐결핵을 비롯한 수많은 고통들을, 죄인을 위한 희생으로 받아들이던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는 크라쿠프(Krakow)에서 1938년 10월 5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성녀의 시신은 크라쿠프 라기에프니키(Krakow-Lagiewniki)의 하느님의 자비 묘지(Shrine of Divine Mercy)에 안치되었다. 그녀는 1993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4월 30일 새 천년기에 처음으로 시성되었다.
(가톨릭홈에서)
사랑과 평화의샘 http://cafe.daum.net/lcg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