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콤플렉스
대한민국은 북한의 공산혁명 이론에 반대하여 수립된 국가이다. 때문에 자연히 공산혁명의 반대 세력인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정권의 핵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서구적인 분류로 보면 보수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해방 이후 공산혁명은 아닐지라도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을 가진 진보 세력도 존재하였으나 그들은 언제나 소수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군사 독재라는 사생아적 체제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군사 독재 체제는 민주주의 확립과 공산주의 타도라는 슬로건 아래 마치 자기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반공을 제일의 가치로 내걸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세력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반공은 받아들이지만 군사 독재만은 안 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군사 정권에 도전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 세력들은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구의 보수적 입장에 있으면서도 군사 정권 유지 세력과 군사 정권의 종식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구체화되지 못했다.
이러한 정치 세력의 갈등은 불행히도 후일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양측 모두 커다란 콤플렉스를 안겨 주고 말았다. 군사 독재 세력은 그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그들에게 저항하는 민주 세력을 좌익 세력으로 매도해 왔다. 이로 인해 민주 세력들이 친북좌파로 매도되어 곤혹을 치른 예는 수없이 많다.
어느 면으로 군사 독재 정권 이전에도 집권 세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끔 좌익 세력의 동조자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1959년 진보당의 조봉암을 간첩죄로 기소하여 사형을 집행한 사건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정치적으로 크게 보면 그 한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분단 속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갈등이 가져다 준 비극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군사 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수립되자 이제는 군사 독재에 억눌렸던 민주 세력들이 그 이전 군사 독재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을 수구반동 세력으로 비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상대 세력들을 비판하는 입장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얽혀서 '수구반동' 혹은 '친북좌파'라는 무서운 정치적 낙인을 찍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의 합리적 갈등을 저해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경제에 있어서 성장을 강조하면 그 반대 세력에 의해 수구반동이라는 낙인찍히기 쉬운데, 이는 바로 군사 독재 체제가 대기업 육성을 통한 경제발전 정책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성장보다는 분배가 우선이라고 하면, 이는 좌파적 냄새가 난다고 하여 그 반대 세력에 의해 친북좌파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친북좌파로, 이를 반대하고 상호주의를 강조하면 수구반동 혹은 친미종속주의자, 그리고 반통일분자로까지 매도되기도 한다. 과거의 정치적 갈등에서 빚어진 잘못된 공격적 발언에 양측 모두가 상처를 입고 있는 꼴이다. 세계화에 대한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화를 찬성하면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한 반민족주의자 등으로 매도되기 쉬우며, 세계화를 반대하면 냉엄한 국제 질서와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 혹은 맹목적 국수주의자 등으로 격하되어 온 측면이 적지 않았다.
위와 같은 잘못된 정치 투쟁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한국의 보수라는 용어는 군사 독재의 협조자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될 수 있는 콤플렉스를 수반하고 있으며, 진보라는 용어는 친북좌파로 확대 해석될 수 있는 콤플렉스를 동반하고 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 한국 사회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의 구별은 개인의 자유 강조이냐 아니면 공익 혹은 평등 강조이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의 정책적 갈등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콤플렉스까지를 동반함으로써 그 순수한 구별의 한계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중도 보수' 혹은 '중도 진보' 그리고 '합리적 보수' 혹은 '건전한 진보'라는 애매한 용어를 출현시키기까지 했다. 너무 한쪽만을 강조하면 매도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군사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구반동 세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대주의적 반민족주의자도 없고, 공산혁명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세력도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과감히 수구반동 혹은 친북좌파라는 이름표를 붙여 사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이러한 세력들이 없는 한 현재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논쟁은 자유민주주의 아래에서 개인의 권리나 자유의 강조냐 아니면 공익과 평등의 강조냐 하는 점에서 건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 논쟁들이 21세기의 현실 변화에 맞게 국가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 세력들은 일부 "통일이나 민족 등과 같은 거대담론"에 치우쳐 "대중을 오만하게 '계몽'하려 했던 운동권식" 태도를 보임으로써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적인 입장에서 주장된 "재분배형, 복지형 국가로 전환하는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군사 독재에 기생하여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여 온 일부 보수 세력들이 군사 독재가 사라진 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군사 정권하에서 경제적 발전의 성과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자기의 과거 행동을 변명만 하는 사례도 있어 왔다.
때문에 경제적 성장 이론이 그 순수성을 훼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가 상대방에 대한 비합리적 덮어씌우기 식의 마구잡이 비판을 부채질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상대 정치 세력을 비방하기 위하여 군사 독재를 떠올리게 하는 수구반동이나 냉전적 의미를 내포한 친북좌파의 딱지를 붙이는 시대착오적인 퇴행성은 버려져야 한다.
첫댓글 우리들은 정치권을 신뢰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양극단을 선택한적이 없다. 다만 정치권력에 의해 양극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양 극단의 극한적인 정치권력의 이념을 부수는 일 뿐이다....